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천도장] 내실있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초립쓴30대 | 2010.02.23 16:30 | 조회 6156

부산지역에서 처음으로 광역1위를 차지하는 경사가 났다. 부산온천, 부산만덕, 부산동래로 이루어진 51광역이 예상 밖의 쾌거를 이루어 다들 너무도 기뻐하고, 더욱 힘찬 약진을 다짐했다. 그 중심에 선 부산 온천도장을 방문하여 비결을 알아보았다.
 
 부산시 명륜동에 위치한 부산 온천도장은 넓은 성전과 짜임새 있게 갖춰진 내부구조가 도장의 규모를 한눈에 보여주었다. 방마다 붙어있는 이름도 색다르다.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 율려실(수행방), 조왕실(주방), 생문방(화장실) 등등. 방이름만 가지고도 진리 말씀을 한 보따리는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장을 방문했을 때는 마침 광역합동치성이 있는 날이었다. 6시부터 분주하게 치성준비를 하고, 속속 성도님들이 와서 넓은 도장은 어느새 꽉 들어찼다. 치성 후 태사부님 성용을 향해 다같이 재배를 올렸다. 그리고 태사부님께서 내려주신 일꾼의 실천구호와 사부님께서 하명하신 “우리는 할 수 있다”를 다같이 외쳤다. 구호를 외침으로써 신도들의 의식이 항상 새로 깨어나게 된다고 한다.
 
 
 온천도장이 이만한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사상무장과 감화를 통한 화합,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를 바탕으로 행동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1월에 51광역에서 <증산도 사상연구회 세미나>를 시작으로 <테마까페>, <태을주 체험전> 행사를 연이어 열었다. 한 달에 세 차례의 행사를 열었지만 행사위주가 아닌 포교와 수렴의 장으로 확실하게 활용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일머리를 꿰뚫어보고 시작과 매듭을 확실하게 잡아주시는 수호사님, 편안한 웃음과 친절 그리고 성도들에 대한 배려로 각자의 역량을 십분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포정님, 도장살림을 도맡아 해주시는 집정님, 그리고 확실한 사상무장과 패기로 초립동이 도수를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대포와 청포 등 온천도장은 각 계층이 고르고 안정되게 성장하고 있는 도장이다.
 
 
 다음은 부산 온천도장 포정님이 풀어놓는 온천도장 성장 비결이다.

묵은기운을 벗고 새롭게 일구어가는 우리 도장
 
 최일대(30세) / 도기 125년 8월 3일 입도
 
 일반, 청대포가 모두 활기찬 우리도장
 안녕하십니까, 저는 온천도장 3구역 포감을 맡고 있는 최일대입니다.
 
 저희 온천도장은, 부산의 주산인 금정산을 병풍으로 쓰고 있으며 동래온천을 난방수로 사용하는, 한마디로 우주변화의 금화교역을 실현하는 도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로는 금정산 금기(金氣)를 끼고 있고 아래로는 온천을 발생시킨 화기(火氣)를 깔고 앉아있으니 말할 것도 없이 화극금(火克金)을 중재하는 토(土)덕을 가진 도장이라는 억지(?) 설명을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큰 기운이 타오르는 도장이라는 얘기입니다.
 
 예전의 협소한 도장과 좁은 마음들을 떨쳐내고 지금은 태사부님, 사부님 부산 순방군령을 담당하는 대형도장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각 계층이 고르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로 부산대와 부산교대생으로 구성된 대포는 작년에 있었던 <월드컵 홍보전>과 <태을주 체험전>, <예언카페> 등 도장의 크고 작은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강동범 부포정님과 노민수 수석포감을 중심으로 항상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올해도 벽두부터 부산대 신입생 포교수렴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작년 하반기 대포전국 1위를 차지한 전적이 있듯이 올해도 1위 수성에 적극 나설 것입니다.
 
 온천도장에는 패기 넘치는 대포 뿐 아니라 도장에 풋풋한 생명력을 주는 청포도 있습니다. “대포만 있나? 청포도 있습니다.” 라고 늘 외치는 박지현 청포 부포정님을 중심으로 청포는 거의 매달 <태을주 체험전>을 통해 청포가족들이 대상자들을 자연스럽게 도장으로 인도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광역인 동래, 만덕도장 청포와 연계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엔 대포에서 이명렬 포감이 청포로 자리를 옮겨와 박지현 부포정과 음양합덕으로 신세대반란을 꿈꾸고 있습니다.
 
 일반부에는 김태근 포감님이 계십니다. 현재 1구역 포감을 맡고 있으며 3년째 도장의 아침 봉청수를 담당하는데 말 그대로 비가오나 눈이오나 새벽 5시경이면 어김없이 도장에 나와 청수를 모시고 수행을 하십니다. 너무도 일심이라 다른 분들이 아침 청수를 모시기가 미안할 정도랍니다. 2구역을 맡고 있는 이주경 성도와 신생 6구역을 맡게 된 이천욱 성도는 부부포감으로 포감이외 재정, 재감 등 도장의 보직을 맡으면서 서로 내조, 외조를 하면서 가족신앙의 본보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4구역은 이점숙 집정님이 직접 구역관리도 하고 있습니다. 남편 분도 수호사를 맡고 있어 부부신앙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집정일도 많은 데 도장전반의 살림을 이끄시느라 체력이 소진되어 얼마 전에는 크게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도장의 모든 성도들이 나서서 신유, 수지침, 한약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돌봐드려 다행히 완쾌되었습니다. 아들인 지명건 어린이는 이제 6살에 불과한 유아부 신도지만 어머니의 혹독한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도장 청수도 잘 모시고 주문도 어찌나 잘 읽는지 옆에서 같이 수행하고 있으면 깨물어주고 싶을 지경입니다.
 
