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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언어습관, 소통유감有感

2017.02.09 | 조회 1012 | 공감 5

상생칼럼 | 청소년들의 언어습관, 소통유감有感

안창호 수호사 / 인천주안도장

“셤 때문에 엄마가 전화와서 심쿵했어.”
“이번 셤 솔까 개짱 났음. 이러다 대학 입학 광탈할 것 같아..”

요즘 청소년들끼리 나누는 대화의 일부이다. 위의 문장을 해독(?)할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필자 역시 위의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100% 이해를 하지 못했다. 정확한 의미는 “시험 성적 때문에 엄마한테 전화 연락이 와서 심장이 두근거렸어. 이번 시험 솔직히 너무 어려워서 짜증이 났고 대학 입시 시험에서 불합격 할 것 같아” 라는 뜻이다.

최근 조사를 보면 일상 생활에서 중고생의 96%가 대화중에 비속어卑俗語를 사용하고, 그 빈도는 평균 1분에 한 번꼴이라고 한다. 욕설을 사용하지 않으면 대화가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욕 배틀’이라는 게임을 하면서 누가 얼마나 많이, 얼마나 센 욕을 하는지를 따지기도 한단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욕설의 의미를 정확히 모른 채 습관적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올바른 언어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 옛 조상님들은 아이들을 꾸짖을 때에도 ‘알쌍할 놈’, ‘네 이 급제할 놈’이라 하시어 욕에도 덕을 붙이셨다. 여기서 알쌍할 놈은 알성謁聖 곧 성인을 만날 만큼 학덕이 높은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다. 흔히 썼던 ‘데끼 이놈’도 ‘대기大器할 놈’(크게 될 놈)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렇게 욕이나 말에 덕德을 붙이는 것은 말이 씨가 되고 에너지가 되어 종국終局에는 사람의 마음과 몸을 변화시킨다는 이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언덕言德을 붙이는 것은 차치且置하고서라도 우선 청소년들에게 비속어의 정확한 의미와 함께 언어와 인성人性의 관계, 쓰지 말아야 할 금칙어禁飭語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을 가르쳐 주어야 하겠다.

몇 년 전에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할 때였다. 카운터에서 근무하던 학생이 물건값을 계산하고 “3,500원 나오셨습니다.”라고 해서 웃음이 터지려했던 것을 겨우 참은 적이 있다. 존칭은 인격人格에 하는 것이지 물격物格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언어세계는 그야말로 별천지別天地이다. ‘뚜껑 열린다’(엄청 화난다), ‘작살이다’(파격적이다), ‘짱나다’(짜증나다), ‘냉무’(내용이 없다), ‘ㄱㅅ’(감사합니다), ‘ㄴㄴ’(no no 아니다), ‘노잼’(no+재미, 재미없다), ‘존잘’(엄청 잘생겼다) 등의 말이 일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정도면 기성세대들에게는 새로운 외국어의 탄생쯤으로 느껴질 것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언어는 욕설, 은어隱語, 비속어卑俗語, 축약어縮約語, 신조어新造語의 사용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문법이나 존칭어 사용에도 문제점이 많다. 요즘에는 인터넷 문화와 스마트폰을 활용한 SNS 문화가 더욱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청소년들과 기성세대의 언어가 같을 수는 없다. 기성세대와 달리 청소년들은 학교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언어를 다양하게 표현하며 재미를 더하는 것이 그들만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청소년들에게서 우리 국어가 가지는 고유한 언어예절을 지키려는 의식을 찾아보기 힘들고, 기성세대와 의사소통이 어려운 고유한 그들만의 언어가 너무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그들만의 언어는 기성세대와의 의사소통 부재를 낳고, 이는 세대간의 단절, 나아가 국민통합의 저해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잘못된 언어습관은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일까? 어느 대학교수는 이러한 청소년 계층의 언어문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현대인들은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자기 감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노출시키기 위해 다양한 언어(신조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특히 10대 청소년들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입시 스트레스와 부모에 대한 반발, 사회 권위에 대한 도전, 억압된 정서나 감정의 발산을 은어, 비속어 같은 그들만의 언어로 표출한다. 이로써 또래 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간의 동질감을 형성한다”고 분석한 바 있는데, 이는 매우 적절한 진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의 언어문제에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도전 9편 180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성구가 있다. 하루는 한 시골 아낙이 그의 자식을 나무라며 온갖 욕설을 퍼붓거늘 상제님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시기를 “자식을 기르는데 스스로 빌고 바라는 바가 저와 같으니 욕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니라.” 하시며 “구덕口德의 박함이 이와 같으니 무슨 복이 찾아들겠느냐.” 하고 경계하시니라. (도전 9편 180장)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말들은 고스란히 아이의 몸과 정신에 그대로 프로그래밍이 되고, 그렇게 형성된 프로그램은 나중에 아이의 삶에 그대로 표출되어 드러나게 된다. 아이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그 의미대로 아이의 삶을 프로그램화하는 것이자 아이에게 저주詛呪의 주문呪文을 외우는 것과 같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일거수일투족 자체가 본보기이자 스승이므로 가정 교육의 절대성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또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해서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인생을 배우며 성장하게 된다. 결국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에 기성세대들은 무한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녀들의 언어생활에 대해 우리 기성세대는 너무 안일한 자세로 대해왔다. 언어예절에 대한 교육은 물론이고 언어규범으로부터의 일탈 또한 사실상 방관해왔다.

이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세대와 기성세대들의 과제를 생각해보자. 먼저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면밀히 관찰해보고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해서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자식들에게 올바른 본보기가 될 것을 다짐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유아기의 자녀가 어느 순간 자신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대부분 충격 속에서도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이처럼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항상 부모된 입장, 스승된 입장에서 마음가짐과 몸가짐에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언어는 그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지금 청소년세대들의 언어는 저급低級하다. 그들이 이대로 자라 나중에 기성세대가 된다면 그때 우리 사회의 문화 수준 역시 하위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의 언어 문제는 더 이상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상제님께서는 “너희들의 말과 행동은 천지에 그려지고 울려퍼지느니라.”(도전 8편 28장)고 하셨고, 또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도전 3편 97장)는 말씀도 남겨주셨다. 곧 언어는 인간들의 마음에서 천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모든 언어는 그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염원念願하는 주문과 같다. 우리 모두 언어의 소중함을 크게 깨달아야 한다. 올바른 언어 습관을 통해 서로 아름답게 소통하고 나아가 천지와도 소통하는 태일太一의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월간개벽 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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