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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세기 문화코드] 11. 고조선의 복식문화

2017.08.08 | 조회 11014 | 공감 0



11. 고조선의 복식문화



고조선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살았을까. 


『후한서』 「동이열전」 서序에는 “동이는 거의 모두 토착민으로서,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하고, 변弁(고깔모양의 모자)을 쓰거나 금錦(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라고 하였다. 


또 『삼국지』 「부여전」에는 “부여 사람들은 흰색 옷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었다.” 라고 했다. 


이 기록은 부여 풍속을 말한 것이지만, 부여는 고조선을 계승한 나라이므로 이러한 풍속은 고조선의 것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후한서』 「동이열전」과 『삼국지』 「고구려전」에는 “예濊 사람들은 남녀 모두 깃이 둥근 옷을 입고 은으로 만든 꽃으로 장식을 하였으며, 고구려 사람들은 비단에 수놓은 옷을 입고 금과 은으로 장식을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예와 고구려는 원래 고조선의 거수국이었으므로 이러한 옷차림은 고조선과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조선 사람들은 고깔모양 모자를 즐겨 썼던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흙인형의 머리모양을 보면 고깔모자를 쓴 것처럼 만들어졌다. 


유물 등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서도 이를 추정할 수 있다. 그 증거가 함경북도 서포항 유적이다. 서포항 유적은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출토된 남자인형은 모두 서 있는 형태인데 아랫도리옷은 가랑이가 없이 넓게 퍼져 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두루마기나 도포 같은 겉옷을 입었음을 알게 해준다. 


고조선에서는 옷감으로 삼베, 모직, 명주 등이 생산되었다. 옛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은 비휴豼貅 가죽이나 표범 가죽, 말곰 가죽과 모피 의류를 중국에 수출했다. 이로 보아 고조선에는 모피 의류도 매우 발달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통설은 누에치기 역사는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로 전파된 것으로 여겨왔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의 누에치기는 5000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북한과 만주의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질그릇 바닥에 뽕잎을 그려 놓은 것이 출토된다고 한다. 


압록강 대안 요령성 동구현 마가점진 후와유적에서는 BCE 4000까지 올라가는 누에 소조가 발견되었다. 고조선에서 기르던 누에는 중국의 넉잠누에와는 다른 석잠누에라고 한다. 고조선 말기와 그 이후 평양 일대에서 발견된 고대 비단은 모두 석잠누에로 짠 것이다. 


단군왕검이 하백의 딸을 왕후로 맞이하여 잠업(누에치기)을 관장하게 했는데, 이것은 양잠기술이 그 이전 배달국에서부터 전해 내려왔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사서들은 잠신蠶神이 실을 뽑아 황제 헌원에게 바쳤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양잠기술이 배달국에서부터 중원으로 건너갔음을 암시한다. 


『후한서』 「동이전」과 『삼국지』 「동이전」에서 “마한 사람들은 잠상蠶桑을 알며 솜과 베를 만든다”고 한 것 또한 양잠이 고대 동이족이 시작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농업을 기본으로 하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식물섬유로 짠 천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고조선에서 삼베와 모직을 옷감으로 이용했다는 것은 출토된 유물로 확인된다. 


평안북도 중강군 토성리에서 고조선 시대 유물인 삼베 조각이 출토되었고 길림성 성성초星星哨 유적에서는 양털과 개털을 섞어서 짠 모직물이 출토되었다. 고조선 후기 유적인 길림성 후석산猴石山 유적에서는 나온 마포는 방직기를 사용한 것이다. 


고조선 사람들의 바느질 솜씨는 상당히 꼼꼼했다.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읍 호곡동 범의구석 8호 집자리에서는 봇나무 껍질을 누빈 것이 발견되었다. 


그 솜씨가 쇠바늘을 쓴 것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밀하였다. 함경북도 서포항 유적의 고조선 문화층에서는 뼈로 만든 바늘통 안에 바늘들이 보관된 것이 출토되어 고조선 사람들이 바늘을 매우 소중하게 다루었음을 알 수 있다. 


옷을 장식하던 청동단추를 비롯한 치장용품이 발견되는데 단순한 옷을 만들어 입은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치장했다. 이처럼 고조선은 의복제작기술이 발달해 있었고 길쌈하고 옷 짓는 것이 매우 중요한 생활의 일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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