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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고요함을 사랑하노라 (4)

2021.05.03 | 조회 5523 | 공감 0

나는 그 고요함을 사랑하노라[我愛其靜]

4. 큐진極尽과 교지ぎょうじ


상생문화연구소 황경선


앞에서 하이데거 사상의 궁극적 지향지로 제시한 고요함에 보다 가까이 들어서고자 했다. 이에 따르면 고요함은 존재 발현의 장, 예컨대 사역에서 생기하는 것이었다. 존재는 은닉으로부터 원으로, 사방으로 밝게 트이며 스스로를 열어 밝히고 존재자는 그 밝음에서 다른 무엇이 아닌 그 자체로 들어선다.


그리고 인간 역시 그 존재의 가까이 머묾, 관여, 응시에 사유, 내맡김, 바라봄 등의 방식으로 응대하며 제 본질에 이른다. 이러한 인간의 상응은 구조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뒤로 물러서 그것을 받아들여 지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존재 발현에 속하는 모든 것이 제 고유함으로 돌아가는 것이 고요함이다. 여기서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유와 안식이 담보된다.


그리고 논의 가운데 더 용이한 이해를 위한 방편으로 여러 곳에서 인도와 노장, 선불교, 시인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는, 특히 고요함의 문제는 이해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여전히 남아 있는 생경함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우리와 많은 정신적 유산을 공유하는 나라인 일본의 한 선사禅師를 ‘부록’삼아 소개하고자 한다.


그 또한 존재와 인간의 관련 안으로 나 있는 길 위에서, 고요함 속 사물이 그 자체가 되고 내가 나 되는 사유를 내놓았다. 그는 13세기 일본 선불교의 한 교단의 창시자로서 유명한 선사며 시인이고 철학자인 도겐[道元](Dōgen Zenji, 1200~1253)이다. 여기서 살펴볼 것은 그의 작품집인 『Shōbōgenzō』에 실린 에세이 「현성공안現成公按」(Genjōkōan)에서 다뤄진 내용이다.


그에 대한 이하의 논의는 주로 Nico Jenkins가 저술한 Echoes of No Thing: Thinking between Heidegger and Dōgen에서 해당 부분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도겐 선사는 『Shōbōgenzō』에서 의미가 비슷하지만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極尽’(gujin; total exertion)과 ‘ぎょうじ’(gyoji; continuous practice)이다. 둘 다 영어나 한국어로 적절히 번역하기 어려운 개념들이다.


Nico Jenkins가 'total exertion'으로 옮기는 ‘큐진’(gujin)은 영어 단어와 문맥에서 볼 때, ‘전력을 기울임’, ‘활발한 분투奮鬪’, ‘노력을 다함’ 등의 뜻으로 이해된다. 여기서는 잠정적으로 ‘발휘發揮’로 옮겨 본다. 썩 좋은 번역이 아닐 수 있지만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 ‘발현’과 대응시켜 보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시도했다.


‘끊임없는, 지속적인 수행’을 가리키는 ‘교지’(gyoji)는 존재 발휘를 향한 인간의 관련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간략히 ‘수행’이라고 표현했다. 도겐의 발휘(큐진)와 수행(교지) 개념은 하이데거에서 발현과 사유 개념과 유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도겐에 있어 발휘와 수행의 관계는 하이데거에서 발현과 사유의 그것과 같다. 이제 도원의 말을 들어보자. 


“삶은 배를 운행하는 사람과 같다. 비록 그가 장대로 배를 몰고 방향을 조종하지만, 배가 그를 태우고 있다. 배를 떠나서는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가 배를 운행함으로써 배는 배의 고유함으로 있게 된다. 바로 ‘이 때’를 부지런히 공부하라.”


여기서 우리는 도겐의 ‘삶’을 모든 존재자의 존재로 고려한다. 이렇게 여기는 것이 도원의 사유에 오히려 더 부합되지 않나 생각된다. 도겐이 말하는 ‘이 때’는 배와 사람이 서로를 존재하게 하면서 함께 속하는 순간이다. ‘이 시간’에는 배와 사람은 하나다. 여기서 주객 분리는 떨어져 나간다. 이러한 시간에는 오직 배의 세계만이 있다.