 
 신생 6구역은 트위스터 구역입니다. 여기서 트위스터(twister)란 소용돌이라는 뜻이죠. 작년 12월에 입도한 현명호 부포감의 입문자로 주로 구성된 구역입니다. 2월 증대교육을 도장에서 같이 받았는데 끝까지 자리에 앉아 교육받는 모습이 기존 신도에게조차 귀감이 될 정도입니다. 모두들 의통성업이 완결되는 그날까지 완주하셨으면 합니다.
 
 
 꿈에서 본 개벽상황
 잠깐 여담을 드릴까 합니다. 2월 증대교육이 있던 날은 마침 제 21일 정성수행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날 꾼 꿈 얘기를 잠깐 해드리겠습니다.
 
 꿈속의 배경은 온천도장이었습니다. 도장 밖 수십 층이나 되는 빌딩이 갈라진 땅 밑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어마어마한 해일이 밀려오는데 전 도장에 있으면서 ‘아 이제 올 것이 왔구나, 난 수영도 못하는데 어쩌지’하고 애만 태웠습니다. 그 뒤 곧바로 해일이 도장을 덮쳤습니다. 물이 차고 시야가 울렁울렁하는데 전 129,600년을 외치며 ‘이제 죽었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화면이 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단의 무리들이 몰려와서 태사부님 사부님을 부정하고 의통을 찾느라고 도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데, 제가 그 사람들에게 태사부님, 사부님에 대해 설명하고, 종통에 대한 저의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는 내용의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니 종통을 지킨 제 자신이 조금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육임을 짜서 인생역전을 …
 아시다시피 임오 계미년은 전신도가 묵은 때와 낡은 신앙행태를 다 떨쳐야 하는 때입니다. 우리도장은 온천 기운을 받아 어느 도장보다도 더 깨끗이 묵은 기운을 벗고 새롭게 일을 이룰 자신이 있습니다.
 
 전국의 성도님 여러분들 힘을 냅시다. 지금은 아직 선천종교가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우리 전신도가 육임을 짜면 그것이 로또에서 여섯 개 숫자 맞추는 것 이상으로 대박 터뜨리는 일이요, 인생역전이 아니겠습니까?
 
 개벽책 광고는 새마을 열차에 실려 신천지로 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으며, 광고탑도 벌떡 일어서서 세상을 환히 비추고 있습니다. 계미년엔 반드시 우리 온천도장부터 먼저 일어서서 눈에 쌍심지 켜고 천심 가진 자들을 찾아 나서겠습니다. 결코 호언장담으로 그치지 않기를 다짐하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성도님 여러분들 건강하세요.^^
진리가 옳다면 한판 승부를 겨루자!
 
 이점숙(33세) / 도기 119년 6월 14일 입도
 
 어렸을 적에 저는 참으로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으며, 집안 형편도 어렵고, 집안에 우환도 많아서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사춘기 때는 나름대로 방황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럴 때 저에게 유일하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나 홀로 밤마다 옥상에서 바라본 달님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여러 가지로 힘들 때는 달님에게 소원을 빌면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 거야’ 라는 희망을 안고 그때 그때의 힘들고 외로웠던 시절을 이겨내며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증산도를 만나려고 했던 영적 방황기(?)였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저를 낳기 위해 광주 무등산 어느 절 칠성각에서 기도를 하고 낳았다는 말씀은 신앙을 하는데 있어 때때로 많은 용기를 줍니다.
 
 
 무한한 자긍심과 용기를 주었던 상제님 진리
 저는 도기 119년(1989년)인 고3 여름방학 때 오빠의 권유로 부산동래도장에서 입도하였습니다. 처음엔 너무 낯선 종교라 많이 꺼리고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막상 도장에 와보니 낯설지 않았고 다들 너무 따뜻하게 대해줘서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도장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첫인상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제님 진리에서 우리 나라가 앞으로 인류의 종주국으로서 일등국이 된다는 말씀은 자신감이 많이 없었던 저에게 크나큰 자긍심과 용기를 안겨 주었습니다.
 
 상제님 진리가 3변이듯이 저에게도 지금 생각해 보면 세 번의 큰 전환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입도할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고등부라 마냥 도장과 분위기가 좋아 초발심으로 친구들을 많이 인도하였고, 그중 몇 명을 입도시키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방학동안에는 날마다 도장에 나와서 같이 홍보를 따라 나가면서(그때 부산에서는 『한민족과 증산도』를 한 가정에 한 권 씩 전달하였음) 활동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현장체험이 그 후의 신앙생활에 소중한 추억이 되었고 신앙적 자산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집안 형편상 상업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좀 일찍 취직이 되어 졸업 전에 증권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의 관리소홀과 “의뢰심을 두지 말라” 하신 상제님 말씀처럼, 의존심과 진리부족 때문에 초발심으로 인도한 친구들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그후, 사회 초년생으로서 너무 힘들고 바쁜 생활 속에서 신앙의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몇 년간은 그냥 참여정도의 시계추 같은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집안의 일로 신앙이 무척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너희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함은 의혹이 더한 연고라”하신 상제님 말씀처럼 강한 인연의 고리를 느끼며 비록 개인신앙 정도였지만 도장에 열심히 나오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의 결혼관과 신앙관
 94년도에 도장이 이전하고, 직장도 다른 곳으로 이동발령이 나면서 제 신앙의 두 번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때 도공이 나오면서 신앙을 안하고 있던 오빠와 동생이 재입도를 하였고, 다시 새로운 신앙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지금은 비록 신앙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그해 겨울엔 육임완수를 위해 전력질주해서 육임도 짰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95년에는 부산 광안도장을 개창분가하면서 개창팀의 일원으로 바쁘게 일을 했습니다.
 
