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기의 기학(氣學)

유종안 | 2010.05.20 10:03 | 조회 6763

인간 경험과 지식에 기초한 근대 대응 논리

2010/05/17 ⓒ 독서신문

김성희
▲ 지구전도(좌), 지구후도(우), 최한기가 제작한 놋쇠 지구의(하단) © 독서신문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 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1803년 서울에서 태어난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 1803~1879)는 문(文)·사(史)·철(哲)의 종합적 동양학의 틀에서 머물지 않고 물리·천문·지리에서 의학 등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기학(氣學)’이란 개념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했다. 장차 동서가 하나로 통하게 되는 시대를 대면해서 최한기는 기학으로 학문을 총체를 구도한 것이라 하겠다.

19세기 한국의 위대한 두 학자 정약용과 최한기는 근대 대응을 위한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으로써 한편은 경학으로, 한편은 기학으로 체계를 세운 것이다. 본고에서 나는 특히 개항기에 직면해서 하나의 학문체계를 수립한 최한기의 기학을 주목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최한기의 독서벽과 저술의 의미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서적에 혹해서 고질병이 되었다고 하지만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 중에는 책을 구해 읽을 수 있도록 협력하여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이도 있다.”
-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

최한기는 마치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듯 지식의 세계를 추구해 들어갔다. 새로운 책을 구입하느라 자기의 부유한 재산을 아낌없이 투척했다. 특히 현재에 가까울수록 그의 관심은 증가되어 책은 인간의 경험이 확대되고 실험·관측이 진보함을 따라 옛사람들의 무지와 착오를 바로잡고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지식의 진보를 확신한 까닭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 시점을 ‘기화(氣化)의 형(形)’이 반쯤 드러나고 반쯤 가려진 상태로 인식, ‘물리 개명’의 고비라고 했다. 때문에 신지식을 파고드는 그의 욕구는 더욱 치열했고 독서에 몰입했다.

그는 인간이 성취한 위업으로 ‘사무공덕(事務功德)’과 ‘저술공덕(著述功德)’을 설정했는데, ‘사무공덕’은 만인이 다 보고 아는 것임에 대해 ‘저술공덕’은 현자로서 통견을 가진 자라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저술은 이론적 작업에 해당하고 사무는 저술이 실현되는 형태로 본 것이다. 그는 저술이 발휘하는 공덕을 바다의 일출광경에 비유하고 있는데, 천지의 어둠을 꿇고 솟아올라 찬란하게 온 누리를 비치는 태양을 저술공덕의 위대한 현상으로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계몽적인 ‘근대주체’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는 “진정한 부귀는 자기의 한 몸에서 길러지는바 항상 넉넉함을 가져 정교(政敎)에 시행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했는데, 자기 몸에서 길러지는 그것이 바로 저술이다. 언어로 전하면 곁에 있는 자들이 그 은혜에 기뻐하는 데 그치지만 문자로 남기면 먼 나라 사람들까지 즐겨 취해 쓸 수 있다고 역설한 것이다.


다산경학에 견주어 본 혜강기학

혜강은 “학문이 사무(事務)에 있으면 실(實)학문이 되고 사무에 있지 않으면 허(虛)학문이 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기학의 실천적 방향으로서 혜강학의 요긴한 개념이다.

