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태을주를 읽어야 하는가?

2009.10.23 | 조회 4130

지금 우리 일꾼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영적 깨달음과 성과 웅을 겸비한 도심을 갖추는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우리를 강하게 하고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그것을 체험하고 이루게 하는 것이 바로 태을주 공부다.

온 우주를 주재하시는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천지공사로써 지구촌 인류의 모든 고통과 원한이 끌러지게 하셨다. 또한 앞으로 오는 3년 개벽 상황 속에서 선천 5만년 동안 쌓여온 인류의 숱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끌러내어 후천 5만년 지상 선경낙원을 건설하도록 하셨다. 그 모든 것을 이루는 열쇠가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태을주 공부에 있다.

때문에 우리는 태을주란 어떤 주문인가, 왜 태을주를 읽어야 하는가, 왜 개벽기에는 지구촌 인간이나 천상의 신명이나 태을주를 읽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가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조화 주문 태을주
먼저, 태을주란 어떤 주문인가? 태을주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여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태을주는 총 스물석 자로 이루어진 주문이다. 하늘땅에서 살다 간 모든 인간과 신명들, 진리를 찾아 나선 모든 구도자들이 이루지 못했던 궁극의 진리 공부, 영험한 우주적인 도의 체험,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법방이 바로 태을주 공부다.

태을주는 이전의 어떤 주문보다도 그 뜻과 영적 차원과 도권과 신권과 조화의 수준이 높다. 그래서 ‘태을주는 조화 주문이다, 조화성신을 받아 내리는 주문이다.’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다.


태을주의 구성
태을주는 끝에 있는 ‘사파하, 저의 모든 서원과 열망이 꼭 이루어지리다.’ 하는 매듭 구절을 제외하면 스무 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는 조화의 세계,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도의 세계, 무극을 상징하는 10수로서 열 글자로 되어 있다. 또한 맨 앞의 태을주의 본신, 진리 근본의 법신이라 할 수 있는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역시 10수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태을주는 전후반 각각 열 글자의 도언이 음양 짝으로 전체 20수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20은 우주의 본성, 텅 빈 허(虛)의 도, 그 정신을 상징한다.

태을주의 전반부에 있는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은 태을주의 머리심장부이다. 이 열 자의 도언 속에 태을주의 본래 조화정신 전체를 드러내 주는 핵심이 들어 있다. 또한 후반부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는 태을주의 팔다리로서 태을주의 법신, 진리의 거룩한 몸을 담고 있는 기반이다.

전후반 각각 열 자의 성언은 음박 리듬으로 짝을 이뤄,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이 4 6,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가 6 4, 전체 스무 자가 4 6, 6 4의 리듬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소원 성취를 염원하는 ‘사파하’를 덧붙이면 총 스물 석 자의 성언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훔’과 ‘치’
상제님은 ‘‘훔치’는 천지 부모 찾는 소리다, 천지 어머니의 젖줄이다, 앞으로 개벽할 때는 이 네 젖꼭지를 잘 빨아야 산다.’고 하셨다. 가을개벽 할 때 어찌 어머니의 젖줄을 놓치고 살 수 있겠느냐는 말씀이다.

‘훔치’에는 입 구(口) 변이 다 들어간다. ‘훔’은 입 구 자에 소 우(牛) 자를 썼고, ‘치’는 입 구에 많을 다(多) 자를 썼다.

‘훔’은 이 우주의 원 생명의 소리, 신의 생명의 소리, 도의 혼을 말한다. 또한 ‘훔’은 입을 벌리고는 낼 수 없는 소리다. 이 천지 안의 모든 생명의 소리를 머금은, 그 모든 창조의 소리를 낳는 근원 소리다. 그래서 ‘훔~’할 때에 내 혼과 마음이 훨씬 더 거룩하게 각성이 된다. 이 우주가 처음 열린 태시의 조화 생명의 근원, 그 생명의 혼속으로 들어가 하나 되는 도심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훔’ 소리와 더불어 내가 진리의 마음과 하나 되고, 도심(道心) 자체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교 사전에서 정의하기를 ‘훔은 불신(佛身)이다.’라고 했다. 이 우주 만유가 태어난 생명의 조화 세계, 그것이 ‘훔’이다. 더 이상이 없다. 팔만대장경의 모든 가르침이 ‘훔’에서 나왔고 그 결론이 ‘훔’으로 귀결된다. 부처의 모든 장광설은 곧 ‘훔’의 도심, 인간 마음의 본체, 법신(法身) 자리, 그 생명을 체득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삼신의 본체 마음, 생명, 신성이 바로 ‘훔’이다. 인간이 성숙되어 우주와 하나 되었을 때, 그 우주 생명의 핵 속에 바로 ‘훔’이 들어있다 이 말이다.

그러면 ‘치’는 무엇인가? ‘치’는 입을 크게 벌린다, 우주 조화의 본체와 하나 된다는 뜻이다. 크게 정해서 영원히 변치 않는, 대정불변심(大定不變心)이다.

‘훔’에서는 거룩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마음, 그 생명의 노래가 들려온다. 그리고 ‘치’에서는 결단, 강력한 우주적 의지, 구도자로서 성숙한 결의가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천지 만물이 태어난 생명의 근원을 부르는 소리가 바로 ‘훔치’다.


‘태을천 상원군’
그 다음, ‘태을천 상원군’을 보자. 태을주를 읽기에 앞서, 왜 우리는 태을천을 바르게 인식하고 크게 깨쳐야 하는가, 왜 인류는 태을주를 꼭 읽어야 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여기에는 가을 우주가 태어나는 개벽 문제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태을주의 조화의 성체, 거룩한 몸인 ‘태을천 상원군’에 대하여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태을천 상원군’은 태을주의 몸체요, 진리의 주제다. 또한 이 우주의 도의 뿌리, 근원, 만유 생명의 궁극적 발원처가 바로 태을천이다.

‘태을천 상원군’, 이 구절에서 우리는 이 세상 깨달음의 근원과 끝자리에 해당하는 ‘태을’을 마주하게 된다.

