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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三一神誥」가 인도하는 진아眞我(5)

2020.07.17 | 조회 4330 | 공감 0

「삼일신고」 2장에서 “일신一神”의 기원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문계석


「삼일신고」의 2장은 “일신一神”을 간략하게 정의하고 있으나, 그 뜻을 명확하게 파악하여 인식하기란 다소 까다롭다. 그럼에도 ‘일신’의 핵심 뜻은 대략 세 관점, 즉 모든 존재의 근원이고, 창조의 주체主體이자 주재主宰이며, 세계를 초월해있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이라는 관점으로 집약集約하여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일신一神’은 “더 이상의 상위가 없는 으뜸의 위격으로 존재한다[存無上一位]”는 것이다. 이는 ‘일신’이 우주만유의 제1원인이요 근원의 존재임을 함축한다.


둘째, ‘일신’은 “지극히 큰 덕과 최고의 지혜와 대단한 주재력[大德 大慧 大力]”을 가지고 ‘하늘을 낳았을[生天] 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세계는 물론이고 미미微微한 것들조차 하나도 빠짐없이 전적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이는 ‘일신’이 거시적인 것이든 미시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창조의 주체요 주재자임을 함축한다.


셋째, ‘일신’은 무한히 밝고 신령하여서 감히 감각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엄밀하게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지만, 그러나 세계에 내재하기 때문에, 인간 생명의 잉태孕胎는 물론이고 뭇 생명들 안에서 활동한다.


따라서 우리가 수행을 통해 각자 자신의 참된 본성으로 들어가서 ‘진아眞我’가 되면, 곧 ‘일신’을 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존재의 근원이요, 창조의 주체이며 주재자요, 세계내재적인 존재로 집약된 ‘일신’이 도대체 어떻게 출원하여 인간의 의식에 도입되었고, 근본적으로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我]’를 포함한 우주만유는 ‘일신’을 근원해서 현존하게 되고, 나아가 이 글의 목적인 ‘진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나[我]의 존재근원이 되는 일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신’은 한자어漢字語 ‘하나[一者]’와 ‘신神’의 합성어로 되어 있다. 글자 그대로 말하면 ‘일신’은 ‘하나의 신’이라는 뜻이다. 이제 ‘하나’와 ‘신’은 각기 무엇을 뜻하고, 양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일신’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원초적인 설명에로 나아가 보자.


우선 ‘하나[一]’는 무엇인가? ‘하나’는 존재의 ‘시작[始]’이요 ‘끝[終]’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가 이러한 뜻으로 쓰인 기원起源은 인류의 시원국가라 불리는 환국桓國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환국시대에 인류 최초의 계시록啓示錄이요 우주수학의 경전이라 불리는 「천부경」이 출현했는데, 「천부경」은 수數와 한자漢字가 조합調合하여 81자로 구성되어 있다. 「천부경」의 첫 구절은 “하나는 시작이나 무에서 시작한 하나이다[一始無始一]”라고 하고, 마지막 구절은 “하나는 끝이나 무에서 끝나는 하나이다[一終無終一]”라고 매듭을 짓는다. 


여기에서 ‘하나’는 ‘시작’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종점’을 뜻한다. 이를 검증할 방법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수數로써 예를 제시해볼 수 있다.


‘하나’는 만들어지는 수數들의 근원으로 ‘시작’이다. 동시에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는 경계에 이르면 새로운 차원으로의 전환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는 ‘끝’이 된다.


산술의 방식에서 볼 때,

‘하나[1]’에서 시작하여

둘[2=1+1],

셋[3=1+1+1, 혹은 2+1],

넷[4=1+1+1+1, 혹은 2+1+1, 혹은 2+2+, 혹은 3+1]

아홉[9]까지 만들어지고, ‘아홉’의 극점에서 열[10]로 넘어간다.


여기에서 ‘10’은 더 이상 새롭게 만들어진 수가 아니라 ‘1’과 ‘0’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완성수이다. 이후의 수들은, ‘11 = 10+1’이고, ‘12 = 10+2’이듯이, ‘1’이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수들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무한히 확장되는 수들은 전적으로 ‘하나’를 근원으로 하여 만들어져 존재하게 되는데, 역으로 말하면, 한량없이 확장된 전체적인 수들이 결국 ‘하나’로 수렴收斂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하나’는, ‘수의 시작이고 끝’이고, ‘모든 수들의 근원이면서 전체를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큰 하나[大一]’이다. 


