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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인도 탐방단 보고: 불교 유적지 9편

2020.09.08 | 조회 4055 | 공감 0

인도에서 불교의 ‘개벽’을 다시 보다


상생문화연구소 노종상 연구위원



『유마경』의 절정이라면 아무래도 제9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의 ‘입불이법문’이 꼽힌다. 『유마경』의 법문을 흔히 ‘불이법문’이라고 할 정도다.


‘입불이법문’이 무엇인가? 모든 법이 둘이 아닌 도리에 증입證入하는 법문이다. 이 엄청난 문제를 던진 것은 유마거사다. 



▲유마거사의 고향 바이샬리에서 만난 유마거사의 후예들(이하 사진은 같음)


흔히 불교의 교단(승단)을 이루는 구성요소를 사중四衆(다른 표현으로 사부대중四部大衆·사부중四部衆ㆍ사부제자四部弟子)이라고 한다.


구성원은 일반적으로 비구bhikkhu, 비구니bhikunī, 우바새upāsaka, 우바이upāsikā 등이다. 이 경우 비구ㆍ비구니는 출가인, 우바새ㆍ우바이는 남·여자 재가불자를 가리킨다. 


두 그룹의 기능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좀 거칠게 표현하면 전자는 ‘수행자로서 가르치는 자’, 후자는 ‘배우는 자 혹은 제도 받는 대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절집 문화의 일반상식을 뒤엎어버리는 대표적인 경전이 『유마경』이다. 재가불자인 유마거사가 출가인, 그것도 대·소승의 현자들보다 뛰어난 경지에서 오히려 법문(가르침)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입불이법문품」이 단적인 예다. 대승불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보살, 그것도 32명의 내놓으라 하는 보살들이 모인 자리에서 유마거사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듯 시침을 뚝 떼고, “여러분. 보살의 ‘입불이’라는 법문에 대하여 각자 설명해 보시오.” 하고 넌지시 말했다.




이에 대해 법석에 모인 보살들은 각자 나서서 미주알고주알 설명하였다. 이기영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다들 그만그만한 이름 없는’ 보살들이다(이런 표현에 탐방객은 동의하지 않지만).


서른두 번째로 문수보살이 ‘입불이’라는 상태에 대해 법문한다. 


“내 생각으로는 일체법에 대해 말하지 않고,

설하지 않고, 보여주는 바 없고, 식별하지 않고,

모든 문답을 떠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 합니다.”


문수보살의 법문이 끝난 뒤에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졌다. 당초 문제를 제기했던 유마거사가 아무 반응이 없는 까닭이다. ‘보살의 우두머리’로 일컬어지는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도 말이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 문수보살이 나섰다. 


“거사여. 당신이 말할 차례입니다.

무엇을 보살의 입불이법문이라 하겠습니까?”


다음은 본문을 인용한다. 일반적인 평가에 따르면 『유마경』의 핵심 중의 핵심이요, 백미로 꼽히는 장면이다.


그때 유마힐이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

문수사리가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옳습니다. 옮습니다. 문자와 말과 설명,

그런 것이 일체 없는 것이 진짜 입불이법문인 것입니다.”


    時에 維摩詰이 默然無言이라.

    文殊師利가 歎曰하되 善哉로다 善哉로다. 

    乃至無有 文字 語言이 是真入不二法門이로다 하니라. 


유마거사가 나선 것은 서른세 번째였다. 그는 입불이법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실로 엄청난 법문을 하고 있었다. 그 어떤 법문보다도 많고 길고 큰….


이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유마거사가 마지막에 가서 꽝하고 자기 결론을 내놓았다. 과연 유마거사의 법문이 명품이다. 묵연무언默然無言―침묵하는 것. 입불이법문의 극치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유마 거사가, 『유마경』이 ‘입불이법문’의 결론을 그렇게 내렸으므로 우리의 탐방기 가운데 바이샬리편도 이쯤에서 침묵을 지켜는 것이 좋을 듯한데, 아무래도 거슬리는 대목이 있다. 미안하지만, 좀 더 ‘하수’에 머무르고자 한다. 