‘태을’이란 과연 무엇일까? ‘태을천’이란 어떤 하늘일까? 또한 ‘태을천 상원군님’은 어떤 분일까? 이 우주의 실제 하나님이신 상제님과는 어떤 관계에 계신 걸까? 참하나님이신 상제님의 도만 잘 받들어 깨쳐 상제님의 도로 구원받으면 될 텐데, 왜 인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꼭 태을주를 읽어야만 할까? 왜 태을천 상원군님을 우리들 생명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하느냐 이 말이다.

『도전』 7편 75장을 보라. 상제님께서 태을천 상원군님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있다.
오는 잠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태을천(太乙天) 상원군(上元君)은 하늘 으뜸가는 임금이니
오만년 동안 동리동리 각 학교에서 외우리라.(道典 7:75:1 2)


상제님의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개벽기에 씨종자 추려 살아남은 만백성을 데리고 후천 조화선경을 열어 나갈 때, 모든 인간의 하루의 삶이란 태을주와 더불어 시작하고 태을주로 마감한다. 나아가 태을주로 인생을 첫출발하고 태을주로 마무리 한다는 말씀이다.


‘태을’과 ‘태을천’
선천 우주의 역사가 태을주의 도로써 끝나고, 새 우주 역사를 열고 들어가는 것도 태을주를 통해 성취된다. 인간의 구원이 공자, 석가, 예수의 가르침으로 마무리 되는 게 아니다. 그들을 내려 보내신 우주의 조화옹 하나님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선천 상극의 역사를 정리하시고, 상생의 질서로 열리는 가을 천지 속에서 인간이 온전히 구원될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런데 그 참하나님이 태을주의 조화로써 모든 것을 이룬다고 하셨다. 왜일까?

이러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하여 정확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첫째, ‘태을’이란 무엇인지, 둘째, ‘태을천’은 어떤 하늘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태을(太乙)’이란 문자적으로 클 태 자에 새 을 자를 쓴다. 만일 우주 변화 원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아, 태을이란 양(陽)이 아닌 음(陰) 자리구나!’하고 깨달을 것이다.

그러면 을(乙)이란 무엇인가?

하늘의 음양과 하늘을 움직이는 다섯 가지 기운, 즉 하늘의 생명을 음양오행으로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라고 한다. 동방 갑을(甲乙)은 3 8목(木)으로 봄의 기운이요, 남방 병정(丙丁)은 2 7화(火)로서 여름의 기운이다. 그리고 여름에서 가을로 갈 때의 중앙 무기(戊己) 5 10토(土), 그 다음 서방 경신(庚辛)은 4 9금(金)으로서 가을의 기운이다. 끝으로 북방 임계(壬癸)는 겨울로서 1 6수(水)다.

‘태을’의 을(乙)이란 봄의 기운인 동방 갑을(甲乙)의 을(乙)이다. 그 둘이 같은 글자다. 따라서 ‘태을은 만물을 낳아 주는 봄철 생명 탄생의 조화 기운, 그 창조의 음 기운이요, 하늘과 땅과 인간이 태어난 우주 조화 생명의 큰 음 자리를 상징한다.

이 ‘태을’에 대해 태사부님은, “태을주는 생명의 주문이다.”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정의해 주셨다.

“상원군님이 계신 세계를 궁(宮) 자를 붙여서 ‘태을궁(太乙宮)’이라 한다. 여기는 만유의 자궁과 같은 곳이다. 어머니가 포태하는 곳을 자궁이라고 하지 않는가? 자궁은 자식을 낳는 궁, 사람 낳는 집이다. 태을궁은 바로 그러한 자궁(子宮)도 되고, 스스로 자(自) 자를 써서 자궁(自宮)도 된다. 자궁(自宮), 곧 ‘만유는 태을궁으로부터’라는 뜻도 된다 이 말이다.”

정리를 하면, 인간이 태시(太始)에 몸을 받아 나올 때, 그 인간을 낳아 준 하늘과 땅이 태어난 생명의 집, 그것이 바로 태을궁의 궁이다. 이 천지와 인간 만물의 생명이 바로 태을천의 생명의 자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럼 이 태을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지난날 유불선 기독교 이전의 문화 시대, 그것을 뿌리 문화 시대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신교 문화시대라고 한다. 그 신교 문화 시대에는 온 인류가 삼신(三神)을 섬겼다.

이 우주는 누가 낳았는가, 우주는 누가 만들었는가,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신교 문화에서는 삼신을 얘기한다.

『도전』 1편 1장 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삼신이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천지만물을 낳은 분은 삼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누구도 이러한 의문을 가질 것이다. “삼신? 세 분 신이요? 아니,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세 분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건가요? 그거 이상하잖아요.” 이렇게 오해를 한다. 단순히 문자에 매어 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앞의 2절을 보라. 3절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풀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신은 곧 일신이니 우주의 조화성신이니라.’ 좀 더 자세하게 정의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삼신은 일신이다. 한 분의 신이 온 우주를 꽉 채우고 있다. 그런데 그 신은 조화성신이다. 얼굴이 없는 성신이다. 이 신이 바로 하늘땅과 인간, 만물을 낳아 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신이다. 그래서 으뜸이요, 바탕이라는 원 자를 써서 원신(元神)이라고 한다.

상제님은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즉 삼신 자체가 되어 인간과 신들의 세계와 자연계를 실제로 다스리시는 통치자 하나님이다. 형상을 갖고 계신, 사람 모습을 하고 계신 인격신으로서 실질적인 이 우주의 주재자요, 조화주 하느님이다.

만물을 낳은 이 우주, 삼신! 그 속에서 태어난 하늘과 땅과 인간, 그리고 그 속에 열려 있는 자연신과 인격신, 이 신의 세계까지 실제로 다스려 우주의 이상을 완성하시는 분이 바로 천상 호천금궐에서 이 우주를 통치하고 계시는 상제님이다.

