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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칼럼] 겸괘의 가르침

2020.01.29 | 조회 3175 | 공감 0

겸괘의 가르침



상생문화연구소 양재학


천도와 지도와 귀신과 인도의 변화원리는 바로 ‘가득 찬 것을 덜어내는’ 구체적 방법이다. 


하늘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현상을 나타내는 것은 달의 차고 이지러짐이다. 천도는 가득 찬 것을 덜어내 스스로를 낮춘 것에 보태준다. 


하늘은 에너지가 넘친 것은 덜어내 모자란 것에 보태준다는 것이다. 결국 음양의 불균형을 균형으로 바꾸려는 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다. 

   

땅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물의 흐름[流]이 가장 뚜렷하다.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로 흘러갈 수 있다. 



“죽은 것만이 영원하다. 파도가 오고 간다. 이것이 바다가 살아 있는 비결이다. 파도가 출렁이지 않으면 바다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죽을 것이다. 



모든 것은 변화를 통해 살아간다. 변화란 양극단 사이에서의 변화를 말한다.” 오쇼 라즈니쉬/손민규, 『서양의 붓다- 헤라클레이토스 강론』(서울: 태일출판, 1999), 26쪽.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음양 에너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움직임이 바로 천지의 숨결인 것이다.


귀신 역시 하늘과 땅과 마찬가지로 빽빽한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것에 복을 내린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귀신에게는 가치의 문제가 개입된다는 점이다. 귀신은 화복을 주관한다는 것이다. 


귀신을 우주론적 개념으로 볼 것이냐, 자연신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가 뒤따른다. 전자가 철학에서 다루는 명제라면, 후자는 종교의 주제이다. 


이는 다시 화복禍福과 길흉 역시 음양 운동이 원인이자 결과라는 것이고, 대상적으로 존재하는 귀신이 화복을 결정하는 주체라는 것으로 압축할 있다. 


생성론자들은 이 세상에는 고정된 사물이 없기 때문에 생성의 과정(process)만 믿는다. 그들에게는 과정이 곧 신(귀신)이다. 과연 그렇다면 신은 일자一者인지, 다자多者인지의 문제로 환원된다. 


만약 신이 ‘일자’라면 유일신이 인간의 화복을 주관한다는 결론이며, ‘다자’라면 복과 화를 주관하는 귀신 역시 다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은 하늘과 땅과 귀신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올바른 인생에는 별도로 판도라의 상자가 필요 없다. 


군자의 삶은 자연의 이법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굴곡이 없다. 굴곡의 원흉은 교만과 사치와 태만한 마음이다. 




오만한 마음에는 더 이상 채울 것이 없으나, 겸손의 그릇은 늘 비어 있기 때문에 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오만의 그릇은 쏟아보면 나올 것이 없으나, 겸손의 빈 그릇에서는 지혜가 넘쳐 흐른다.


겸손의 미덕은 지위에 좌우되지 않는다. 높으면 높을수록, 낮으면 낮은 대로 쓸모 있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군자는 운명적으로 정해진 굴레가 아니다. 누구나 겸손한 마음으로 실천하면 된다. 


예전에 럭비 영웅 ‘하인스 워드’보다 빛난 어머니의 겸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슈퍼볼의 MVP 하인스 워드가 피츠버그에서 화려한 승리의 퍼레이드에 나서려던 시간에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한 고등학교의 구내식당에서 동료들과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위생복 유니폼에 수수한 머리, 일하기에 편리한 신발 등 …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고, 평생 살아온 보람도 크련만 김씨의 표정과 말투는 무덤덤했다. 


워드가 ‘어머니에게 배운 가장 큰 교훈은 겸손이었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영웅 아들을 길러낸 어머니의 겸손은 ‘너도 나도 자기 자랑에 열을 올리는 이 시대에’ 어쩌면 영웅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 보였다. 


교만은 수많은 지식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겸손은 적은 지식으로도 풍요롭게 한다.


* 象曰 地中有山이 謙이니 君子以하여 裒多益寡하여 稱物平施하나니라(상전에 이르기를 땅 속에 산이 있음이 겸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내어 적은 데에 보태서 사물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공평하게 한다.)


「상전」의 얘기는 『중용』의 말을 실감나게 한다. 지나친 것은 줄이고, 모자라는 것은 늘린다. 지나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이 바로 ‘중용’이다. 


장사치에게 저울은 돈벌이 도구이다. 저울은 가볍고 무거운 것을 재는 척도이다. 저울의 평형을 이용하여 사고파는 물건 값을 정한다. 


저울은 좌우로는 수평을, 상하로는 수직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물건과 저울추의 균형이 잡힌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물건을 보태거나 줄이고, 저울추를 옮겨 다시 잰다. 


그래야 상인은 적정한 이윤을 남겨 팔고, 손님은 부당한 손해를 입지 않고 살 수 있다. 상거래에서 막힌 것을 뚫는 것이 바로 저울이다. 저울의 이치가 바로 겸손의 미덕인 셈이다.


겸괘의 가르침은 많은 것은 덜어내고, 적은 것은 보탬으로써 균형을 통한 안정의 유지에 있다. 이른바 맹자의 왕도정치는 많고 적음의 불평거리를 해소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득의 불평등이 아니라 분배의 균형을 강조하는 것이 유가의 요체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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