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인간 박칼린② “리더와 팔로워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라!”

환단스토리 | 2016.04.09 20:38 | 조회 6509

문제적 인간 박칼린② “리더와 팔로워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라!”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20년만의 배우 연기
해답이든 오답이든 끝까지 가봐야 안다
살아서 존재하는 것의 형태는 ‘아등바등’
막연한 계획 안 세워, 중요한 건 ‘생각’의 실행

“안되는 것을 되게 하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어울리게 하라”가 매번 그녀에게 주어진 출동 명령이었다. 박칼린의 삶은 ‘도전과 응전’의 삼투압 과정이고, 그녀는 매번 이 과정을 ‘생각의 힘’으로 풀었다고 한다./사진 조선희 스타일리스트 임지윤 헤어 윤성호 메이크업 서은영
 “안되는 것을 되게 하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어울리게 하라”가 매번 그녀에게 주어진 출동 명령이었다. 박칼린의 삶은 ‘도전과 응전’의 삼투압 과정이고, 그녀는 매번 이 과정을 ‘생각의 힘’으로 풀었다고 한다./사진 조선희 스타일리스트 임지윤 헤어 윤성호 메이크업 서은영

박칼린은 유연한 사람이다.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로 대한민국 음악 감독 1호로 명성을 쌓았지만, 그 ‘명성’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 박칼린은 “그 일이 한 ‘3생’전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할 만큼, 과거의 명성은 무의미하다.

박칼린은 그 뒤로도 ‘오페라의 유령’과 ‘아이다’ 등 기존 뮤지컬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파격을 만들어 냈다. 

‘리더의 모범’으로 찬란한 소통의 현장을 보여주었던 KBS 2TV ‘남자의 자격’ 합창단(2010년), 국내 최고 소리꾼들과 8개국 보컬리스트들을 융합시켜 아리랑을 웅장한 월드뮤직으로 재탄생시켰던 전주 세계소리축제(2013년), 550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한데 모아 감동적인 개막 무대를 만들어 냈던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2014년), 근육질 남성들의 파격적인 19금 퍼포먼스로 여자들을 열광시켰던 ‘미스터쇼(2014년)’, 76m 고층 건물 위로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하이퍼 파사드쇼 ‘더 블루(2015년)’…

“안되는 것을 되게 하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어울리게 하라”가 매번 그녀에게 주어진 출동 명령이었다. 

그래서 박칼린의 삶은 ‘도전과 응전’의 삼투압 과정이고, 그녀는 매번 이 과정을 ‘생각의 힘’으로 풀었다고 한다. 문제, 생각, 해결의 3단 논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는 것이 ‘생각주의자’ 박칼린의 신념이다(그녀는 슬럼프나 실연조차도 3일만 생각하면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 ‘생각 신봉자’다). 

이번 인터뷰에서 박칼린이 추가로 많이 쏟아낸 단어는 3개다.

그녀는 거대한 우주 안에서 매일 매일 패닉에 빠지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하나씩 문제를 풀고 전진하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한다. 이번 사진 작업에서 여성 리더로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거대한 우주 안에서 매일 매일 패닉에 빠지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하나씩 문제를 풀고 전진하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한다. 이번 사진 작업에서 여성 리더로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우주, 패닉, 행복.

어머니의 나라(리투아니아계 미국인)에서 첼로를, 아버지의 나라(한국)에서는 판소리를 익힌 크로스오버 전력은, 박칼린의 몸에 다원주의적인 세계관을 심어주었다. 더불어 우주라는 무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나를 ‘한 줌’의 지나가는 존재로 인식하는, 초월적인 자기 객관화도. 그녀는 거대한 우주 안에서 매일 매일 패닉에 빠지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하나씩 문제를 풀고 전진하는 자신은 “행복하다”고 한다.

아! ‘이 우주 속의, 패닉이, 행복하다’니!

보통 사람 같으면 불행하다고 느낄 만한 이 설정이, 박칼린에게 유독 행복한 이유는 뭘까? 수시로 우주라는 확장된 세계에 자신을 위치시켜 놓는 방법으로, 그는 제한된 삶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압박은 수용하되, 불필요한 강박은 버렸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상납하지도 않는다.

