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70년 유지 조선족 한글 간판 단속

대선 | 2022.08.29 19:43 | 조회 4630

          中, 70년 유지 조선족 한글 간판 단속

다음 달 3일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을 맞아 옌지 시내 곳곳에 이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과거에는 이런 플래카드나 현수막에도 한글을 먼저 쓰고 그 다음 중국어를 병기했지만 최근 중국 당국은 중국어를 먼저 쓰도록 규정을 바꿨다. 소수민족 정체성을 약화시켜 한족으로 동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옌볜=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26일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를 찾았다. 옌볜조선족자치주는 북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동북 지역이다. 6개 시(옌지 투먼 훈춘 룽징 허룽 둔화)와 2개 현(왕칭 안투)으로 이뤄져 있다. 면적은 4만 2700km²로 한국 면적 5분의 2에 해당한다. 별다른 생산시설이 없어 지역 경제의 상당 부분을 백두산 관광에 의존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만 아니었다면 여름철 성수기 백두산을 찾는 한국 관광객으로 넘쳐났을 터다. 관광 가이드 리선화 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인천과 옌지를 오가는 항공편이 주 6회였다”면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 동안 사실상 한국인들이 이 지역을 활성화시켰다”고 말했다.》
   자치주는 특정 소수민족이 다수 사는 지역 행정단위다. 55개 소수민족이 있는 중국에는 성(省)과 같은 지위인 시짱(西藏·티베트) 신장(新疆)위구르 광시(廣西) 닝샤(寧夏) 네이멍구(內蒙古) 5개 자치구와 옌볜조선족자치주를 포함한 30개 자치주, 그리고 120개 자치현까지 155개 소수민족 자치 지역이 있다. 자치관할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소수민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중국 당국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특히 조선족은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와 한국 북한 중국 사이 ‘경계인’으로서 겪는 갈등까지 겹쳐 위기감이 더 크다. ‘조선족의 서울’로 불리는 옌지에서 만난 리(李)모 씨는 “북한은 조선족에 관심 가질 여력이 없고 한국의 관심은 식어가다 못해 싸늘해지는데 중국 당국 압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면서 “올해 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이지만 이대로라면 조선족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조선족 문화’ 흡수 압박

  중국 당국은 최근 한글부터 단속에 들어갔다. 지난달 25일 중국어와 한글을 병기하되 한자를 먼저 표기하는 규정을 시행했다. 좌우 가로 표기할 때는 중국어를 앞에 한글은 뒤에 써야 한다. 위아래 세로 표기일 경우엔 중국어를 오른쪽, 한글은 왼쪽에 쓰도록 했다. 규정에 맞지 않는 현판 간판 표지판은 모두 교체해야 한다.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설립된 1952년 이래 70년간 유지한 한글 전용(병기할 경우 한글 우선) 원칙 방식이 갑작스레 바뀐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조선족 학교 교과서는 2020년부터 한글 교과서 대신 중국어 국정교과서가 쓰이고 있다. 내년부터 대학 입시에서 소수민족 가산점이 없어지고 역사 정치 어문 과목 시험은 중국어로 치러야 한다.

   한글 우선 표기 정책 변경은 조선족을 한족 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이른바 ‘한화(漢化)’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2012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최고 권력을 장악한 이후 중국은 소수민족 정체성을 희석하는 정책을 강화했다. 소수민족 언어 대신 푸퉁화(普通話·중국 표준어)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이 방식은 201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 이후 홍콩을 중국화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중국 당국은 155개 자치지역 가운데 한족문화에 동화된 것으로 판단되는 남부 광시 좡족(壯族)이나 북서부 닝샤 후이족(回族)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반면 조선족을 포함해 국경 지역에 있어 국가안보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신장 위구르족, 시짱 티베트족, 네이멍구 몽골족에 대해서는 ‘한화’의 고삐를 더 세게 당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과 조선족 사이 갈등도

   고구려 발해 같은 한반도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을 펴온 중국은 조선족 정체성을 약화시켜 조선족이 지닌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 문화인 양 흡수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한복 김치 갓을 비롯한 한국 문화는 당연히 조선족에도 내려오는 문화인데 조선족은 중국 소수민족이므로 중국 문화라는 억지 논리다.

   하지만 이 같은 견강부회가 오히려 한국과 조선족 사이를 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반중(反中) 감정이 의도치 않게 조선족에게 불똥을 튀긴다. 대표적 사례가 올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 식전 이벤트에 나온 조선족 한복 논란이다.

   당시 한복을 입은 조선족이 다른 소수민족 참가자들과 함께 중국 국기 게양식을 진행했다. 한국 일각에서는 “김치를 자기네 전통음식이라고 강변하는 중국이 한국 고유문화를 자기 것이라 우기면서 ‘문화공정’을 자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회의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입장을 표명했고 청와대도 “한복이 우리 전통문화인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조선족은 조선족대로 반발했다. 한족을 포함해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서 소수민족 대표가 소수민족 고유 복장을 입었는데 무슨 문제냐는 것이다. 한 조선족은 인터넷에 “조선족이 한복을 입지 말고 뭘 입어야 한다는 것일까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중국 매체 관차저왕은 “중국 소수민족이 전통의상을 입고 나왔는데 유독 한국만 조선족이 한복을 입은 것에 반발했다”면서 “중국이 많은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라는 사실을 한국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중국이 조선족을 이용해 한국 문화를 자기 것인 양 가로채려 한다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대표 시인 윤동주를 ‘조선족 시인’이라며 중국인으로 오인하게 만든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옌볜조선족자치주가 관광지화한 룽징시 윤동주 시인 생가에는 ‘조선족 시인 윤동주’라고 소개하는 안내판이 버젓이 서있다. 이곳을 찾는 중국인들은 “윤동주가 조선족이면 중국인”이라고 말할 정도다.

   조선족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옌지시 조선족박물관도 상황은 비슷하다. 발해사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만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이 아니라 ‘말갈 수령’으로 소개된다. 말갈인이 세운 발해사는 곧 중국사라는 논리다.
피해갈 수 없는 인구 감소

   중국 당국 압박과 냉랭한 한국 관계도 문제지만 더 시급한 것은 조선족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0년 중국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조선족 인구는 56개 민족 가운데 15번째인 약 170만 명이다. 2000년에 비해 22만여 명 줄어든 수치다. 이 중 베이징을 비롯해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을 제외하고 옌볜조선족자치주에 사는 조선족 인구는 59만7000여 명이다. 옌볜조선족자치주 전체 인구에서 조선족 비중이 30.8%까지 떨어진 것이다. 성립 초기인 1953년 조선족 비율이 70.5%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감소다. 한때 조선족 비중이 30%를 밑돌면 자치주 지정이 해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 그러나 몽골족 비중이 17.7%에 불과한 네이멍구 자치구는 ‘자치구 폐지 논의’가 나온 적이 없다.

   조선족 인구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많이 이주한 것이 꼽힌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 체류 조선족은 꾸준히 증가해 2020년 1월 기준 70만8000명에 달한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약 236만 명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조선족이다. 한국 거주 조선족이 옌볜조선족자치주에 사는 조선족보다 많다.

                                                     <참고문헌>

  1. 김기용, "中, 70년 유지 조선족 한글 간판 단속.. 현지 "정체성 사라진다 한숨", 둥아일보, 2022.8.25일자. A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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