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는 서로 다른 존재인가요?

2009.08.21 | 조회 10214

Q┃ 증산도에 따르면 1871년에 하느님이신 상제님께서 강증산이란 이름으로 조선에 내려오셨습니다. 상제님은 또한 서신西神이십니다. 도교와 유교에서는 하느님의 의미로 옥황상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불교에서는 미륵불이라 씁니다. 증산도에서는 하느님을 상제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상제님은 얼마나 많은 신의 역할을 맡고 계십니까?



사실 이 질문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질문의 의도를 가만히 보면, 전에는 전혀 그런 생각 없이 ‘아, 각 종교에는 그렇게 호칭이 다른 최고의 신이 계시는구나. 그런 신앙 대상이 있구나.’ 이렇게 알고 신앙을 해 왔는데, 막상 증산도에 들어와 보니까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더라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 역사상 동서 각 종교에서 깨달은 바의 총 결론이자 각 종교에서 제기되어 온 절대자의 호칭, 각 문화권에서 수천 년 동안 영적 거장들이 하늘에서, 또 지상에서 깨달은 진리의 주제, 그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그들의 주기도문의 첫 구절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가 있습니다. 온 우주를 만들고 만물의 생명계를 직접 다스리며 관여하는 초월자로서 신,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또 불교에서는 도솔천에 천주님으로서 미래의 부처 미륵님이, 도교에는 옥황상제님, 유교에서는 상제님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동서의 주요 종교문화권에서는 절대자를 각각 다르게 불러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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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각 종교 문화권에서 다르게 불러 온 절대자는 서로 관계가 없는 것일까요?


지금부터 135년 전인 신미(辛未, 도기 1, 1871)년, 동방 한국 땅에 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참하나님,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강세하셨습니다. 그런데 상제님께서는 당신님을 유교나 도교에서 불러 온 ‘상제’, 보다 구체적으로 ‘옥황상제’라고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서양 기독교에서 외쳐 온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으로, 또 유불선·기독교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언어, ‘서신(西神)’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 서신(West God)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하나님은 동서를 동시에, 또 이 지구만이 아니라 온 우주를 맡아서 다스리실 텐데 어떻게 웨스트 가드(West God)만 되느냐, 서신이란 도대체 뭐냐는 겁니다.


‘서신’이라는 말은 사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종교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일수록 더욱 알기 어렵습니다. 불교 경전의 전문가, 수십 년 앉아서 수행만 한 사람, 또 금세기의 유명한 신학자들도 웨스트 가드(West God)를 모릅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시는데 서신으로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이겁니다.

문제의 요지는, 지구촌의 각 종교 문화권에서 깨달음의 총 결론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 온 ‘미륵불’과 ‘아버지 하나님’, ‘상제님’이 정말로 각기 다른 인격체냐, 완전히 다른 신들이냐?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증산 상제님이, 도솔천의 하나님으로서 오셨다. 증산 상제님은 당신 스스로 서양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과 그 신격이 같다고 말씀하셨다. 각 종교에서 말하는 그 호칭은 같은 한 분의 절대자를 가리킨다. 그래서 같다.’ 이렇게 단순 논리로 알아 버리면 안 됩니다. 진리란 그렇게 체험 없이, 체계 없이, 신앙 대상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각 문화의 깨달음의 결론만 똑 따서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상제님은 왜 상생문화연구소의 하제 연구원이 질문한 것처럼 여러 가지 호칭으로 말씀을 하셨을까요? 왜 상제님은 불교에서 앞으로 오신다고 한 미륵님으로, 유교, 도교에서 말한 상제님으로, 또 서양 기독교에서 지난 2천 년 동안 외쳐 온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느냐 이 말입니다.


