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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가 처음 밝혀 주는 역사 진실 (1)

2022.06.27 | 조회 8722 | 공감 0

대한사관의 진실 | 환단고기가 처음 밝혀 주는 역사 진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우리 역사, 문화의 원형을 밝혀 주는 보배로운 사서이다. 특히 환단고기는 다른 사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역사 사실이 많이 실려 있다.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의 해제 편에서는 ‘환단고기에서만 전해 주는 새로운 역사 진실’이라고 하여 이를 52가지로 정리하여 밝혀 주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이번 호부터는 환단고기의 진정한 역사적 가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의 위치


12분국의 위치
古記(고기)에 云(운) 波奈留之山下(파내류지산하)에 有桓仁氏之國(유환인씨지국)하니
天海以東之地(천해이동지지)를 亦稱波(역칭파)
奈留之國(내류지국)이라 其地廣(기지광)이 南北五萬里(남북오만리)오
東西二萬餘里(동서이만여리)니 揔言桓國(총언환국)이오
『고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파내류산 아래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의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으로 5만 리요, 동서로 2만여 리이니 통틀어 환국이라 하였다. ( 『삼성기 하』)



分言則卑離國(분언즉비리국)과 養雲國(양운국)과 寇莫汗國(구막한국)과
勾茶川國(구다천국)과 一群國(일군국)과 虞婁國一云(오루국일운)
卑那國(비나국)과 客賢汗國(객현한국)과 勾牟額國(구모액국)과
賣勾餘國一云稷臼多國(매구여국일운직구다국)과 斯納阿國(사납아국)과
鮮卑爾國一云豕韋國(선비이국일운시위국) 一云通古斯國(일운통고사국)과
須密爾國(수밀이국)이니 合十二國(합십이국)이 是也(시야)라
나누어 말하면,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일명 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일명 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일명 시위국 또는 통고사국), 수밀이국이니 합하면 열두 나라이다. ( 『태백일사』 「환국본기」).



우리나라의 국통國統이 환국桓國에서 시작되어 배달국倍達國을 거쳐 조선朝鮮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서,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도 환국의 환인桓因이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白山을 굽어보고 능히 홍익인간弘益人間 할 만한 곳으로 태백산을 점지하여 후계자 환웅을 개척자로 파견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환국의 위치를 『환단고기』에서는 가르쳐 주고 있다. 파내류波奈留산은 달리 말하면 ‘하늘산’이고 천산天山이다. ‘파내류’는 우리말 하늘의 이두식 표기다. 천해天海는 지금의 바이칼호이다. 천산과 바이칼호 일대가 환국의 중심 영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의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바이칼호 지역에서 현 동북아 사람의 주류가 기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이 동북아 초기 인류의 원형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민족이 바이칼호에서 유래한 현 인류의 직계 후손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세대의대 법의학과 신경진ㆍ이환영 교수팀은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 유적지 11곳에서 출토된 유해 35구의 미토콘트리아 DNA 유전자형을 분석한 결과 한반도 초기 한국인은 알타이산맥 북쪽 지역과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기원했지만, 고려시대 이후 남 아시아계가 유입돼 지금은 북방과 남방계가 혼재한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2009년 1월 14일 언론보도)



구환족九桓族
天海(천해)와 金岳(금악)과 三危太白(삼위태백)은 本屬九桓(본속구환)하니
而蓋九皇六十四民(이개구황육십사민)이 皆其後也(개기후야)라
自是(자시)로 桓仁(환인)의 兄弟九人(형제구인)이 分國而治(본국이치)하니
是爲九皇六十四民也(시위구황육십사민야)라
천해와 금악산과 삼위산, 태백산은 본래부터 구환족에 속하니 9황 64민은 모두 나반과 아만의 후손들이다. …
환인의 형제 아홉 분이 나라를 나눠 다스렸다. 이로써 9황 64민이 되었다. (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환국은 12분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환인의 형제 아홉 분이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환국의 조직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짧은 『환단고기』의 기록은 연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참고로 가야 역시 초기에는 12개 나라로 구성된 연맹체였고, 김수로왕은 구간九干(9명의 족장)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환국과 환국의 지도자 환인에 대해 기록한 문헌들은 많이 있다. 장자(BCE 369?-BCE 286)에 대해 기록한 『장자莊子』 「마제馬蹄」에는 “夫赫胥氏之時, 民居不知所為, 行不知所之, 含哺而熙, 鼓腹而遊(혁서赫胥씨 시절에는 백성들이 편안히 살면서 다스림을 몰랐고, 여행을 하지만 가야 할 곳을 몰랐다. 젖을 물고 기뻐하는 아이처럼 배를 두드리며 놀았으니.....)”라고 하여 2세 환인천제인 혁서 시절의 태평스런 삶을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

