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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소테릭 하이데거?!(1) - 난해하지만 매혹적인

2020.07.29 | 조회 449 | 공감 0

에소테릭(esoteric) 하이데거?! 1. 난해하지만 매혹적인


상생문화연구소 황경선 연구위원 


‘에소테릭 하이데거?!’란 제목으로 다루려는 얘기는 하이데거에 관한 한 가장 먼저 꺼내도 좋은, 아니 꺼냈어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다. ‘에소테릭’(비의적秘儀的, 신비한, 난해한)은 하이데거에 관해 서구의 또는 서구적 사유에 익숙한 지성들이 보이는 두드러진 반응 중 하나이다.


아마도 하이데거 사유가 뭔가 깊이 있고 중요한 얘기를 전달하는 것 같은데, 기존의 지식과 논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을 표현하는 말이라 싶다. 하이데거에 관한 다음의 언급 역시 그러한 평가의 하나로 간주돼야 할 것이다.


1930년대 말 젊은 물리학자 바이체커(Carl Friedrich Freiherr von Weizsäcker: 1912–2007)는 하이데거를 접하고 나서 이렇게 기록했다.


“이것이 철학이다.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것이 철학이다.” 


나중에 독일의 저명한 물리학자 및 과학철학자가 된 이 물리학도 역시 하이데거의 철학이 확실히 매혹적인데, 그의 말을 쉽사리 종잡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여기서 서구는 유럽, 서구적 사유는 유럽적 사유 그리고 서구 철학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철학을 말한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사유가 서구 전통의 사유와 형이상학, 언어로 학습된 사람들이 보기에 이색적이며 신비하다는 얘기는 곧 ‘비서구적’이며 ‘비유럽적’이란 지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이런 배경 속에서 하이데거 철학을 비합리적이며 무의미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논리실증주의자 카르납(Rudolf Carnap)은 1931년에 발표한 자신의 「Überwindung der Metaphysik durch logische Analyse der Sprache」(언어의 논리적 분석을 통한 형이상학의 극복)에서 하이데거의 무에 대한 사유를 “무의미한 담론의 극단적 경우”라고 ‘극단적으로’ 폄하한 바 있다.


하이데거가 등장했을 때 물론 학계 일부의 뜨거운 반응도 있었지만 그의 사상이 가진 의의와 내용이 제대로 이해되고 평가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하이데거가 자신을 세상에 알린 초기 대표작 『존재와 시간』은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또한 세계 문헌들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책의 하나이다. 심지어 저자 자신도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책을 온전히 이해할 것이라고 여겼다.




프랑스 실존주의의 대표적 철학자 사르트르와 같은 명민한 지성도 그 소수의 독자에 끼지 못한다. 한 일본 왕자의 권유로 『존재와 시간』을 알게 된 그는 그 책에 대한 응답으로 『존재와 무』를 발표한다. 사르트르는 나중에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된 이 책의 여러 곳에서 하이데거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실존철학으로 규정하는 오해 내지 불충분한 이해는 지금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당시 일본이 하이데거에 반응했다. 1920, 1930년대 독일에 유학한 일본 유학생들은 세미나 등을 통해 하이데거와 교류했다. 이들은 대부분 나중에 일본 지성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으며, 특히 이른바 ‘교토학파’라 불리는 학맥을 형성하게 된다.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존재와 시간』을 번역했고 그에 대한 주해서를 출간했다.


또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하이데거를 에소테릭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은 왜 유럽의 지성들이 하이데거를 난해하다고 여기며 그에 주목하지 않는지 의아하게 여기기도 했다고 전한다.


물론 하이데거는 말년에 한 독일인 학자와의 대화에서 일본인들이 과연 자신을 어떻게 그렸는지, 『존재와 시간』의 번역이 어떻게 돼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낸다. 언어의 장벽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는 서구의, 유럽적 합리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일본 지성들이 과연 자신을 옳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 때문이기도 했다. 서구화를 통해 합리적 사유를 절대시 여기는 사유방식을 흡수했을 일본 지식인들의 접근을 미심쩍게 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하이데거의 얘기를 뒤집어 보면, 자신의 사유가 유럽적인 사유방식으로써는 옳게 이해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자신의 철학은 유럽인에겐 ‘에소테릭’하다고 자인하는 셈이다. ‘유럽인’에는 일본의 경우처럼 유럽으로부터 사유와 논리의 세례를 받은 비유럽인들도 포함된다.




