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양심이 곧 부처더라

초록물고기 | 2012.12.20 13:22 | 조회 5801

내 양심이 곧 부처더라

현실과 타협 않고 한평생 불가에 쓴소리한 삼성 스님
‘도인 스님’ 경지 이른 뒤 “내 도력은 양심에서 나온 것”
마지막 1년간 문 잠긴 방에서 수행하다 앉은 채 열반
수십년간 지켜본 저자, 생전 일기 바탕으로 삶 재구성

한겨레

조연현 기자

» <무문관에서 꽃이 되다> 최만희 편저. 운주사 펴냄. 1만원
1968년 10월이었다. 부산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석암, 석주 스님 등 7증사(계를 받는 것을 증명해줄 일곱 명의 스승)들이 앉아 있고, 이제 비구계를 받아 정식 스님이 되려는 70명이 서 있었다. 7증사가 계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과 거짓말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모두가 “없습니다” 하고 넘어갔다. 그야말로 형식적인 질문에 형식적인 답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답이 나왔다.

“살생한 적이 있느냐?”
“예! 있습니다.”
“도둑질한 적이 있느냐?”
“아니오! 없습니다.”
“음행한 적이 있느냐?”
“예! 있습니다.”

이에 다른 수계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선지 “저도 있습니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수계식이 도중에 중단됐다.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한국불교사 최초의 일이었다. 조계종은 참석자들에게 비구계를 주어 스님 자격을 부여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종교의 형식과 위선에 경종을 울렸다. 당시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삼성 스님(1941~2004)이었다.

수계식 도중에 중단된 초유의 사건

생애 마지막 1년 동안 계룡산의 무문관(밖에서 자물쇠를 채운 채 바깥출입하지 않고 참선 수행하는 방)에서 수행하던 중 일기장에 꽃잎 하나를 그려놓고 의자에 앉은 채 좌탈열반(앉은 채로 사망)한 삼성 스님의 일대기를 엮은 <무문관에서 꽃이 되다>의 한 장면이다. 이 책은 수십년간 삼성 스님을 지켜본 최만희씨가 삼성 스님이 평생 써온 일기를 기초로 쓴 것이다. 대전시청 공무원을 하다 정년 퇴직한 저자는 대한불교청년회 이사와 대전·충남지역 회장을 지내면서 수많은 스님들을 지켜보았던 인물이다. 그랬음에도 삼성 스님의 글을 쓰면서 “숭고함과 안타까움이 휘몰아쳐 몇 차례나 가슴에 경련을 일으켰다”고 고백했다.




1년간 무누관 수행하다 꽃잎 하나 그려놓고 좌탈열반

술과 화투판에 미쳐 있는 아버지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는 어머니한테서 태어나 시래기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겨우겨우 국민학교만 마치고, 거지꼴로 찾아가 겨우 출가했다는 얘기라면 신파극일테고, 그런 출신성분임에도 날렵하게 승가에 잘 적응해 사람들에게 추앙받은 스님이 되는 얘기라면 시련을 이긴 성공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뿌듯함을 전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 적당히 순응하지 않은 스님의 역린(거꾸로 박힌 용의 비늘)은 우리의 양심을 끊임 없이 깊게 찔러온다.

기관장과 돼지머리 고사 지내자 사자울음

그가 승가를 거북하게 한 것은 수계 때만이 아니었다. 한 사찰 일주문 밖에서 스님들이 군수 등 기관장들과 함께 돼지머리를 차려놓고 산신제를 지낼 때도, 불국사에서 깨져버린 보물 사리병 대신 가짜 사리병을 만들어 내놓았을 때도 그만은 타협하지 않았다. 그가 단식으로 호소해도 참회를 거부했을 때 그는 대중들 앞에 도끼와 칼을 들고 나서 사자울음을 토했다. 그 도끼와 칼은 남을 헤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승가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지금 당장 팔을 도끼로 자르고, 칼로 배를 갈라 대신 사죄하겠다는 것이었다.

