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문기사 중에서 (2020년 1월21일 화)
목차
1.가짜뉴스의 시대
2.기후변화로 작년 브라질 산불만 8만건…美도 직간접 피해 92兆
3.[세상읽기] 인간의 끝, 인간의 최전선
1. [송두율 칼럼]가짜뉴스의 시대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말이 말을 낳는다”는 속담이 있다. 교통수단과 정보매체가 제한되었던 때에도 어떤 특정한 정보나 뉴스가 빨리 전달되고 확산하는 모습을 잘 묘사했다. 특히 격변과 혼란의 시기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비밀리에 주고받았다. 집권자들은 이를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트리는 행위라며 추적하고 탄압했지만 정상적인 언로(言路)가 막힌 상황에서 정보나 소문은 빠르게 여러 샛길을 만들며 제 갈 길을 찾기 마련이었다.
...생략
선거 때가 되면 으레 기승을 부리는 온갖 가짜뉴스가 사회적 미디어에 넘쳐난다. 금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중상과 모략, 또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후에 당선이 무효가 되기도 하지만 과열된 선거 분위기는 진실과 주장 그리고 허위의 경계를 무너뜨리도록 만든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프란치스코 교황,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를 선언하여 충격”이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실린 가짜뉴스는 96만번의 공유, 반응 및 댓글이 실렸다. 게다가 당시 많이 읽혔던 10개의 뉴스 가운데 5개가 가짜뉴스로 판명되었다. ..중략
해결의 열쇠는 결국 깨어 있는 시민이 쥐고 있다. 정보매체에 실렸다고 이 모든 것이 진실일 수는 없다는 확신이 이를 향한 첫걸음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1202111015&code=990100
2. 기후변화로 작년 브라질 산불만 8만건…美도 직간접 피해 92兆
한국경제 2020.1.21
인도네시아와 러시아에서도 산불로 인한 피해가 컸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작년 산불 피해 면적이 9420㎢로 집계됐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네시아 산불로 인한 재산 피해 규모는 52억달러(약 6조원)로 추산된다.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지난해 발생한 두 차례 대형 산불로 산림 약 3만㎢가 소실됐다.
전문가들은 지구 기온이 현재보다 더 높아지면 산불로 인한 피해가 증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영국 기상정보업체 멧오피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구 기온이 2도 더 올라가면 호주에서 매년 산불이 기승을 부리는 기간은 지금보다 한 달 정도 더 길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3.[세상읽기] 인간의 끝, 인간의 최전선
한겨례 2020.1.21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그해 여름, 방송인 김제동은 농성 중인 유가족을 찾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유민 아빠가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었고, 일베가 이제 그만 좀 하라며 폭식투쟁을 예고했을 때였다.
“제가 어렸을 때 촌에서 자랐는데, 송아지를 먼저 팔면 어미 소가 밤새도록 웁니다. 일주일, 열흘 끊이지 않고 웁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고 끊어질 듯이 웁니다. 그러면 송아지를 팔았던 우리 삼촌이 그다음 날 아침에 담배 하나 피워 물고 더 정성껏 소죽을 끓였습니다. 저 소는 왜 우냐고 타박하는 이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짐승에게도 그렇습니다.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입니다. 유가족 여러분의 슬픔이 끝날 때까지여야 합니다.”
고통을 당한 존재에게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선명하고도 뭉클하게 보여주는 이 이야기가 나는 좋았다.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이야기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계속 곱씹고 있다.
다큐멘터리 <도미니언>을 보았기 때문이다. 도미니언은 공장식 축산 시스템 속에서 소와 돼지, 닭, 오리들이 어떻게 사육되고 도살되는지 보여주는 다큐다. 끝까지 보기 힘들 만큼 잔혹한 장면들이 펼쳐지는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낙농장의 젖소에 관한 것이었다.
젖소 역시 출산을 해야 젖이 나온다. 9개월 동안 품었던 새끼를 낳은 그날 인간들은 어미로부터 새끼를 빼앗았다. 그래야 우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미 소가 새끼를 싣고 떠나는 트럭을 쫓아가는 장면을 보며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끊어질 듯 우는 그들에게 정성껏 소죽을 끓여주는 인간은 없었다. 대신 그들을 조롱하고 얼굴을 후려쳐 거대한 원형 컨베이어벨트 위에 태운 뒤 재빨리 우유를 짜내는 인간들만 있을 뿐이었다.
불은 젖에 착유기를 주렁주렁 매단 젖소 수십마리가 마치 놀이공원의 회전목마처럼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은 끔찍하게 기괴했다. 그것이 새끼 잃은 짐승에게 인간이 하는 일이었다. 한편 우유를 생산하는 낙농장에서 수송아지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태어난 지 5일 만에 도축되었다. 컨베이어벨트 위에 내동댕이쳐진 그들이 차례차례 머리에 총을 맞고 버둥거리는 모습 앞에선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싫어서 몹시 괴로웠다.
다큐에서 본 충격적인 장면들을 요약해보려다 그만두었다. 그래 봤자 결국 ‘도축’이기 때문이다. 돼지가 도축되어 우리의 밥상 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도축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쓴 작가 한승태는 우연히 축산 농가에 취업했다가 그 실상에 놀라 보름 만에 도망쳐 나오며 이렇게 썼다. “내가 축사 안에서 본 것들 가운데 모르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닭장이 있었고 닭이 있었고 똥이 있었고 알이 있었다.
하지만 축사 속에 내가 예상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것 같았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내가 우연히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되었을 때의 마음도 그랬다. 내가 야학에서 본 것들 가운데 모르던 것은 없었다. 장애인들은 차별받았고 멸시당했다. 하지만 내가 예상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이는 20년 동안 한번도 외출하지 못했다고 했고 어떤 이는 언니의 결혼식에도 초대받지 못했다고 했다.
장애인의 삶은 충격적이었지만 그 충격은 장애인의 열악한 삶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그것을 온통 ‘문제’라고 말했던 것에서 나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자라온 세상에선 누구도 그것을 ‘문제’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문제를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 현실을 바꾸거나 최소한 직면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세상의 끝인 줄 알았던 거기가 최전선이었다. 나는 그런 이들이 세상의 지평을 넓혀왔다고 믿는다. <도미니언>을 보면 인간의 끝을 보는 것 같다.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깊은 무력감에 빠진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쇠사슬을 목에 건 채 도축을 중단하고 동물을 해방하라고 외치며 경찰에 체포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질문을 바꾸게 되었다. 인간은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고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 삼시 세끼 고기나 달걀, 우유를 먹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내가 숨 쉬는 모든 자리가 최전선처럼 느껴진다. <도미니언>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많이들 봐주시길 바란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5147.html#csidx93f3d55cb7e3d6781c0da9a32f35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