내가 이 질문에 대하여 답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제기하고 싶은 것은, 각 종교에서 그동안 자기들의 신앙의 대상에 대하여 최고신으로, 앞으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구세주, 구원자로 불러 온 그 호칭에 대해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륵은 누구이시며, 그분이 계시는 도솔천 하늘이란 어떤 곳인지, 도교와 유교의 상제님은 어떤 하늘에 계시는지, 왜 호칭이 상제님인지, 상 자는 무슨 뜻이고, 제 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호칭에 대한 문자적인 뜻과 그 속에 담겨 있는 본래의 뜻, 의도하고 있는 중심 뜻(central meaning)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 왜 각 종교에서는 이 우주의 지고신으로서, 통치자 하나님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절대자를 신앙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각 종교 문화의 신앙의 역사, 믿음의 역사, 신도 체험에 대한 내용과 과정에 대해 그 핵심을 제대로 알아야만 이 문제의 결론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각 종교 문화권의 신앙의 대상, 즉 그들이 말하는 구원자, 창조주가 과연 서로 다른지, 아니면 같은 분을 말하는 것인지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각 종교의 구원론의 결론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과연 그 일치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서양 기독교만 해도 ‘예수가 과연 이 우주를 창조한 아버지 하나님이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 대답은, ‘아니다!’ 이겁니다.


예수의 한 생애의 가르침, 3년 공생애의 결론이 뭡니까? ‘나는 내 스스로 온 게 아니다, ‘그분’이 나를 보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서 왔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가 말한 ‘그분’은 과연 누구일까요? 예수를 내려 보낸 ‘하늘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냐 이 말입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그 아버지를 ‘상제님’이라 불러왔습니다. 불교는 이와는 달리 미래의 부처 ‘미륵불’이라 하고, ‘그분은 도솔천에 계신다, 도솔천의 하나님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기독교의 구원 사상에서는,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계와 대자연계를 주시하시며, 항상 관심을 갖고 구원해 주고자 하는 꿈과 강력한 의지와 원대한 설계도를 가진 하나님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유교, 도교에서는 그분을 ‘상제님’으로서 특히 더 강조를 합니다.


그런데 불교에는 그런 맛이 없습니다. 동서의 전문가들은 불교를 일컬어 ‘자력 종교’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 직접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이 우주의 본성,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거예요. 자력과 실천, 내 몸으로 직접 부딪혀서 체험을 해야 하는 종교가 바로 불교인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불교의 결론은, ‘3천 년 뒤에 말법 시대가 온다. 그때는 석가 부처의 진리, 그 교법으로는 이 세계를 온전히 건져낼 수 없다. 그때 새로운 부처님이 오신다. 그분은 도솔천의 하나님이다. 도솔천 천주님이 직접 인간을 건지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미륵님이 오셔서 열어 주시는 새 세상을 울단월 세계라고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한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여는 세계, 모든 이들이 다 부처가 되고, 자연의 질서가 조화되어 사시가 고르게 되며, 새로 태어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새 부처님의 세계가 바로 미륵님의 구원의 세계상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세계 각 종교의 구원론은 한결같습니다. 분명히 일치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오늘 질문에 대해 정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제님께서 1871년에 이 땅에 오셔서 “내가 상제다. 내가 옥황상제다. 내가 미륵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제’, ‘옥황상제’, ‘미륵’이라는 말씀입니다. 상제님 말씀이 이와 같을진대 우리는 ‘상제’, ‘옥황상제’, ‘미륵’은 같은 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호칭은 각각 다르지만 같은 한 분이라는 것이지요.

만약에 호칭이 다르듯이 실제로 전혀 다른 분이 ‘미륵’으로, 다른 신이 ‘상제’로, 인격이 또 다른 신이 ‘옥황상제’로, 천상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전 인류가 함께 구원받는 소위 보편 구원, 온 인류가 한마음으로 사는 궁극의 이상 세계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특이한 점은, ‘서로 다른 인격신이 계신다.’는 가정은 각 종교의 신념 속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기독교인들은 ‘앞으로 마지막 심판 때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죽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각 종교에서 말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신들이 나와서 구원을 한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마지막 심판 이후, 온 인류가 구원받은 자들이 세운 새로운 지상 낙원에서 또 다시 분열된 세상을 살아갈 것 아니겠습니까? 불교는 불교대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이슬람은 이슬람권대로 말이에요. 결국 인류가 염원해 온 궁극의 이상 세계가 통일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분열 세계가 된다는 거니까 전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이겁니다.