2020년 8월 말, 대한민국은 거의 전쟁 전야와 같은 분위기다. 아니, 전 세계가 같은 풍경일 터다. 적어도 그렇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하긴, 전혀 아니라고 할 시각도 있을 것이다. 탐방객의 입장은 전자에 위치한다. 보이는 것이 한국이요, 당장 발등에 불이 붙었으니 한국만 두고 얘기하자.


지난 2월, 탐방객이 붓다의 나라 인도를 탐방하기 위해 떠나기 며칠 전부터 중국 우한 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그때까지만 해도 이름이 없이 ‘괴질’이라고 불렀다)는 한국에 서서히 상륙하기 시작했다.


7개월여가 지난 지금, 방역의 모범국가로 전 세계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던 한국은 지난 8·15광복절을 기점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행정조치 15호)가 시행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감염 통제 조치 혹은 캠페인을 일컫는 말이다. 


문제는 코로나19 감염확산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거리두기 3단계’ 격상 가능성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주까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수도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염 확산을 이번 주 이내에 막지 못한다면 3단계로 올라가는 것도 불가피하게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최악의 상황'에서 내려질 조치라며 신중한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도 “3단계 격상은 결코 쉽게 말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닙니다. 일상이 정지되고, 일자리가 무너지며 실로 막대한 경제 타격을 감내해야 합니다.”고 3단계 격상이 경제에 미칠 파장 등을 강조했다. 행정을, 혹은 국가 통치를 맡고 있는 국가 기관으로서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다.


그러나 지금 탐방객은 정부의 신중한 태도 뒤편에서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에게 눈길이 달려가고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이 땅에 오신 증산 상제님은 “난은 병란病亂이 크니라.”(『도전』 2:139:7)라고 하였다. 과연 병란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할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 화가 날 때가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동서고금의 질병사 몇 장만 거꾸로 넘겨보면,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전염병에 의해 사라져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디 역사뿐이겠는가.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면, 이런 코로나 대유행 정도는 사전에 충분히 예방하고 또 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비록 완전한 예방은, 대비는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은 『유마경』 제8 「불도품」의 게송 일절이다. 


혹은 겁이 다함을 나타내기 위해

천지를 붉게 물들여 불태우는 일이 있으나 

그것은 모든 것이 영원한 줄 아는 사람에게

무상의 도리를 확실히 알게 하고자 함이라.

혹현겁진소或現劫盡燒 천지개동연天地皆洞然 

중인유상상眾人有常想 소령지무상照令知無常 


『유마경』 가르침 가운데 유독 탐방객의 시각이 머무는 이 구절이다. 겁이 다함을 나타내기 위해 천지를 붉게 물들여 불태우는 일이 있다!


무슨 말인가? 겁이 다했다는 말은 무엇이며, 천지를 붉게 물들여 불태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  겁이 다함을 나타내기 위해 천지를 붉게 물들여 불태운다는 말인가? 소위 지구 아니 우주 멸망의 날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가?


먼저 본문 중에서 ‘겁’에 대한 이야기를 눈 여겨 보자. ‘겁’은 산스크리트어 ‘칼파kalpa’를 옮긴 용어다. 겁파劫波라고도 한다. 아주 지극히 긴 시간을 말한다. 겁을 거듭하는 광원廣遠한 시간을 광겁曠劫, 영겁永劫, 조재영겁兆載永劫이라고도 한다. 같은 시간대를 얘기할 때 개자겁芥子劫, 반석겁盤石劫(불석겁拂石劫이라고도 한다), 진점겁塵點劫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나가르주나(용수)의 『대지도론』에 따르면 개자겁은 4천리 사방의 큰 성에 겨자씨가 가득 차 있는데 백 년마다 한 번씩 겨자씨 한 알씩을 꺼내 모두 없어지는 시간을 1겁이라고 한다.


반석겁은 4천리 사방이나 되는 바위산에 백 년마다 한 번씩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 옷깃을 스쳐 바위가 모두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 1겁이다.


