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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을 겪는 도생들에게

2017.04.06 | 조회 1373 | 공감 1



이문록 / 교무도군자, 상임수호사, 서울강남도장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난관과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쯤 왜 그런 삶을 사는지 의문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 내려올 때는 반드시 자기가 완수해야 할 목적目的을 가지고 옵니다. 그 목적은 나를 완성完成시키는 것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법칙으로 연기와 같이 사라지는 색신色身(몸뚱이)이 아니라, 무변광대한 천지와 더불어 영원한 생명성生命性을 회복하고, 과거와 미래를 통관하는 광명光明의 존재인 법신法身(본래의 참모습)을 되찾는 데에 내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다 쓸데가 있나니 천황天皇에서 짚자리 뚝 떨어질 때 ‘너는 천하를 위해 뭐 돼라. 너는 뭐 돼라.’ 하고 타고 나느니라. 팔도 사람 모이는 것도 다 이치가 있어서 되는 것이니라.” (증산도 도전 8:9:7~8)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생물학生物學에서 말하는 최소最少의 법칙法則이 적용됩니다. 


최소의 법칙(Law of Minimum)이란 ‘필수 영양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내려온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내 ‘영혼’을 담는 그릇인 육체를 통해서 어렵고 험난한 성장통을 겪어야 하는데, 그것은 나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過程입니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체험體驗을 통과의례로 삼아서 우리는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삼계대권을 주재하시는 상제上帝님(하느님)께서는 ‘고통’이라는 보자기에 싸서 ‘은총’이라는 선물을 내려 주십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반드시 두 가지 이유理由를 깨달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해원解寃입니다. 

내가 겪는 고통이란, 전생과 이생에서 나의 조상과 내가 알고 또는 모르고 지은 행위로 인해서 원한이 맺힌 신명神明이 나에게 붙어서 앙갚음하는 것입니다. 


맺힌 원한을 푸는 해원의 과정으로서의 보복인 것입니다. 

원래 인간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亂法을 지은 뒤에 진법眞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거짓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臨監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아 사정邪正을 감정케 하여 번갯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 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심장과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 (도전 4:32) 



이 말씀처럼 우리 인생은 가슴에 응어리진 원한을 풀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 보복을 받음으로써, 내가 그 고통을 겪음으로써, 비로소 척隻을 갚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우리의 운수運數가 새로 열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붙어 있는 척신을 해원시켜 줌으로써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자신이 맡은 본연本然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해원解寃은 완전完全한 인간人間이 되기 위한 필연必然의 과정이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겪고 있는 고통스런 하나하나의 사건事件과 상황狀況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명으로 받아 온, 나만의 개성 넘치는 그릇을 완공시키는 데 필요한,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공우가 상제님을 종유하기 달포 전에 천원 장에서 예수교인과 다투다가 가슴에 큰 돌을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한참 기절하였다가 일어난 적이 있는데 이 때 수십 일 동안 치료를 받고 간신히 다니기는 하나 아직 가슴에 손을 대지 못할 만큼 크게 고통스러우므로 이를 상제님께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전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死境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잘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몸이 나은 뒤에는 가해자를 찾아서 죽이려고 생각하나, 너 때문에 죽을 뻔하였던 자의 척隻이 그 예수교인에게 붙어서 갚은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가 다행이라. 네 마음을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낫게 되리라.” 하시니라. 

공우가 이 말씀에 크게 감복하여 가해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풀고 ‘훗날 만나면 반드시 잘 대접하리라.’는 생각을 두니라. 수일 후에 천원 예수교회에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서 대전도회를 연다.’는 말이 들리거늘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열두 고을 목사가 움직였노라.” 하시더니 그 뒤 사흘 만에 공우의 상처가 완전히 나으니라. (도전 3:188) 



이상의 인용한 말씀을 잘 읽어 보면, 현재 내가 고통을 겪고 있는 사건과 상황이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와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정녕 신기神奇하게도 그런 사건事件과 상황은 다시는 내게 일어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난날의 무거운 업을 벗어던진 만큼 나의 그릇은 현재보다 더 많은 양量을 담을 수 있도록 커지는 것입니다. 즉 내가 태어나 완성할 목적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나에게 고통을 겪도록 만들어 준 가해자에게 은인과 같이, 선생님 같이 대우를 잘 하여야 하는 소이연所以然이 있는 것입니다. 


그 고통은 상제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앞면입니다. 

과거에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복이 세 가지 있나니, 그것은 일복福과 욕복辱福이요, 그리고 고생복苦生福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러한 뜻일 것입니다. 더구나 상제님께서는 마스터 키Master Key인 태을주太乙呪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연한 걱정과 근심을 버려야 합니다! 


바르고 튼튼한 길이 없는 게 아니라, 워낙 샛길이 많아 단지 그 바른길을 찾기 어려울 뿐입니다.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건과 상황을 체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나의 정성과 노력 여하에 따라 길게도 짧게도 될 것입니다.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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