‘대일’을 뜻하는 ‘하나’는 ‘수의 근원이요 모든 수들을 포괄하는 전체성’을 뜻하기도 하지만, 우주만물의 ‘원초적인 근원이며 전체를 포괄하는 존재’를 상징象徵하기도 한다.




"그 연유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수’의 개념을 쓰기 시작한 태고시대를 잠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고대인들은 점차 의식의 진화가 일어나면서 우선 사물이나 대상을 지칭하는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후 대상언어의 개념이 무한히 분화되고 다양화 되면서 대상언어를 넘어선 가장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사유하여 도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시작이면서 전체를 포괄하는 존재의 상징어를 ‘하나’로 보았던 것이다. 


‘대일’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의거하면, 태고의 배달국 시대에 선인仙人 발귀리發貴理는 아사달 제천행사의 예식이 끝나고 공덕을 기리는 글[頌歌]에서 “대일의 지극함이여 이를 양기良氣라 부르나니”라고 하여 ‘대일’을 ‘양기良氣’로 보았다여기에서 ‘양기’는 근원이면서 우주만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태평경太平經』의 권券 37에서는 “‘하나’는 수數의 시작이고, (모든 것들의) 생겨남의 도道이고, (우주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근원의 기氣가 일어나는 바이고, 하늘의 굳센 기[剛氣]”라고 했다. 여기에서 ‘하나’는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의미의 ‘도’, ‘기’, ‘강기’를상징한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 의거하면, 광명은 근원이면서 전체를 아우르는 ‘대일’을 상징한다. “대시大始에 상하사방에는 일찍이 암흑으로 모두 보이지 않았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다만 하나의 광명[一光明]뿐이었다”는 주장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주는 물론이고 아무 것도 없었던 때에 시간과 공간[時空]이 열리면서 처음으로 ‘광명光明(시원始原의 빛)’이 출현한 것이다. 이는 마치 기독교의 창조론에서 태초太初에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아무 것도 없는 ‘무無’에서 “빛이 있으라.”고 하여 최초로 창조된 ‘시원의 빛’과 같은 맥락이다. 


그럼 ‘신神’의 기원은 무엇인가?

‘신’은 광명光明, 즉 시원始原의 빛이다. 『도전道典』에 의하면,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리니라.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니라.”고 선언한다.


‘대광명’은 ‘전체를 포괄하는 근원의 하나’로서의 ‘대일’, 즉 ‘일광명’이다. ‘일광명’의 정체는 무엇인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 선인仙人 발귀리發貴理는 “아무 것도 없는 무한히 비어 있는 곳에 광명이 있으니 이것이 신의 상이고, 무한히 퍼져있는 기氣가 항상 영속하니 이것이 신의 조화로다[大虛有光 是神之像 大氣長存 是神之化]”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전체를 포괄하는 근원으로서의 ‘일광명’은 바로 ‘일신’의 모습이고, ‘일신’이 무한히 영속하는 기氣로 드러나는데, 이것이 신의 조화라는 것이다.  


‘일광명’은 어떤 연유에서 ‘일신’으로 간주될 수 있었을까?

『환단고기』 『환국본기』는 “옛 풍속에 광명을 숭상하여 태양을 신으로 삼고, 하늘을 조상으로 삼았다. 만방의 백성들이 이를 의심치 않고 믿었고, 아침저녁으로 경배함을 일상 의식으로 삼았다.


태양은 광명이 모이는 곳으로 삼신이 거주한다. 사람이 광명을 얻어 일을 하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동산에 올라 갓 떠오르는 해를 향해 경배하고, 저녁이 되면 서쪽의 천변으로 나아가 갓 떠오르는 달을 향해 경배했다.”고 전한다.


이로부터 태고인들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태양이 곧 ‘일광명’이요, ‘일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일신’의 원초적 특성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광명의 덕성이다. 광명의 원천은 태양이고, 태양의 빛은 중심에서 상하사방으로 무한히 뻗어나간다. 아득히 먼 하늘[天]에는 태양 빛을 받아 수많은 성신星辰들이 반짝이며 항존恒存한다.