진점겁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물건을 갈아서 먹즙을 만들고 1천 국토를 지나갈 때마다 하나씩 점을 찍는다. 그래서 먹즙이 다 없어진 다음에 그 지나온 국토를 모두 가루로 만들어서 그 티끌 하나를 1겁으로 해서 계산한 겁의 수를 3천 진점겁三千塵点劫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5백천만억 나유타아승기那由他阿僧祇의 삼천대천세계를 깨뜨려 미진微塵으로 삼고, 같은 국토를 지날 때마다 그 미진을 하나씩 떨어뜨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1겁이다. 진점구원겁塵点久遠劫이라고도 한다. 혹은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세계의 4억3천2백만 년을 1겁이라고 하였다. 




겁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다. 일종의 불교의 우주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운행한다.


이루어졌다가[成], 머물고[住], 파괴되어[壞] 없어진다[空]. 따라서 우주가 생길 때의 겁을 성겁成劫, 일정 기간 동안 그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의 겁을 주겁住劫, 파괴되는 겁을 괴겁壞劫, 파괴되어서 아무 것도 없는 시간의 겁을 공겁空劫이라고 한다.


바수반두Vasubandhu(세친)의 『구사론』(『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의 준말)에 따르면 성겁, 주접, 괴겁, 공겁은 각각 20개의 겁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겁에는 대ㆍ중ㆍ소의 3종이 있다. 둘레 40리 되는 성 또는 돌을 위에서 말한 반석겁 비유와 같이 하는 것을 1소겁, 둘레 80리를 1중겁, 120리를 1대겁이라고 한다.


혹은 사람의 수명이 8만4천 세 때로부터 백 년마다 한 살씩 줄어 10세 때까지 이르고, 다시 백 년마다 한 살씩 늘어 사람수명 8만4천 세에 이르되, 한번 줄고 한번 느는 동안을 1소겁, 20소겁을 1중겁, 4중겁을 1대겁이라고 한다. 또 한 번 늘거나, 한번 줆을 1소겁, 한 번 늘고 한번 줄어드는 동안을 1중겁, 성겁ㆍ주겁ㆍ괴겁ㆍ공겁이 각각 20중겁, 합하여 80중겁을 1대겁이라 한다.


물론 불교의 이런 시간관, 고대 인도의 시간관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이럴 때는 『화엄경』의 방대한 내용을 단 32구로 축약해 놓은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 한 구절이 떠오른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한 오랜 세월 한 생각 찰나이고

한 생각 순간 속에 무량세월 들어 있네.




미륵경전에 따르면 도솔천에 머물고 있는 ‘미래의 부처’ 미륵불이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뒤 56억7천만 년이라고 한다. ‘56억7천만 년’이라니. 문자로 표기한 그대로라면 거의 끝을 알 수 없는 ‘영원한 시간’이다.


미래에 오시는 부처라고 해놓고, 그런 시간이라면 처음부터 말씀을 하지 말지, 아니면 아예 미륵불이 오신다는 말씀 자체를 하지 말지, 부처님이 중생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심해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처님 왈, 중생이라는 것이 그저 생각이 많아서 탈이다. ‘56억7천만 년’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이다.


흔히 불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과학성을 꼽는다. 실제로 불교공부를 하다보면, 참으로 과학적이다,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과학적인 종교라고 하는 불교가, 그런 터무니없는, 얼토당토 않는 시간을 제시해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오신다고 혹세무민할 리 만무하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일념一念’이라는 시간만 해도 그렇다. 『인왕경』에서는 “일념 가운데 90찰나九十刹那가 있고 1찰나一刹那가 지나는 동안에 9백 번 생하고 멸한다(一念中有九十剎那 一剎那經九百生滅)”고 하였다.”고 하였다. 90찰나가 지나가는 시간이 ‘일념’이고, 1찰나가 지나는 동안에 9백 번을 생하고 멸한다고 한다.