바로 여기에서 상제님과 태을천의 문제가 나온다. 이 ‘태을’과 ‘태을천’의 조화에 대해 신교 문화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이 우주의 조화옹이 세 가지 창조의 덕성으로써 이 우주를 다스린다. 즉 조화(造化), 만물을 낳고, 교화(敎化), 진리를 가르쳐 주고, 치화(治化), 생명의 질서를 바로 잡아 성숙하게 해 준다. 이 세 가지의 신성으로써 만물을 낳아 기르기 때문에 삼신(三神)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주를 낳아 준 삼신의 신성이 하늘과 땅과 인간 속에 그대로 깃들어 있다. 그 삼신의 조화의 신성, 조화의 생명이 하늘에도 그대로 깃들어 있어서 천일(天一)이라고 한다. 그 때의 일(一)이란 우주를 낳아준 한 분의 신을 말한다. 또한 땅에도 그대로 깃들어 있기 때문에 지일(地一)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지의 열매, 천지의 꿈인 인간 속에도 이 우주 삼신의 신성, 조화 생명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

그런데 인간은 온 우주의 거룩한 생명을 다 받아 나와서 우주의 뜻을 실현하는 진리의 중심적 존재다. 즉 천지의 모든 뜻을 이루는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인간이 천지의 원대한 꿈을 이루는 주체이기 때문에, 하늘땅보다 더 큰 자리라는 진리의 소식을 담아서 태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생명 자리, 그 신성이 바로 태일이다.

태일이 모든 것을 이루는 하늘 생명의 중심 자리, 그곳이 바로 태을(太乙)이다. 우주 생명의 근원, 하늘의 자궁이 태을인 것이다.


태을천 상원군님은 어떤 분인가
그러면 우리는 왜 태을천의 주신(主神)인 상원군님을 잘 모셔야 하는가?

선천 도교에서는 원군(元君)하면 여자 신선을 말해 왔다. 그런데 『도전』 4편 65장을 보면, 후천 새 우주 새 생명의 영원불괴지신(永遠不壞之身)을 갖게 해 주는 선매숭자 도수의 주인공 호연이가 상제님과 함께 있을 때 하늘에서 백설같이 흰 분이 내려오시더니 “도용아~” 하고 부르신다. 그러면서 상제님께 뭐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상제님이, “아직 이르지를 못했습니다.”하신다.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이신 상제님이 경어를 써 주셨다. 왜? 그분은 원 우주의 도의 뿌리 자리에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도전』 10편 8장을 보면 상제님과 태모님이 언약을 하시는 모습이 생생하게 나온다.
오군서약중십산(吾君誓約重十山)하니 답진고고태을단(踏盡高高太乙壇)이라
나와 그대가 맹세한 언약 온 세상 산보다 무겁고
높고 높은 태을궁으로 인도하여 천하창생을 건지느니라. (道典 10:8:4)


여기에서 ‘답진고고’란 밟아서 다한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새 역사를 열고 그 역사의 목적지에 마침내 도달하는, 우주의 정상의 도를 받아 그 도의 이상을 건설하는, 그것이 바로 ‘답진고고’다. 그리고 ‘답진고고태을단’이란 천하창생을 저 높고 높은 태을궁으로 인도한다는 말씀이다. 상제님의 도를 받은 우리 일꾼들은 이 ‘답진고고태을단’의 의미를 좀 더 마음 깊이 느껴서 그 근본 뜻을 강력하게 깨우쳐야 한다.

우리가 태을주를 잘 읽어 성신을 받아 내려 상제님의 모든 말씀에 대한 근본적인 깨달음을 체득하는 것, 신도를 받아 내려 진리를 체험하는 일꾼이 되는 것, 상제님의 개벽 사업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마침내 이루는 것, 성숙한 일꾼으로 거듭나는 것, 그 모든 것이 태을천의 조화성신을 받아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태을천의 조화성신을 받아서 태어나고, 이 조화성신을 받아 진정한 인간으로 완성된다.

결론적으로, 삼신이 천지와 인간 만물을 낳는다. 그 삼신의 조화성신을 열어 주는, 좀 어려운 말로 우주의 원신(元神)을 주재하여 삼신의 성신을 열어 주신 태고시대 원시의 천존이 바로 상원군(上元君)님이다. 그 상원군님이 대우주 만물을 낳아 길러서 성숙하게 하는 성신의 주재자로서 태을천을 다스리시는 것이다.


태을주는 어떤 주문인가
그럼 지금부터 태을주의 무궁한 조화 세계로 들어가 보자. 그 전에 우리는 태을주의 신비스런 영적 힘과 그 정신에 대해 몇 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태을주의 조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기적, 정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신권, 그 영험한 성신 감응에 대해 제대로 깨져야 한다. 그래야만 태을주를 읽을수록 날로 깊이 있게 더 강력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태을주는 과연 어떤 주문일까?

상제님은 천지공사로써 태을주의 조화권을 인간 역사에 직접 선포하셨다. 따라서 상제님이 선언하신 그 말씀으로 ‘태을주는 구체적으로 어떤 주문이다.’하고 정리해 보는 것, 이것은 앞으로 대개벽기에 인간을 건져내는 구원론의 총결론으로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 태을주는 후천 밥숟가락이다
자, 첫째 태을주는 뭐라고 하셨나?
『도전』 7편 73장을 보면, 상제님이 태을주를 써 놓으시고 “이 형상이 무엇 같으냐?” 하시니까 김갑칠 성도가 “밥숟가락 같습니다.” 하고 아뢴다. 그러자 상제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 다함께 7편 73장 3절을 따라해 보자.

태을주는 후천 밥숟가락이니라.”
“태을주는 후천 밥숟가락이니라.”

이 말씀을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태을주를 언제 어디서나 제대로 읽을 줄 아는, 태을주의 생명을 그대로 받아먹을 수 있는 올바른 도꾼이 된다.

그럼 이 말씀의 깊은 뜻은 무엇일까?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공기를 마시고 물을 먹고, 땅에서 나오는 오곡으로 밥을 지어 에너지로 섭취한다.
여기서 상제님은 ‘태을주가 모든 인간과 신명에게조차도 내적 외적인 생명의 양식이다. 너희들이 이 주문의 도기, 이 주문의 천지조화 생명을 받아먹어야만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성숙한 진리의 인간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바로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몸을 살아 있게 하기 위해 먹고 마시는 영양소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인간의 내면, 인간 생명의 본성인 영혼은 이 대우주의 영성을 간직하고 있다. 인간의 몸속에는 이 우주를 낳아준 삼신의 신성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때문에 모든 인간은 항상 자신의 내면에 살아 있는 신성을 채우고자 하는 영적, 진리적 갈급증을 느낀다. 그것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천지조화의 주문, 태을주다. 태을주의 성령을 받아야만 비로소 인간으로서 내적 결핍증, 진리적 갈급증을 면할 수 있다.

