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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산다는 것 2부

2019.10.20 | 조회 3575 | 공감 0

책으로 만나는 가을 개벽문화. 게랄드 휘터의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말씀 나누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존엄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 존엄에 대한 인식이 인류사에 뿌리내리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금은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존엄하다고 배우고 있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요.

 

인간 존엄 회복을 위한 두가지

 

Q. 어떻게 해야 인간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A. 지금 받은 질문은 사실 이 책의 결론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결론적으로 말하는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육인데요. 당장 시급한 대책보다는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그린 '빅 쇼트' 같은 영화, 또는 대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신 적이 있을겁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요. 이런 사악한 금융시스템을 고안하고 환경파괴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바로 최고의 대학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이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소위 교양있는 이들이 이런 만행들을 순순히 그리고 강한 확신과 엄청난 동기부여를 가지고 추진해 나갑니다.

 

저자의 말을 한번 인용해 보겠습니다.

 

 

 

 

Q. 현대 사회 교육의 문제점을 잘 지적해 주고 있는 것 같네요.

 

A. 맞습니다. 그래서 대책이 아니라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인간 존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시작하는 교육의 첫 단계는 킨더 가든(kindergarten), 유치원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요. 그러려면 이 아이들이 자라나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이와 연결된 두 번째 결론은 이 아이들이 인간 존엄을 배우고 모방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행동 패턴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인간의 존엄성을 이미 깨닫고 있는 분들, 부모님이나 선생님 어른들이 이제는 행동하고 목소리를 높여 달라는 것입니다.

 

책의 중반부터는 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뇌 과학자로서의 그동안의 연구, 뇌의 가소성이나 모방과 학습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Q. 존엄과 뇌라고 하니 얼핏 봐서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건가요?

 

A. 저자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열역학 제 2법칙'을 가지고 옵니다. 이 법칙은 에너지가 자연의 모든 현상에서 고르게 분배된다는 논리인데요.

 

예를 들어 물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확산되어 나가죠. 결국 종국에는 완전히 잉크 물이 될 것입니다. 이대로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려면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질서를 만드는 자기조직화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즉 무질서를 낮춰야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고, 이 자기 조직화의 능력이 뛰어날 수록 생존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이 말은 마치 인간이 수행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과도 비슷합니다.

 

 

 

Q. 수행의 원리와 생명유지에 원리가 비슷하단 말씀이시죠.

 

A. 그렇습니다. 저자는 뇌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합니다. 우리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에도 우리 몸에서 에너지의 20%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하고 고민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뇌는 단순화하고 자동화하려고 하는데요. 뇌는 하나의 표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행동의 패턴을 만들고 행동을 조정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사고 방식, 또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한 개인이 지닌 삶의 태도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해온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 집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고 방식이나 태도가 우리 뇌의 뿌리내린 내적 표상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인데요. 이 내적 표상을 바로 '자아상'이라고 말합니다.

 

넓은 의미로 자아상이란 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결정하는 개념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야. 내 삶의 방향은 어디야. 나는 이런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이렇게 결정할 거야' 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변할 수 있는 존재

 

Q. 자아상을 정하지 못해서 혼란스럽거나, 서로 다른 자아상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겠네요?

 

A. 그렇죠. 하지만 인간의 뇌는 매우 개방적이고 다양한 상황에서 이런 충돌을 일으키는 과제와 마주쳤을 때, 변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가 인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죠.

 

이것을 일상의 문제로 가져와 보면, 우리가 실패를 겪었을 때 또는 나와 전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때, 지금까지의 나의 사고방식이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나의 자화상이 어떠했든 사람은 누구나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Q.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는 유전자 수준에서는 이타주의는 악이고 이기주의는 선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기주의의 산물이라고 하는데요. 그 책에서 주장하는 것과 이 책에서 말하는 뇌의 가소성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저자 또한 2,30년 전만 하더라도 생물학자로서 생존과 번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합니다. 먹고 먹히고 번성하고 멸종하고, 힘이 세고 가장 많이 번성하는 개체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이죠.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존재로 낙인 찍던 것이 지난 날 생물학의 인식 체계였습니다. 그런데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던 시대가 지나고, 인간의 뇌가 다변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인간의 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변할 수 있는 가변성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존재라고요.

 

그래서 독일 신문 슈피겔은 게랄트 휘터를 생물학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온 뇌연구자이자 의욕적인 교육자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Q. 뇌의 가소성은 인간의 선에 대한 의지와 변화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존엄을 확립하는데 주요한 요인으로는 또 어떤게 있을까요?

 

A.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다른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중요한 경험을 꼽으라면, 단연코 타인과의 공존을 통해 얻는 경험이다."

 

그래서 존엄을 확립하는데 있어서 부모와 교사, 친구처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보통 아이들은 두 살 때쯤 되면 자아상을 갖게 되는데요. 이건 누구야라고 물으면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고 이건 나야라고 표현을 사용하게 되죠.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는 과정의 모든 경험은 자신의 자아상을 견고하게 하고 확장하고 때론 수정하게 합니다. 한 개인의 내적 표상은 하나같이 유일한 것이며 한 인격의 핵심이 됩니다.

 

나아가서 나와 주변과의 관계성을 파악하게 되는데요. 아이는 자랄 수록 가정에서의 경험이나 타인과의 만남, 또는 그 지역과 문화권 안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현재 자신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또 한국의 사회 문화 풍토 속에 살아가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죠.