동국역경원 『불교사전』에서는 더욱 구체적이다. 찰나를 ‘차나叉拏’라고도 음역하는데 일념이라고 하였다. 찰나와 일념을 같은 시간대로 본 것이다. 구체적으로 120찰나가 1달찰나怛刹那, 60달찰나가 1랍박臘縛, 30랍박이 1모호율다牟呼栗多, 30모호율다가 1주야晝夜이므로, 1주야인 24시간을 120×60×30×30으로 나눈 것이니, 곧 75분의 1초가 1찰나 혹은 일념이란 애기다.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캐보는 것도 구차스러운 일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56억7천만 년’같은, 성주괴공의 각 겁이 20겁이라는 시간 따위는 상상력이 무궁무진한 붓다의 나라 인도사람들의 ‘숫자놀이’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혹 모르겠다. 지금, 한국과 같으면 겨울의 끝 무렵인 2월에 인도는 푹푹 찌는 여름 날씨이니, 고대 인도사람들은 이런 더운 날씨에 나무 밑에 앉아서 그런 시간‘놀이’나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건 그렇고, 이기영 교수는 불교 우주론 가운데 성주괴공의 각 겁이 20겁이라고 한 것을 두고, 기독교의 창조신화를 예를 들어 성→주→괴→공의 한 사이클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말인즉 서양의 직선관을 얘기한 것이다. 이에 반해 널리 알려졌다시피 동양은 순환관이다. 우주가 성주괴공으로 순환 운행한다는 불교 우주론이 대표적이다. 각론에 들어가면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증산도 우주론의 생장염장生長斂藏 순환운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증산도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생장염장으로 순환운동을 한다. 즉, 우주 변화의 근본정신이 생장염장이다.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증산도 도전 4:58:4)


여기서 ‘나’는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를 가리킨다. 천지를 주재하는 바탕이 되는 ‘우주 통치의 근본원리’는 ‘생장염장의 이치’다. 상제가 생장염장의 이치를 가지고 우주를 주재 내지 통치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무위이화다.


‘무위이화’라고 해서 『노자』 57장에 나오는 그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일반적인, 도가적인 ‘무위이화’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성인의 덕은 지대하여서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다스려진다는 얘기다.


반면 증산도 사상에서 얘기하는 그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 


나의 일은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신도(神道)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하니라

신도로써 만사와 만물을 다스리면

신묘(神妙)한 공을 이루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니라.

(증산도 도전 4:582-3) 

 

우주가 생장염장으로 순환운동을 하는 바탕에는 신도神道, 즉 신의 작용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더욱 깊은 얘기는 생략한다. 결론은 불교 우주론에서 얘기하는 성주괴공이 증산도 우주론에서는 생장염장과 표현은 다르지만 거의 대동소이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다만 후자가, 생장염장이 좀 더 역동적이고 현실적이라고 할까, 잔잔한 호수위에 펄떡펄떡 뛰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싱싱한, 살아있는 맛이 난다고 할까. 


증산도 사상에서는 이를 식물의 ‘일생’ 혹은 농사일로 비유하곤 한다. 전자에 따르면 태어나서[生] 성장하고[長], 열매를 맺었다가[斂], 씨앗이 되어 저장된다[藏]. 후자로 비유한다면 씨 뿌리고[生], 길러서[長], 거두고[斂], 휴식한다[藏]. 같은 얘기지만 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이를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순환운동으로 표현할 수 있다. 봄에는 씨 뿌리고, 여름에는 길러서,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농한기를 맞이하여 휴식한다는. 증산도 우주론의 백미는 이와 같은 순환운동이 단순히 ‘지구’담론이 아니라 우주로 확대된다는 점이다. 우주는 생장염장이라는, 혹은 사계절이라는 네 사이클로 순환운동을 한다!


다시 불교 우주론으로 돌아온다. 우주가 성주괴공으로 돌고, 돌고 도는 것을 ‘영겁회귀’라고 한다. 또한 성주괴공의 한 사이클이 도는 기간을 하나의 ‘대겁’이라고 한다. 


이 대겁, 구체적으로 대겁 가운데 괴겁의 때(흔히 말세末世, 말대末代라고 한다)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대환란이 일어난다.