대형불상, 우담발화 등도 매불이라 몰아쳐

그의 단호함에 현장에서 참회는 이뤄졌지만, 진실한 참회는 없었다. 많은 이들은 오히려 그를 ‘또라이’로 몰아갔다. 그렇지 않고선 자신들의 절을 변호하기 어려웠다. 삼성은 천불봉안, 만불봉안, 대형불상, 화려한 법당, 백만사리 봉안, 우담발화 홍보 등도 혹세무민이며 매불 영업행위로 몰아쳤기 때문이다.

» 저자가 무문관 창틈으로 얼굴을 내면 삼성 스님을 찍었다. 삼성 스님이 남긴 유일한 사진이다.
삼성의 통찰적 비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 국사나 조사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고통받는 국민보다는 국가권력 편에 기울었던 점을 꼬집었다. 왕과 귀족 등 부유한 보시자와 어울리며 중생의 고통에 귀를 닫아버린 행태를 예리하게 지적해낸 것이다. 더구나 타종교와 달리 여전히 국가권력에 아첨하고 의존해 체질자체가 허약한 ‘한국 불교’의 모습을 질타했다.

병뚜껑을 동전으로 알고 주웠다가 53일 단식참회로 반신불수

비판에 익숙한 이들과 삼성이 다른 점은, 그가 타인들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 더욱 서릿발 같았다는 것이었다. 삼성은 1979년 어느 날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하던 중 아래에서 반짝이는 100원짜리 동전을 주웠다. 그런데 막상 줍고 보니 병뚜껑이었다. 그 순간 병뚜껑이 ‘스님이 돈에 눈이 멀었구만’ 하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이를 물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업장의 투영으로 본 그는 목숨을 걸고 53일간 단식참회를 했다. 그로 인해 심근경색과 하체마비가 와 평생 장애인으로 살다 세상을 마쳐야 했다.

삼성은 저자에게 자신의 과오까지 낱낱이 고백한다. 팔공산 선본사 주지를 할 때 예쁘장한 스물한 살 여자를 범한 뒤 파계승이 되어 그와 두 달간 살았고, 2년 뒤 아기를 안고 온 그 여인을 받아주지 못한 채 돌려보내면서 양심의 가책으로 50일간 참회 단식을 한 것과 그 뒤 속리산 상환암에서 수행하면서 수많은 여인들의 유혹과 끓어오르는 색욕에 몸부림치며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가슴 조이는 아픔과 희열로 공개되고 있다.

색욕 억누르지 못한 과오도 고백

그는 자신의 양심을 돌아보아 한 점 부끄럼 없게 된 뒤 귀신들을 꾸짖고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는 경지에 이르면서 속리산 일대에선 ‘도인 스님’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도력은 기적이나 신비가 아니고 ‘양심’이라고 했다. 그는 “종교의 생명은 진실”이라고 했다. ‘양심이 곧 불성’이라는 그는 또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관념일 뿐이며, 행동으로 증명되지 않는 깨달음은 휴지조각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견성’(성품을 봄, 즉 깨달음)했다고 소리를 높이는 이는 적지 않은데도 정작 삶에선 무아와 무심이 내면화됨으로써 당연히 따라야 할 무욕과 무집착과 무소유의 행동으로 증명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오늘날 한국 승가의 풍토에서 그의 주장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탱화도 불사르고 토불도 집어던져 깨버리고

“내 마음(양심)이 부처임”을 확신하고 암자의 신중탱화를 모두 떼어내 불살라버리고, 위선적인 종단 지도층 인사들의 행태를 비난하며 토불을 집어던져 깨뜨려버렸던 삼성은 “업경대(삶이 모두 나타나는 거울)에 비추어 허물이 있다면 염라대왕 뺨을 올려 치겠다”고 자신했다.

분소의(시체를 싼 옷)를 벗기고 금빛 찬란한 옷을 입은 부처님을 모신 것처럼 위선의 탈로 위장한 이들은 언제나 그를 비웃었다. 벼랑 위에 홀로 선 소나무처럼 고독한 삶을 살다간 삼성은 ‘위선’을 향해 온 몸을 벼락으로 던졌다. 이제 육신을 벗어버린 그 벼락같은 삼성의 사자울음을 누가 낚아챌 것인가. 이제 양심이 답할 차례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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