다산의 경우 도(道)를 “여기서부터 저기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여 선험적 당위의 도리가 아닌, ‘죽음에 이르도록 스스로 밟아감’으로써 이루어지는 실천의 길이라고 규정한다. 다산학의 도는 혜강학의 사무와 ‘실천적’이라는 면에서 상통하고 있다고 보겠다. 그럼에도 상호간의 패러다임은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천관’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다산의 천관은 전지전능의 인격신적 존재로서 상제(上帝)를 떠올린 것이고, 상제는 우리 인간을 내려 보고 감시하는 ‘강감(降監)’과 잘못을 다스리는 ‘위벌(威罰)’의 권능을 행사하고 계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다산은 이 천관에 의거, 남의 시선에 뜨이거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은밀한 상태에서 처신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유교적 수양론의 핵심 개념인 ‘신독론(愼獨論)’을 편다. 요컨대 세상 눈은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감시망을 벗어날 우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산에 있어 ‘탈성리학’의 귀결처는 경학의 세계였다고 하겠다.
하늘을 ‘섬기는 대상’으로 사고한 점에 있어서는 혜강도 다산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천관 자체는 같지 않다. 혜강은 다산이 영입한 ‘인격신적 주재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활동운화(活動運化)가 신이 됨을 알지 못하고 문득 천지에 지극한 신의 조화가 있다고 운운하다니 이는 기(氣)에 우선하여 신이 있다는 것이다.”

최한기는 이렇게 공박하면서 신이란 ‘운화의 권능’을 가리키므로 운화의 기가 곧 신이라고 확신한다. 창조주로서의 신을 부인한 나머지 자연 자체를 신으로 간주한 스피노자(B. Spinoza)의 철학, 혹은 무신론과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혜강은 다산처럼 먼 옛날의 경전 권위에 의존할 필요가 사라지게 됐고 성인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중국 및 한국 중세 사회는 사고와 행동의 기초 및 표준을 성인의 경전에서 끌어 왔다. 다산 또한 새로운 사고의 논리를 펼치면서도 그 근거를 경전 상에서 마련하고자 했다. 반면 혜강은 눈앞에 펼쳐지는 인간의 경험과 지식에 기초와 표준을 잡아야 된다는 확신을 한 것이다. 즉 다산에게 학문의 길은 탈성리학으로 나가서 경학으로 중심을 잡은 반면, 혜강은 성리학을 해체하고 또 탈경학까지 나가 동서가 만나고 통하게 된 근대적 세계의 입구에서 전 지구적 일통을 제기한 기학의 신경지를 열었던 것이다.

최한기가 처했던 19세기 역사의 행보는 일차적으로 민족국가의 독립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혜강학에서는 중국 중심적 세계의 극복 방향이 민족국가에서 그치지 않고 그 너머로 나간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의 박애사상을 거론하고자 한다. 그는 『인정(人政)』에서 “사람이 자기 부류를 사랑하는데 대소 광협이 있는 바, 천하인민에 일통하는 사랑이 가장 광대한 것이요, 타국사람들을 얕잡아 보면서 자국의 인민만을 사랑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사랑이란 한 고을 또는 한 가문에 그치는 경우에도 등급이 있어 한 사람만을 편애하는 자도 있다”고 하며 사랑(愛)과 인(仁)의 관계를 논한다. 요컨대 최한기는 ‘박애’를 지고의 윤리 가치로 인정하고 있고, 혜강학의 일통론은 박애정신에 기반한 것임이 역력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려니와 말을 하면 천하인이 취해 쓸 수 있고 발표하면 내인이 감복할 수 있어야 한다.” - 기학서(氣學書)

이것이 최한기 자신이 생각한 학문의 의미였고, 그는 학문의 효용성 및 이론의 타당성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검증하고자 한 것이다.

혜강학 = 기학은 동양 고래의 기(氣) 개념에 서양의 근대과학의 성과를 수용한 형태다. 천인합일은 동양적 사고 논리에 의한 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 혜강학은 다산학에 비해 오히려 동양적 틀에 매어 있으며, 서양의 과학적 사고와 위배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최한기의 기학을 서양적 잣대로 판정해 버리지 말고 지구적 일통을 모색하고 서양학문과의 만남을 위한 방법론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 · 정리 김성희 기자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역사박물관)에서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가 ‘한국 지성의 문명의식과 실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사진설명 쩖1834년 최한기와 김정호에 의해 제작된 지구전도 쩗지구후도 쩘최한기가 제작한 놋쇠 지구의(地球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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