박칼린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가족이 ‘현재적 생명력이 넘쳤다'고 회고했다. “대책 없을 정도로 삶을 즐기고, 퀄리티 있게 누렸다. 미식가 아버지는 맛있는 걸 찾으러 다녔고, 좋은 공연을 즐겼다. 나는 그래서 김칫독에서 가장 싱싱하고 맛있는 포기부터 먼저 꺼내 먹는 사람이 되었다.” 

이름값만으로 대한민국 공연계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박칼린. 그녀는 현재 ‘넥스트 투 노멀’이라는 뮤지컬에 20년 만에 배우로 참여하고 있다. 오로지 작품이 좋다는 이유로. 뼛속까지 타고난 리더이면서도 팔로워와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박칼린을 만났다. 

자기만의 방향 감각을 찾겠다는 이유로 여전히 차량에 내비게이션을 달지 않은 그녀를 동료들은 ‘새’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 모하비 사막에서 뱀을 잡으러 다녔고, 청소년기엔 카우걸이 되려고도 했지요? 20대에 파일럿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은 없습니까? 

“혼자 비행을 해본 것으로 만족합니다. 공연 연출이라는 더 재미있는 일을 찾았기에 아쉬움은 없어요.”

-지금은 무엇에 관심이 있나요? 

“어린 시절에 합기도를 했어요. 1970년대 초반이라 도복 뒤에 엄마가 “나는 여자입니다”라고 금색 수실로 새겨주셨죠(웃음). 지금은 쿵후에 관심이 많은데, 6개월만 시간이 있다면 중국 무당산에 가서 무당파 무술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사나요? 

“연초에 실현 가능한 버킷리스트를 수첩에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가요. 말을 계속 타고 싶은데, 서부식으로 거칠게 타는 말은 한국에 없어서 아쉬워요. 남미 아르헨티나에 가서 1~2개월 코스로 탱고를 배워볼 생각이에요.” 

-막연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군요. 

“결론 없는 생각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오케스트라를 만들면 어떨까, 강원도 산골 아이들에게 뮤지컬을 가르치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도 하지만, 중요한 건 생각의 ‘실행’입니다.” 

박칼린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가족이 ‘현재적 생명력이 넘쳤다’고 회고했다.
 박칼린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가족이 ‘현재적 생명력이 넘쳤다’고 회고했다.

-생각이 취미인 걸로 아는데요? 

“(웃음)맞아요. 하지만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구현을 해내는 사람이 진짜 천재지요.”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떻게 찾습니까? 

“갈 수 있는 길을 다 가봅니다. 미스터리 수사물에서 이런 가설 저런 가설을 다 세워본 후 현장을 찾아가 범인을 찾는 것과 같지요. 그 과정에서 느끼는 좌절은 저도 똑같습니다. ‘내가 이 일을 관둬야지… 산으로 들어가야지…’ 바닥을 치죠(웃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요. 

“포기한 적은 없어요. 뭐라도 해내는 편이죠(웃음). 해답이든 오답이든 끝까지 다녀와야 기분 좋게 놓을 수 있어요.” 

-몇 년 전 KBS2TV ‘남자의 자격-합창단’을 이끌면서 새로운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정확한 캐스팅, 합리적인 롤(role), 그리고 무조건적인 믿음. 3박자가 맞으면서 박칼린 신드롬을 일으켰죠. 당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리더와 최선의 리더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최악의 리더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죠. 리더이기에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팔로워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리더가 최악입니다. 최선의 리더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리더예요. 리더이기 때문에 더 조심하고 더 민심을 살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선의 리더로 행동하고 있습니까?

“마음을 읽는 파트너가 되려고 합니다. 우리끼리는 ‘척하면 척’이죠. 굳이 리더와 팔로워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현재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 20년 만에 배우로 출연 중입니다. 지휘자에서 플레이어가 된 소감이 어떤가요?