한편 하이데거의 우려와는 달리 서구 사유의 강력한 영향 속에서도 동아시아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온 정신적 전통을 크든 적든 아직도 일본인들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하이데거에 친밀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당시 서양의 지성계와 사뭇 다른, 다시 말해 비유럽적인 정신을 지닌 일본인들에게는 하이데거의 ‘비유럽적’ 사유방식이나 논리에 적응하는 게 아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해석이란 언제나 미리 주어진 선先이해를 통해서 이뤄지기 마련이라는 해석학적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하이데거에서 에소테릭, 즉 유럽적, 합리적 사유가 보기에 비의적이며 난해한 성격은 어디에 있을까? 다음 몇 가지를 언급함으로써 하이데거의 모호함 혹은  ‘비서구적인’ 측면이 어디에서, 어떻게 기인하는지 일부 드러나리라고 본다.



1) 주객분리에서 시원적인 것으로

지금 소개하는 1)의 규정은 이후의 2), 3), 4)의 규정들을 예비하는 성격을 갖는다. 우리는 먼저 다음과 같은 ‘단언’으로써 시작한다.


‘주객분리의 사고로는 하이데거 사유에 사태부합되게 들어설 수 없다.’


예컨대 하이데거에 있어 바라봄은 바라보인 것이고 바라보이는 것은 바라봄이다. 그는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보이는 대상을 나누는 주객분리를 인위적이고 역사적인 한 방식으로 여긴다.


바라봄과 바라보여짐은 본래, 시원적으로 구별되지 않았고 그러한 ‘비합리적인’ 공속성, 동일성이 문제시 되지 않았다. 주객분리 이전의 시원에서는 그에 대해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았다. 서로를 향한 주시注視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는 장場이 있을 뿐이다.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보이는 객체의 구별도 저 시원적인 것이 열어주는 틈새 위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2차적으로 가능할 뿐이다.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이 어리석게도 주객분리에게 농락되었다고도 말한다.

“사람들은 주체와 객체 이외에 다른 것을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주체와 객체라는 이러한 구별이 가장 의문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즉 그것에 의해서 이미 아주 오래부터 철학이 바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Von Wesen der Wahrheit)

주, 객관의 분리는 근거를 캐묻는 사유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서구 합리적 사유의 특징을 이룰 이 둘은 서로 결속돼있다. 전자는 후자로써 후자는 전자 위에서 이뤄진다.


주체와 객체를 분리해놓고 주체 중심에서, 대상화된 객관의 근거를 구해 객관을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장악과 지배를 기도한다. 객관이 갖고 있는 이종성異種性을 제거하고 주체의 것, 인간의 것으로 동화시키는 것이다. 이로써 주체는 자연과 역사의 모든 현실에 대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그래서 서구 형이상학은 니체(주관적 허무주의)에 의해 완결되는 주관주의 철학이다. 근거 짓는 사유에게 근거는 결과에 앞서고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근거는 또한 능력에서 앞선다. 그 역은 마찬가지로 성립하지 않는다.


피조물과 창조자, 현상과 본체, 실체와 속성 등을 확고하게 구분하는 서구의 이원론적 철학은 주객분리와 인과적 사유로부터 길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의 서구적 사유는 시원적인 것,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뒤에 가서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된 역사적인 것이다.


그리고 주관에 의해 파악되고, 구성되고, 의욕되고, 표상된 대상은 ‘이미 인간의 때가 묻은’, ‘인간적인’ 것이다. 그러한 대상은 인간을 향한 하나의 상像으로서 순수한, 본연의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즉사즉진卽事卽眞의 시원적 시선視線은 망각되거나 합리성의 영역에서 소외돼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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