 그때 여자신도는 나를 비롯해 미혼 몇 명이 전부여서, 제가 도장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퇴근 후 도장에 갔다가 집에 들어가면 12시가 넘는 시간이었고,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장녀로서 집안에서 결혼을 재촉하는 등 심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름대로 결혼관과 신앙관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많은 여성 선배 신앙인들이 미혼일 때는 열심히 신앙을 하다가 결혼과 더불어 개인신앙으로 전락하거나 아예 신앙 자체가 어려운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결혼을 해서 생활신앙으로 이어져서 더 나은 신앙이 되지 않는다면 결혼은 꿈도 꾸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참신앙은 스스로 환경을 극복하고 조성하는 것
 그러던 차에 무슨 인연인지 96년 겨울에 제 신앙의 3번째 전환점이 된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마산으로 직장과 함께 도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도장 일에만 전념하는 남편이다 보니, 자연히 생활을 위해서 전 직장을 계속 다녔습니다. 그러다 98년 아기를 출산한 후에는 도장에 좀더 적극적인 참여를 권하신 당시 마산 회원도장 포정님의 제의로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입도 만만찮은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처음엔 생계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맘 고생도 많이 하고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과감히 생각하는 남편의 설득과 제 자신의 신앙적 욕심에 과감히 직장을 정리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은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참신앙은 스스로 환경을 극복하고 조성해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후 갓난아기를 업고 도장에 다니면서, 심방도 다니고, 저처럼 어린아이를 가진 주부 성도님들에게 신앙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결코 어린애가 핑계가 될 수 없음을 얘기하고 오히려 생명을 낳은 부모로서, 더욱더 상제님 진리에 동참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이 가을개벽기에 다 떨어질 생명을 생각하면 결코 자신의 아이만을 키우면서 안일하게 살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아기를 키우듯 그렇게 포교하고 일꾼으로 길러내며
 그러다 창원으로 이사를 하였고, 98년 제세핵랑군이 출범하면서 ‘나도 육임을 짜야겠구나!’ 마음을 먹고 어린 아기를 돌보면서 통신포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대상자도 많이 생겨 서울에도 만나러 가곤 했지만, 결과로는 이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성부족이다 생각하고 매일 100배례를 하면서 “참사람이 어디 있느냐, 참사람을 만나야 하리니 춘하추동 사시절에 일시라도 변치 말고 성경신 석자로 닦으면서 진심으로 고대하면 참사람을 만나리라.”(道典 11:171)하신 태모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기도를 간절히 올렸습니다.
 
 정성을 들인지 한 달쯤 후에는 잠시 부업을 하던 회사에서 눈에 띄게 싹싹하고 성실하던 관리직원인 한 여성(김미화 성도)을 만나게 되어 인도를 하였습니다. 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이를 업고 도장에 와서 같이 정성공부도 하면서 매일 밤12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김미화 성도 입도 전에는 제가 차 사고가 나는 등 많은 일이 터져서 1000 배례의 정성까지 들였습니다. 입도 후에 3개월 동안은 매일 전화하거나 만나서 한시라도 마음을 놓지 않고, 아기를 돌보는 심정으로 관리를 하였습니다.
 
 아무튼 입도하는 과정에 많은 문제가 터져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극을 받아야 생이 나온다고 다행히 김미화 성도의 동생도 입도를 하고, 그 후 오빠와 조카들 그리고 부모님까지 입도를 하면서 차츰 신앙의 뿌리를 탄탄히 내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성녀단(14기)으로서 동생인 김희연 성도(성녀단 12기)와 함께 봉직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전 포교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엄마가 아기를 키우듯 한 몸이 되어 그리고 인도자의 정성기운이 자양분이 되어 서로 성숙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한 생명을 살리면 그 생명은 또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가 있으니, 이것은 결코 한사람만의 생사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포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전신도가 똘똘 뭉쳐 인화단결이 되었을 때, 서로서로 상승작용을 하여 육임도 짜고 도장도 성장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진리적 한판 승부를 겨루라!
 그 후로도, 아르바이트식 영업을 몇 차례 한 적이 있었는데, 생계의 이유도 있었지만, 타지에 살다보니 사회적으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인맥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지금은 입도를 한 사람도 있고 포교를 위해서 꾸준히 만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직장인들이 오히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포교하기가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사람을 살리겠다는 진심어린 마음만 있다면, 동료 직장인은 물론하고 세상 사람들이 전부 포교대상자로 보여지는 그 순간, 직장생활은 신앙을 방해하는 핑계거리가 아니고 오히려 홍보, 포교의 장으로 승화되겠지요.
 
 어차피 영원히 다닐 직장이 아니라면 진리적 한판 승부를 겨루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결국엔 다 나의 육임조원이 되리라는 걸 꿈꾸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절대 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몰라도 신명은 안다. 저 사람을 살리고 싶다라고 생각하면 그 덕은 너희들에게 있다’는 상제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을 대신하여 시댁식구를 포교하며
 그리고, 저의 친정어머니는 외갓집 천도를 계기로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수도를 하는데 외할머니의 한이 느껴지면서, 외선조를 다시 천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선조는 어머니께서 직접 정성을 드리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매일 한달 동안 100배례를 하면서 정성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후 천도식 이후에 어머니의 꿈에 40여년 동안 한번도 꿈속에 나타나지 않으셨던 외할아버지께서 하얀 도복을 입고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그후, 수행 시 많은 체험으로 현재 어머니는 조석으로 지극한 마음으로 봉청수를 하면서 근본신앙을 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환경 상 집안포교에 소홀하던 남편을 대신해 시댁가족을 위한 정성도 드리고 있는데 철옹성 같은 가족들의 마음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어 도장에 인도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시댁 가족포교는 증산도 신앙 때문에 폭 아닌 폭이 잡힌 남자보다 때론 며느리가 중심이 되어 공조하면 훨씬 유리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환경과 보직에 상관없이 포교할 수 있다
 그후 부산 대연도장 수호사님의 제의로 작년에 창원에서 부산으로 오면서 정식으로 천록포감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천록을 받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돈도 벌면서 도장 일을 할 바엔, ‘내밥을 먹는 자라야 내 일을 하여 주리라’하신 상제님 말씀 그대로를 실천하기 위해부산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부산에 왔지만 처음엔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도장에서 밥만 했습니다. 그러다 차츰 저의 환경 특성상 주부성도님들을 심방하며, 매달 한번 내지 두번 가정치성을 하면서 인화단결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였습니다. 주부성도님들이 뭉치면 도장은 금새 따뜻해지고 성장의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작년 9월 지금의 부산 온천도장으로 오면서, 이사도 도장근처로 하였습니다. 벌써 신앙적 이유로 6년 동안 5번째의 이사를 한 셈입니다.
 
