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과 서양의 창조주 하나님간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2009.08.21 | 조회 10456


Q┃ 제가 하느님을 생각할 때 종종 시스틴 성당의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벽화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닿을 듯 말 듯 손을 뻗고있는 이 모습이 상제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드러낸 것입니까? 그리고 창조주로서 서양의 신의 개념과 상제님은 무엇이 다릅니까?




내가 수년 전에 종도사님을 모시고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을 쭉 둘러보고 왔습니다. 그 때, 상제님께서 천상의 궁전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강세하실 때 제일 처음 오셨던 천개탑을 찾았습니다.


베드로 성당을 들어설 때부터 우리들의 마음은 오직 ‘아, 천개탑을 좀 빨리 봐야지.’ 이런 생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가이더의 안내로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천개탑의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야~ 저게 바로 천개탑이구나!’ 하고 모든 일꾼들이 환호성을 터뜨렸지요.


천개탑을 둘러보고 나서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 창조’를 보기 위해 시스틴 성당으로 갔습니다. 좁은 회랑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니 얼마 후 그리 크지 않은 홀이 나왔어요.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모두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래 고개를 들어 보니 바로 위에 ‘천지 창조’ 벽화가 있었습니다.

그림 속에는 수염이 달린 할아버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오른손을 뻗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고, 손가락이 서로 닿을 듯 말 듯 한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서양의 하나님을 그린 것이지만 동양의 전통적인 상제님의 면모를 아주 잘 나타낸 것이라고 나는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어요.


나는 시스틴 성당의 천장 벽화를 보면서, 서양 기독교 「창세기」에 나오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인격화되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창조주가 저렇게 구체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는 데 순간적으로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실제 기독교인들이 가슴속에 담고 있는, 마음속에 떠올리고 있는 하나님은 너무도 강력한 초월자요, 창조주이기 때문에 그림이 보여주는 인간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질문에서는 창조주로서 서양의 신과 상제님은 무엇이 다른가를 묻고 있어요. 사실 이 질문에 앞서 우리는 상제님이 어떤 분인가부터 알아야 합니다.


‘상제(上帝)’란 문자적으로는 ‘천상의 하느님’ 이라는 뜻이지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위 상(上)은 천상을 말하므로 하늘 천(天) 자로, 제(帝) 자는 하느님을 뜻하므로 주인 주(主) 자로 바꿀 수 있어요. 따라서 ‘상제(上帝)는 곧 천주(天主)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상제님은 ‘하느님이다’, 또는 ‘하나님이다’할 때, 이 ‘하느님’과 ‘하나님’ 두 언어를 동일한 의미로 써도 좋습니다. 또 그렇게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제님은 다신 문화권의 하느님이지만 우주의 대권을 쓰시는 유일하신 분이기 때문에 ‘상제님은 하나님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상제님의 위격을 바르게 나타내는 데 가장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역으로 ‘상제님이 서양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분입니까?’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면, 궁극으로 들어가서 보면 한마디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창조주다!’ 라고 한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동서 신관의 차이, 즉 서양의 창조주로서 신과 동양의 상제에 대한 인식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동서 하느님관이야말로 ‘인간은 무엇이냐?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느냐? 우주는 어떻게 운행되고 변화되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진리의 근원적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답하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화이트헤드가 주장하는 만물 창조의 세 가지 구성 요소

서양에서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말할 때 ‘신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하나로부터, 즉 원(One), 일자(一者)로부터 만물(多者), 매니(many)가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것을 전통적으로 창조 신학, 존재 신학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알 수 없다. 또 진리에 가장 부합하는 신의 모습과 역할, 그리고 진리 본래의 모습과 전체 틀을 알 수 없다. 때문에 이것을 완전히 뒤집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고 생각한 사람이 바로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화이트헤드(Whitehead, Alfred North, 1861~1947)입니다.



화이트헤드는 수학, 철학, 종교 등을 종합한 진리 인식의 성숙한 경계에서 신에 대하여 지금까지 바라보았던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즉 기존의 창조 신학에서는 하나로부터 만물이 태어났다고 했으나 그게 아니라고 부정했어요. 그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수 있는 기본적인 몇 가지 구성 틀, 즉 다자(多者)로부터 새로운 하나, 하나의 생물이 새로운 존재로서 현실 속에 태어나는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화이트헤드는 또 ‘신 혼자서 하늘도 땅도 빚어내고, 그 속에 있는 만물을 다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신이 혼자서 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만물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형성 요소, 이 우주를 태어나게 하는 창조의 구성 요소 세 가지를 말했어요.


그 첫째가 ‘영원 대상’ 혹은 ‘영원 객체(eternal object)’입니다. 이것은 동양적으로 볼 때는 이(理)와 같아요. 만물을 구성하는 이법, 창조의 섭리, 우주가 태어나고 변화해가는 원리를 말하는 겁니다.


둘째로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힘의 근원, 만물을 낳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창조성(creativity)입니다. 이것은 동양적으로 보면 기(氣)와 같지요.


그리고 셋째로 신(God)입니다.