『환단고기』에서 언급된 환국의 열두 나라 이름은 중국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진서 사이전’을 보면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군, 일군국이 있었는데 이들은 2만~5만 호 정도를 가진 소국으로 시베리아 등지에 있었다 한다. 당서 북적전에는 우루국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삼국사기』에는 구다천국과 매구여국이 구다국과 매구곡이란 명칭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아홉 개 나라의 이름이 후세의 사서에 나타난다.

裨離國在肅愼西北(비리국재숙신서북) 馬行可二百日(마행가이백일) 領戶二萬(영호이만)
養雲國去裨離馬行又五十日(양운국거비리마행우오십일) 領戶二萬(영호이만)
寇莫汗國去養雲國又百日行(구만한국거양운국우백일행) 領戶五萬餘(영호이만)
一群國去莫汗又百五十日(일군국거막한우백오십일) 計去肅愼五萬餘裡(계거숙신오만여리)
( 『진서晉書』 「사이전四夷傳」)



아시다시피 환국이 없으면 배달국이 성립하지 않는다. 환국 말기에 환웅이 환국의 정통성을 부여받고 종통의 상징이었던 천부天符와 인印(신물)을 갖고 왔기에 배달의 건국이 가능했다. 우리의 건국이념이자 국가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 역시 환국으로부터 배달국으로 전수된 것이다. 그래서 환국은 우리 민족의 첫 국가요 뿌리이자 오늘날 대한민국 법통의 근원이다.

일부 강단사학자 중에는 “『삼국유사』에는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기록되어 있다.”며, “‘석유환국昔有桓國’으로 기록된 판본은 오기誤記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환국은 실재한 나라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昔有桓國’이나 ‘昔有桓因’이나 둘 다 역사의 진실에 부합한다. 나라가 있으면 당연히 나라의 통치자가 존재한다. 그래서 환인(인물)에 대한 기록과 환국(국가)에 대한 기록이 병존하고, 또 서로 치환置換되어 사용되었다. 『환단고기』에도 ‘昔有桓國’과 ‘昔有桓因’ 기록이 병존한다. 일제는 당시 통용되던 『삼국유사』의 ‘석유환국’ 부분에서 桓國(国)의 ‘國’ 자를 ‘因’ 자로 바꾸었다. 국가에 대한 기록을 개인 인물사로 바꿔 버렸고, 나아가 신화의 역사로 몰고 간 것이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일제가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아 줬다는 얘기다. 일제에게 감지덕지하며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역사 왜곡과 관련해서 일본 관계자의 따끔한(?) 충고가 있으니, 우리는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현재 계명대 교수로 있는 성삼제 님의 증언이다.

[#“2001년 일본 학자들과 일본 언론인들을 만나 뵙고 하는 과정에서 제가 한국에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대책반 실무반장’을 맡고 있다고 하니까 어느 한 분이 진지하게 저한테 하시는 얘기가 ‘우리 일본이 조선을 식민 통치하기 위해서 역사를 조작해 놓은 게 있다. 당신네 한국이 해방되면 당연히 복원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 60년대, 70년대, 80년대가 지나도 그대로 있더라. 그래서 우리 일본을 탓하기 전에 당신네들 거를 먼저 봐라’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충격을 저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2021년 6월 21일, 대한사랑, 세계환단학회 국제학술문화제에서)#

배달국의 천도遷都 사실


倍達(배달)은 桓雄(환웅)이 定有天下之號也(정유천하지호야)니 其所都(기소도)를 曰神市(왈신시)오
後(후)에 徙靑邱國(사청구국)하니 傳十八世(전십팔세)하야
歷年一千五百六十五年(역년일천오백육십오년)이라
배달倍達은 환웅께서 천하를 안정시키고 정하신 나라의 이름이다. 수도는 신시神市요, 후에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겼다. ( 『삼성기 하』 ‘신시역대기’)