하늘, 땅, 물가 등 모는 것은 배의 시간이 된다. 하늘, 물, 배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하늘, 물, 배는 바로 이 순간 안에 균형을 이루며 하나로 어울린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 배를 모는 사람의 몸과 마음, 자아 그리고 세계는 다 함께 배의 역동적 기능이다. 대지 전체와 텅 빈 하늘 전체가 배의 존재 발휘와 조화를 이룬다. 도원은 이 ‘시간’을 힘써 배우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전력을 다한 배의 역동적 존재 발현이 큐진, 즉 발휘이다. 발휘는 한 존재자가 그 활동에서 자신을 절대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책상, 언덕 위 바위, 머리 위의 새, 앞에 놓인 커피, 옆에 있는 핸드폰 등 모든 것들은 끊임없는 발휘를 통해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예컨대 한 음악가의 공연을 보자. 음악에 자신을 담는 음악가의 열정, 헌신, 그렇게 전력을 기울이는 발휘를 통해 음악이 다른 무엇이 아닌 음악으로서 현성한다.




도겐은 예술가의 공연에 그치지 않고 세계 안의 모든 것들이 그 자신의 시간 안에서 존재를 극진하게 발휘하고 있다고 말한다. 배나 배를 모는 사람이 그렇듯, 빈 하늘도 꽃도 풀밭도 그 위의 산도 골짜기를 걸어가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 역시 배와 배를 모는 사람처럼 하늘과 물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자이다.


혼자서 풀밭을 가로질러 가는 존재자이면서 세계의 수많은 것들과 완전히 서로 연결돼 있고, 나아가 관통돼 있다. 나는 내 자신을 전력을 다해 발휘하면서 나 혼자서 만들 수 없는 어떤 것, 즉 세계로서 존속한다. 나의 발휘를 통해 동일하게 발휘하는 세계를 내세운다. “자두나무가 꽃피는 바로 그 순간, 그 개화開花에서 세계는 생기한다.” 또 도겐은 “무진장한 창고가 바로 내 발 아래 그리고 한 방울의 물 안에 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모든 다르마[존재자]들은 각자의 고유함을 발휘하며 머무는 시간으로부터 그 안에서 그와 함께, 즉 시간의 장場에서 그 밖의 모든 것과 서로 속하며 하나를 이룬다. 모든 것은 모든 것이다. 당연히 존재 발휘의 시공간인 이 시간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의 연속’이라는 통상적 시간 개념과 구별된다.


그것은 예컨대 횔덜린이 “시간은 장구하다. 그러나 참된 것은 고유하게 일어난다.”(「므네모시네」)라고 말할 때, 후자의 [고유하게] 일어남의 시간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도겐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소나무는 시간이다. 그래서 소나무는 대나무이다.” 시간의 ‘한 마당’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과 동일하다.


일본 철학자 니시타니(西谷啓治, 1900~1991)는 이 시간의 장을 ‘순야타[空]’로서 이해한다. 니시타니는 일본 전후戰後의 교토학파[京都學派]를 대표하는 철학자다.  공空(순야타)을 주제로 한 그의 저술들은 아시아권의 철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세계적으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1937년과 1939년 사이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하이데거의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하이데거와의 교류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순야타를 우리 자신과 모든 것들이 그 자신의 고유한 그러함에서 드러나는 발현의 장으로서 규정한다. 그것은 사물이 그것인 바대로 존재하도록 허락되는, 다시 말해 그것들에게 본질적 존재를 되돌려주는 존재 생기의 기반이다.




순야타의 장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신을 그 자신으로 불러 모음으로써 다시금 집중의 힘, 도겐의 경우라면 발휘를 회복한다. 모든 사물들이 절대적 무에서 생기하며 자기와 무관한 이러저러한 규정들을 떨구고 비로소 ‘그 자신의 주체’(master of self)가 되는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공은 무화無化(Nichtung)의 장인 허무주의와 대조적으로 자기됨(Ichtung)의 장이라 불릴 수 있다. 니체의 말로 표현하면 이 장은 우리가 모든 것에 대해 'yes'라고 말할 수 있는 위대한 긍정의 장이다.”