 온천도장은 넓고 깨끗해서 상주시설이 잘되어 있습니다. 저는 수행도 하고 도장 살림도 하느라 도장에서 자주 숙식을 하는데 6살 된 아이가 자기도 아빠처럼 천하사를 하겠다면서 도장에서 상주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기특해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도장에서 집정과 천록포감, 구역포감을 겸하고 있습니다. 도장 일이 많아 매일 활동을 나가지는 못하지만, 업무 차 도장에 방문하는 공무원 등 누구에게라도 개벽책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 자주 가는 병원, 의사, 약사, 은행원, 편의점직원, 미술학원원장 등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책을 소개 판매하고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포교는 생활 속에서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고 도장에서 무슨 보직을 맡고 있어도 얼마든지 대상자는 확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일은 될 일을 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깊이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에 왕도는 없다.
 오로지 성경신과 일을 이루려는 자세가 중요
 십수 년을 신앙하면서 생활여건상 도장을 여러 군데 옮겨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단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을 사귀게 되고 다양한 신앙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 무엇보다 더 큰 틀로서 내 도장만이 아닌 광역을 생각하게 되고, 나아가 증산도 전체를 보게 되는 안목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지의 많은 성도님들을 사귀게 되니 음으로 양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부 구역포감을 맡으면서 우리 아이를 앞세워 다른 분들의 신앙을 독려시키기도 합니다. 아이도 제가 스스로 태을주를 읽게 해야 살 수 있다 하신 말씀을 따라 4살 때부터 개벽주까지 주문을 다 외우게 했습니다. 그래서 도장에서 주문을 읽으면, 혹 주문을 다 못 외우는 신입 성도님들에게는 자극이 되기도 하고, 봉청수와 성금헌성도 직접 하게 함으로써 도장 아이들에게 신앙의식을 심어주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통정이 중요하기에 가정치성을 권하면서, 자연스레 함께 모이는 자리도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통정이 되면 당연히 다음단계인 도장중심생활로 바뀌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신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오로지 성경신과 집중해서 일을 이루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부산 온천도장은 각 계층이 조화를 이루지만 일반부가 비교적 취약했는데 최근엔 일반계층이 많이 입문하고 있어 조만간 일반부에도 큰바람이 불리라 믿습니다.
 
 상제님께서 “영판좋다”하신 말씀처럼 이젠 동남풍을 불릴 도장, 그 중에서도 부산 온천도장이 앞장서겠습니다. 모두 단결 화합하여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도움을 주신 여러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무엇보다 힘들 때는 격려와 칭찬을, 때론 강한 질책과 충고를 서슴지 않고 심법을 다져주는 천하사의 동지이자 반려자인 남편과 아빠를 대신하여 항상 곁에서 엄마를 돌봐주는(?) 우리 아이 명건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면 꼭 됩니다!
 
 강동범(32세) / 대포 부포정 / 도기 118년 7월 17일 입도
 
 학교 역사교육에 대한 실망
 원시반본은 우주의 근본법칙인가 봅니다. 늘 어떤 기로에 섰을 때면 지나온 일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기억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의 고향은 경남 함양입니다. 산좋고 물맑은 산골마을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형제들하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또 작은 시골 동네라 또래 친구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혼자서 놀다보니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형들이 보던 옛날 이야기책을 즐겨 봤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우리 나라의 역사를 배우게 됐을 때 저는 무척이나 실망을 했습니다. 지도부터가 영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한 귀퉁이에 붙은 작은 반도국, 그리고 늘 침략만 받아온 약소국 그 자체였습니다. 수업시간에 배우는 것도 그저 시험보기 위한 암기식 교육이었습니다. ‘분명히 이게 아닌데. 뭔가가 이상하다.’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상제님의 진리를 처음 전해주신 분은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습니다. 지금 경기도에서 교사생활을 하시면서 신앙하고 계시는 김창호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다정하셔서 저희들과 무척이나 가깝게 지내셨습니다. 특히 저와 몇몇 친구들은 선생님과 같이 산에도 놀러가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곤 했습니다.
 
 
 새롭게 알게된 우리 역사
 어느 날인가 선생님한테서 『환단고기』라는 책을 빌려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빌려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였습니다. 책이 어려워서 다 보지는 못했지만 그 책에는 분명히 우리 나라의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바로 이거다. 내가 찾던 게 바로 이거구나. 그러면 그렇지.’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외에도 선생님한테서 몇 가지 책들을 빌려 읽곤 했는데, 그 중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소설 『丹』이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도사들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신기했고 정말 조금만 수련을 하면 금방 그렇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여쭸더니 “금방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나중에 나와 같이 공부를 하자. 3년 정도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끔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원을 그리시고,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돌면 360일, 그 태양이 또 다른 우주의 중심 태양을 도는데 360도, 하시면서 그걸 곱하면 129,600도 라는 게 나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고등학교 입시 후, 중학교 마지막 겨울 방학식을 하던 날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가보니까 친구 세 명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날 받은 책이 바로 『다이제스트 개벽』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같이 어디를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에 책을 잠깐 봤는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눈에 띄었습니다.
 