화이트헤드는 이 세 가지 형성 요소 중에서 특히 신의 역할에 대해 깊이 사고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빨강’ 하면 그것은 가능태, 즉 추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빨간색’, ‘빨간 사과’, ‘빨간 지붕’, ‘빨간 흙’과 같이 하나의 현실태가 되려면, 다시 말해서 만물로 태어나 존재하려면 이 빨강이라는 추상을 하나의 현실적인 만물로 태어나게 하는 영원 대상, 즉 이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영원 대상이 단순히 동양적인 이(理)로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여간 영원 대상은 이 천지 안에 무수히 많다는 거예요. 그것을, 마치 구슬을 엮어 목걸이를 만들 듯, 하나의 질서 틀로 짜는 데는 신이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화이트헤드는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만물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 라고 했습니다. 신(God)도 현실적 존재의 하나로서, 만물을 낳는 요소들, 즉 영원 대상과 생명의 근원인 창조성을 결합하여 또 하나의 현실적 존재인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어요. 즉 이 우주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하나 되어 현실적인 존재로서 만물을 태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화이트헤드는 ‘합생(合生, concrescence)’ 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만물이 태어나는 그 과정을 ‘창조적 전진(creative advance)’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도 그 창조적 전진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 즉 우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몰랐어요. 한마디로 하늘땅이 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것이 화이트헤드 우주론의 본질적인 한계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신이 홀로 이 우주를 초월하여 무에서 유를 완전히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신이 만물을 지어낼 수 있는 바탕이 있다, 즉 창조의 기본 요소, 바탕, 틀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화이트헤드는 기존의 기독교적인 창조 신관을 존재 신학이라고 하면서 ‘이 우주는 하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자로부터 새로운 하나, 만물이 태어난다. 이 우주를 창조하는 기본 구성 원리가 있다. 하나님도 자기 홀로 우주를 둥글어 가게 할 수 없었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또 종교도 형성 중에 있다(형성 중의 종교)고 했어요. 성숙한 진리가 아직 안 나왔다는 겁니다. 그 모든 진액을 빼 가지고 열매 종교로 나온 것이 바로 증산도입니다.





▒ 신의 두 가지 본성

자, 질문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상제님은 무엇이 다릅니까?” 하고 물었는데, 창조주로서 역할을 하는 신은 동양에서는 그냥 ‘원 가드(One God)’가 아닌 ‘삼신 하나님’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얘기하도록 합시다.


서양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삼신(Triune God)’로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여기서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화이트헤드 철학만 가지고 얘기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화이트헤드는 삼위일체 신을 구체적으로 얘기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령에 대해 깊은 체험이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요. 단지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을 너무도 단순하게 얘기하니까, ‘신도 현실적 존재다.’ 해서 신의 역할에 대해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보충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신의 본성을 얘기했습니다. 그 첫째가 신의 ‘원초적 본성’ 입니다. 신이 만물의 여러 가지 추상적인, 잠재적인 이법적 요소를 얽어매어 한 덩어리로 만드는 합생에 의해 어떠한 생명이 태어나는데, 그 과정에 신도 똑같이 동참을 한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신은 역사가 전개되어 온 전 과정을 다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의 원초적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신은 만물 속에 개입을 하는데, 그것을 신의 ‘결과적 본성’ 이라고 합니다. 신이 이 우주의 이법적인 요소, 생명적인 힘의 근원, 창조성을 얽어 만물로 태어나게 하는 최후의 손길로 작용합니다. 신의 그 손길이 개입되지 않으면 이법도 작동이 안 되고, 우주에 있는 기적(氣的)인 생명 에너지가 구체적인 어떤 형상으로 태어나질 못하고 영원히 혼돈 속에 빠져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도 이러한 스스로의 본성에 의해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요. 화이트헤드는 이처럼 신의 본성을 두 가지로 얘기했는데, 사실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그와 같은 신의 본성을 동방의 신교에서는 어떻게 말할까요? 서양의 창조주 하나님의 역할을 알려면 동방의 신교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신교의 신관인 삼신의 세계를 알 때 비로소 서양의 창조주 하나님과 동양의 창조주 하나님, 삼신에 대해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서양은 일신(一神 One God)을 말했습니다. 그 일신이 세 위격으로 나뉘어 창조를 한다는 것이고, 동양에서는 신의 본래적인 본성이 세 가지 덕성으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질문한 서양의 창조주 신과 상제님의 관계를 봅시다. 창조주 하면, 동방에서는 『도전』 1편 1장의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는 말씀처럼 형상이 없는, 얼굴 없는 조물주 신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우주의 역사 속에서, 현실의 삶 속에서 하늘과 땅과 온 우주의 신권을 직접 쓰시는 분이 우주 통치자로서 상제님입니다. 상제님이 실제 우주의 조물주의 역할을 하시지만 신의 음양적인 두 얼굴, 두 측면이 있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사실 하나님이라는 호칭으로써, 얼굴이 없는 창조주의 손길로 작용하는 원신(Primordial God)과, 실제 우주를 통치하는 인격신으로서 지금 시스틴 성당에서 할아버지 모습으로 손을 뻗치고 있는 구원자, 천상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 주신, 통치자(Governing God)를 동시에 얘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설적이지만 동방의 상제 신관보다 서양의 신관이 사실은 더 음양적으로, 구체적으로 신관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신교 문화에서는 이것을 구분합니다. ‘우주를 낳은 본래의 신은 원신으로서 삼신이다. 그리고 그 삼신의 신권을 직접 쓰시면서 우주를 통치하시는 참하나님을 상제님이라 한다. 또한 상제님이 삼신의 조화권을 직접 다 쓰시기 때문에 상제님은 곧 삼신 상제님이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구별해서 볼 줄 알면 동서양의 창조주 신관에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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