그것은 누구도 원치 않고, 또 각 종교의 신앙 체계에서는 도저히 허용이 안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상식이나 믿음 속에서도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문제지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류에게 진정한 구원이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 종교의 구원의 주제이자 총 결론으로서, 인류가 깨달은 진리의 핵심 문제로서 각각의 절대자 호칭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호칭은 서로 다르지만 동양에서 신앙해 온 도솔천 하나님 미륵님과 상제님, 서양에서 말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전혀 다른 분이냐, 또는 같을 수 있느냐, 그런 가능성이 있느냐, 진짜 같은 분이냐 하는 문제를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 그렇구나. 그래서 같은 분이구나.’ 하든지, 아니면 ‘그래서 전혀 다른 분이구나.’ 하고 깨달음의 경계에서 알아야 합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각 종교에서 말해 온 메시아, 절대자가 아버지로 오시든지, 도솔천 천주님으로 오시든지, 상제님으로 오시든지 그분이 오시는 곳이 어디인지, 또 그때는 언제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각 종교의 경전을 바탕으로 정리를 해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유교의 결론


그러면 먼저 유교에서 전하는 우주의 절대자 강세 소식은 무엇일까요? 


유교의 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주역』을 보면 이에 대하여 ‘모든 말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성자들의 ‘모든 말씀’, 인류가 깨달은 ‘모든 말씀’의 결론이 성언호간(成言乎艮), 즉 동북 간방에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절대자가 동북방으로 오신다고 하는 유교의 깨달음의 한 소식입니다.


그럼 주역에서 말한 동북방은 어디일까요?


서양은 문자 그대로 서쪽입니다. 중동(中東)은, 고대 사람들이 진정한 동방이 어디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 지역을 동쪽으로 알고 오리엔트(Orient : 근동)라 했던 것입니다. 동북방은 결코 아니라는 얘깁니다.


오늘날 지리학에서는 이 동북방을 극동(Far Eastern Asia)이라 합니다. 또 이곳은 모든 종교 문화의 원형이 살아 숨쉬고 있고, 지구촌의 모든 종교가 들어와 세계적으로 가장 번성한 곳, 그리하여 모든 종교의 진리 핵심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입니다. 불교의 원형이 그대로 살아 있고 핵심 가르침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 도교의 핵심을 알 수 있고 유교의 원형이 살아 있으며 기독교가 가장 강성한 나라! 이 정도면 대략 눈치를 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이 바로 『주역』에서 말한 동북 간방입니다. 우리 한국 땅에 우주의 절대자 상제님께서 직접 인간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 불교의 결론

둘째, 불교 가르침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불교의 「화엄경」이나 「미륵경」, 또는 「법화경」 등을 보면 ‘말법의 시대가 되면 미륵님이 동방 땅에 오신다.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에 오신다.’ 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20대 때 「화엄경」을 구하기 위해 서점엘 갔던 적이 있어요. 「화엄경」을 보면 입법계품에 불교의 이상적인 구도자 선재동자의 구도기가 나옵니다.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 세상의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다가 마침내 미륵님을 만납니다. 그때 미륵님이 이 젊은 구도자를 암자로 데리고 가서는 문을 딱 열고 “저 안을 봐라!” 하십니다. 선재가 무심코 그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 작은 암자 속에 거대한 우주가 펼쳐져 있는 것 아닙니까.


이게 뭘 뜻하는 걸까요? ‘이제 그만 방황해라! 그만 돌아다니고 자리에 앉아서 네 마음의 문을 열고 봐라. 네 마음속에 이 우주가 들어 있다. 네 마음속에 천국이, 네 마음속에 이 우주의 화엄 세계, 조화 세계가 들어 있다!’ 그걸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미륵님의 또 한 가지 의도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나의 미래 세계다. 내가 앞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여는 낙원 세계다. 내가 유한의 지구 위에 무한의 조화 세계를 건설한다.’ 이것을 보여 주시려 한 것이지요. 미륵님이 앞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 이정표, 그 청사진을 조금 보여 주신 것이다 이겁니다.