세속의 어떤 분야에서 성공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 높은 권좌에 앉아 봤다, 세상을 다 다녀 봤다, 가정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다, 이렇게 나름대로 자신 있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지라도, 온 우주의 생명의 젖줄인 태을주 없이는 누구도 자신의 내면에 살아 있는 신성을 채울 수는 없다. 결코 살아 있는 영혼으로 깨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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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을주는 천지 어머니의 젖줄이다
“태을주는 후천 밥숟가락이다.” 이 말씀과 “태을주는 녹표다.”라고 하신 말씀을 보라.

태을주는 숟가락이다, 후천 밥숟가락이다. 사실 이 말씀 속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제로 남긴다. 일꾼들 각자가 주문을 읽으면서 말씀의 본뜻을 깊이 깨쳐보고,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해 보라는 의미에서 여지로 남겨 둔다.

자, 이어서 7절을 보자. “태을주는 천지 어머니 젖줄이다.” 이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자.
태을주는 천지 어머니 젖줄이니” <복창>
천지 젖줄을 놓지 말아라.” <복창>

태을주의 앞부분 ‘훔치훔치’에 모두 입 구 자가 있다. 여기에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 네 젖꼭지를 잘 빨아야 산다. 송아지가 어미젖을 빨듯이, 한마음으로 천지 어머니의 생명의 젖을 정성껏 빨아먹어야 천지에서 낳아 준 인간으로서 모든 일들을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다.’하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는 천지 어머니 젖줄이라는 이 말씀 속에서 상제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고자 하시는 뜻, 즉 구원의 도에 대해 좀 더 강렬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 태을주는 선령 해원 주문이다
태을주에 관한 말씀은 『도전』 2편 140장 9절에도 나와 있다. 특히, 이 2편 140장은 태을주에 대한 정의가 정말로 멋지고 간결하게 잘 되어 있다. 따라서 ‘태을주 하면 2편 140장!’ 이렇게 머릿속에서 쫙쫙 나와야 된다.

그 다음 2편 119장을 보면, 7절에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태을주는 선령 해원 주문이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 성구 말씀도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다함께 큰 소리로 읽어 보자.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복창>
“태을주는 선령 해원 주문이니라.” <복창>

태을주를 읽으면 어떻게 나의 조상 선령이 해원을 하게 되는가? 왜 우리가 태을주를 읽으면 선령들이 천상에서 또는 우리 주변에서 춤을 추는가?

‘앞으로 대개벽이 온다. 인종 씨를 추리는 가을개벽이 온다. 새 우주가 열리는 후천 세상으로 들어간다. 이때는 태을주를 읽어야 산다.’고 하는 가을개벽 소식을, 그런대로 깨어 있는 신명들은 소문이라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가을 추살의 천지이법으로 모든 인간의 명줄을 끊는다. 그건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인간의 어떤 지혜로도, 과학의 어떤 방법론으로도, 지구촌 모든 인간의 이성을 다 합해서 궁구한다 할지라도 인간으로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이것이 선천 종교에서 말한 최후의 심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최후의 심판이 단순히 신의 심판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에 의해, 자연 섭리로서 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가을개벽의 이치를 알기 때문에 우리가 태을주를 읽으면 선령신들이 춤을 추는 것이다. 자손이 태을주 읽는 것을 통해 “아, 이제 한시름 놨구나. 소원성취를 했구나!”하고 기뻐한다. 사실 이것은 상제님 신앙이 좀 더 깊어질 때, 진실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보려고 몸부림치며 태을주를 읽을 때, 이 말씀에 대해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미국 달라스 도장을 연 웨인 신도가 아침 수행을 하는데, 한참 주문을 읽다 보니까 돌아가신 아버지가 바로 뒤에서 함께 주문을 읽고 계시더란다.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앞으로 개벽이 있다. 큰 우주적 변혁이 있으니까 높은 데 가서 살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해서 “개벽을 알고 있었던 나의 아버지가 상제님의 도를 만나게 해 주셨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우리가 청수올리고 태을주를 잘 받들어 읽으면 자손줄을 내서 길러 주신 선령의 노고에 보답을 하는 것이다. 또한 선령의 맺힌 한을 풀고, 선령이 이루고자 했던 모든 뜻을 성취한다. 그래서 상제님은 “태을주는 선령 해원 주문이다.” 하신 것이다. 내 선령의 간절한 꿈, 가을 개벽기에 자손 줄을 건져내어 잘되게 하려는 깊은 염원이 태을주를 통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다.

●● 태을주는 수기 저장 주문이다
자, 다시 2편 140장으로 가보자. 태을주에 대한 숱한 말씀들이 있는데, 5절에서 태을주에 대해 정의를 해 주고 계신다. “태을주는 만병을 물리치는 구축병마(驅逐病魔)의 조화주니라.” 태을주는 세상에 있는 모든 병을 몰아내는 조화주문이라는 말씀이다.

이어서 8절을 보면, “태을주는 수기(水氣) 저장 주문이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의 구체적인 뜻은 무엇일까? 태을주를 읽으면 내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또 생활 속에서 어떤 체험을 하게 될까?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여기서는 먼저 수기의 뜻을 알아야 된다. 수기는 물 수(水) 자, 기운 기(氣) 자, 수기(水氣)다. ‘기’라는 한자말은 다양한 뜻을 포함하고 있다. 현대 말로 에너지, 힘, 생명이라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지혜도 ‘기’에서 나온다.

만물은 물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떠나 불변의 법칙이요, 자연의 제1 법칙이다. 우주는 물에서 태어났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물에서 태어났다. 그것을 또 다른 표현으로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 대우주는 삼신의 손길로 태어났다. 『도전』 1편 1장 2절의 ‘삼신은 곧 일신이니 우주의 조화성신이니라.’는 말씀대로 삼신은 본래 한 분의 신이다. 그 신의 생명수가 바로 물이다. 그것을 상수로 한 일(一)자로 나타낸다. 그 조화의 생명수로 태어났기 때문에 천일, 지일, 태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천지의 열매요, 하늘땅의 모든 꿈을 이루는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천지보다도 더 크고 소중한 사명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클 태 자를 붙여 태일이라고 한다. 그 태일의 생명과 삶의 모든 것을 완성시켜 주는 우주의 뿌리 자리가 바로 태을이다. 다시 말해서, 태일은 인간 생명의 중심을 말하는 것이요, 태을은 그 인간 생명이 내려오는 근원인 우주의 조화 세계를 신도(神道)로써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태일인 우리 인간이 태을주를 읽으면 천지의 조화 생명을 받아 내리게 된다. 온 우주가 생겨난 생명의 근원, 우주의 조화 생명수, 태극수 기운이 내 몸에 축적되는 것이다. 그래서 태을주가 천지의 생명수를 저장하는 수기 저장 주문인 것이다.

