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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9) -「기러기 소리를 들으며(문안聞雁)」

2021.07.09 | 조회 5302 | 공감 0

위응물의 「기러기 소리를 들으며(문안聞雁)」

상생문화연구소 원정근


【제목풀이】 

이 시의 제목은 「기러기 소리를 들으며(문안聞雁)」이다. 이 시는 위응물이 회남淮南에서 가을비 내리는 밤 높은 누각에 있는 서재에 홀로 앉아 북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 소리를 듣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은 것이다.


위응물韋應物(737-792)은 중당 시기의 저명한 시인이다. 시의 풍격이 청신하고 담박하여 왕유, 맹호연, 유종원 등과 유사하다. 사람들은 그들을 ‘왕맹위유王孟韋柳’로 병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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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아득타 어드메뇨?

돌아가고픈 생각 바야흐로 아득하누나.

가을 비 내리는 회남의 밤,

높은 서재에서 기러기 소리 듣네.


고원묘하처故園渺何處,

귀사방유재歸思方悠哉.

회남추우야淮南秋雨夜,

고제문안래高齊聞雁來.

 

고원故園은 고향故鄕을 뜻한다. 시인의 고향은 장안長安이다. 위응물은 당 덕종德宗 4년(783)에 상서비부원외랑尙書比部員外郎으로 있다가 고향 장안을 떠나서 저주자사滁州刺史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시는 위응물이 저주자사로 부임한 직후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인이 지금 머물고 있는 회남淮南은 당나라 때 회남동도淮南東道에 속한 곳으로,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저현滁縣을 가리킨다. 저현은 장안과 이천여 리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시인은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타향살이에 지친 나머지 고향이 그리워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누각의 서재로 올라갔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정든 고향집을 더 멀리 바라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두컴컴한 밤이기에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온통 어둠뿐이니, 청각은 더욱더 예민해지게 마련이다.



 

기러기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라고 노래한 박목월 시에 김성태가 작곡한 「이별의 노래」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기러기는 북쪽 고향에서 따뜻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간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기러기가 하늘을 날며 끼룩끼룩 울어대고 있다. 아마도 시인의 고향이 있는 북쪽 장안에서 날아온 기러기일 것이다. 시인은 기러기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에 불현듯 북쪽 장안에 있는 고향집이 생각났다. 고향집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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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꽃 속에서 그대를 만나 헤어졌는데,

오늘 꽃 피니 또 일 년이 지났구려.

세상일 아득아득 헤아리기 어렵고,

봄 수심에 암담하여 홀로 잠 이루네.

몸에 병이 많아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고,

고을에 유랑민이 많으니 녹봉이 부끄럽구나.

듣자니 날 만나려 오신다는데,

서쪽 누각에 달이 몇 번이나 둥글어져야 되려나?


去年花里逢君別,

今日花開又一年.

世事茫茫難自料,

春愁黯黯獨成眠.

身多疾病思田里,

邑有流亡愧俸錢.

聞道欲來相問訊,

西樓望月幾回圓?

 

이 칠언율시의 제목은 「기이담원석기寄李儋元錫」이다. 시인이 말년에 저주자사로 근무할 때 친구인 이담에게 보낸 시다. 이담은 자가 원석으로 당시 전중시어사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기이담원석기寄李儋元錫’에서 ‘이담원석李儋元錫‘을 이담과 원석 두 사람으로 해석한다.


지난해 봄 꽃 피던 시절에 이담과 헤어졌는데 오늘 꽃이 피었으니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세상살이가 막막하여 어찌 될 것인지 미리 헤아리기 어렵고, 봄날의 수심이 가득하여 홀로 잠을 청한다. 몸에는 병이 많아 직무를 감당하기 어려우니 전원에 돌아가서 은거하고 싶고, 고을에는 유랑하는 사람이 많으니 나라의 녹봉을 받는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대가 조만간 나를 찾아온다고 들었는데, 저 달이 몇 번이나 지고 떠야 그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이 시에서 벼슬살이와 전원살이 사이의 모순과 갈등을 토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응물은 저주자사로 부임한 뒤에 몸소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게 되었다. 자신이 맡고 있는 고을에 정든 고향을 떠나 타지를 떠도는 유랑민이 많이 생겨났다. 시난고난 골골하여 책무를 다하지 못하기에 벼슬살이를 버리고 조용한 곳에 은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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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강과 한수에서 나그네 되어,

만나면 매번 취하여 돌아왔지.

