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문학에 앞장 선 시인 심훈

신상구 | 2020.03.04 11:52 | 조회 412 | 추천 5

    

                                                                       항일 문학에 앞장 선 시인 심훈

   "나는 이 땅에서 나고 또 살아온 고로 우리 조선의 현실을 조금아치라도 나타내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설가 심훈(沈熏·본명 심대섭·1901~1936)은 조선일보 입사 전에 영화배우 겸 감독으로 활약했다. 1927년 본지 인터뷰에서 식민지 예술인으로서 사명을 이렇게 강조했던 그는 이듬해인 1928년부터 1931년까지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며 당시의 다짐을 기사와 작품으로 실천했다.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기 전, 심훈은 시를 통해 민족 해방의 비원을 노래했다. 대표작이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던 1930년에 쓰고 1932년 문예지 '신생'에 발표한 '그날이 오면'이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리까.'
   심훈은 '그날이 오면'을 비롯해 100여 편을 모아 출판하려 했다. 그러나 일제 검열에 막혀 빛을 보지 못했고, 사후 13년 만인 1949년 유고 시집 '그날이 오면'으로 출간됐다. 시의 끝에 창작일이 1930년 3월 1일로 돼 있어 3·1운동을 기념해 지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총독부는 심훈이 조선일보 지면에 독립과 저항의 언어를 쏟아낼 때마다 검열의 가위를 들이댔다. '핏취에 꼬저넛는 스트라익은 XXXX/ 빼트로 갈겨내친 뿔은 수뢰(水雷)의 XX/'('야구'·1929년 6월 13일 자 3면). 1966년 출간된 심훈문학전집과 충남 당진의 심훈기념관에 전시된 작품엔 가려진 글자가 각각 '수척(手擲)의 폭탄(爆彈)'과 '포환(砲丸)'으로 돼 있다. 투수가 던진 공과 타자가 친 공은 일제에 투척한 폭탄이고 쏘아 보낸 어뢰라는 뜻이다.
   1930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동방의 애인'과 이듬해 연재한 '불사조'는 모두 총독부 검열로 중단당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한 영화 '먼동이 틀 때'(1927)도 원래 제목은 '어둠에서 어둠으로'였다. 그러나 "조선의 처지를 암시한 것 아니냐"는 총독부 시비로 제목이 바뀌었다. 이런 경험이 쌓여 심훈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조선의 현실을 각성케 하는 계기가 됐다. 경성고보 재학 중 3·1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수감됐을 때도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 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라며 당차게 모친을 위로했던 그다.
   조선일보는 1929년 5월 소파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새롭게 시작했다. 서울에 있던 유치원 17곳 원아들을 장충단공원에 모아 잔치를 열었다. 심훈은 이를 축하하는 시 '어린이날에'(1929년 5월 7일 자 석간 3면)를 조선일보에 발표했다. 어린이를 살뜰히 보살피는 마음뿐 아니라, 3·1운동 10주년에 열린 행사 의미를 기렸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비가 나립니다/ 여러분의 행렬에 먼지 일지 말라고/(중략)/ 그것처럼 몇 번만 더 빗발이 뿌리고 지나가면/ 이 강산의 주름살도 펴진답니다// 시들은 풀잎 우거진 벌판에도 봄이 오면은(하략).'
   1930년 1월 3일 자에 쓴 '새해의 선언'이란 칼럼에선 '동무여! 진흙구렁에 틀어박힌 머리를 처들고 우리의 현실을 응시하자!'며 '이 땅의 흙냄새를 맡고 자란 젊은이는 조선 사람이 마땅히 걸어야 할 그 길을 줄기차게 걸어만 가면 그만이다'라고 촉구했다.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소설 집필에 몰두했다. 대표작 '상록수'가 이 시기에 완성됐다. 1936년 8월 10일 상경했다가 마침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하는 호외를 집어 들고 감격에 겨워했다. 그 자리에서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호외 뒷면에 쓴 것이 마지막 작품으로 남았다. 다음 달 16일 '상록수'의 단행본 출간을 의논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35년의 짧은 삶을 끝냈다. 몽양 여운형은 장례식장에서 울면서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낭송하는 것으로 그의 이른 타계를 가슴 아파했다.
    심훈이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했던 기간은 조선일보가 문자보급운동을 활발하게 펼치던 시기와도 겹친다.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구호를 내걸고 전개된 이 운동을 편집국 기자로서 지켜본 경험은 훗날 쓴 '상록수'에 오롯이 녹아 있다. '상록수'의 첫머리는 경성 태평로에 신축된 조선일보 신사옥 대강당에서 열린 문자보급운동 보고대회 장면으로 시작한다. 문자보급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위로하는 다과회를 겸한 이 자리에서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이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워나간다.
    '가을 학기가 되자, ㅇㅇ일보사에서 주최하는 학생계몽운동에 참가하였던 대원들이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각처에서 모여든 대원들을 위로하는 다과회가 그 신문사 누상에서 열린 것이다. 오륙백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에는 전 조선의 방방곡곡으로 흩어져서 한여름 동안 땀을 흘려가며 활동한 남녀 대원들로 빈틈없이 들어찼다.'
   조선일보는 당대의 가장 뜨겁고 치열한 생각이 모여드는 공론의 장(場)이었다. '상록수'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모델이었던 최용신〈사진〉도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문자보급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  다. 함경남도 덕원군 출신인 최용신은 1928년 4월 1일 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교문에서 농촌에'라는 글에서 농촌계몽에 헌신하고자 하는 각오를 이렇게 밝혔다. '중등교육을 받은 우리가 화려한 도시생활만 동경하고 안일의 생활만 꿈꾸어야 옳을 것인가? 농촌으로 돌아가 문맹퇴치에 노력해야 옳을 것인가? 거듭 말하나니 우리는 손을 서로 잡고 농촌으로 달려가자.'
                                                                                   <참고문헌>
    1. 김태훈, "총독부에 맞서… 독립의 '그날' 노래한 문인 기자", 조선일보, 2020.3.3일자.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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