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일본의 지식인 오에 겐자부로 타계

대선 | 2023.07.03 19:20 | 조회 1850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일본의 지식인 오에 겐자부로 타계




  1960년대 일본 문학계에서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작가가 나타나서 작가 지망생들이 붓을 꺾었다’는 말이 돌았다. 그 주인공이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다. 1950년대 후반 등단해 ‘만연원년(万延元年·1860년)의 풋볼’ 등 세계적 명작들을 남긴 그가 타계했다고 일본 언론이 13일 전했다. 오에를 추모하는 이들은 대문호로서의 명성 못지않게 ‘일본의 양심’으로 그를 기억한다.


  “일왕이 사람의 목소리로 말한다는 것에 놀랐고 실망했다.” 오에는 1945년 8월 15일 라디오로 일왕의 항복 선언 연설을 들었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1935년 태어나 군국주의 교육을 받았던 그는 어릴 적 “일왕은 신비한 하얀 새와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일제의 패망과 함께 일왕 역시 사람임을 깨달은 것이다. 당시 느꼈던 충격과 미 군정 체제에서 경험한 민주주의가 오에의 세계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58년 소설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최연소 수상하며 필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63년 아들이 중증 장애를 안고 태어나면서 그의 삶은 크게 바뀐다. 낙담한 오에는 생후 한 달 된 아들을 병원에 놔둔 채 히로시마로 떠났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들을 돌보던 의사에게서 ‘아픈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말을 듣고선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미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도쿄로 돌아와 아들을 돌보며 쓴 소설 ‘개인적 체험’ 등은 그의 대표작이 됐다. 그는 “아들과 공동 집필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오에는 평소 조용하고 배려심이 깊은 인물이었다. 한국인들이 자택으로 찾아온다고 하면 문패 위에 한글로 이름을 써서 붙여놨을 정도였다고 윤상인 전 서울대 교수는 전했다. 하지만 폭력, 특히 국가의 폭력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에세이에서 “권력이 쌓아올리는 사실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적으로 저항하는 목소리를 한결같이 계속 내는 길밖에 없다”고 썼다. 그리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오에는 “일본은 아무리 사죄해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범죄를 한국에 저질렀다”며 지속적으로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신사참배에 반대하고, 일왕이 주는 문화훈장을 거부했다는 이유 등으로 극우세력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협박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지인들과는 전화 대신 팩스로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노년까지 집회에 참여해 “평화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일본의 지식인이 또 한 명 귀천했다는 소식이 안타깝다.

 <참고문헌>


  1. 장택동, "‘일본의 양심’ 오에 겐자부로 잠들다", 동아일보, 2023.3.14일자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170개(9/78페이지)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회원게시판 이용수칙] 관리자 48429 2023.10.05
공지 상생의 새문화를 여는 STB 상생방송을 소개합니다. 환단스토리 209013 2018.07.12
1048 [역사공부방] 중부매일, 전국 일간지 평가 '충청권 최고 신문 선정 축하 사진 대선 2677 2023.04.27
1047 [역사공부방] 윤석열 대통령 4.19혁명 63주년 기념사 전문. 대선 2614 2023.04.19
1046 [역사공부방] <특별기고>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수립 제104주년을 기념하며 사진 대선 3212 2023.04.12
1045 [역사공부방] 충남의 선비정신 대선 2846 2023.04.05
1044 [역사공부방] 특별기고 제주 4.3사건 75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추념식 행사 대선 3612 2023.04.05
1043 [역사공부방] 문형순, 김익열 제주 4·3사건 의인들은 ‘역사의 은인’ 사진 대선 3900 2023.04.03
1042 [역사공부방] 1920년 천마산대 소년통신원이었던 한암당 이유립 선생 사진 대선 3483 2023.04.02
1041 [역사공부방] 대전시의 미래 관광과 나비효과 대선 2676 2023.03.30
1040 [역사공부방] 동여도 품은 ‘대동여지도’ 고국품으로 대선 2778 2023.03.30
1039 [역사공부방] 독도 명칭의 유래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억지 증거 사진 대선 2561 2023.03.27
1038 [역사공부방] <특별기고>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업적과 순국 113주년 기념 사진 대선 2719 2023.03.27
1037 [역사공부방] <특별기고> 서해수호의 날 8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식과 안 사진 대선 2867 2023.03.26
1036 [역사공부방] 거북등딱지부터 챗GPT까지, 점괘의 발달 사진 대선 3909 2023.03.17
1035 [역사공부방] 시조시인 이도현 이야기 사진 대선 3743 2023.03.17
1034 [역사공부방] 짧고 불꽃 같은 생을 살았던 조영래 천재 인권변호사 사진 [1] 대선 4182 2023.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