“20년 만에 기회를 잘 잡았다고 생각해요(웃음). 음악, 무대, 대본 3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좋은 작품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아요. 조울증 엄마가 있는 가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인데, 신파가 아닌 록 음악으로 세련되게 풀었어요.”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떻습니까?

“젊은이들과 아줌마들의 반응이 확연히 다르더군요. 젊은이들은 열심히 공부하듯 공연만 봅니다(웃음). 아줌마들은 웃고 박수 치고, 자기 인생과 견주며 공연을 즐겨요.”

-넥스트 투 노멀이 무슨 무슨 뜻인가요? 제가 보기엔 우리 사회 자체가 ‘노멀(normal)’이 없는 조울증 상태라고 느껴집니다만.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조울증이 만연된 상태이고, 정신과 치료실을 찾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전기 충격이 필요한 시점이죠(웃음). 제가 맡은 배역이 조울증을 앓는 중년 여인 다이애나예요. 극 중에서 다이애나도 일주일에 한번씩 전기 충격 치료를 받습니다. 그 처방이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나올 법한 구식 치료법 같지만, 요즘도 활발하게 쓰여요. 실제로 백와트 전구만큼 강한 것도 아니고, 횡단보도 건너는 것보다 안전하니까요.”

-요즘처럼 히스테리와 노이로제의 전성 시대에 ‘정상 범주에 있다’라는 것, 그 판정이나 인식이 쉽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노멀’이 무엇인지 질문한다는 게 중요하죠. 우리가 ‘노멀의 언저리’에라도 있기를 희망한다면요.”

-요즘에는 리더와 팔로워가 프로젝트에 따라 역할 개념으로 움직이기는 합니다만, 실제 현장에서 움직임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나요? 지휘의 욕망이 발동할 수도 있을텐데요.

“저는 분리가 잘 되는 편입니다. 배우는 연출자를 믿고, 음악 감독 또한 자기 영역을 넘어서면 안됩니다. 그게 엉키면 끝장이에요. 배우가 되면 저는 완벽하게 저를 ‘대상화’시켜요. ‘전 아무 것도 몰라요. 저를 만들어주세요’라고.”

수시로 우주의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된 세계에 자신을 위치시켜 놓는 방법으로, 그녀는 제한된 삶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압박은 수용하되, 강박은 버렸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상납하지도 않는다.
 수시로 우주의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된 세계에 자신을 위치시켜 놓는 방법으로, 그녀는 제한된 삶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압박은 수용하되, 강박은 버렸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상납하지도 않는다.

-일부러 기능적 ‘백치 상태’로 자신을 풀어놓는다는 거군요. 거기서 오는 쾌감도 있나요?

“사실 배우가 가장 쉽습니다. 남들이 다 준비해놓은 것을 바탕으로, 마무리를 하는 작업이죠. 실현을 해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크리에이티브의 기초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쉽습니다(웃음).”

-동시에 뮤지컬 ‘아이다’와 ‘에어포트 베이비’ 캐스팅도 진행중이죠? 예전에 면접에서 중요한 건 심사위원의 실력이라고 했어요. 당신 이론에 의하면 정확한 역할을 주고 믿어주는 게 리더의 핵심이었죠.

“그렇죠. 그래서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봅니다. 현대적인 뮤지컬은 오페라와는 달리 극대화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단순히 노래나 연기 실력보다, 현장에서 그 사람의 몸의 느낌과 기질 등을 동시에 탐색합니다.”

-기술적인 것보다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가 더 중요하다는 건가요?

“그렇죠. 그게 뮤지컬만의 특징입니다. 굉장히 과장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개연성이 정말 중요해요. 가령 저는 ‘미녀와 야수’의 미녀 역할은 힘들어요. 신경증 주부인 다이애나 정도를 할 수 있죠.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고유의 에너지가 그 극의 캐릭터와 맞아야 합니다. ‘연기빨’로는 한계가 있어요. 그 사람의 정체성이 그 롤에 합당해야 하고, 저는 그걸 분별해냅니다.”

-과장되고 장식적으로 보이는 뮤지컬에서 개연성이라니, 이해가 안됩니다.

