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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인도 탐방단 보고: 불교 유적지 5편

2020.07.21 | 조회 430 | 공감 0

‘말씀의 증언자’ 아난다Ananda의 숨결이 깃든 유적지, 바이샬리 대림정사


상생문화연구소 노종상 연구위원




대림정사를 떠나기 전에 그 주인공 아난다Ananda(阿難陀)를 생각한다. 아난다―. 줄여서 ‘아난阿難’이라고도 한다. ‘아난다’는 환희·경희慶喜라는 뜻이다. 그는 붓다의 사촌 아우이다.


불전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드로도다나왕droṇodana, 斛飯王·암리트다나 왕amṛtodana, 甘露飯王·수크로다나 왕śuklodana, 白飯王 등으로 기록하였다. 어느 것이 옳은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붓다의 아버지인  슛도다나왕śuddhodana, 淨飯王과 형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붓다가 성도成道하던 날,  드로도다나왕 집안 하인이 슛도다나왕에게 달려와서 “왕의 아우 드로도다나왕이 아들을 낳았다.”고 전하였다. 정반왕이 자기의 일처럼 크게 기뻐하였다. “오늘은 매우 행복한 날이요, 기쁜 날이다.” 그는 막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아난다, 즉 ‘기쁨’이라고 지어 주었다. 


아난은 총명하였다. 한 번 보고 들으면  반드시 기억하여 잃어버리지 않았다. 성장한 후에도, 출가한 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배운 것이 많고 박학다식해서 지혜가 막힘이 없었다.


『경덕전등록』(이하 『전등록』)은 붓다가 “총지聰智에는 아난다가 제일”이라고 칭찬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그는 붓다의 십대 제자 가운데 ‘다문多聞 제일’로 기록된다.


그는 20여 년 간 시자侍者를 맡아 붓다를 모셨다. 붓다의 일거수일투족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았으므로 ‘다문 제일’이 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워낙 출중하게 잘 생겼으므로 여난女難도 많이 겪었던 아난이었으나 그는 좀처럼 흔들림 없이 출가자로서, 수행자로서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가 남긴 업적 가운데 하나는 붓다의 이모 마하빠자빠띠가 출가를 청했을 때 붓다를 설득하여 그녀의 출가를 성사시킨 일이었다는 것은 이미 얘기하였다. 


다른 하나는 불교경전 편찬, 즉 결집結集에 참여하여 후대에 전해지도록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아난은 붓다가 80세에 입멸에 들었을 때, 시자로서 곁에서 지켜보았다. 


붓다가 입멸한 후 부촉제자 마하카샤파Mahākāśyapa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결집이 있었다. 500명의 유능한 비구들이 라쟈그리하Rājagriha 교외 칠엽굴七葉窟에 모였다. ‘결집結集’이 무엇인가. 붓다가 열반한 후 그 교법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제자들이 저마다 들은 것을 외우고, 그 바르고 거짓됨을 논의하며, 기억을 새롭게 하여 정법을 편찬한 일이다. 바로 그런 자리에 붓다 재세 시부터 총지제일, 다문제일로 칭송받았던 아난이 빠질 리 만무하다.


그러나 아난은 칠엽굴 입구에서 돌아서야 했다. 좀 상상력을 더한다면 보무도 당당히 걸어왔건만, 결집 총지휘자 마하카샤파로부터 쫓겨난 것이었다. 참석자들은 어리둥절하였다. 아난이 누구인가? 아난을 제외하고 누가 이 결집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마하카샤파는 단호했다. “아난은 번뇌가 아직 다하지 못했으므로 이 모임에 들어올 수 없다!” 눈물을 머금고 돌아선 아난은 생사결단의 심정으로 소위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였다. 아난은 다시 칠엽굴을 찾아갔다.


이때 가섭이 대중에게 말했다. “이 아난 비구는 많이 배우고 총명하게 지녀서 큰 지혜가 있습니다. 항상 여래를 수행하면서 청정한 범행을 닦았고, 부처님께 들은 법문을 그릇에 물을 옮기듯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으므로 부처님께서 항상 총명함이 제일이라 하셨으니, 이제 그를 청해서 경전을 결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중이 모두 잠자코 있었다. 


가섭이 아난에게 말했다. “그대는 지금 법안法眼을 선포하시오.” 

아난은 법좌에 올랐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如是我聞 一時拂]….”


아난은 경전 말씀의 첫 마디를 그렇게 시작하였다. 어느 한 경전만이 아니다. 아난 자기의 말이 아니라 붓다의 말씀이요, 가르침이요, 법이라는 얘기다. 모든 경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부처님께서는 아무 곳에 계시면서 아무 경을 말씀하셨고, 내지 인간과 하늘 신들이 예를 드리고는 받들어 행하였다. 그렇게. 그렇게. 그 후 아난은 마하카샤파로부터 법계를 이어받아 불교선종 제2조가 되었다. 


지금까지 붓다와 바이샬리, 아난과 바이샬리에 대해 몇 가지 일화를 얘기하였다. 그리고 대림정사를 떠나면서, 아난을 기리기 위해 세운 아난다 스투파를 돌아보면서 다시 붓다와 바이샬리, 아난과 바이샬리의 인연을 생각한다. '오. 바이샬리여. 바이샬리여.' 대림정사를 떠나는 탐방객은 속으로 뇌었다. 아난이 최후를 마친 곳도 바이샬리였다.