 

 

 

Q. 말씀하신 것처럼 존엄과 관련된 인간의 정체성이 경험을 통해서 생기고 강화되는 것이라면 본래 인간은 하늘로부터 존엄성을 부여받았다라고 하는 '천부인권'과는 거리가 있는게 아닌가요?

 

A. 경험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칸트의 예시처럼 인간 존엄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나, 인간 이해의 변천사에 대해서 다루기도 합니다.

 

이 책의 강점은 뇌과학의 연구를 토대로 인간 존엄을 접근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게랄트 휘터는 신경과학자로서 인간 존엄은 태초부터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능력이자 잠재력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디부터 존엄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또 우리 뇌가 그렇게 생겨났다는 것을 그동안의 연구 결과로 설명해줍니다.

 

 

 

Q. 우리의 뇌가 동물과는 다른 인간만의 특징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 되는데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주시겠어요.

 

A. 태어나자마자 일어나 젖을 빨고 뛰어다니는 망아지의 뇌와는 달리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형성되어 있는 신경망이 없습니다.

 

배가 고프고 불편하면 울거나 버둥거릴 수는 있겠죠. 그런데 딱 거기까지 입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면 일어서거나 걷거나 말하기, 그리고 계산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어도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죠.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런 갓난아이에게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미세한 감각을 가지고 태어나더라는 겁니다. 마치 세탁기에 문제가 있으면 빨간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이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너무 많은 것에 무방비로 노출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감각이 형성되는 것은 태어난 직후부터가 아니라 뇌가 생성되는 과정, 즉 어머니의 자궁에서 부터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합니다.

 

 

 

Q.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학습이 일어난다는 뜻이군요.

 

A. 네 맞습니다.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학습이 가능하고 자궁 안에서 경험이 인간 뇌에 자리 잡는다는 것을 확인 해왔습니다.

 

인간의 뇌가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서 정말 중요한 두 가지 기본 경험이 있는데요. 하나는 태어나기 전은 물론이고 태어난 이후에도 최소한 특정 기간 동안은 반드시 해야할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바로 아주 친밀한 소속감입니다.

 

또 하나는 이 소속감을 바탕으로 개인으로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경험, 그리고 자신의 창의력에 대한 경험이라고 해요. 아이들은 자라면서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신뢰 할 수 있도록 도와줄 특별한 만남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설명하듯 인간 성숙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이러한 관계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

 

 

Q. 자신의 가치를 찾고 인생의 방향을 찾는데 있어서 태교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하지만 이렇게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신의 존엄을 인식하고 태어났어도 삶을 살면서 이를 상실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요?

 

A. 그렇죠. 진짜 중요한 얘기인데요. 이 주제는 아이를 가진 부모님이라면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2살 까지만 해도요. 아이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은 그저 축복입니다. 일어나 걷기만해도 온 가족이 박수를 치죠. 혼자 배변을 하면 박수치고 난리가 납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무언가 만드는 행위 자체가 축복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독려와 관심 속에서 무언가를 성공할 때까지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나중에는 심부름을 하거나 참여하기를 바라고 소속감을 원하게 되죠.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자 창조자임을 배우고, 나아가서 타인과 공존하는 삶의 주체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환경 모두가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관심과 사랑을 처음부터 경험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생명의 탄생 자체를 축복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와중에 아이들은 자신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어도 그것을 그저 느끼기만 할 뿐, 왜 그래야 하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한 개인이 갖고 있는 주체성과 존엄성의 위협을 받게 되는 경험들.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할 인간이,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 받을 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놀랍게도 이런 환경에 처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우리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활성화되는 곳과 같은 영역이라고 해요. 말그대로 뇌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인거죠.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고통을 대처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뭘까요?

 

 

 

Q. 혹시 아이들도 어른들이 남에게 상처 받을 때 하는 행동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A. 맞습니다. 따라하기. 바로 상대가 나에게 했던 그대로 타인을 바라보고,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엄마는 나빠. 아빠 싫어. 예전 소속감의 대상이었던 부모를 자신과 똑같은 평가의 대상으로 만드는 거죠. 또 다른 방식은 나는 못해, 스스로 자신은 나쁜 사람입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부족하고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를 타인의 평가 대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차라리 남에게 그런 평가를 받기 전에 스스로 그렇게 하는 편이 덜 고통스럽기 때문인 거죠. 어떤 방식이든 자기 존엄성에 대한 감정과 사고를 스스로 억눌러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Q. 안타까운 마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포함해,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라면 이런 타인에 의한 평가와 경쟁구도를 피하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A. 맞는 말씀이세요. 혹 가정에서 조건없이 사랑을 받는 경험을 한다 하더라도 사회 속에서 언젠가는 타인의 수단이 되는 경험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사실 유치원에서 부터 아이들은 평가를 받고, 학교에서 직장에서 늘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아이들도 스스로 그걸 압니다. 그리고 똑같이 선생님도 평가하고, 직장도 좋은 회사 나쁜 회사, 좋은 상사 나쁜 상사를 평가 합니다.

 

반대로 자신은 무능하고 재능이 없다고 스스로 깎아 내릴 수도 있어요. 심지어 아이들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이상한 아이, 아웃사이더로 평가 받고 따돌림 받는 경우도 있죠.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 자신이 아닌 상품이라든가 외모라든가 재력 등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같은 환경에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 즉 자기 존엄성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존엄함을 인식하는 사람은 자기 가치를 확인 하려는 욕구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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