증산도 우주론식으로 표현하면 생장염장 가운데 수렴이라는, 즉 우주의 가을에는 이른바 인간농사를 짓는 우주에서 수렴작용을 하는데, 거기에는 혼돈이 뒤따른다. 말이 혼돈이지, 우주에서 일어나는 그것은 인류의 관점에서 보면 대환란일 수밖에 없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는 들판에서 농부가 추수를 하는 가을날, 만산에 홍엽이 물들고 우수수 낙엽이 떨어지는 풍경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터다. 같은 산하대지로되 누구는 거둠의 대상이 되고, 누구는 귀근낙엽歸根落葉―, 낙엽이 되어 떨어져 썩어 거름이 되어 뿌리로 돌아가 자양이 될 터다. 이것이 증산도 우주론에서 말하는 개벽 이야기다.


『도전』에서는 개벽이 일어나는 원인 혹은 당위성에 대해 말한다.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換節期)가 되면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큰 병세(病勢)를 불러일으키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느니라.
(증산도 도전 7:38:3-4)


불교 우주론에서 그날, 그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교수의 해설을 인용한다. 


그때마다 화재火災가 나서 초선천初禪天 이하의 세계를 모두 태워 버린다고 해요. 위의 게송에서 혹현겁진소―, 겁이 모두 불태워 버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화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겁이 끝날 때마다 일곱 번 화재가 나고, 그 다음에는 수재水災가 나는데, 이때는 이선천二禪天 이하의 세계가 모두 파괴됩니다. 이런 수재가 일곱 번 일어나면 그 다음에는 풍재風災가 일어나고, 이때는 삼선천 이하의 세계가 모두 파괴된다고 하죠. 이것은 「구사론」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인데, 신화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삼재三災 말고 또 다른 삼재가 있는데, 도병재刀兵災, 질병재疾病災, 기근재饑饉災라는 것이 있습니다. 경전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한 겁 중에는 꼭 삼재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도병재는 인심의 진독瞋毒이 심해져서 사람들이 서로 보기만 하면 사납고 해치려는 마음을 갖고, 손에 쥐는 모든 것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서로 해치는 것을 말하죠. 우리도 이미 겪은 바 있습니다. 6.25 전쟁 같은 것이 도병재입니다.


질병재라는 것은 도병재 후에 비인非人들이 독을 토해서 질병이 돌고, 일단 걸리면 죽고 마는 거라고 합니다. ‘비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대강 짐작은 가시죠? 바이러스나 무슨 해충 같은 것들이죠. 지금 에이즈 같은 것이 질병재 아니에요? 또 옛날에 유럽에서 페스트가 돌았잖아요.


기근재라는 것은 질병재가 일어난 후에 천룡들이 분노해 비를 뿌리지 않아서 이 때문에 기근이 심해지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는 거예요.(『유마경강의』) 




무슨 얘기인가. 말세에는 화재·수재·풍재가 일어나 온 세계는 대환란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또한 도병재· 질병재·기근재가 일어나 무수한 사람이 죽게 된다. 도병재는 전쟁이다. 질병재는 무엇인가? 무슨 별도의 애기가 필요할까.


인용문의 내용에 더해서 2020년 8월 현재, 전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현장을 보는 것으로 족할 터다. 앞에서 탐방객은 전쟁 전야와 같다고 했으되, 과연 대한민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앞두고 온통 신경 줄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이다. 모를 일이로되, 이런 현상들이야말로 질병재로 진압하는 문턱 어딘가에 위치한 것은 아닐까.


질병재 다음에 닥치게 되는 기근재는 무엇인가? 기근재 역시 이미 조짐을 보인 지 오래다. 오늘날 온갖 기후변화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되고 각종 천연재해가 연이어 터져 나오는 것은 우리가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놓고, 좁게 보면 모든 원인은 인간들한테 있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천룡들의 분노’로 인한 ‘기근재’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터다.


정답일까? 아니다. 아니다. 이런 불행한 결과는 이치로, 섭리로 오는 것이다. 불교 우주론의 성주괴공이라는 대겁 가운데 ‘괴공’ 현상이요, 증산도 사상에서 생장염장 운동 가운데 우주 자연의 수렴운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지적하였다. 이를 증산도 용어로 개벽, 후천개벽, 후천 가을개벽이라고 한다. 


보라! 지금 후천 가을개벽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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