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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三一神誥」가 인도하는 진아眞我(10)

2020.09.14 | 조회 5210 | 공감 0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하나님


상생문화연구소 문계석 연구원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는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진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앙信仰이라는 사실이다.


이로부터 지구촌 이곳저곳에 분포하여 살고 있으면서 국가단위를 이루고 있는 민족은 각자의 풍토에 적합한 습속과 생활방식을 이어오면서 모종某種의 신교문화神敎文化를 창출해왔던 것이다.


비극적인 싸움이나 고통스러운 삶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초자연적인 절대자에게 기도하는 사람, 지독한 가뭄이 들어 농작물이 바싹바싹 타들어갈 때 단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하늘에 소망하는 농부, 정화수 떠놓고 삼신하느님께 자식들의 안녕과 무탈을 기원하는 옛 어머니의 모습


심지어 이슬람 사원에서 무릎을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알라에게 기도하는 무슬림, 교회나 성당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인들은 그 방식과 절차가 다르고 각기 목적이 다르지만, 모두 신神을 숭배하고 가르침을 따르는 신교문화의 표본들이다.


신교는 태고시절부터 각양각색으로 형성되어온 동서東西 종교문화의 원형이다. 그 중심에는 인격신人格神에 대한 신앙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로부터 형성된 종교는 어떤 방식으로든 천지만물을 주관하면서 인간의 화복禍福에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최고의 인격신[至高神]’을 신앙한다. 


최고의 인격신에 대한 신앙은 그 신이 개인의 취향이나 민족,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다를지라도, 나약한 인간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고, 소망을 들어주며,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 무한한 혜택과 은혜를 베풀어준다는 공통된 확신에서 형성된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신교문화의 전통을 지켜오면서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종교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를 들라하면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기독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류의 정신문화를 선도해가면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종교가 있는데, 바로 서양 기독교의 유신론(theism)이다. 기독교의 유신론은 ‘인격적인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 즉 삼수논리의 관점에서 볼 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핵심이다.



기독교의 유신론은 어떻게 출범하게 되었던 것일까?

이는 원래 광막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유대인(Yehudim)의 ‘유일신’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대민족은 자신들이 처한 악조건의 자연환경과 타민족의 기나긴 압제 속에서 오래 동안 고통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종교적인 신앙을 통해 구원과 행복을 구가하려고 몸부림쳤다. 결국 많은 우여곡절 끝에 유대민족은 조상신이면서 자기 부족만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인격신, 즉 ‘야훼(Yahweh)’ 신을 선택하여 민족 고유의 신앙으로 정착시킨다.


유대교의 신앙적 배경을 발판으로 삼아 후에 이스라엘의 나사렛(Nasarites) 교도가 등장하면서 기독교의 유신론이 싹트게 된다. 기독교의 유신론은 ‘창조주(Creator)와 ‘구세주(Christ)’에 대한 믿음을 동시에 거머쥐면서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공고화되기에 이른다.


신앙공동체의 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근원에 있어서는 ‘하나의 본체[一體]’이지만 ‘세 위격[三位]’으로 역사한다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다.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은 서양 중세기에 이르러 1천여 년 동안 유럽문명사에 뿌리 내렸고, 오늘날까지도 유럽 문화권을 포함하여 지구촌 전역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대중적인 신관이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은 어떻게 형성되었던 것일까?

이는, 성경의 「로마서」와 「디모데 전서」에 잘 나타나 있듯이, “한분 하나님(There is one God)”에 대한 신앙에서 출범한다. ‘한분 하나님’은 바로 ‘유일신 하나님’을 뜻한다.


그런데 ‘유일신 하나님’은 유한有限하고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가히 접근할 수 없는 완전무결完全無缺한 존재로 승격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유일신 하나님’의 존재는 고도의 사유로 달궈진 그리스의 학문에 의해 끊임없는 도전을 받으면서 합리적인 체계성을 갖춘 신관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유일신 하나님’이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주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는 능력에 있어서 무엇이든지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전능全能, 지혜에 있어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어떤 것이라도 전적으로 알 수 있는 전지全知, 윤리적으로 악함이 티끌만큼도 없는 전선全善, 부족함이나 결함이 전혀 없는 충만充滿, 실재성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초월성과 불멸성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유일신 하나님’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들 중의 ‘선의 이데아’처럼, 세계를 초월하여 자존하는 ‘완전한 실재’의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플라톤의 사상으로 무장한 알렉산드리아 출신 필론(Philon, 기원전 10?~기원후 50?)과 플로티노스(Plotinos, 204-269), 그리고 중세의 교부시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로 계승되면서 정립된 사상라 볼 수 있다.


「창세기」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였듯이, ‘유일신 하나님’은 무한한 우주 창조의 주인이다. 이는 창조 이전에는 하나님 외에 하늘, 땅, 인간은 물론이고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함축한다.


또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은 곧 아무 것도 ‘없는 것[無]’에서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창조했음을 뜻한다. 그래서 ‘유일신 하나님’을 조물주造物主라 하지 않고 ‘창조주創造主’란 말을 쓰는 것이다.