남자나 여자나 인간의 모든 크고 작은 생리 변화, 정신의 순수성 등이 신장의 정수(精髓)에서 온다. 내 몸의 건강, 심리적 영적인 활력, 자신감, 진리에 대한 확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 그 모든 것이 내 몸의 수기(水氣), 정(精)에서 온다. 사람이 노쇠함에 따라 피부가 쪼그라지고 몸에 윤기가 없어지는 것은 전부 신장 수기가 마르기 때문이다.

태을주를 읽으면 내 몸에 천지의 수기가 자꾸 축적된다. 그래서 “태을주를 읽었더니 입안에 자꾸 침이 솟구쳐 나와요.” 이런 얘기를 한다. 태을주가 수기를 저장하는 주문이기 때문에 다른 주문보다 그러한 체험을 특히 더 하게 되는 것이다.

●● 우주 본체의 도심을 득하는 열쇠
그런데 ‘태을주는 수기 저장 주문이다.’라는 이 말씀 속에는 일반적인 의학적 상식을 넘어서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즉 이 우주를 낳은 조화성신의 물, 우주 창조의 생명수, 일태극수(一太極水)를 받아 내려 나의 정신이 일태극수 자체가 되어 우주 정신으로 태어나는, 즉 도의 근본을 깨쳐 진리의 화신이 되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주문을 읽으면 몸에 수기가 저장된다.’고 하는, 단순히 현상적인 안목만으로 이 성구를 보면 안 된다는 말이다.

상제님 태모님의 천지사업을 인사로 이루는, 이 우주의 정신을 인간 역사 속에 마침내 실현하는 진리의 주인, 진주(眞主)가 바로 태극이다. 때문에 임금 제 자를 붙여 태극제(太極帝)라고 한다.

그러니까 ‘태을주는 수기 저장 주문’이라는 이 말씀 속에는, ‘태을주를 읽을 때 나의 몸, 나의 정신이 태극이 된다, 우주 본체가 된다, 태극제의 정신을 갖는다.’ 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깨쳐야 한다. 이 말씀의 참뜻을 못 보면 『도전』을 천 번 만 번 읽었어도 헛읽은 것이다.

우리가 태을주를 꾸준히 읽으면 물리적으로 기운이 자꾸 축적된다. 그리하여 어느 경계를 가면 내가 태극의 정신 자체가 되어 태극제의 기운, 도기, 그 심법을 그대로 체험하는 깨달음의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이것이 인존 문화를 여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결론적으로, ‘상제님의 도맥을 제대로 계승하여 후천 5만년 천지 대역자로 역사하는 천하사 일꾼의 심법, 우주 본체의 도심을 득하는 열쇠가 바로 태을주다.’ 하는 깊은 뜻이 이 말씀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 태을주는 우주 율려다
그 다음 10절을 보자.
태을주는 우주 율려(律呂)니라.’ 이 말씀을 다함께 읽어 보자.
‘태을주는 우주 율려(律呂)니라.’

이어서 ‘태을주는 천지 기도문이니라.’
태을주는 천지 기도문이니라.’

왜 상제님은 여기서 다른 주문과는 색깔이 다른 정의를 내려 주고 계실까? 왜 태을주가 우주 율려라고 하신 것일까?

서두에서 ‘‘훔치훔치’는 천지 부모의 젖을 빠는 것과 같다.’고 했다. ‘훔치훔치’라는 이 네 글자 속에는 ‘모사재천(謀事在天)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우주의 도의 기본 틀을 구성하는 네 가지 도체(道體), 천지일월 건곤감리의 도맥을 완성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즉 ‘아버지 하나님만 믿어서 되는 게 아니고 아버지와 함께 오신, 아버지가 내세우신 어머니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 그리하여 천지 부모의 도심을 완전히 받아 내릴 때 상제님 진리의 기본 맥을 잡게 된다.

또한 천지 부모의 이상과 진리의 목적을 현실의 삶 속에서 완성하는 진리의 참주인, 성사재인의 두 분 스승의 생애와 도심을 완전히 체득할 때 비로소 상제님 진리의 전체 틀과 도심주(道心柱)의 전수 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인류의 모든 꿈과 이상을 성취하는 신천지의 참 일꾼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그러한 꿈을 이루는 상제님 진리의 생명 맥, 총결론이 바로 “태을주는 우주 율려니라. 태을주는 천지 기도문이니라.”라는 말씀이다. 또한 이 말씀을 달리 나타내신 것이 6절에 있는 “태을주는 여의주니라.”는 말씀이다.


태을주는 여의주, 여의주는 태을주
『도전』 2편 140장을 보면 태을주에 대한 말씀이, 실제 개벽 상황을 전해 주는 7편 75장에서 볼 수 있듯이 우주의 무슨 표어처럼, 온 우주의 성신의 외침처럼 아주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다함께 큰소리로 힘차게 읽어 보자.

<성구 봉독>
1 오는 잠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2 태을천(太乙天) 상원군(上元君)은 하늘 으뜸가는 임금이니
오만년 동안 동리동리 각 학교에서 외우리라.
3 태을주에는 율려(律呂) 도수가 붙어 있느니라.
4 태을주 공부는 신선(神仙) 공부니라.
5 만사무기 태을주(萬事無忌 太乙呪)

만병통치 태을주(萬病通治 太乙呪)
소원성취 태을주(所願成就 太乙呪)
포덕천하 태을주(布德天下 太乙呪)
광제창생 태을주(廣濟蒼生 太乙呪)
만사여의 태을주(萬事如意 太乙呪)
무궁무궁 태을주(無窮無窮 太乙呪)

6 태을주는 여의주(如意珠), 여의주는 태을주니라.(道典 7:75:1~6)


5, 6절을 보면, 태을주가 어떤 주문이라는 것이 정말로 충격적이고 엄청난 말씀으로, 하늘보다도 큰 은혜를 받는 말씀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성구에서 6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7편 75장의 구성 의도를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6절을 따로 분리시켜 놨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유가 뭘까? 이 6절에서 모든 문제를 정리하기 때문이다. 즉 『도전』에 나오는 태을주에 대한 모든 말씀을 마지막으로 총정리하신 도언이 바로 “태을주는 여의주, 여의주는 태을주니라.”는 이 말씀이다.

