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와 1970년대의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논쟁

신상구 | 2020.05.26 18:52 | 조회 4696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논쟁

 

    "오늘날 정치권력이 점차 문화의 독자적 차원을 침해하는 경향이 있다 할지라도,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 자신의 소심증에 더 많은 책임이 있다. 우리는 그 치졸한 유아 언어의 '에비'라는 상상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1967년 12월 28일 조선일보에 실린 평론가 이어령의 시론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한국 문화의 반(反)문화성'이 파문을 일으켰다.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던 이어령은 우는 아이를 달래는 '에비'라는 말을 "막연한 두려움, 복면을 쓴 공포"라 부르며, 예술가들을 향해 '권력에 주눅 들지 말고 예술가다운 예언자적 목소리를 회복하라.

    미묘한 시점이었다. 예술가들이 정치권력에 대해 갖는 공포를 과소평가했다는 반발이 나왔다. 앞서 같은 해 5월 검찰은 미군의 만행을 풍자한 단편소설 '분지(糞地)'의 작가 남정현을 구속하고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문학 작품의 이적성을 문제 삼아 작가를 구속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억압적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문학이 현실 문제를 다루려면 용기가 필요한 시절이었다. 같은 해 10월엔 한 세미나에서 불문학자 김붕구가 사르트르의 사례를 들어 "작가의 사회적 자아가 강조될 때 창조적 자아는 도리어 위축된다"는 주장을 폈고, 이 세미나에 참석했던 조선일보 논설위원 선우휘가 10월 19일 자 시평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를 통해 "오히려 문학이 그렇게 써먹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창작의 자유 폭을 넓히는 길"이라 주장했었다.

    시인 김수영이 반론의 깃발을 들었다. 그는 '사상계' 1968년 1월 호 기고문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통해 "오늘날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의 소심증과 무능보다 유무형 정치권력의 탄압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우리들의 '에비'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금제(禁制)의 힘"이라고 반박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 위원이기도 했던 그는 "나를 괴롭히는 것은 신문사의 응모에도 응해 오지 않는 보이지 않는 '불온한'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 안에 대문호와 대시인의 씨앗이 숨어 있다"고도 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간헐적으로 진행된 순수·참여문학 논쟁을 지핀 '불온시 논쟁'의 시작이었다.

    이어령의 재반론은 세련되고 우아했다. 그는 1968년 2월 20일 조선일보 시평 '누가 그 조종(弔鐘)을 울리는가?―오늘의 한국문화를 위협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고 창조하는 운명을 선택한 이상 그 시대와 사회가 안락의자와 비단옷을 갖다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는 "현실의 들판에서 자라는 진짜 백합화의 순결한 꽃잎과 향기는 외부로부터 받은 선물이 아니라 해충·비바람 등과 싸워서 얻은 것"이라고도 했다. 바로 일주일 뒤인 1968년 2월 27일 조선일보에는 김수영의 재반론이 실렸다. "오늘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획일주의가 강요하는 대제도의 유형무형 문화기관의 에이전트들의 검열이다. 우리의 질서는 조종을 울리기 전에 벌써 죽어 있는 질서다."

    논쟁은 당대의 지식인 잡지였던 '사상계'로 옮겨붙었다. 사상계 2월 호는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자 소설가인 선우휘와 신예 평론가였던 백낙청의 대담 '작가와 평론가의 대결'을 실었다. 백낙청은 "문학의 본질은 자유이며,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속박에 대한 하나의 반항"이라고 참여론 쪽에 힘을 실었고, 선우휘는 "문학인은 남의 자유 이전에 자기 자유를 획득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더 용기를 가지고 발언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참여"라고 맞받았다. 조선일보는 이어령과 김수영 사이에서 오래 이어진 논쟁의 대단원을 1968년 3월 26일 문화면 머리기사로 마무리했다. 두 사람의 상호 반론이 같은 분량으로 동시에 실렸다.

'자유가 억압당할 때, 문학은 사회 현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조선일보와 사상계를 오가며 벌어진 이어령과 김수영의 논쟁은 1960년대 후반을 장식한 지식인 사회의 불꽃 튀는 대결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향해 달려가던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지적 고뇌를 담은 이 논쟁은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참고문헌>

    1. 이태훈, “문학이여, 권력에 맞서라...시대 달군 별들의 논쟁”, 조선일보, 2020.5.26일자. A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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