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유어사(生由於死)

2010.03.11 | 조회 1628
안병우(충북대교수)

우주 간에 살아있는 모든 만물은 반드시 죽는다. 그렇지만 죽음을 좋아하는 생명체는 그 어디에도 없다. 살고자 하는 것이 생명체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고등한 생명체의 대부분은 생명의 이중성을 띠고 있다. 물질적으로 보면 내 생명은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세포들이 살아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 세포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세포들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자에서 소화와 흡수를 담당하고 있는 세포나 피부에 있는 세포들은 수명이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고 있다.

세포들이 많이 죽으면 내 목숨이 위태로워야 할 텐데 사실 나는 더 건강하게 산다. 왜 그럴까? 새로 태어나는 세포는 일정한데 **야 할 세포들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으면 더 큰 생명인 내가 죽게 된다. 암이 바로 그런 질병이다. 암세포의 특징은 다른 정상 세포보다 수명이 무척 길다. **야 하는데도 죽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이 암세포이다. 암세포를 보면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삶은 죽음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잘 **야 잘 산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생명체의 기본 원리이다.

그러면 이것이 세포차원에 국한되겠는가? 사람도 똑같다. 암세포처럼 혼자 잘살려고 하면 사회전체가 병들거나 죽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돈 버는 데만 눈이 멀어 온갖 불법과 악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와 아집이 우리 사회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좋은 세상을 원한다면 세상을 위해서 내가 죽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희생과 봉사요, 상생과 보은(報恩)의 마음이다. 죽음과 삶의 질서 속에는 이러한 상생의 원리가 깃들어 있다.

증산상제는 “나의 도는 상생(相生)의 대도이니라.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善)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도전2편18장)”고 말했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는 ‘나’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우주는 그 ‘나’를 ‘남’과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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