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된 세계世界를 초월超越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창조주 하나님이 세계 안으로 들어오면 필연적으로 시공時空의 제약制約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완전한 실재’라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은 시공의 제약을 받아야 하는 현상계에 절대로 들어오거나 머물 수가 없고, 오직 현상계를 넘어서 독자적으로 자존하는 초월자超越者여야 한다.


그럼 초월적인 ‘유일신 하나님’은 시공에 종속되어 있는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게 되었을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천지天地를 어떻게 창조하게 되었는가를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우주만유를 “말씀logos”으로 창조했다. 여기에서 “말씀”을 하신 주인은 일반적으로 창조주로 성부聖父 하나님이라 부른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의 ‘말씀’은 저절로 실행되어 현실화되는 것일까?


아니다. 합리적으로 따져볼 때, 이 ‘말씀’을 세계 안으로 들어와 실제로 실행하는 분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분을 ‘말씀’의 화현化現으로 기독교에서는 성자聖子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이는 「요한복음」의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말씀이 이미 있었는데, 이 말씀은 신과 함께 있었고, 신과 같은 것이었다. … 창조되는 것은 어느 것도 말씀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초월자 하나님과 창조된 세계는 완전히 동떨어져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고 하나님의 영적 진리를 인류에게 심어주기 위해 성령聖靈 하나님을 보냈다고 전한다. 이로부터 성령 하나님은 세상 안에 있고 항상 인간과 함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일신 하나님’은 한분 하나님인가 세분 하나님인가?

기독교의 유신론에 의거하면 ‘유일신 하나님’은 세 분의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으로 실재한다고 한다. 이를 통상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각기 위격과 능력 그리고 영광과 권능에 있어서 동등한 인격적 하나님으로 ‘유일신 하나님’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유일신 하나님’을 신앙하는 기독교인의 기도 속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는 멘트가 들어가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유일신 하나님’이 ‘세분 하나님’이라니,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아무리 뒤져봐도 ‘삼위일체’란 말은 없다.


‘삼위일체’란 말은 라틴어 번역어인 “세 위격은 하나의 실체를 가진다 una substantia tres personae”는 표현에서 나왔다. 여기에서 ‘일체一體’는 ‘유일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따라서 기독교의 유신론이 정립되어 가면서 형성된 ‘삼위일체’는 삼위의 하나님이 위격位格에 있어서는 같은 세분이지만 그 본체(실체)에 있어서는 한분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정착된다. 다시 말하면, 성부, 성자, 성령의 세분 하나님은 그 본체에 있어서 한분 하나님의 신성을 꼭 같이 소유하고 있지만, 각각 따로 존재하면서 달리 활동한다는 뜻이다.


삼위의 하나님은 서로의 관계 때문에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되고 성령聖靈이 된다. 삼위는 각각 서로의 안에 있고, 서로를 통하여 있으며, 서로를 향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부는 성자를 방출放出하고, 성자는 성부에 의해 발생하게 되고, 성령은 성부로부터만 방출되거나 성부와 성자로부터 방출된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삼위는 각각 독립적인 인격적 특성에 의해 구별되는데, 삼위가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은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령이 아니고, 성령 또한 성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기독교의 유신론은 ‘유일신 하나님’이 왜 세 위격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게 되었을까?

이종성의 『삼위일체론』에 의거하면, 창조주 야훼 하나님이 삼위일체 안에서 성부가 된 것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자신이 성부였음을 뜻한다. 또한 성부의 아들인 성자가 성부로부터 방출되고 성령이 성부로부터 방출되었다고 할 때, 성자와 성령은 피조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자와 성령은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한분 성부 하나님의 빛과 진리의 영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동일한 본성의 신성을 지니며, 우주만유의 창조 이전에 이미 삼위일체 관계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창조주인 ‘유일신 하나님’이 세 위격의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논리는 기독교가 창조, 구세주, 완성이라는 신론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강성위의 『서양철학사(상)』에 의거하면, 유대교의 야훼 하나님이 초월적이고 완전한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으로 승격되었고, 고난에 찬 유대민족을 구원하는 메시아(Messiah) 사상신의 아들이요 대리인이며 지혜인 ‘신성한 로고스(the divine Logos)’가 결합하여 ‘구세주(the Christos)’로 정착되었으며, 인간 삶의 과제가 육신에서 벗어나 영원한 신의 지혜인 로고스와 그리고 유일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진리의 영(Pneuma)’에 의해서 신과 합일함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이 정착되면서 확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의 신성한 본성을 공유하는 세 인격체’의 의미로 정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구약의 시대

신약의 시대

창조주 야훼 하나님

성부 하나님

신의 대리자(Logos)

구세주(Messiah)

성자 하나님

구세주(Christos)

진리의 영(Pneuma)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은 모든 측면에서 공동으로 사역使役하고 있으나 특별히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사역이 있다.


성부 하나님 천지만물과 인간을 ‘말씀’으로 창조하는 사역을, 성자 하나님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이루고 세상의 죄를 대속하는 사역을, 성령 하나님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진리의 영과 성자 하나님이 이룬 세상을 거룩하게 하여 완성으로 이끄는 구원사역을 주도적으로 담당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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