『전등록』에 따르면 후에 중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아자타샤트루 왕Ajātašatru이 아난에게 말했다. “존자여. 여래와 가섭과 같은 존귀하고 수승하신 두 스승이 모두 열반에 드셨지만, 저는 일이 많아서 모두 뵙지를 못했습니다. 그러하니 존자께서 반열반에 드실 때에는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난은 허락하였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아난은 생각했다. ‘내 몸은 위태하고 연약한 것이 마치 물거품과 같다. 게다가 늙고 쇠약했으니. 어찌 오래도록 견딜 수 있겠는가.’ 그는 또 생각하였다. ‘그렇군. 아자타샤트루 왕과 나는 약속을 하였지.’ 아난은 곧 왕궁으로 갔다. 


성문 앞에 가서 아난은 말했다. “내가 열반에 들고자 해서 하직하러 왔다.”

수문장이 말했다. “왕께서 주무시니, 아뢸 수 없습니다.”

“왕께서 깨어나시거든 내 말을 전하라.” 말하고 아난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때 아자타샤트루 왕은 잠자리에서 꿈을 꾸고 있었다. 일곱 가지 보배로 장식된 한 보배 일산이었다. 천만억 대중이 둘러싸서 그 일산을 우러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서 일산을 받치고 있던 자루가 부러지고 진기한 보배와 영락瓔珞이 모두 땅에 흩어졌다. 아자타샤트루 왕은 몹시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다. 


그때 수문장이 와서 아난이 왔었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뭐라고 하였느냐. 아난존자가 열반에 들고자 하직하러 왔었다고!

 왕이 소리 높여 통곡을 하니, 그 슬픔에 천지가 감동하였다.


아자타샤트루 왕은 즉시 바이샬리로 갔다. 아난이 강가(갠지스강)의 중류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왕은 절을 하고서 게송(불교적 시의 한 형식)으로 말했다.


삼계의 어른에게 머리 조아려 예배하오니

저를 버리고서 여기까지 이르셨네.

잠깐이라도 자비의 원력願力을 드리워

반열반에 들지 말아 주소서.

稽首三界尊 棄我而至此

暫憑悲願力 且莫般涅槃


그때 바이샬리의 왕도 강가에 있다가 게송으로 말했다.


존자여. 어찌하여 이다지 빨리

적멸의 도량으로 돌아가시려 하나이까.

원컨대 잠시만이라도 더 머무시면서

저의 공양을 받아 주소서.

尊者一何速  而歸寂滅場

願住須臾間  而受於供養


두 왕이 모두 와서 권청하는 것을 보고 아난이 생각하였다. ‘내가 한 나라만을 향해서 반열반에 든다면, 여러 나라에서 싸움이 일어날 것이니 옮지 못하다. 마땅히 평등함으로 모든 유정을 제도해야 마땅하리라.’


말인즉 아난이 그대로 반열반에 든다면, 각 나라에서 그의 사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움이 일어날 것이란 얘기다. 붓다가 반열반에 들었을 때도 싸움직전에 골고루 분배하자는 타협안이 나와 가까스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있었으니까. 


아난은 강가의 중류에서 그대로 열반에 들려고 하였다. 그때 산하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불전에는 크고 상서로운 일이 일어날 때 이런 일이 일어나곤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아난이 풍분신삼매風奮迅三昧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네 몫으로 나누었던 강가(갠지스)강의 밤풍경 


『전등록』은 아난의 최후를 신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난은 즉시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열여덟 가지 변화를 지은 뒤에, 풍분신삼매風奮迅三昧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네 몫으로 나누었다. 한 몫은 도리천忉利天에 봉안하고, 또 한 몫은 사갈라娑竭羅 용궁에 봉안하고, 또 한 몫은 바이샬리 왕에게 봉안하고, 또 한 몫은 아자타샤트루 왕에게 봉안하였는데, 저마다 보배탑을 세워서 공양하였다. 



대림정사 정문을 나오면서 탐방객은 다시 뒤를 돌아본다. 당시 바이샬리 왕이 세운 보배탑은 아니로되, 아난이 반열반에 든 이후 바이샬리 사람들은 뜻을 모아 저렇게 멋진 아난의 스투파를 세워놓았다―비록 아쇼카 왕이 세웠다고 해도 바이샬리 사람들의 뜻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대림정사 곳곳에는 아난의 숨결이 서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 훗날 아쇼카 왕도 그 거룩한 뜻을 알고 스투파는 물론 석주를 세워 아난을 기렸을 터다. 아난다! 여성 출가의 길을 열어주는 공덕도 그렇지만, ‘말씀의 증언자’의 공덕이 얼마나 중요하고 성스러운 일인지를 깨닫게 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오, 참으로 아름다운 바이샬리 대림정사 아난의 스투파와 아쇼카 석주여.



▲대림정사를 나오면서



▲붓다의 십대제자 중 ‘다문제일’인 아난을 기리는 스투파. 바이샬리 대림정사



▲현재 남아있는 가장 아쇼카 석주 가운데 가장 완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대림정사 아쇼카 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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