뜬구름처럼 한 번 헤어진 뒤,

흐르는 강물처럼 십 년이 지났구나.

기뻐하며 웃는 정은 옛날 같건만,

듬성해진 살쩍 벌써 반백이 되었구나.

그대는 어째서 돌아가지 않는가?

회수 가에 가을 산이 있어서라오.


강한증위객江漢曾爲客,

상봉매취환相逢每醉還.

부운일별후浮雲一別後,

류수십년간流水十年間.

환소정여구歡笑情如舊,

소소빈이반蕭疏鬢已斑.

하인배귀거何因不歸去,

회상대추산淮上有秋山.


이 시는 「회상희회양천고인淮上喜會梁州故人」이다. 회수가에서 양천의 친구를 만나 기쁜 마음에 지은 시다. 회수는 지금의 강소성 회양 일대이고, 양주는 지금의 섬서성 한중시다. 양주의 친구는 10년 전에 양주의 장강과 한수의 지역에서 함께 교유한 적이 있었다. 시의 제목에서 친구를 만나서 기쁨을 노래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한마음에 두 감정-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이 교차하는 희비교집喜悲交集의 관점에서 읊조린 것이다.


시의 첫머리에서 시인은 회수 가에서 양주의 친구를 만난 기쁨을 노래한 다. 두 사람은 만나면 실컷 술을 마신 뒤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하여 집에 돌아갔다. 뜬구름이 흘러가듯, 한 번 헤어진 뒤로 십 년이란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다. 웃으며 환담을 나누노라니 기쁜 마음은 예전과 같지만, 어느새 듬성해진 귀밑머리는 반백이 되었다. 흐르는 세월을 그 누가 탓할 수 있으랴!


마지막 두 구절에서 시인은 선불교의 화두와 같은 물음을 제시한다. 시인이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타향에서 머무는 건 회수가에 가을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알쏭달쏭하게 대답한다. 가을 산의 풍경에 매료되어 아직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향의 가을 산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답기로소니, 어찌 고향에 돌아가는 즐거움에 견줄 수 있겠는가?


중당 시기에 도연명의 인품과 시품을 참으로 흠모하고 존숭한 이가 있다. 위응물이다. 위응물은 도연명의 시체를 모방하여 화도시和陶詩를 지었다. 「동쪽 교외(동교東郊)」, 「도연명을 본받아(효도팽택效陶彭澤)」, 「도연명 시체를 본받아(효도체效陶體)」 등이 대표작이다. 명대의 이동양李東陽은 『회록당시화懷麓堂詩畵』에서 “도연명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모름지기 위응물과 유종원에서 들어가는 것이 곧 바른 길이다.”(惟謂學陶者, 須自韋柳而入, 乃爲正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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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다가도록 관아에 얽매여 있다가,

맑은 새벽 탁 트인 교외로 나갔네.

버드나무는 부드러운 바람에 하늘거리고,

푸른 산은 내 염려 담담하게 해주네.

숲에 기대 편안히 혼자 쉬다,

시내 따라 돌다가 다시 거니네.

가랑비 자욱한 꽃 핀 들판에,

봄 비둘기 어디에서 우느뇨?

즐기려던 그윽한 마음 자주 막히고,

공무를 따르는 것 여전히 분주하네.

벼슬살이 그만두고 여기에 띳집 지으면,

도연명 흠모하는 마음 참으로 이루어지련만.


