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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세기 문화코드] 13. 주거와 음악

2017.09.14 | 조회 6496 | 공감 0


13. 주거와 음악


고조선의 주거 시설은 지배층과 백성들이 달랐을 것이다. 마을은 대부분 하천이나 해안, 또는 구릉지역에 형성되었는데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건을 갖추었다. 


주거지는 50~60cm 깊이로 판 반지하로 장방형이 주류를 이룬 지붕은 짚이나 풀로 만든 움집이었다. 난방시설은 움집 가운데 화덕을 설치하고 화덕 바닥이나 주위에 자갈을 깔아 열을 보존하는 방법을 썼다. 일반 주거지 일부에서는 주춧돌이 발견되기도 한다. 


『후한서』「동이열전」부여조에 궁실과 창고, 감옥이 있었다는 기록과 BCE 2~3세기 되는 요령성 여대시旅大市 목양성유적과 단산리유적, 윤가촌유적 등에서 여러 가지 문양과 문자가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된 것을 보아 지배층은 상당한 규모를 갖춘 건물에서 살았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의 마을 상상도 


그리고 우리민족 고유의 난방시설인 온돌도 고조선 후기 유적에서 발견된다. 함북 웅기와 평북 강계, 자성, 영변 등의 주거지 유적에서 구들 형태가 확인되었다. 


고조선은 제정일치 국가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예악이 발달했다. 만주 요령성 조양朝陽 수천水泉에서 하가점하층문화로 불리는 BCE 2000년경 청동기시대 초기 것으로 궁중 음악이나 제사 의례에 사용되는 악기인 석경石磬이 출토되었다. 


능원현 삼관전자에서는 편종이 출토되었다. 두만강 유역에서 BCE 2000년 전반기의 뼈피리[骨笛]가 발견됨으로써, 동방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예악禮樂이 발생해 민족음악으로 성장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음악으로는 배달 신시시대에 ‘공수貢壽’·‘두열頭列’이 있었고, 고조선시대에는 저 유명한 ‘어아가於阿歌’가 있었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는 ‘어아가’를 “신시(배달국)의 옛 풍속에 삼신을 제사하고 맞이하는 음악이다. 신시 이래로 매년 하늘에 천제를 지낼 때마다 나라에 큰 축제를 열어 모두 신(삼신상제)의 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화합하였다. ‘어아於阿’를 노래하며 감사를 표시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 하늘의 신명과 인간을 조화시키니 사방에서 모두들 본받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고구려에서도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열었는데 이 때 반드시 어아가를 불렀다. 


특히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전쟁에 임하는 군사들에게 항상 천악天樂인 어아가를 부르도록 하여 사기를 돋우었으며, 친히 마리산 참성단으로 말을 달려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드렸는데 이때도 항상 어아가를 불렀다.(『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일반 백성들도 음악을 즐기고 악기를 잘 다루었다고 여겨지는데 우리 민족이 옛 부터 노래와 춤을 즐겼다는 기록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후인箜篌引’ 또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서 추정할 수 있다. 공후인은 중국 晉나라 혜제 때(CE 291~307) 인물인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선의 진졸津卒이었던 곽리자고가 어느 날 새벽에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하얀 미친 노인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술병을 잡고 험하게 흐르는 강을 건너려하였다. 그 아내가 따라와 말렸으나 듣지 않고 강물에 빠져 죽었다. 


그러자 그 노인의 아내가 공후를 타며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며 노래를 부른 뒤에 그 아내도 물에 빠져 죽었다. 곽리자고가 집으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아내 여옥에게 하니 여옥은 공후를 타면서 그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공후인’이라고 하였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공후라는 악기는 현악기인데 중국에서는 서한西漢 무제 때인 BCE 106년에 처음 만든 것으로 나온다. BCE 106년은 위만정권이 망하기 2년 전으로 공후는 고조선에서 흔한 악기였으므로 고조선에서 서한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처럼 고조선에서는 공후, 비파 같은 현악기와 북, 석경, 편종과 같은 타악기, 피리 등의 관악기를 고루 갖추어 의례용 예악禮樂과 서민 음악이 함께 발달했음을 기록과 유물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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