태양은 무수하게 많은 성신들의 중심이고, 곧 하늘의 중심이다. 왜냐하면 태양은 하늘에 떠 있으면서 빛의 밝음으로 모든 것들을 비추고 있고, 우주전체에 침투해 들어가 그 덕성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환단고기』 『환국본기』는 “ ‘환桓’이란 온전한 하나[全一]이고 광명이다. 온전한 하나란 삼신의 지혜와 권능이고, 광명은 삼신의 참된 덕성이니, 곧 우주만물보다 앞선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태고인들은 ‘일광명’이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전체를 아우르는 ‘일신’을 상징하고, 창조의 주체가 되는 태양이야말로 ‘일신’이 거주하는 주재처主宰處로 여겼다. 왜냐하면 태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일신’의 덕성은 태고인들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고, 이들에게 따스함을 주고, 어둠으로부터 밝음을 내려주고, 또한 만유의 생명을 낳고 기르며, 해로움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의 문화적 양식은 고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는 태양신을 숭배한 이집트인들이나, 광명을 신성시하여 불[火]을 숭배한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동서양의 태고적 사람들은 태양신을 절대적인 신으로 숭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환국시대 이후 배달시대로 접어들자 환웅의 문명개척단이 출범하면서 여러 부족집단들이 통합되기 시작하였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부족들 간에 다툼이 발생하자, 제각기 믿고 있던 수호신 또한 하나로 통합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곰을 토템으로 하는 웅족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호족虎族의 통합이다. 그래서 환국의 종통을 계승한 배달국의 환웅은 통합된 민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태양신 보다 더 위대하고 원대遠大한 신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환웅은 그런 대상을 ‘하늘[天]’에서 찾았다. 과거에 광명의 신으로 태양에만 국한되었던 신의 덕성은 환웅시대에 이르러 보다 넓고 큰 ‘하늘’로 확대된 것이다. 


「삼일신고」의 1장이 함축하고 있듯이, ‘하늘’은 허허공공한 전체이면서 근원이 될 수 있고, 언제 어디에서나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우주만물의 창조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는 의식의 진보와 논리적인 사유체계가 강화되면서 신의 영역이 보다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형이상학의 세계로 비약하게 되었음을 함축한다.


따라서 「삼일신고」 3장은 우주 전체를 감싸고 있는 ‘허허공공’한 하늘[天]에 ‘일신’이 거주하는데, ‘일신’이 거주하는 하늘이 바로 천국天國이요 신국神國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하늘의 ‘일신’은 그 ‘허虛’를 체體로 삼아 우주만물을 짓고 주재한다. 왜냐하면 하늘에는 광명이 모이는 궁宮이 있고, 여기에서 온갖 창조와 주재의 조화가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환웅시대에 이르러 광명의 태양신은 온 우주를 감싸는 근원적인 천신天神으로 전환되었고, 곧 하늘의 궁에 거주하는 ‘일신’은 모든 생명을 낳는 대덕大德, 생명을 보호하고 올곧게 기르는 커다란 지혜[大慧], 우주의 생명을 질서 있고 조화롭게 조화하는 커다란 주재력[大力]을 가진 존재로 그 위격이 높여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하여 ‘일신’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주재자, 신들 중의 최고의 통치자로서 하늘의 임금[上帝]이라는 존재로 자리매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Zeus) 신이 신들과 인간들을 다스리는 제왕이라는 맥락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태양신에서 보다 높은 위격인 천신으로의 전환은 정치사적 사실로도 표징表徵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족을 대표하여 책임지고 다스리는 지도자는 인군人君인데, 처음에는 인군이 태양신의 덕성과 결부시켜 태양신의 아들로 그 권위를 높이게 되었지만, 후에 천신의 아들을 상징하는 천제天帝로 승격되었던 것이다.


동방 한민족이 천제天祭를 올리게 되는 전통은 바로 이러한 문화사상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윤내현 교수의 견해는 시사적이다.


“고대에 단군사화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은 그들의 수호신으로 하느님을 받들었으며, 그 하느님을 환인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인과 환웅의 시대는 단군왕검이 태어나기 전의 시대이므로 하느님을 수호신으로 받들었던 종교사상은 고조선이 건국되기 훨씬 이전부터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윤내현, 『고조선 연구』, 721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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