▒ 기독교의 결론

끝으로, 기독교에서 말한 구원의 소식을 보겠습니다. 


기독교의 계시록에는 충격적인 소식 몇 가지가 있어요. 계시록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흰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이, 당신이 보낸 아들 성자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사도 요한을 불러서 직접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요한계시록 1:8)


아버지가 아들의 제자를 불러서 새로운 인류 구원의 복음, 케리그마(kerygma)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내가 장차 내려갈 자다!” 라고.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 내용을 곡해해서, “왜 보좌에 앉으신 분을 꼭 아버지라고만 해석해요? 삼위일체니까 아들 성자 하나님도 되죠. 또 성령 하나님도 되잖아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예수의 본래 가르침과 전혀 안 맞습니다. 아니, 아들은 분명히 아버지 보좌의 우측에 앉아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 보좌에 앉을 수 있느냐 이거에요. 기독교 구원론을 바르게 깨닫는 데는 이 문제가 참으로 중요한 관건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고, 내가 장차 내려가서 모든 걸 새롭게 한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증산도에서 말하는 가을 대개벽 소식입니다.


조금 전에 미륵님이 선재동자에게 이 우주의 조화 세계를 보여주셨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흰 보좌에 앉아 계신 아버지와 불교의 도솔천 하나님 미륵님의 도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불교로 말하면 3천 년 후(북방 불교는 갑인(甲寅, 1974)년이 불기 3천 년이 되는 해), 기독교로 말하면 2천 년대가 되면 종말론적인 심판의 시간이 가까워 온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동양의 미래의 구원자이신 도솔천 하나님 미륵불과 서양에서 말하는 아버지 하나님이 오시는 그 때와 장소가 같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계시록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무리가 동방으로부터(from the east) 오더라, 흰 옷을 입은 무리가 동방에서 나오더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불경(「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서는 “말법의 그때에 통일의 하늘에 계시는 미륵불이 바다에 둘러싸인 동방의 나라에 강세하리라.” 하고 미륵님 강세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 상제님께서는 “언제나 동쪽에서 시작하여 동에서 마무리를 짓나니 너희들은 항상 동으로 힘써라.”(道典 3:306:9)고 하셨어요. 이것은 곧 동방, 동의 세계, 동의 문화(eastern culture)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끝에 질문한 “How many gods is Sangjenim? 도대체 상제님이 몇 분의 신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하는 부분을 봅시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상제님이 미륵의 역할, 옥황상제의 역할, 아버지 하나님의 역할을 각각 달리 하는 것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전에 우리는 각 종교의 신앙 역사와 그들이 깨달았던 메시아를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또는 앞으로 오실 구원의 부처님으로, 상제님으로 표현하게 된 문화적 배경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각 종교에서 절대자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된 이유는, 그들이 살던 자연 환경과 부족, 민족 문화의 전통, 생활 방식, 언어 세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 우주의 지존자 하나님, 또는 앞으로 오실 인류의 구원자로서 새 부처님을 각기 다른 호칭으로 불러 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신앙 속에서 젖다 보니까 유교, 도교의 상제님과 불교의 미륵불, 그리고 유대 문화에서 태동한 천상 옥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 엘 샤다이, 엘로힘, 또는 기독교 신약의 아버지 하나님이 전혀 다르게 오직 그들만이 믿고 구원을 받는 보편자로서 하나님으로, 구원자로 가슴 속에 각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우주의 절대자이신 상제님에 대한 호칭이 다르다고 해서 각각 다른 역할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하늘에 계신, 우주의 가장 높은 하늘에 계신 지존자 하나님을 각 문화권에서 서로 서로 다른 호칭으로 신앙을 해 왔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호칭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결론은, 상제님이 각기 다른 호칭으로 불려 왔다고 해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동서의 문화권에서, 그 종교 문화, 도의 세계에서 특이한 문화와 역사 배경을 따라서 언어가 다르고, 또 절대자에 대한 인식과 문화와 깨달음의 색깔이 달라서 그렇게 모셔 왔고, 그런 특이한 신앙의 방식을 취해 온 것일 뿐 상제님이 각기 다르게 역할을 하신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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