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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바로 읽기
『삼국유사』 바로 읽기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던 시기는 세계적으로 서양제국주의가 급속하게 팽창하던 때였다. 제국주의 열강은 진보라는 미명 아래, 문명이 발전한 나라나 민족이 그보다 뒤처진 다른 나라를 문화, 정치, 경제적으로 식민지로 삼아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겼다. 일본도 이 영향을 받아 아시아를 식민 지배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선을 강탈한 일제의 고민은 우리민족이 일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일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스승국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총칼로 잠시 지배할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식민지로 삼기에는 조선의 문화적 저력이 너무 컸다. 이에 일본은 조선 민족을 완전히 일본에 동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보다도 조선 상고사 말살과 역사왜곡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1910년 11월부터 약 14개월 동안 조선 강토 구석구석을 뒤져 역사서를 포함한 20여 만 권의 각종 도서를 수거하여 대부분 불살라 버렸다. 그러면서도 조선사를 왜곡과 식민지배에 도움이 될 만한 사서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 결과 남겨진 것이 『삼국사기』·『삼국유사』였다.
『삼국사기』가 살아남은 것은 고조선 이전 역사를 뺀 삼국에 대한 역사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일제의 치밀한 역사왜곡정책에 따라 어용학자들이 동원되었다. 일제 어용학자들은 한국사 말살과 왜곡을 위해 식민사관을 만들어냈다. 이 식민사관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서구 과학주의의 산물인 랑케의 실증사학이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실증사학을 내세워 『삼국사기』에 기록된 4세기이전 역사는 믿을 수 없다는 이른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만들어냈다. 이 이론은 지금까지도 한국 주류사학계의 통설로 자리 잡고 있다.
또 『삼국유사』를 남겨둔 이유는 삼국이전 역사를 말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이 조선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만든 기관인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 왜곡에 앞장선 인물 가운데 하나가 이마니시 류今西龍이다. 이마니시 류는 일제가 강탈한 조선사 문헌을 총체적으로 연구한 끝에 조선의 시원 역사를 말살할 결정적 작품을 만들었다. 바로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나오는 ‘석유환국昔有桓囯’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뜯어고친 것이다.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는 건국 이야기를 ‘옛적에 환인이 있었다’라는 인물사로 바꾸어 버렸다. 국囯을 인因으로, 글자 하나를 변조함으로써 한민족 상고사의 첫 나라인 환국을 통째로 지워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일연이 주석에 “제석을 이른다(謂帝釋也)”라고 했기 때문에 석유환인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석은 제석천환인의 줄임말로 인드라Indra라는 인도 신령을 일컫는다. 이마니시류는 일연을 내세워 한민족 시원 역사 부정의 근거를 세운 것이다.
이렇게 석유환국의 ‘국囯’ 자를 깨뜨림으로써 환국에서 뻗어 나간 배달과 고조선도 잘라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게 되었다. 이로써 한민족의 7천 년 상고사가 송두리째 뿌리 뽑혀버렸다.
이 석유환인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밝혀 주는 유일한 사서가 바로 『환단고기』이다.
『삼성기』 하에 적혀 있는 ‘석유환국昔有桓國’뿐 아니라, 『삼성기』 상의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라는 기록이 그 진실을 말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앞으로 환국을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환국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야 할 것이다.
일본은 일찍이 『일본서기』를 지어 1,300년의 자국 역사를 2,600년으로 늘렸지만, 조선 역사는 여전히 일본보다 장구하였다.
하지만 이마니시 류가 환국-배달-고조선의 삼성조 역사를 신화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조선 역사는 불과 9,000년 역사가 2,200년으로 대폭 축소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일제가 『삼국유사』를 우리민족 시원 역사의 뿌리를 송두리째 말살하는 근거로 삼았지만, 이 속에는 환국과 배달, 조선의 역사를 밝히는 진실이 담겨있다.
그러면 우리는 『삼국유사』를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우리가 『삼국유사』 「고조선」조를 오랫동안 읽다 보면 이유립 선생이 왜 이 글을 『신시개천경神市開天經』이라고 정의를 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삼국유사』 「고조선」조는 중국 왕침의 『위서魏書』를 인용해 일연 당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란 나라를 건국했다’고 전한다.
그 다음 단군조선이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옛 기록, 『고기』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 그것은 놀랍게도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석유환국昔有桓國)’는 인류 최초의 나라를 선언한다. 그런데 이마니시 류가 이 나라 국國자를 인因으로 조작하면서 글자 하나로 우리 역사의 근원을 모두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환국의 통치자 환인으로부터 그 아들 서자부의 환웅이 국통과 종통 상징인 천부인 세 가지 성물을 받아가지고 동방으로 와서 신시라는 나라를 여시고 어떻게 다스렸다는 것이 나온다.
그 다음 사람이 되기를 원한 곰과 호랑이 대목에서 우리 역사를 잘못 보는 문제가 발생한다. ‘환웅천왕이 쑥과 마늘을 먹고 여자가 된 곰과 결혼을 해서 단군을 낳았다’고 해석하면서 신화로 변질되어 역사성을 부정하는 논리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주류사학계에서는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삼는 족속으로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통치자의 신성성神聖性과 권위를 과시하는 신화일 뿐 역사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삼국유사』 「고조선」조는 우리 상고역사 시대에 대한 진실이 너무 간결하고 핵심만 전해지던 것에 일연이 불교의 안목과 그 시대 역사지식으로 주석을 잘못 달았을 뿐이다.
일연이 『고기』에서 인용한 「고조선」조의 내용은 『환단고기』를 통해 우리의 상고사를 바르게 만나게 된다.
『환단고기』의 원동중 「삼성기」 하에도 일웅일호一熊一虎라는 대목이 똑같이 들어있는데 구체적으로 웅족과 호족이라고 나온다. 이것은 웅족과 호족 대표자가 환웅천왕께 와서 자기들도 천지광명의 도를 체득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또한 곰과 호랑이에게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쑥과 마늘을 먹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수행을 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웅족이 여자의 몸을 얻었다는 것은 수행기간을 잘 견디고서 마침내 진정한 사람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제대로 해석된 한민족 뿌리역사의 핵심을 담고 있는 『삼국유사』 「고조선」조를 암송하여 9천년 민족사의 자긍심을 드러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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