여의주는 무엇인가? ‘여의(如意)’는 ‘뜻대로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여의주(如意珠)’란 나의 뜻, 나의 생각, 나의 의도, 내가 품고 있는 꿈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해 주는 구슬이다.

그러니까 ‘태을주는 여의주, 여의주는 태을주니라.’하신 이 말씀은, ‘너희가 하늘을 받들어 뜻을 이루어나가는데, 그 뜻이 소원대로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지혜를 열어 주고 생명을 내려 주는 조화 주문이 바로 태을주다. 너희들이 이것을 깊이 깨닫고 체험할 때 나의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하는 상제님의 간절한 뜻이 들어 있다.


태을주를 읽으면
이 성구 말씀에서 상제님은 ‘태을주는 여의주(如意珠), 여의주는 태을주니라.’ 이렇게 반복하시면서 태을주의 신성과 조화권에 대해 강조하고 계신다.

상제님은 먼저 ‘태을주는 여의주다.’라고 정의하신다. 그리고 이 말씀을 다시 도치시켜 ‘여의주는 태을주니라.’고 하신다. 사실 여기서 더 크게 깨져야 된다. 돈 좀 많고, 권력 있고, 외모가 그런대로 빠지지 않으면 이 세상 사는데 그리 큰 힘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큰 뜻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태을주뿐이다. 이 세상을 사는 데에 여의주는 그 무엇도 아닌 태을주다, 태을주!

그러면 태을주가 여의주라는 것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제님은 ‘태을주를 어떻게 읽어야 되느냐?’하는 이 문제에 대해 “태을주는 천지 기도문이다.” 이렇게 정리해 주셨다. 즉 태을주가 바로 천지에 올리는 기도문이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태을주를 읽을 때는 진실로 천지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각성이 되어 읽어야 한다.

태을주를 읽으면 무엇보다도 영이 밝아진다.

『도전』 11편 180장을 보라. 태모님은 “태을주는 심령과 혼백을 안정케 하여 성령을 접하게 하고 신도를 통하게 하며 천하창생을 건지는 주문이니라.”고 하셨다. 태모님의 이 말씀처럼 태을주를 읽으면 심령과 혼백이 안정된다.

누구도 태을주를 읽으면 정신이 안정되고 맑아진다. 어떤 주문보다도 더 빨리 기운이 내려온다. 또한 태을주를 읽으면 성령을 접하게 된다. 성령을 받아 내리는 조화주문이 태을주이기 때문에 태을주가 곧 여의주인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말한다. ‘아버지가 하시는 우주 창조와 이 우주를 다스리는 모든 일, 그리고 아버지의 명을 받아 내려온 성자의 진리 전수, 진리에 대한 깨달음, 그 모든 것이 성령이 들어서 된다.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이 하는 모든 일을 이룰 수 있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 받고 삶을 영위하는 그 모든 것이 성령을 받아서 이루어진다. 소심한 사람도 성령을 받으면 말도 유창하게 잘하고, 용기백배하여 무슨 일이라도 해 낸다.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 진리에 대한 큰 깨달음, 크고 작은 모든 일이 성령을 받아서 이루어진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인간으로서 제자리에 설 수 없다. 성령을 받아야 인간적 한계의 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경계로 들어간다. 성령을 모르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할 수도 없다.’ 이것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요, 총결론이다.

서양의 삼신(三身)과 동양의 삼신(三神), 서양의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과 동양의 삼신일체(三神一體) 하나님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야 왜 태을주를 읽어야 하는지, 왜 태을주를 읽으면 성신을 받아 내리는지를 알 수 있다.


서양의 삼신관과 동양의 삼신관
서양의 삼신과 동양의 삼신은 전혀 다르다. 서양은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가 있으며, 인간 중심이고 역사 중심이다. 서양의 삼신이 몸 신(身) 자를 쓰는 반면, 동양 삼신은 귀신 신(神) 자, 하나님이라는 신 자를 쓴다. 신 자체의 세 가지 창조의 손길, 창조의 덕성, 신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서두에서, 동양의 삼신관에서는 신의 본래의 덕성을 조화, 교화, 치화, 이 셋으로 얘기한다고 했다. 삼신(三神)이 만물을 빚어내는 조화신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진리를 가르쳐주는 교화신과 질서를 다스리는 치화신 역할을 한다.

반면에 서양의 삼신(三身)은, 우주의 한 하나님의 일을 세 위격으로 나눠서 제1위가 아버지, 제2위는 아버지가 보낸 아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일을 이루어 주는 제3의 위격으로 성령을 말하고 있다.

동서양의 삼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를 해 보면, 먼저 서양의 성부는 동양의 조화신을 주장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낸 성자는 인간에게 진리를 넣어 주고,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이 될 수 있는 구원의 도’를 열어 주는 교화신을 주장한다. 그 다음 성령은 곧 성신으로, 동양의 삼신에서 치화신 역할을 한다.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성신이 들어와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삼신이냐, 왜 한 하나님이 셋으로 벌어지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 속에 셋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머리, 몸통, 팔다리 이렇게 셋으로 구성되어 있다. 손가락도 하나가 세 마디로 되어 있다.

하나가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작용하려면 셋으로 열려야 한다. 일즉삼(一卽三)이요 삼즉일(三卽一)이다. 즉 하나 속에는 이미 셋이 들어 있으며, 그 셋은 본래 하나다. 그것을 시간의 변화 과정 속에서는 구체적으로 본중말(本中末), 또는 시중성(始中成)의 논리로도 말한다. 하나가 셋으로 작용할 때는 근본이 있고, 그것이 작용하는 중간 과정과 끝마무리가 있다.