“말로 해도 되는 걸 왜 노래로 할까요? 일상적인 제스처면 되는 데 왜 굳이 춤으로 할까요? 기쁨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더 이상 말로 표현이 안되는 격한 감정의 상태가 노래와 춤으로 터지는 게 뮤지컬의 기법입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왕과 나’ 같은 뮤지컬 황금기 시대 작품을 보세요. 난데없이 터지는 춤과 노래에 관객의 손발이 오그라들 일이 없죠. 노래와 춤이 터지는 진짜 순간을 찾아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게 뮤지컬의 핵심이에요. 그리고 그런 극적인 상태에서는 배우의 연기보다 진짜 기질이 드러납니다. ”

“갈 수 있는 길을 다 가봅니다”는 박칼린. 사진작가 조선희와의 이번 스튜디오 작업에서 열정적인 끼를 보여주었다.
 “갈 수 있는 길을 다 가봅니다”는 박칼린. 사진작가 조선희와의 이번 스튜디오 작업에서 열정적인 끼를 보여주었다.

-삶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고 꼬인 문제를 퍼즐 풀듯 해결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행복합니다. 일상적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무엇을 해먹을까 고민하면서,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도 행복합니다.

-행복감을 유지하는 비결은 뭔가요?

“제 곁에는 서로의 상태를 이해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4~5명 정도의 멤버가 있어요. 그들과 함께 “우리는 잘 하고 있다”는 감정을 공유해요. 저도 수시로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불행할 요소가 즐비하지만, 문제 해결 과정을 즐기려고 합니다. 그게 없으면 사는 게 무슨 재미겠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문제가 있으니 인생이다’라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5000억년 후에는 태양계가 사라질 지도 모르죠. 우주 탄생과 소멸의 역사 속에 인간의 인생은 너무나 짧습니다. 80년의 시간 동안 아픔이 많지만, 크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니죠. 어차피 무로 돌아갈 테지만, 살아서 존재하는 것의 형태는 ‘아등바등’이에요. 부자든 빈자든 다르지 않죠. 사는 것이 싸움, 투쟁의 연속이라면, 그 싸움을 현명하게 하자는 거죠.”

-현명한 싸움이란 어떤 건가요?

“불평하지 말고 싸우세요. 인생을 사는 반응은 2가지예요. 불평하며 견디든지, 대안을 제시해서 앞으로 가든지. 생명체는 머물러 있을 수 없어요. 끝없이 변화하죠. 고여있는 사람, 멈춰있던 세계도 결국은 질병이나 테러 등으로 병리적으로 폭발합니다. 그런 자연의 이치를 안다면, 자극에 주도적으로 반응하는 게 현명한 겁니다.”

-경쟁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저는 부모으로부터 ‘무엇이 되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만약 그런 교육을 받았다면,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을 거예요. 요즘 시대는 이상한 경쟁을 시켜요. 부모들이 일자리를 차지하고, 몇 개 안 남은 자리를 그 자식들이 싸워서 차지하라고 요구하는 식이죠.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할 건 다양성이에요. 자기가 겪은 구시대의 매뉴얼로 자녀들의 삶을 제한하면 안되죠.”

-어머니(리투아니아계 미국인)의 나라에서는 첼로를 연주했고, 아버지(한국인)의 나라에서는 판소리를 배웠는데, 자신의 몸을 크로스오버 상태에 두는 것이 힘겹지 않습니까?

“그렇게 헷갈려 하면서 삽니다(웃음). 한국 속담에 한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는데,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여러가지 문화가 몸 속에 뒤섞인 저같은 사람도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해요.”

-돈은 많이 벌었나요?

“아니요. 돈이 목표였던 적이 없었어요. 고양이 사료 먹이고, 운중산 밑에 들어가 살 정도만 벌었어요. 남한테 피해 안입히고 살 정도죠.”

-삶에서 큰 변화가 닥칠 일은 없을까요? 예를 들면 결혼에 대한 가정이라든가.