배달국이 태백산에 도읍을 열고 이를 신시神市라고 했다는 기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후에 도읍을 청구국으로 옮겼다는 기록은 『환단고기』에서 처음 만난다. 배달국의 14세 자오지천황(치우천황)이 서토의 헌원을 굴복시키고 나서 넓어진 강역을 다스리기 위해 서쪽의 청구로 도읍을 옮김으로써 배달국의 전성기를 열게 된다. 청구의 위치에 대해 중국 고지리서 『산해경山海經』 「해외동경海外東經」에는 “조양곡에 살고 있는 신령을 천오天吳라 한다. …청구국은 그 북쪽에 있다[朝陽之谷, 神曰天吳. … 靑丘國在其北]”라고 하였다. 조양곡은 지금의 요령성 조양시이므로 청구국의 위치를 대릉하 유역으로 추정한다. 또 치우천황이 산동·강소성 지역까지 영토를 넓힌 뒤로는 산동 지역을 청구로 불렀다. 지금도 산둥반도에 칭다오淸島라는 지명이 있다. 청구는 푸를 청靑, 언덕 구邱 자로 청구는 ‘동방의 나라’를 뜻한다. 중국 역사서에서는 대체로 이 청구를 당시의 정식 국호인 배달을 대신하여 불렀다.

배달국 18세 천황의 이름과 통치 기간을 밝혀 준다


一世曰桓雄天皇(일세왈환웅천황)이시니 一云居發桓(일운거발환)이시며
在位九十四年(재위구십사년)이시오 壽(수)는 一 百二十歲(일백이십세)시니라
1세는 환웅천황桓雄天皇이시니 일명 거발환居發桓 이라. 재위 94년이요 천수 120세이시다.
( 『삼성기 하』)
······
十八世曰居弗檀桓雄(십팔세왈거불단환웅)이시니 或云檀雄(흑운단웅)이시며
在位四十八年(재위사십팔년)이시오 壽(수)는 八十二歲(팔십이세)시니라
18세는 거불단居弗檀환웅이시니 혹은 단웅檀雄이라. 재위 48년이요 천수 82세이시다. ( 『삼성기 하』)



원동중元董仲이 지은 『삼성기 하』에는 정말로 놀라운 기록이 있다. 마지막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편에 배달국의 18대 천황의 이름과 통치 기간과 천수天壽까지 기록되어 있다. 너무나 충격적이기에 사실로 믿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그런 기록이 존재해 왔고, 역사 속에서 전수되어 내려오다가 원동중에 의해 채록되어 『삼성기 하』에 실렸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의미가 있다. ‘신시역대기’에 보이는 천황들은 대부분 수가 90이 넘으시고 가장 일찍 어천하신 분이 18세 거불단환웅으로 천수天壽가 82세였다. 14세 치우천황의 경우 수가 151세에 달하신다. 배달국 자체가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를 헌법으로 하여 세워진 나라이다. 『삼일신고』는 인간론과 수행론의 원전이다. 역대 천황들이 『삼일신고』를 바탕으로 온전한 인간이 되는 계율, 전계全戒*를 생활 속에서 실천해 왔다. 특히 치우천황의 경우 『환단고기』에서는 무병장수를 주장하는 선도를 설법하신 분으로 나온다. 이분의 수명이 역대 제왕 중에서 가장 긴 151년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신시역대기’를 포함하고 있는 『삼성기 하』의 사료적 가치는 너무나 지대하다.

역대 환웅천황의 수명


靑邱氏(청구씨)는 以仙設法(이선설법)하사 敎人管境(교인관경)하시니
所謂仙(소위선)은 從人之所自山(종인지소자선)하야(山(산)은 産也(산야)라)
能知命以廣善也(능지명이광선야)오.
청구씨靑邱氏(14세 치우천황)는 선仙의 도로써 법을 세워 사람들에게 천하를 나누어 다스리는 법도를 가르치셨다. 선仙이란 사람이 본래 저마다 타고난 바를 따라서 자신의 참된 영원한 생명력을 깨달아 널리 선善을 베푸는 것이다.
( 『환단고기』 「신시본기」)


*배달 시대부터 신교 삼신三神은 천지인天地人 삼계 정신으로, 전佺과 선仙과 종倧의 도로 나타난다. 전佺과 선仙은 각기 천天의 창조 정신과 지地의 조화 정신에 근원을 두며, 종倧은 천지의 주체인 인간의 지고한 존엄성을 가리킨다. 전도는 천인합일로 신인神人을 이상으로 하고, 선도는 선인仙人의 길을, 종도는 천지의 이상을 실현하는 대인大人의 도를 세웠다. 이것이 후에 불佛·선仙·유儒 삼교로 분화하여 발전하였다.