이 우주를 낳은 조물주 삼신도 근본은 하나다. 그 삼신의 가장 근본이 되는 덕성이 바로 조화신이다. 3수에는 1이 본체로서 작용을 하고,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음양으로 용(用)을 한다. 즉 삼신의 바탕이자 중심축은 조화신이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용하는 것이 교화신, 치화신이다. 이것을 잘 봐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천지의 조화성신을 받아 내리는 문제의 핵심, 바로 이것을 제대로 깨쳐야 한다.


치화신의 손길
내가 동서의 삼신관, 즉 서양의 삼위일체 하나님관과 동양의 삼신일체 하나님관을 통일했다. 여기서부터 5만년 가을의 인존 문명이 진리적으로 열려 나간다. 태을주 문화가 열리려면 신관이 통일되어야 할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치화신을 단순히 행정학적이나 정치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여 ‘다스린다.’ 이렇게 알면 큰일 난다. 그건 성령론을 전혀 못 알아들은 것이다.

성령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10년 이상을 척추 병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도공을 하고는 ‘아, 척추가 바로 섰어요.’하며 똑바로 걸어서 나갔다. 성신이 치유의 영으로 몸속에 들어와 역사(役事)한 것이다.

기도를 잘 하고 성곡을 불러 보라. 기도를 간절히 하고 상제님 말씀을 들어 보라. 기도를 아주 깊이 하고 나가 포교를 해 보라. 기운이 전혀 다르다. 성령과 상통되어 우주의 진리의 영, 생명의 영, 성령으로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치화신이란 인간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생명의 질서로 바로잡아 주는, 그리하여 진정한 진리의 인간이 잘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다스려 주는 손길을 말한다.


동서양 삼신관과 증산도의 삼신관
동양의 삼신관은 상제님만을 주장한다. 아버지 상제님의 도만을 더욱 강조한다. 반면에 서양은 아버지와 아들을 문제로 삼는다. 이처럼 서양의 삼위일체관과 동양의 삼신일체 하나님관은 전혀 다르다.

서양의 삼위일체관은 인간 역사 속에서 우주 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리고 인간 구원이 세 위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위격의 구성 틀로 대우주의 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은 인간의 현실 역사 중심의 삼신관이 아니다. “삼신은 일신이요 우주의 조화성신이시니라.”는 상제님 말씀처럼, 본래 삼신은 무형의 우주를 채우고 있는 신, 원신(元神)을 얘기한다.

또한 서양은 ‘삼위는 일체다.’하여 일체를 더 강조하는 반면, 동양은 삼신일체로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 삼신, 즉 신이 본래 세 가지 덕성을 가지고 이 우주를 잡아 돌린다는 삼신의 세 가지 창조성을 더욱 강조한다. 그렇지만 하나가 꼭 셋으로 드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또한 그 셋은 본래 하나라는 것은 동서양이 똑 같다.

동양 삼신관의 결론은, 삼신 자체가 되어 호천금궐에서 실제 우주를 다스리시는 인격신, 인간모습을 하고 있는 하나님, 참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증산도에서 말하는 삼신관은, 조화신은 아버지의 도, 부도(父道)를 주장한다. 그 다음에 교화신은 진리를 열어 주는 성신, 즉 사도(師道)를 주장한다. 그리고 치화신은 인간 생명의 크고 작은 모든 질서를 다스리는 군도(君道), 임금의 도를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군사부(君師父) 문화다. 태사부님은 “군사부 문화라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다.”라고 정의해주셨다. 후천 5만년은 이 군사부 문화로 원시반본한다.


우주의 성신을 내려 주는 하늘, 태을천
상제님 태모님의 진리 사업은 이번에 우주의 조화성신을 어떻게 받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기독교의 성령이란 동양의 삼신관에서 볼 때 치화신의 성격을 띄고 있다. 인간 역사 속의 크고 작은 모든 질서를 다스려 주는 것이다.

우리 증산도의 삼신관에서 조화성신이란, 이 우주의 하나님, 한 하나님의 세 가지 덕성 가운데 본래의 근본 중심축이 되는 조화신을 성신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 조화신이 구체적으로 용하는 것이 교화신, 치화신이다. 진리를 열어 주고, 모든 것을 다스리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도록 가능케 해주는 생명과 지혜와 능력을 불어넣는 치화신도 이 조화신 속에 다 수용이 된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증산도의 조화성신 속에는 기독교적 성령관, 삼위일체 성신관이 다 수용되어 있다. 때문에 증산도의 조화성신관이 더 근원적이다. 이 조화성신을 받아 내리는 주문이 바로 태을주요, 우주의 성신을 내려 주시는 하늘이 태을천이며, 그 주신이 곧 태을천 상원군님인 것이다.


왜, 꼭 태을주를 읽어야 하는가
우리가 지난 100년 역사를 총정리하고 상제님의 새 역사의 틀을 성공적으로 짜는 것은 조화성신을 받아 내리는 태을주 공부에 있다. 우리 일꾼들 모두가 ‘잠을 좀 덜 자더라도 태을주를 읽어야지. 주문 한 차례 읽고 기도하고 자야지.’ 이렇게 의식이 바로 설 때 비로소 우리 일은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태을주는 어떤 주문이고, 태을주를 읽으면 천지 조화성신이 내린다고 하는 성신관, 진리의 틀이 상제님 대학교 교육에서 바로잡혀야 한다.

왜 이번 가을개벽에 태을주를 읽지 않고는 상제님 일꾼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살아남지 못하는가?

추지기(秋之氣)는 신야(神也)라.’, 가을의 기운은 신도로 온다. 가을은 모든 생명이 하늘의 신성과 하나 되는 때다. 성숙한 인간으로 열매를 맺는 때다. 그런데 이 천지 안에 가을의 변화, 가을의 기운을 아는 자가 없다.

오직 성신을 열어야만 가을 개벽이 오는 것을 안다. 지축 서는 것, 상씨름이 넘어가는 것, 사람을 얼마나 살릴 수 있는가를 보고,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헤아려서 극복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태을주 조화성신을 받는 데에 있다.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태을주를 읽는 만큼 성신의 기운이 내려온다. 주문은 마음속으로 읽기도 하고,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하여간 여러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주문을 읽을 때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우주의 가장 지극한 조화 세계, 우주 생명의 중심 핵 자리, 그것을 음양으로 율려(律呂)라고 한다. 율려는, 만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율동과 고요히 쉬도록 통일해 주는 여정에서 나온 말이다. 천지의 조화성신을 다른 말로 율려라고 한다. 천지의 생명과 질서의 근원이 바로 율려다.

