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밝히기 위해 동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던 인간이 등유를 사용하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인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이후 휘발유 자동차가 개발됐고 경유를 사용하는 디젤차가 등장했다. 각종 연료로 사용되던 석탄을 석유가 대체했고, 비행기가 개발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 크게 대두됐다.

증류에 의해 석유를 다양한 물질로 분리시키는 현대적 정유공장은 1912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20세기의 수차례 전쟁에서 석유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자동차, 선박, 비행기가 전략적 병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석유는 20세기 이후 연료로서 인류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

한편 1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석유에서 화학제품을 얻으려는 노력이 본격화됐다. 1930년대 나일론과 합성고무가 개발되면서 석유에서 다양한 화학제품을 대량으로 얻기 위한 석유화학산업이 등장했다. 석유화학산업은 우리에게 플라스틱이라는 현대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생필품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석유로 대표되는 화석연료는 연료로, 기본적 생필품으로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석유의 용도가 있다. 탄소와 수소로 이뤄져 있는 화석연료는 적절한 공정을 거쳐 수소를 만들 수 있고 이를 공기 중의 질소와 반응시키면 암모니아를 경유하여 질소 비료를 생산할 수 있다. 암모니아 합성법은 1913년 상업화되었는데 이렇게 생산된 화학비료로 인해 식량 문제가 해결되고 지구 인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19세기 지구 인구는 약 1.5배 증가했으나 20세기에는 15억명에서 60억명으로 4배나 증가하기에 이른다. 수차례 세계 전쟁을 치르면서도 이와 같이 지구 인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 데는 식량문제를 해결해 준 화학비료의 힘이 컸다.

높은 유가가 국제 경제를 어렵게 하고, 화석연료의 고갈도 우려되고 있는 지금이다. 석유는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닌 의식주의 기본 물질로서 현대 인류문명에 너무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존 자원의 절약과 함께 다양한 대체 자원을 개발함으로써 석유가 담당했던 여러 역할에 대비해야만 현대 인류가 석유 덕분에 짧은 기간에 얻고 누리고 있는 지금의 찬란한 문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관영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