“결혼을 해버리면 사랑의 값어치가 달라질 거예요. 아끼는 남자가 해야된다면 ‘오케이!’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너한테만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전제할 거예요. 외롭지 않게 조용히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는 삶에서 큰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습니다. 갑자기 다른 나라에서 삶을 시작할 수도 있어요. 강물 따라 흐르듯이 살 생각입니다. 몇 년 후를 기약하고 오늘을 사는 것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5년 뒤를 위해 지금 무언가를 하지 않아요. 제 경험으로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잘하면 다음에 할 일이 나타나죠.”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축하는 건 어리석다는 말인가요? 

“약간 다릅니다. 김칫독을 열면 어떤 걸 먼저 꺼내 먹습니까? 저는 가장 아삭아삭하고 싱싱한 포기를 먼저 꺼내 먹어요. 내일을 위해 나쁜 것부터 먹으면 계속 나쁜 것만 먹게 돼요(웃음).”

-타임 캡슐에 넣고 싶은 3가지는 무엇입니까?

“첫번째는 저와 함께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 저에겐 그들이 최고의 보물이에요. 그리고 지금 만들고 있는 창작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 지휘하면서 이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디즈니 작품으로 제가 음악 감독을 맡았던 ‘노틀담의 꼽추’. 이제까지 나온 여타의 뮤지컬을 통털어 음악이 최고 중 하나예요.”

박칼린은 인생을 사는 방법은 2가지라고 한다. 불평하든지, 싸워서 앞으로 가든지.
 박칼린은 인생을 사는 방법은 2가지라고 한다. 불평하든지, 싸워서 앞으로 가든지.

-영감을 주는 예술가는 누구인가요?

“피아노 연주자이면서 재즈 가수였던 니나 시몬. 흑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인종 차별, 어쩔 수 없이 걸었던 저항의 길, 그 우울하고 소울풀한 음악과 인생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요.”

-차별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역차별을 받아본 적은 있죠. 미국에서는 이그조틱(exotic·이국적인)하다고, 1970년대 한국에서는 외국인이라고 봐주려고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한테도 동일한 조건을 적용하라고 화를 냈습니다.”

-수혜를 받는 데 화가 난 이유는 뭐죠?

“역차별도 차별이에요. 어린 시절 저희 집에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았어요. 중국, 아프리카, 수단, 이란, 이라크, 시리아, 프랑스, 일본, 브라질… 부모님들이 다양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을 집에 데리고 있었어요. 저희 집엔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었어요. 음식에 대한 취향의 편견은 있지만(웃음) 사람, 나라, 문화에 대한 편견은 없었어요.”

-인생에서 잘한 것 중 한 가지가 내비게이션을 달지 않은 것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차에 내비게이션이 없나요?

“물론입니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지 않으면 훨씬 더 많은 방향감각이 생깁니다. 두려움도 없어지고, 재미난 골목도 알게 되죠. 어디와 어디가 연결되는지 지형의 문맥을 파악할 수 있다보니, 큰 그림이 보이지요. 어디서 해가 뜨는지 어디에 산이 있는지만 알면 대한민국을 다 아는 셈입니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가 생각나는군요(웃음).

“저는 5년 전에 간 곳도 세세히 기억해요. 바위만 넘으면 우리 목적지다, 몸이 먼저 알려주죠. 제 동료들은 저를 새라고 부릅니다(웃음).”

-박칼린은 어떤 사람입니까?

“행복한 사람이에요. 이 우주에, 이 지구에 내가 놓여져 있다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이렇게 작은 존재인 내가 대우주 속에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이렇게 움직인다는 게 정말 놀라워요.”

-그건 일상의 책임과 구속에서 자유로워서인가요?

“앞서 말했다시피 저는 매일 사는 것 자체가 패닉이에요(웃음). 책임져야 할 일, 지켜야 할 약속투성이죠. 그걸 잘 지켜나가는 게 재미있어요. 내가 있고 거대한 우주가 있는 게 아니라, 거대함 속에 내가 움직인다는 게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2/19/2016021902669.html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390개(188/160페이지)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회원게시판 이용수칙] 관리자 50607 2023.10.05
공지 상생의 새문화를 여는 STB 상생방송을 소개합니다. 환단스토리 210847 2018.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