그러나 사물이 절대적 공의 장을 지나 자기됨과 다시 결속했다 해도 얼른 보기에 이전의 것, 예컨대 이전의 컵, 사람, 숲과 다른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니시타니에 따르면 여기에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 이전 사물이 여전히 단순히 물질적 세계의 한 대상이거나 의지나 이성의 표상으로 여겨졌을 때, 그것은 다만 주관과 관련에서 바라보인 것, 혹은 공간 안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절대적 무의 장을 건너지르면서, 한 사물은 더 이상 개별적인 현상들이나 어떤 다른 것의 그림자로서 표현되지 않는다. “[사물의 존재 양상은] 우리의 표상이나 판단과 무관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물들의 이면이나 숨겨진 측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표현들은 이미 우리가 서 있는 입장으로부터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사물은 그 자신의 기반에서는 앞도 뒤도 없다. 그것은 순전히 그리고 단순하게 그 자신의 고유함으로 있는 바 그 자체이며 그 밖의 다른 것이 아니다.” 순야타가 현성하면 이성과 로고스로써 건립된 세계, 세계상像으로서의 세계는 고요함으로 무너져 내린다.


일본의 고유한 시 장르인 하이쿠의 대표적 작가인 바쇼芭蕉(Bashō, 1644~1694)의 말도 그 뜻을 담고 있다. “소나무로부터 소나무를 배우고 대나무로부터 대나무를 배운다.” 우리가 소나무에 대해 본래적 배움이나 사유를 수행하려고 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소나무의 존재 양상 안에 놓아야 한다.


우리의 주관적 기대나 이해에 따라 소나무를 그것과 상관없는 어떤 다른 것의 문맥 안에 가둬서는 안 된다. 상상 없이 보고 왜곡 없이 들어야 한다. 즉사즉진의 말간 시선 속에 소나무는 나의 요구에 매개되지 않은 채, 말하자면 나의 ‘때’가 묻지 않은 채 그 자신의 고유함으로 고요히 현성하게 된다.




다시 도겐으로 돌아가면 이러한 존재 발휘는 오직 인간의 편에서의 수행(gyoji : continuous practice)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큐진에는 교지가 상응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물을 향하는 수행 없이는 우리는 분리되고 대립하는 개별적 본질들의 세속적 세계에 빠질 것이다. 존재 발휘에서 무수한 존재자들이 매순간, 바로 이 순간 자신을 드러내며 고요히 자리 잡고 있다.


개별 존재자의 존재로 가지런히 마음을 모아 거기에 머무는[關注]는 수행, 다시 말해 상호적이고 활기 있는 존재와의 조율은 도겐 사상을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 세계 현성을 향한 끊임없는 조율과 동화로서의 지속적인 수행은 상주常住하는, 그러나 자신을 감추고 멀어진 시원적 세계로 다시 들어서는 데 필수적이다.


도겐에서 이 수행의 첫 번째는 좌선坐禪이다. “머리 위 불을 털어내듯 그렇게 주저함이 없이” 향해야 한다고 하는 좌선은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관조나 반성 등의 어떤 정신적 행위도 아니다. 그것은 도무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음이다. 그럼으로써 좌선은 자신을 절대적 고요함의 장에 쓰이도록 한다.


이때 정신이나 감각에 지각되지 않는 것, 있지만 있지 않은 것[空]이 드러나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그 장 안에 하나로 불러 모여 그 자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도겐에 따르면 절대적 공의 장으로 조율된 무사고無思考에 끊임없이 마음을 모음으로써 우리는 위대한 안식과 축복의 문을 지나게 된다. 절대적 공의 장인 순야타를 깨닫는 과정에 대해 얘기하는 다음의 구절은 도겐의 「현성공안」에서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것으로 꼽히는 것이다.  


“부처의 길을 배우는 것은 자신을 배우는 것이다. 자신을 배우는 것은 자신을 잊는 것이다. 자신을 잊는 것은 모든 존재자들(all dharmas)에 의해 받아들여지는(be confirmed) 것이다. 모든 존재자들에 의해 승인되는 일은 자신의 몸과 마음, 더불어 타자의 몸과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깨달음의 모든 흔적이 사라진다. 이 흔적 없는 깨달음이 끝없이 계속된다.”


오직 내가 완강하게 내세우는 자아를 적극적으로 버림으로써, 일상적인 이분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오직 이와 같이 자신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다르마들에 의해 승인되도록 허락함으로써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타자의 몸과 마음을 벗어던질 수 있다.


상주하는 것들에 대해 깨어나는 ‘이때’ 사물이 그 자체가 되고 내가 참나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벌어진다. 고요함은 여기에 깃든다. “시간은 장구하다. 그러나 참된 것은 고유하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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