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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칼럼] 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2020.03.16 | 조회 781 | 공감 0

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상생문화연구소 원정근


  • 한시의 고향을 찾아서의 기획 연재의 목표

  • 『시경』에서 부역을 나간 사람이 가족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시가 등장한 뒤로 동아시아 시가에서 향수는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의 하나가 되었다. 어찌 동아시아 시가에서만 그러하겠는가? 

  • 동아시아 철학과 예술의 근본과제도 귀향에 그 궁극적 목표가 있다. 예나 제나, 인간 삶의 모든 활동은 어떻게 하면 진정한 삶의 고향을 찾아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착되게 마련이다. 

  • 어머니의 따뜻한 품안이나 아버지의 넉넉한 그늘과 같은 그 고향을 꿈속에서라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우리는 동아시아 시가에서 고향이란 주제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 선천 세상의 고향 개념을 정립함으로써 후천 세상의 영원한 삶의 고향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런 결과물을 증산도 홈페이지에 한시의 고향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연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1. 왕유王維위천의 농가

 

제목풀이】  

이 시의 제목은 위천전가渭川田家이다. ‘위천전가는 위천의 농가라는 뜻이다. 위천은 감숙성甘肅省 위원현渭源縣에서 발원하여 섬서陝西 일대를 지나 황하黃河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이 시는 시인이 해질 무렵 위천에 있는 고즈넉한 농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심경을 적은 것이다.


석양이 마을을 비추고,

외진 골목으로 소떼 양떼 돌아오누나.

시골 늙은이 목동을 걱정하며,

지팡이 짚고 사립문에 서 있네.

꿩이 우니 보리 이삭패고,

누에 잠자니 뽕잎 드무네.

농부 괭이 메고 돌아오며,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 사근사근.

이대로 한가함과 편안함 부러우니,

슬프게 식미를 읊조리노라.


사양조허락斜陽照墟落,

궁항우양귀窮巷牛羊歸.

야로염목동野老念牧童,

의장후형비倚杖候荊扉.

치구맥묘수雉雊麥苗秀,

잠면상엽희蠶眠桑葉稀.

전부하서지田夫荷鋤至,

상견어의의相見語依依.

즉차선한일卽此羨閑逸,

창연음식미悵然吟式微.

 


시풀이

 왕유王維(701-761)는 시가, 음악, 회화, 서법 등 예술에 탁월한 조예를 지녔다. 당시의 시대구분은 일반적으로 초당初唐(618-712)과 성당盛唐(713-742)과 중당中唐(766-835)과 만당晩唐(836-907)으로 나뉘는데, 왕유는 성당의 저명한 시인이다



왕유의 <장강적설도(長江積雪圖)의 부분


그는 시뿐만 아니라 불교의 독실한 신자이자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지녀 시불詩佛로 불리기도 했다. 자신의 자를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힐維摩詰을 따서 마힐이라고 하였다.


소동파蘇東坡(1036-1101)는 왕유의 시를 평하면서, “시에 그림이 있고, 그림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라는 명언을 남겼다


왕유의 위천농가는 그야말로 시정화의詩情畵意가 물씬 풍겨나는 시다. 농촌의 풍경과 시인의 정감을 절묘하게 융합하여 정경교융情景交融또는 정경원융情境圓融의 경지를 보여준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서 제 모습을 온전하게 발현하고 있는 것을 실답게 제시한다.


해질 무렵 석양이 한적한 시골의 마을을 비춘다. 온종일 온 누리를 환하게 밝히던 저녁 햇살이 제 집을 찾아 서산으로 돌아간다


날이 어둑어둑 저물자, 목동은 서둘러 소떼와 양떼를 데리고 후미진 골목길을 따라 식구들이 따뜻한 저녁밥을 지어놓고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시골 늙은이는 지팡이를 짚고 사립문에 서서 소떼와 양떼를 몰고 돌아오는 목동을 기다린다. 꿩이 우는 때가 되니, 바야흐로 보리이삭이 팬다


누에가 뽕잎을 잔뜩 먹고 막잠에 빠지니, 남아 있는 뽕잎은 거의 없다. 해질녘 농부는 종일토록 논에서 뙤약볕 아래 땀 흘려 일한 뒤에 농기구를 주섬주섬 챙겨 집으로 돌아오다가, 이웃 사람을 만나면 정겹게 담소를 나눈다


헤어질 땐 너무도 아쉬워 머뭇거린다. 하지만 나태주가 행복이란 시에서 말한 것처럼,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시인이 보기에 이런 한가하고 편안한 농촌의 삶이 너무도 부럽다. 하지만 시인은 패풍邶風식미式微를 한스럽게 노래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패풍식미는 부역에 나간 사람이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픈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시다. 패풍식미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둡고 어둡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그대의 일이 아니라면,

어째서 이슬 속에 있으랴?