 며칠 후에 친구 세 명과 같이 간 곳은 바로 증산도 함양도장이었습니다. 그날이 월말 치성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한 달에 한번씩 제물을 차리고 치성을 올렸습니다. 집에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전혀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태을주를 배웠는데 신기하게도 그걸 읽으니까 차멀미하던 것이 나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차멀미를 많이 했거든요. 그게 증산도와의 첫 만남입니다.
 
 
 우주의 지혜의 바다에 빠져버리고
 처음에는 상제님도 잘 몰랐습니다. 그 전에는 한번도 神이라든지, 종교를 몰랐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 따라서 절에 몇 번 간 것이 전부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다이제스트 개벽』책을 다 읽었습니다. 제일 기분이 좋았던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환단고기』에서 본 내용과 똑같았습니다. 그게 너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책도 읽게 되었고 그러면서 증산도가 저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신앙 초기 『이것이 개벽이다』 책을 읽고서 정말 많은 감동과 충격을 받았고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 속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었습니다. 그저 철없는 개구쟁이 소년이었던 저는 정말 우주의 지혜의 바다에 빠져버렸던 것입니다.
 
 『증산도의 진리』, 『대도문답』, 『강증산과 후천개벽』 등등, 그 당시 나왔던 책들을 읽으면서 증산도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정말 그때의 독서가 지금까지 제가 증산도를 신앙하고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사상신앙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지금의 포교정책이 개벽책 세일즈를 통한 포교대세몰이입니다. 저는 그걸 절감을 합니다. 저 또한 그게 신앙의 가장 큰 힘이 되었으니까요. 물론 저의 인도자님과 도장의 여러 성도님들의 은혜와 도움도 컸습니다. 제가 힘들 때, 고비 때마다 늘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 다리 아프다고 꼭 오그리고 앉아 있으면 못쓰고 자꾸 걸어봐야 하며, 일은 해 봐야 하고, 무서워서 못하는 것은 장부가 작아서 그러느니라.
  내 목숨을 생각지 않아야 큰일을 하는 것이며 큰일을 하는 사람이 작은 일을 생각하면 뜻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道典 5:269:7~8)
 
 
 도장살림의 주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천하사의 발걸음을 걷는 것
 제가 이곳 부산 온천도장에 내려온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갑니다. 대포 부포정이라는 큰 보직을 처음으로 맡으면서 그 동안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우리 대포 가족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막 스쳐갑니다. 아쉽고 후회되는 기억들이 있어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내가 잘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감이 가슴을 후벼팝니다.
 
 정말 일은 해보아야 합니다. 보직을 맡기 전에는 아무리 신앙을 잘해도 결국 개인신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직을 맡고 도장살림살이의 한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상제님의 천하사의 치천하 50년공부에 본격적인 걸음걸이를 한 발짝 내디디는 것입니다.
 
 저 자신 또한 그랬습니다. 나의 고민이 아닌 우리 도장가족들의 문제 때문에 같이 기도하고 수행하면서 나 자신의 무능함을 많이 느끼고 자탄도 했습니다. 내가 좀더 능력이 있었으면 저걸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좀더 공부하고 태을주 한번이라도 더 읽고 기도 한번이라도 더 하게 됩니다.
 
 그래도 우리 지역 대포가족들이 저를 믿고 함께 했기에 저도 오늘 이 순간까지 여기에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우리 대포가족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그들을 교육하고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사나이 부산대의 노민수 수석포감, 동의대의 분위기 메이커 김정선 수석포감, 천하사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김혜숙 성도님, 우아하면서도 강력한 부산대 써클장 성주희 성도님 등. (나머지 가족들이 이름 안 불렀다고 섭섭해하지 마세요, 덕은 음덕이 크고, 너무 큰사랑은 보이지 않는 법이랍니다.)
 
 
 하면 꼭 됩니다!
 언제부턴가 화두로 삼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서전서문의 ‘득기심得其心이면 즉도여치則道與治를 고가득이언의固可得而言矣리라. 바로 그 마음을 깨면 도와 다스림을 진실로 말할 수 있으리라.’ 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증산도의 신도이며 천지일월 부모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대행하는 일꾼들입니다. 천지일월의 꿈과 이상을 우리가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지일월의 그 마음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상제님께선 “천지만물이 일심에서 비롯하고 일심에서 마친다”고 하셨습니다. 태사부님께선 “상제님 사업은 일심을 가짐으로써만 할 수 있는 일이다”고 하시고, 사부님께선 “일심은 천지일심이다” 고 하셨습니다. 천지일월은 일순간도 쉼이 없습니다. 아무런 사심없이 그 찬란한 빛을 천지만물에 던져줍니다. 그 마음을 얻었을 때 진정한 상제님의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고, 그리하여 치천하하는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의 진정한 일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과가 한여름 태양 빛을 듬뿍 받아서 빨갛게 익어가듯이 아직 철부지인 저는 두 분의 도훈을 들으면서 조금씩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 크신 은혜에 보답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우리 대포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비록 오늘 이 순간 비바람 불고 폭풍우가 치더라도 저 하늘에 해와 달은 그 구름 뒤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열어 그 일월을 가슴 깊이 안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어두움이 우리 앞길을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함께 손을 잡고 동남풍을 불립시다.
 