“태을주는 우주 율려(律呂)니라.”는 말씀처럼, 태을주를 읽으면 생명의 근원이면서 자연 질서의 근원이기도 한 조화성신, 즉 율려를 내 몸에 받아 내린다. 이 기운을 받아야 진정한 인간으로 완성이 된다.


온 우주의 생명의 산소, 태을주
인간의 모든 공부가운데 도(道) 공부, 진리 공부의 총결론이 바로 천지 조화 생명을 받아 내리는 태을주 공부다! 한마디로 인생 공부의 출발과 결론이 태을주 공부인 것이다. 상제님 진리 역사도 태을주 공부로 시작되어 태을주 공부로 끝이 난다. 그래서 태사부님이, “태을주는 산소와 같다.”고 하신 것이다. 태을주는 이 우주의 산소다. 단 한 순간도 거부하고는 결코 살 수 없는 우주의 생명의 산소, 인간과 신명의 산소가 태을주다.

때문에 태을주를 읽어야 내 영이 안정되고 만족을 하고,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우주의 광명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열린 지혜로써 밝게 알아서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다. 그래서 태을주가 여의주 노릇을 하는 것이다.


천하사를 이루는 세 가지 관건
태을주를 읽어야만 이번 해 떨어지는 시간대에서 단박에 일을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모든 교육을 단순화하여 진리 핵심 맥을 잡고, 그것을 생활 속에 적용하는 훈련을 한다. 시간이 갈수록 진리 교육 내용을 더 단순화하면서 태을주 공부, 도공 공부, 기도 공부로 들어간다.

모든 공부의 근본 바탕은 기도다. 기도 후에 태을주 공부가 있고 진리 틀 잡는 공부가 있다. 기도태을주 공부, 진리 맥 잡는 공부가 내 의식 속에 수직으로 제대로 뿌리를 내릴 때 상제님 천하사의 모든 것을 이루는 능력 있는 일꾼으로 거듭나게 된다.

기도를 사무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혼이 천지를 뚫어 꿰는 기도, 그것이 사무치는 기도다. 그때 진실로 인간의 마음이 뭔지, 영의 세계가 뭔지를 안다.

인간 생명의 본성은 우주의 영이다. 대우주의 신령한 생명의 진리가 다 내 마음과 몸과 영 속에 깃들어 있다. 이것을 열어야 한다. 이 문을 열지 못하면 인간은 결국 한낱 짐승처럼 살다가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대우주의 근본 법칙, 생장염장을 묶어서 총정리하면 춘생추살(春生秋殺)이다. 이 우주는 거대한 본질적 법칙, 근본 섭리를 전제로 하여 인간을 낳고 길러왔다. 그 결론이 추살(秋殺)이다. 가을이 되면 인간을 무조건 다 죽인다. 이것이 증산도의 심판론, 구원론의 주제다. 증산도의 구원론은 우주 법칙에 의해 전개된다. 이것이 기독교의 최후심판 (The Last Judgment)과 다른 점이다.


만사무기 태을주
선천 인간 역사에는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다. 수많은 전쟁 중에 가장 강력한 전쟁이 상씨름 초반전에 있었던 백마고지 전투였다. 우리는 그보다 더 강력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앞으로 우리 일꾼들이 치러야 할 영적 전쟁이다. 영적 전쟁은 시한이 없는 전쟁이다. 죽는 순간까지 투쟁을 해야 한다. 이 우주에는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흔들고 어지럽혀 죽음으로 이끄는 복마(伏魔)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복마는, 항상 엎드려서 노려보고 있다. 때문에 상제님께서 엎드릴 복 자를 써서 복마라고 하신 것이다. 도고백장(道高百丈)이면 마고백장(魔高百丈)이다. 아니, 도고백장(道高百丈)이면 마고천장(魔高千丈)이다. 도가 높을수록, 진리가 크게 깨질수록, 더 큰 일꾼이 될수록 복마가 더 강해진다. 더 많은 숫자가 강력하게 몰려온다.

또한 이 우주에는 상제님의 천지사업을 방해하는 천마(天魔)와 인마(人魔)가 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이 태을주다. 그래서 ‘만사무기(萬事無忌) 태을주’인 것이다. 태을주를 읽으면 온갖 장애물이 사라져 버린다. 천지에서 제거시켜 버리는 것이다.


염념불망, 태을주를 읽으라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각자의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기도와 태을주 공부로 조화성신을 받아 내리는 것도 회심(回心)을 하지 않으면 될 수 없다. 그것은 동서고금의 구도 생활의 대전제다. 불가에서는 내 마음, 한 생각을 돌이키는 것을 회향(廻向)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 한 마음만 바꾸면 된다. 그리하여 “오직 일심으로 믿어야 새 생명을 받으리라.”하신 상제님 말씀처럼 천지와 한마음이 되고, 나의 선령신과 한마음이 되고, 진리와 한마음이 되는 쪽으로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태사부님께서 평생을 걸어오신 ‘독행천리(獨行千里) 백절불굴(百折不屈)’의 그 정신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해 떨어지는 이 시간대에서 우리는 의통성업에 대한 모든 준비를 해야 한다. 앞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근본 신앙과 심법을 전부 감정하여 의통구호대를 짠다. 서투른 신앙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상제님 진리에서 그것은 죽음이요, 소멸이다. 우리들의 신앙은 오직 삶이냐 죽음이냐, 생사를 판단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신이 보다 더 근본적으로 깨져서 상제님 천지 사업에 일념을 가져야 한다. 언제나 본능적으로 기도하고, 염념불망 태을주를 읽어서 누구도 다 조화성신을 받아 내려야 한다. 그리하여 태을주가 여의주 역할을 하는 그때, 진정한 판몰이로 들어간다.

우리 일은 때를 기다려서 되는 게 아니다. 아무런 준비없이 요행수로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정신이 하늘처럼 깨져서 꿈속에서도 기도하고 주문 읽으며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나는 새 우주 역사의 중심에 서는 일꾼의 경계에 들어섰다! 성숙한 신앙의 중심에 들어섰다!’이러한 확신 속에서 세계 창생들 속으로 뛰어 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소리 높여 외치는 육임군가의 참뜻이다.

-도기135년7월 증산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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