式微式微, 胡不歸?

微君之故, 胡爲乎中露?

 

어둡고 어둡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그대의 몸이 아니라면,

어째서 진흙 속에 있으랴?

式微式微, 胡不歸?

微君之躬, 胡爲乎泥中?

 

왕유는 자신을 후원해 준 재상 장구령張九齡737년에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모함을 받아 조정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면서 정치적 실의에 빠져 한동안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갈림길에서 방황하였다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간신들이 날뛰는 세상에서 굴욕을 참으며 벼슬살이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벼슬살이를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개인의 독자적 자유를 맘껏 누리며 맘 편하게 살 것인가


농촌의 들녘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남들은 다들 돌아갈 곳이 있지만 자신만 유독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시인은 농촌의 저녁 풍광에서 양가적 감정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해질녘 농촌 풍경에서 부러움을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자리를 잃어버리고 배회하는 자신의 비참한 심정을 뼈저리게 느꼈다.


왕유의 강간설제도(江干雪霽圖)


이 시의 핵심은 돌아감과 돌아옴에 있다. ‘가 바로 그것이다. 예나 제나, 동아시아 철학과 예술의 중심과제는 어떻게 하면 진정한 삶의 고향을 찾아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데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묵적으로 돌아감과 돌아옴을 강조하고 있다. 돌아가는 해, 돌아오는 소떼와 양떼, 집으로 돌아가는 목동과 농부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제철을 맞아 울어대는 꿩의 울음소리에 보리이삭은 자라나고, 누에는 고치가 되어 실을 뽑기 위해 막잠을 잔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가서 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왕유는 매우 조숙한 시인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중양절을 만났을 때 높은 산 위에 올라 지금의 산서성 화산의 동쪽에 있는 고향의 식구들을 그리워하면서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라는 시를 남겼다.

 

홀로 타향에서 나그네 되니,

명절 때마다 친한 이 더욱 그립네.

멀리서도 알겠지, 형제들 높은 곳에 오르면

수유 가지 꽂으며 한 사람이 적어진 걸.

독재이향위이객獨在異鄕爲異客,

매봉가절배사친每逢佳節倍思親.

요지형제등고처遙知兄弟登高處.

편삽수유소일인遍揷茱萸少一人.

 

99일 중양절에는 온 가족이 함께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고 수유를 꽂으며 즐겁게 노는 풍속이 있었다


국화주는 장수를 기원하기 위한 것이고, 수유를 꽂는 것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시인은 타향에서 길손이 되어 홀로 떨어진 고독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객지에서 명절을 보내면, 누구나 고향이 사무치게 그립게 마련이다


이 시는 따로 떨어져 있는 자신과 하나로 모여 있는 가족의 관계를 대비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심정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왕유의 시에는 잡시라는 고향을 주제로 하는 시가 있다.

 

그대 고향에서 왔으니,

응당 고향 일을 알리라.

오던 날 비단 창 앞,

찬 매화 꽃망울을 터뜨렸나요?

군자고향래君自故鄕來,

응지고향사應知故鄕事.

래일기창전來日綺窓前,

한매착화말寒梅着花未?

 

이 시는 잡시3수 가운데 둘째 시다. 객지에 나가면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고향 사람을 만났으니, 그 어찌 즐겁지 않으랴


우연히 만난 고향 사람에게 시인은 생뚱스럽게도 고향집 창문 앞에 있는 봄의 전령사 매화가 휘몰아치는 차디찬 눈보라 속에서 과연 몇 송이나 꽃망울을 터뜨렸냐고 넌지시 물어 본다. 왜 그럴까? 진정한 삶의 고향을 찾아 돌아가기 위해서는 온갖 추위를 참고 견디며 청초하게 피어나는 매화처럼 고결한 지조와 절개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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