 하면 됩니다. 하면 꼭 됩니다!
사상과 행동으로 무장한 부산 온천도장 대학생포교부
 
 노민수(25세) / 대포 수석포감 겸 교정/ 도기 126년 12월 18일 입도
 
 반갑습니다. 온천도장 대포 수석포감과 교정으로 봉직하고 있는 노민수입니다. 저는 개인적인 신앙고백보다는 저희 부산지역 대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온천도장은 각 개인의 역량과 포교활동력이 우수한데, 특히 저희 대포의 경우 작년 한해동안 열심히 활동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현재 저희 대포는 겨울방학 동안 사상신앙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더불어 개벽책 홍보활동을 벌이면서 행동신앙의 자신감도 키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조직도 탄탄하게 갖추어져 그야말로 계미년 대세몰이를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이제 3월 신입생 맞이를 통해 사오미의 마지막해인 계미년 대세를 확실하게 불러일으킬 것을 것입니다.
 
 그 동안 저희 대포가 공부하고 활동했던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겨울방학동안 진리책 공부와 우주변화원리 VOD시청
 올 겨울 방학은 『증산도의 진리』책 공부를 중심으로 하여, 진리의 맥을 잡았습니다. 1월 본부의 진리책 교육에 맞추어서 2002년 12월 31일날 모여서 밤새워서 진리책 맥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본부 진리책 교육 이후, 다시 모여서 진리책을 정리하는 등 3번의 반복으로 진리책의 맥을 잡았습니다. 그리하여 포감과 부포감까지 진리책 강독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월 한달 동안은 사부님께서 하명하신 우주변화원리공부를 통해서 우주관의 심화와 종통맥에 대한 인식을 깊이 있게 다졌습니다.
 
 
 대포의 지하철홍보
 처음 시작된 홍보, 포교군령에 맞추어서 지하철 개벽책 홍보를 실시하였습니다. 두 차례 지하철 개벽책 홍보를 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지하철 홍보를 통해 누구에게나 상제님 대도진리를 선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대중들 앞에서 진리전달의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홍보 때 15권을 판매했고, 두 번째 홍보 때는 5권을 판매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개벽책 판매는 언제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힘찬 3월을 준비하며 조직정비
 이성훈 대포 부수호사님이 부산지역 부수호사님으로 내려오시면서 우리 대포는 더욱 조직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대포 부포정과 수석포감을 보필하며 스텝조직 격인 수석총무, 수석교육, 수석재무, 수석홍보를 짜고, 제대로 된 조직의 모습을 가지고 3월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업무가 한두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던 것을 구성원 모두가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됨으로써 인재 양육의 체계적인 틀을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포교의 맥과 핵심
 계미년에는 사부님께서 “전신도가 육임을 짜라”고 하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포교의 맥은 바로 사부님께서 올 초에 말씀하신 도공의 네 가지 <1.교법 2.행법 3.인사 4.전략>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태사부님, 사부님께서 수행을 강조하시면 수행만 하고, 교육을 강조하시면 교육만 하는 그런 우를 범해선 안됩니다. 태사부님 사부님께서는 현재 우리 일꾼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고 말씀을 통해서 지적을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에 보면 ‘리비히’의 <최소량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 원소가 부족하면 그 부족한 만큼밖에 성장이 안 된다는 법칙입니다. 내가 교법에 자신이 있는데, 행법은 거의 0점이다. 그러면 그 0점만큼 밖에 포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역시 내가 행법은 100점인데, 교법이 10점이라면 그 10점 밖에 포교가 안됩니다. 또한 아무리 교법과 행법이 뛰어나다 한들, 인사능력이 10점이면 10점 밖에 포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네 가지의 균형적인 성장이 필요하고 또한 그것은 바로 일꾼의 마음, 의지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일심만 가지면 못 될 일이 없나니 일심 못함을 한하라.” (道典 8:29:2)
 
 바로 이 일심을 한 쪽에 치우치지 말고 4가지를 항상 각골명간하여 얼마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하루하루 상제님 천하사에 임하느냐에 따라서 일꾼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미년은 양의 해입니다. ‘의(義)’ 라는 것은 양 밑에 내가 서있는 것! 상제님 진리 밑에 내가 제대로 서는 것이 의(義)라는 뜻이겠지요. 의기충천한 마음을 가지고 계미년 한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구합시다!

진리의 봉사, 생명의 봉사를 하리라!
 
 성주희(24세) / 부산대 써클장 / 도기 129년 11월 19일 입도
 
 증산도를 하면서 달라진 어머니
 저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어머니의 인도로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큰 이모(청주 우암도장 안순원 신도)의 인도로 그 해 5월에 입도하여 신앙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을 하면서 달라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앙을 하기전보다 모든 면에서 자신감 있고 확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종교에 너무 심취해 있는 건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저는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며 그렇게 일년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정말 하고 싶었던 방송부 활동을 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학교 친구들과 지내는 게 좋아서 어머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겨울 방학이 되면서 어느 순간 어머니가 신앙하고 있는 ‘도장’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때 어머니가 저를 위해서 정성수행을 하고 계셨다는군요. 그렇게 도장에 방문하게 되어 수행과 진리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증산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어렸을 적부터 저는 언젠가 지금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증산도 교리를 통해 구체적으로 ‘개벽’에 대해서 알고나니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란 생각이 들어 자연스레 앞으로 개벽기 때 사람을 살리는 천명을 받는 입도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입도를 하기 전부터 저는 <딥 임팩트>와 같은 재난 영화를 보면서, 정말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비로소 그 눈물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신앙의 첫걸음을 내딛고, 초발심의 열정으로 친구들을 도장에 데리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정성 부족으로 입도로 연결되진 못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온천도장은 수렴할 수 있는 여건이 아주 좋으나 그 때만해도 23평 남짓의 작은 공간에 대상자들을 수렴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상주자방, 부엌, 사무실이 한 공간에 있었으니까요.
 