이사국종년吏舍跼終年,

출교광청서出郊曠淸曙.

양류산화풍楊柳散和風,

청산담오려靑山澹吾慮.

의총적자게依叢適自憩,

연간환복거緣澗還復去.

미우애방원微雨靄芳原,

춘구명하처春鳩鳴何處?

낙유심루지樂幽心屢止,

준사적유거遵事跡猶遽.

종파사결려終罷斯結廬,

모도진가서慕陶眞可庶.


일 년 내내 관아에 얽매어 있다가, 이른 새벽에 사방이 확 트인 교외로 나갔다. 버드나무는 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고, 푸른 나무는 나의 근심을 담담하게 해준다. 숲 속 나무에 기대어 혼자 쉬다가, 시냇물을 따라 돌면서 이리저리 거닌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꽃 핀 들판에 어디선가 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자연의 풍광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은거하고 싶지만, 벼슬살이로 인한 업무로 마음이 번잡하기만 하다. 하지만 벼슬살이를 때려치우고 초가를 지어 산다면, 전원의 고향에서 도연명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평생의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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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와 이슬에 온갖 풀 시들어가건만,

제철 국화꽃 홀로 예쁘구나.

국화의 본성이 이럴진댄,

추위 더위도 어쩌지 못하리.

국화꽃 따서 막걸리에 띄우고,

해 지자 농가에서 모이네.

띳집 아래서 흠뻑 취하니,

인생의 즐거움이 어찌 많음에 있으랴?


상로췌백초霜露悴百草,

시국독연화時菊獨妍華.

물성유여차物性有如此,

한서기내하寒暑其奈何.

철영범탁료掇英泛濁醪,

일입회전가日入會田家.

진취모첨하盡醉茅檐下,

일생기재다一生豈在多?


팽택彭澤은 지금의 강서성에 속한 한 현의 이름이다. 도연명이 마지막으로 벼슬살이를 한 곳이다. 그래서 도연명을 도팽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시는 「도연명을 모방하여(효도팽택效陶彭澤)」이다. 도연명의 「음주이십팔수‧기팔」에 나오는 시를 모방하여 지은 것이다.


도연명은 근심을 잊게 해주는 망우물忘憂物인 술을 이웃 농부들과 함께 나누어 마시며 그 무엇에도 얽매임이 없이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다. 위응물은 도연명의 이런 삶의 경지를 본받고자 했다. 위응물이 보기에 인생의 즐거움은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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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 들고 꽃나무 숲에 이르니,

천 년 무덤이 앞에 있구나.

지금 함께 술 잔 기울이지 못하니,

이곳 황천 밑에 있는 사람을 어이할거나?

막 아름다운 경물을 즐기려는데,

가는 봄이 걱정스럽네.

애오라지 세속의 자취에서 멀어지는 생각 펼치다가,

앉아서 산으로 돌아가는 구름을 바라보네.

잠시나마 한바탕 즐겁게 웃으니,

어찌 비천함과 가난함을 알리오?


攜酒花林下, 前有千載墳.

於時不共酌, 奈此泉下人?

始自翫芳物, 行當念徂春.

聊舒遠世蹤, 坐望還山雲.

且遂一歡笑, 焉知賤與貧?


이 시는 「여우생야음효도체與友生野飮效陶體」이다. 벗들과 들판에서 술을 마시며 도연명의 시체詩體를 모방하여 지은 것이다. 위응물이 모방한 시는 도연명의 「제인공유주가묘백하諸人共遊周家墓栢下」이다. 도연명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주씨 집안의 산소에 소풍을 가서 측백나무 밑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지은 시다.


흥미로운 것은 도연명이 산소를 소풍의 장소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덧없는 삶 속에서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기 위해서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뜬구름 같은 인생을 돌아보면서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하자는 것이다.


위응물은 해질녘 산으로 돌아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이렇게 꿈꾸어본다. 언젠가 전원으로 돌아가 한 잔 술을 즐기면서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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