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어지는 열매가 되기 위하여

2010.08.10 | 조회 2723


인생의 한 시절 정도는 누구나 그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보게끔 만드는 단어- 죽음과 인생 그리고 ‘나’. 결국 누구도 풀지 못하는 미로같은 어지러운 문제일 수 밖에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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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순간순간 궁금해 하고 있다. 왜 죽어야 하는지를. 아니, 그것보다도 왜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게 더 답답해 ‘차라리 죽으면 살았던 이유를 알 수 있을까’ 하고 자살을 생각해 본 순간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늘 궁금해 하며 살아온 것 같다.


지금도 역시 그렇지만, 기독교 신앙관에 젖어 십수 년을 신앙 생활해 왔음에도 풀리지 않았기에 그 고통이 더 컸던 것 같다. 나 자신도 확신을 못하고 남을 이해시키려고 애를 쓴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었고 위선자라는 자책에 아예 교회를 다니지 않기로 작정한 지 벌써 십수 년째... 어찌 보면 몇십 년을 방황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우연히, 어쩌면 모든 것이 필연이겠지만, 나는 ‘햇살’ 이란 아이디를 가진 선생님을 알게 되어 증산도에 관한 여러 책자들을 접하며 조금씩 진리(우주의 이치, 자연의 이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춘생추살’ 과 생장염장의 순환법칙- 인간이란 태어나면 성숙해야 하고 또 다시 순환하는 자연스런 계절의 반복됨으로 영혼육(靈魂肉)이 분리되고 합치되는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 한다는 것- 을 어렴풋이나마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인생은 죽을 수 밖에 없고(육체적인 죽음), 이치를 아는 현자들은 죽음을 두려운 사건보다는 옷을 바꿔 입거나, 벗어 버리는 한 과정으로 여겼음이리라.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전혀 모르는 곳으로의 이동이니... 또한 심판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죽음 자체보다 더 겁나고 무서운 일일 것이다. 평생 자신이 한 행위가 낱낱이 밝혀지고 그 죄과에 따라 벌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징그러운 끔찍한 일인데 어찌 죽음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질 수가 있으랴. 그러나 한편으론 그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가엾기도 하고 불쌍하게 느껴질 뿐이다. 우리네 인생이 대부분 그런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춘생추살’ 섬뜩한 느낌이 들어 한기마저 느껴지는데...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한문을 적어주며 뜻을 물어보니 모르는 사람이 없다. ‘봄에 살리고, 가을에 거둔다’는 의미의 ‘가을죽음’에 대하여 모두들 알고는 있는데, 이런 아주 단순한 진리가 우리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법칙이라는 것을 말하면 동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듣기에도 섬뜩한 ‘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누구든 한 번쯤은 움찔하고 소름이 돋을 텐데... 그것이 정작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고 특히나 우주의 계절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100년도 다 못 채우는 인간들에게 우주의 1년이란 개념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은 나는 아직 입문식도 치르지 못한, ‘도(道)’의 언저리에서 그저 궁금해하는 사람일 따름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받은 충격은 글쎄, 표현이 어렵다. ‘도’를 알든 모르든, 어느 종교를 신앙하든, 어느 곳에서 태어나 살든, 누구든 어마어마한 격변을 겪게 되고 끔찍한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라면, 농부처럼 철을 알고 준비해야만 비로소 지혜롭게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지껏 지나온 삶이란 전혀 준비없는 삶이었으니, 이 진리는 나에게 있어 ‘죽음 직전 내려준 동아줄’ 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해마다 1년 사계절을 보내면서 ‘그저 그러려니’ , ‘내년이 또 오니까…’ 하며 무의미하게 보내온 삶이 너무 아쉽다. 반품할 수도 없는 수없이 흘러간 사계절... 이제라도 사계절의 법칙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복스러운 일인지 정녕 감사할 뿐이다.


‘가을엔 겨울옷을 준비하고 겨울엔 봄옷을 준비한다’는 간단명료한 이치를 ‘춘생추살’ 이란 넉자에서 알게 되었고 인생의 ‘춘생추살’ 이라는 너무도 끔찍하고 분명한 현실, 곧 닥칠 사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후천세계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신 상제님 공사의 대행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제 우주의 가을은 나에게 닥친 일이다.


지축이 바로서고 천지가 요동을 하는 날,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피를 토하고 죽어 간다면, 내 가족 내 친구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하는 그 때가 온다면? 정녕 두렵다. 그때 나는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나 그것은 바보스런 생각임을 바로 깨달았다. 그때가 아니라 지금 준비하고, 진정 걱정스런 측은지심으로 그들에게 우주의 이법, ‘춘생추살’ 의 자연법칙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한 순간이라도 먼저 이 법칙을 들어 알게 된 내가 그들에게 알려 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내가 먼저 바로 서야 남을 구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현재의 세상은, 이 순수한 자연법칙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모두들 너무 가벼이 여기고 있다는 것이 정녕 마음 아프다. 공기가 언제나 우리 주변을 감싸니 절대 없어질 리 없고, 내가 지금 젊으니 죽음이란 나에게 절대 임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공기의 귀중함, 젊음의 소중함, 평범 속의 지극한 법칙을 믿는 이가 너무 귀하다.


그래서 씨종자를 추린다 하셨는가 보다.


‘추수의 계절’은 ‘죽음의 계절’. 씨 뿌린 자의 소유로 돌아가 다음 새 세상의 일꾼 씨종자로 남겨질 수 있다면 이보다 복된 인생, 복된 삶이 또 있을까? 그러나 나만 복되면 무엇하리! 내 주변 내 조상 내 친구들이 함께 동석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으리. 씨종자가 되기 위해 수많은 윤회를 겪으며 현재 이 시간에 태어나 살 수 있음도 큰 복이니 윤회의 마감선을 긋고 후천 세상을 기대해본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아도 전개될 세상은 무한히 길다. 앞으로 올 세상이 얼마나 좋았으면, 밧모아 섬에 귀양가서 하느님(상제님)을 뵙고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이 “주(主, 상제님)여 속히 오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을까 싶다.


추수철에 낱알들은 언제 거두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영글어 고개가 숙여지면 스스로 아주 조금씩은 알겠지만, 정확한 때는 씨 뿌린 농부와 “오늘이다” 하고 지시를 받는 일꾼들만이 안다. 씨 뿌린 농부가 우리 일꾼에게 지시하신다. “얼마 안남았으니 준비하라” 라고.


일꾼들은 온전히 곡식을 거두도록 만반의 준비를 할 일이다. 일꾼이나, 거두어지는 곡식은 복있는 자들이다. 할 일을 다 한 책임완수자들이므로... 그리고 다음을 기약 받을 수 있으므로 그 복이 얼마나 큰 지는 상상할 수 있다.


‘춘생추살’. 섬뜩한 이 넉자는 생과 사의 기로를 아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커다란 축복이고, ‘앎’ 자체가 개벽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나는 이제 막 상제님 진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진리의 언저리에서 맴돌며 아직도 완전히 자신을 담그지 못한 인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엄청난 진리를 알 수 있도록 오랫동안 도움을 주신 ‘햇살’ 선생님과 최영철 광명도장 포교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천지의 도 춘생추살’ 을 접하고 읽게 된 감상을 짧게나마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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