 결국 서일수 포정님과 여러 성도님들의 눈물겨운 정성으로 인해 이곳 온천도장으로 이전하게 됐는데 도장에 올 때마다 우리 온천도장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신앙에서 얻은 두 가지 보물
 제게는 신앙을 하며 얻은 두 가지 보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껏 거의 빠지지 않고 받아온 ‘증대교육’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도훈을 받듣고 깨지는 그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나태했던 신앙을 참회하고 새롭게 의기를 다지는 ‘갱생’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증대교육을 마치고 대전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시간은 신앙의 의지를 다지는 또 하나의 소중한 시간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불빛 속에 섞여있는 저 많은 사람들이 개벽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습니다.
 
 한번은 꿈을 꿨는데, 그날이 증대 교육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기차표를 끊어놓고 단꿈에 젖어 쿨쿨 자고 있는데 증대 교육을 받고 있는 성도님들의 모습이 보이는 겁니다. 다들 태사부님 사부님 말씀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태을주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안 오나!” 하는 질책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는데 시계를 보니 기차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깨지 않았다면 기차를 놓칠 뻔했죠. 아마도 신명님들이 깨워주신 모양입니다. ^^
 
 또 하나의 보물은 바로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도훈을 적은 ‘노트’입니다. 노트가 한 권, 두 권 쌓일 때마다 그에 비례하여 신앙에 대한 자신감도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태사부님 사부님 어투를 그대로 따라 적으며 힘이 들 때 펼쳐보면 그때 음성 그대로 귓가에 울려 다시금 의식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동아리 성장의 비결
 이렇게 근본 신앙을 다지며 저는 3학년 2학기부터 부산대학교의 써클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내가 과연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부득기위(不得其位)면 불모기정(不謀其政)이라’ 그 자리를 얻지 못하면 그 정사, 즉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태사부님 말씀처럼 진정으로 내가 사람을 살리고자 한다면 선두에 서서 천하사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워졌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대학교는 금정산 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학교가 워낙 커서 홍보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면도 있지만, 오히려 역으로 한번 홍보를 하면, 대대적인 홍보를 할 수 있습니다. 부산대학교는 이른바 ‘명문대학’이라고 자부합니다. 세속적인 개념의 명문대학이 아니라 유달리 부산대 출신의 수호사, 포정님들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또 굳이 수호사, 포정님이 아니시더라도 신앙의 모범이 되시는 선배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신앙에 있어 좋은 선배와 동지들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1년 반정도 써클장을 하면서 느낀 것은 ‘살림살이’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누수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써클에 책이 몇 권이 구비되어 있는지, 대상자가 방문을 하면 따뜻한 차를 대접할 수는 있는지, 청소는 제대로 되어 있는지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챙길 때 비로소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또한 써클의 기운을 돌리기 위해서는 아침수행이 필수적입니다. 동아리방 아침 8시 수행이 정착되자 실제로 대상자가 하나 둘 생겨나고 기운이 붙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완전히 자리잡은 건 아니지만 올 계미년 학교 성장은 이러한 수행 기운을 바탕으로 돌릴 것입니다.
 ‘기도’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구역원을 위해서 혹은 대상자를 위해서 심고를 드리면, 그 날은 꼭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동아리방 일지’ 일명 ‘써클 신앙 고백서’를 매일매일 기록하여 역사를 남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것들을 꼼꼼히 점검하고 챙겨나갈 때 써클에 대한 역사의식이 생겨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게 됩니다.
 
 학교에서 몇 번의 행사를 치뤄봤지만, 실제로 개척 포교를 바탕에 깔지 않는 행사는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개척포교는 현장에서 나의 모든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꾸준히 개척포교를 하다보면 그 사람들이 결국은 나의 인맥이 되어 나중에 한꺼번에 따담을 수 있는 ‘속육임’이 정해집니다. 내가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을 상제님 진리로 인도하는 것도 크나큰 보람이지만, 내가 잘 모르던 사람을 상제님 진리로 인도하여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도 또 다른 보람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리의 봉사, 생명의 봉사
 계미년을 맞이하여 저에게 소망이 있다면 우리 학교 구역원들이 육임을 짤 수 있도록 최대한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봉사요, 생명의 봉사를 말입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매서운 겨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계를 이어가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저렇게 고생을 하는 분이 있는데 후천 오만년 비전을 가져다주는 진리 사업, 뿌리 사업을 하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더 이상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나서자!!!
 
 ‘오늘 나는 천지대업을 위해 진정 최선을 다하였는가’ 하고 순간순간 마음을 다잡으며 증산도와 인연있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도 진리를 전해 반드시 부산대학교에 진리의 푯대를 꽂으리라 다짐합니다.
근본신앙을 지켜나가며 천지에 일조하는 일꾼으로
 
 박지현(28세) / 부산북부지역 청포 부포정 / 도기 125년 1월 24일 입도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문득 버스 간 창문 밖을 내다볼 때나, 어쩌다 바라본 내 손등을 보면서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와 생명의 신비에 대해 경이로움을 많이 느꼈었습니다. 그 당시 이 세상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누군가에게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 분은 생장염장(生長斂臧)이라고 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너무도 당연하고 시원스럽게 느껴졌었습니다.
 
 학창시절 들었던 미륵불 강세 소식
 중학교 시절은 처음으로 미륵의 존재를 알게 된 때였습니다. 혼자 제 방에 있는데, 문밖에서 어머니와 집에 놀러오신 어떤 아주머니간의 대화소리가 들렸습니다.
 