치우천황은 배달국 14세 자오지환웅이다


又數傳而有慈烏支桓雄(우수전이유자오지환웅)하시니
神勇冠絶(신용관절)하사 以銅頭鐵額(이동두철액)으로 能作大霧(능작대무)하시며
造九治而採鑛(조구치이채광)하사 鑄鐵作兵(주철작병)하시니
天下大畏之(천하대외지)하야 世號爲蚩尤天王(세호위치우천왕)이라하니
蚩尤(치우)는 俗言(속언)에 雷雨大作(뇌우대작)하야
山河改換之義也(산하개환지의야)라.

다시 몇 세를 내려와 14세 자오지환웅이 계셨는데, 이분은 신이한 용맹이 매우 뛰어났다.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들어 쓰고[銅頭鐵額]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며, 구치九治를 제작하여 광석을 캐내고 철을 주조하여 무기를 만드시니 천하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이분을 치우천황이라 불렀는데, 속언에 치우는‘뇌우가 크게 일어 산하가 뒤바뀐다’는 뜻이다. ( 『삼성기 하』)



『환단고기』에는 치우천황이 서방을 경략하는 여정의 절정에 해당하는 ‘탁록대전涿鹿大戰’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여러 군데 소개되고 있다. 당시 대요大堯, 창힐蒼頡이라는 제후들이 치우천황의 신하였다는 내용도 있다. 또 치우천황의 국사인 자부紫府선사가 삼청궁三淸宮에서 신교의 대도를 중화의 시조 헌원軒轅에게 전수했다는 내용도 있다. 또 『환단고기』 내의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치우천황이 강姜씨라는 내용이 있다.

昔呂尙(석여상)이 亦蚩尤氏之後(역치우씨지후)라 故(고)로 亦姓姜(역성강)이니
盖蚩尤(개치우)가 居姜水而有子者(거강수이유자자)는 皆爲姜氏也(개위강씨야)라
옛날에 여상呂尙(강태공) 또한 치우씨의 후손이다. 고로 성이 강씨姜氏이니, 치우가 강수姜水에 살면서 낳은 아들이 모두 강씨가 되었다.
( 『태백일사』 「신시본기」)



일반적으로 염제신농씨가 강씨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치우천황이 강씨라면 신농씨는 치우의 후손이 된다. 성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치우는 삼묘족의 조상

중국에서는 치우蚩尤를 묘족苗族의 조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중국 역사서에 따르면, ‘치우가 탁록대전에서 헌원에게 패한 후 묘족 대부분이 남쪽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유역으로 이동하여 삼묘三苗를 형성했고, 후에 다시 요堯·순舜·우禹 등에 의해 쫓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산해경山海經』 등의 기록은 이와 다르다. 당시 양자강 이남의 동정호洞庭湖와 팽려호彭蠡湖 일대에는 구려九黎의 후예인 ‘유묘有苗’ 혹은 ‘삼묘三苗’라 불리는 부족이 있었는데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朱와 사이가 매우 가까웠다. 요임금이 순에게 제위를 넘겨주려 하자 이 소식을 듣고 승복하지 않던 삼묘의 족장이, 단주가 오자 곧바로 세력을 연합하여 요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요의 군대는 단주와 삼묘의 연합군을 궤멸시켰고, 이 싸움에서 삼묘 족장이 피살당하고 단주도 전사하였다. 이것이 묘족이 남쪽으로 옮겨 가게 된 배경이라고 했다(이재석, 『인류원한의 뿌리 단주』, 33~34쪽).

『회남자』 권11 제속훈에는 “묘족은 머리채를 삼끈으로 묶은 상투쟁이로서 마치 싹이 돋은 듯하여 묘苗라 했다.”라는 구절과 『산해경』 권17 대황북경에 “서북해 밖 흑수 북쪽에 날개 달린 사람(鳥夷系)이 있으니 이름하여 묘민苗民이다.”란 기록에 비추면 이夷족이면서 머리에 상투를 튼 민족이다. 그리고 왕동령王桐齡의 『중국민족사』에는 “삼묘족三苗族의 나라를 구려九黎라 하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즉, 묘족은 우리와 공통의 조상을 가진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오히려 묘족이 있던 영역까지 배달국의 영역이었다고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치우를 그저 남방 삼묘족의 족장으로만 본다. 다시 말해서 구려九黎의 군장이 치우이고, 묘족은 태호복희씨와 치우천황을 조상으로 섬겨 온 동방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월간개벽 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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