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은 고국에서…" 한 위안부 할머니 병상의 귀향

환단스토리 | 2016.04.09 22:41 | 조회 4436


"생의 마지막은 고국에서…" 한 위안부 할머니 병상의 귀향


연합 2016-04-09 


기사 이미지  


한국 이송 앞둔 中 거주 유일한 한국국적 위안부 피해 하상숙 할머니 


(우한=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엽락귀근'(葉落歸根·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이라면서 생의 마지막은 고국에서 보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한국으로 긴급 이송이 결정된 중국 거주 중인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89) 할머니의 막내딸 류완전(劉婉珍·63)씨는 또다시 이별을 앞둔 듯 서글퍼하면서도 모친의 소망을 이루게 된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류 씨는 9일 오후 중국 우한(武漢)의 퉁지(同濟)병원에서 중환자 면회용 폐쇄회로(CCTV) 화면을 통해 병상에 누워있는 하 할머니에게 수화기로 연신 "마"(마<女+馬>·엄마)를 불러댔으나 하 할머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가끔 얼굴을 씰룩거릴 때도 있었으나 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태라고 류 씨는 전했다. 부러진 갈비뼈에 허파가 찔려 호흡이 곤란한 상태의 하 할머니는 한때 매우 위독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여든아홉의 고령에 심부전증을 앓고 있었던 것도 쉽게 쾌차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 할머니는 2개월 전 계단에서 밀려 넘어지면서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아왔다. 병세가 계속 악화하다 지난 1일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를 꽂은 뒤로 상당히 양호해진 상태다. 여전히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의식도 회복하는 단계라고 가족들은 전했다.


하 할머니는 우리 정부의 긴급 이송 결정에 따라 10일 한국으로 떠난다. 한국에서 파견된 전문 의료진이 한국 이송이 가능하다는 소견을 낸 데 따른 결정이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70년 가까운 생애를 우한에서 지냈던 하 할머니가 "생의 마지막은 고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평소 소망을 병상의 귀향으로 이루게 된 셈이다. 


류 씨는 "어머니가 평소 기분이 좋을 때면 '아리랑' 같은 한국 노래를 부르곤 했다"면서 "자신이 죽게 되면 고향인 예산의 어머니,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곳에 같이 묻어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류 씨를 비롯한 세 딸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한국으로 가게 된 것은 가족들이 대신 결정했지만 한국에서 잘 치료를 받고 깨어난 뒤에 한국에 계속 남을지는 어머니의 뜻에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자신을 찾아오던 한국인들에게도 하 할머니는 "죽을병에 걸리면 꼭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 "죽을 땐 꼭 한국땅에서 죽겠다"고 했다고 한다.


쾌활한 성격에 기억력이 좋았던 하 할머니는 한국어도 잊지 않고 있어 여러 차례 국제회의에서 위안부 피해 증언자로 나섰던 인물이다. 


열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돈을 벌게 해준다는 일본군 위안부 모집책의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와 악몽 같은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던 한 맺힌 과거를 증언해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일본이 잘못했다고 할 때까지 저는 절대 못 죽습니다"(2013년 8월13일 서울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제1회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하 할머니의 발언)고 했던 하 할머니는 그 의지로 버티고 있는 듯했다. 


일본 패망 당시 상당수의 군 위안부들이 일본 군인들에 살해되기도 했지만 하 할머니는 어렵사리 살아남아 중국 현지에서 중국인과 결혼해 70년 가까운 삶을 조선 국적의 '하군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현재 중국에 남은 한국계 위안부 피해자 3명 가운데 하 할머니는 한국 국적을 회복한 유일한 생존자다.


하 할머니의 남편은 전처와 사별하고 어린 딸을 셋이나 둔 재혼남이었지만 훌륭한 성품에 상처가 될 수 있는 위안부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이웃 모두 류 씨를 하 할머니의 친딸로 알고 있을 정도로 가족애도 깊다고 한 지인이 전했다.


한국의 고난사를 한몸에 짊어지고 살아왔던 하 할머니가 이제 중국에서 찾은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그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현지 중국인들도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하 할머니 이송 실무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하 할머니를 찾아와 선물과 함께 위로의 뜻을 전하곤 했는데 이번에 한국이 끝까지 할머니를 책임지려는 모습에 중국 사람들도 감탄스럽다는 뜻을 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jo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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