 부처가 계속 오는데, 석가는 지난 부처고 앞으로 미륵부처님이 오신다는 것, 그리고 그 미륵불이 올 때가 우리가 사는 이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가 제 귀에 쏙 들어오면서 ‘새로운 부처가 오면 당연히 그 부처를 만나야 되지 않는가? 어떻게 그 부처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혼자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입시의 부담 속에 그야말로 현실 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인생의 문제, 실존의 문제 등 풀리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특히 많은 고민에 쌓여 살았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늘 품고 다녔으며, 죽기 전에 내 존재의 목적을 깨닫고 죽는다면 참으로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었고, 잘못한 일을 저지르면 하느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의 가슴에 희망과 정신적인 힘을 불어넣어 준 예수, 공자, 석가는 이 세상에게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그들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부러움과 존경, 그리고 내겐 정작 그와 같은 능력이 없음을 안타까워도 했습니다.
 
 그러다 먼저 대학에 간 오빠로부터 운동권 사상을 전해듣고, 이 세상의 의롭지 못함, 모순과 부조리에 많은 분개를 했습니다. “나는 내 개인의 성공을 위해 살지 않겠다”던 오빠의 다짐에 감동을 받았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증산도는 참진리구나!
 그러다 95년에 대학에 입학하고, 우연히 설문지를 작성했던 것을 계기로 증산도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들은 내용이 바로 어릴 적 들었던 이 우주에는 우주일년 사계절이 있고 생장염장으로 순환한다는 이치였습니다. 그 한 문장의 말을 듣는 순간, 너무도 속이 후련하고 신선한 진리여서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상제님의 어진을 접하면서도 지난 동안 참 많이 그리워했던 하느님이란 분이 저렇게 생겼구나 하는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또한 그분이 미륵불이며, ‘예수, 공자, 석가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냈다’는 그 말씀에서 지난 시간동안 내가 꾸어왔던 꿈이, 허황된 공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이상적인 진리가 존재하며 또 내가 그 진리를 만났음이 기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학년 학기 초 어느 날, 대학생들의 데모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이 세상은 왜 저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지나가던 증산도 선배가 다가와 상극의 자연이치를 설명해 주었고, 그 말에서 증산도가 참진리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여러 보직을 거치며 힘들지만 열심히 활동하면서
 1학년 1학기를 마감할 즈음에 증산도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다른 동아리 활동은 어느 정도 정리하고, 차차 증산도 보직을 맡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심각한 가정문제에 부딪치게 되었고, 또한 힘겨운 대포 간부생활도 시작하였습니다.
 
 97년 가을에는 부산대 상임포감으로, 98년에는 부산·울산 지역 대포 수석포감 보직을 맡으면서 도장 상주를 시작하였습니다.
 
 부모의 기대를 져버리고 증산도 간부생활을 하는 저를 보며 어머니는 이성을 잃으며 우셨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개인의 성공을 위한다면 부모님의 눈물 앞에서 증산도를 포기하겠으나, 이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므로 내겐 선택권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 때문에 저도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당시엔 활동을 꾸려나가는 것도 힘겨웠습니다. 보직 상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었고 신앙문제로 인해 가정에서 용돈을 받을 수는 더더욱 없었기에, 함께 했던 대포 가족들과 밥 한 그릇 시켜놓고 한둘씩 나눠먹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마저 제대로 못 챙겨먹을 때도 많아서, 세상에 힘겹게 사는 사람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일들이지만, 아직 어린 마음에 감당이 안될 땐 엄마 생각하며 많이 울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5년 동안 대포활동을 하다 2000년 2월 서일수 포정님이 “그지없이 순수한 청소년들이 개벽기에 아무 것도 모르고 죽게 된다”고 말씀하셨을 때,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청포 포감을 시작하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뒤 지금은 부산 북부지역 청포 부포정을 맡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때, 참일꾼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부푼 꿈에 세상이 모두 나의 것처럼 느껴졌고, 나의 정신으로 세상을 크게 한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뒤돌아보면, ‘이 세상은 번쩍 들어올리기엔 참으로 무겁다’ 는 한탄이 스며들곤 합니다.
 
 그러나 이젠 시련의 이치가 몸으로 조금씩 느껴집니다. 한가지 어려운 일을 경험하면 그 동안 몰랐던 새로운 지평이 열립니다. 학창시절 참 많이 존경했던 스승이 있었는데, 제게 “惡을 아는 善人이 되라”, “큰 꿈을 가지면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전에서 상제님께서 “나는 독(毒)함도 천하의 독을 다 가졌고, 선(善)함도 천하의 선을 다 가졌다” (道典 8:35:3), “목숨을 생각지 말아야 할지니 작은 일에 연연하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道典 8:14:2) 하신 말씀을 보았을 때, 참으로 크게 와 닿았습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극복하고 상제님 일을 이뤄나갈 때 비로소 성웅이 겸비하며, 부드러움을 고귀하게 여기는 참 된 천하사 일꾼의 자질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세속에 물들지 않고 도를 닦고 있는 자신이 대단하고 장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 이 증산도를 만나, 지금껏 이뤄놓은 것이 한가지도 없고, 대신 크고 작은 죄악만 지은 것 같아 못나고 한심스러울 때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외수 소설 『외뿔』에 나오는 물벼룩과 동병상련의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을 정도입니다.
 
 이제 계미년의 대세가 남았습니다. 일심을 가지지 않아 장상신이 응하지 않았다는 상제님의 말씀을 더욱 새기고, 참주인이신 태사부님 사부님을 평생에 만났음에 그 은혜를 겸손히 받아, 진실로 해바라기 같은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지금의 제 자신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갈수록 초발심을 잃어가는 듯 해서 위기감이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거듭 거듭 근본신앙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이 시대 청소년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데 일조 하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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