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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를 든 철학자 - 프리드리히 니체(3)

2023.06.26 | 조회 1438 | 공감 0



상생문화연구소 황경선 연구위원


3️⃣ ‘루 살로메’, 그것은 운명의 잔인함


이 무렵 니체에게 삶은 지옥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두 군데의 두통과 고통스런 구토를 일으키는 편두통의 엄습으로 그는 몇 주간을 침대에서 누워 지낸다. 시력은 약해지고, 전쟁터에서 얻었던 위장병마저 도진다. 뾰족한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한 의사들은 그를 요양 보내며, 약을 다량 처방해주거나 엄격한 식이요법을 하도록 지시한다.


니체와 같이 뇌질환을 앓다 36세에 죽은 아버지의 영상이 그를 따라다닌다. 여기다 장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어떤 권고나 처방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자, 그는 자살을 궁리하기도 한다.


질병에도 불구하고 혹은 질병 때문에 그는 아내를 구할 생각을 한다. 제네바에서 23세의 한 아름다운 처녀에게 반한다. 그녀는 그의 한 친구에게서 피아노 교습을 받던 ‘마틸데 트람페다하’란 아가씨이다. 서로 알게 된 지 불과 며칠 만에 청혼함으로써, 그의 애정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녀를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기감정을 억누르는 성향 탓으로 니체는 마틸데를 개인적으로 찾아가지는 못한다. 대신 그는 편지를 보내 청혼을 하며 자기가 제네바를 떠난다는 사실도 알린다.


“나의 아내가 돼 주시겠습니까?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이 벌써 나의 것인 양 생각됩니다. … ‘예’든 ‘아니오’든 서둘러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그래서 당신의 짤막한 답장이 내일 아침 10시까지 내게 전달되도록 해주십시오.”


러시아 아가씨(그녀는 당시 러시아 영토인 리가 출신이다)는 즉시 답장을 써 그의 구혼을 정중하게 물리친다. 이미 피아노 교습 선생을 사랑하고 있던 그녀는 니체를 단지 “비상한 인물”이라고만 여길 뿐이다.


그럼에도 니체는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단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어머니 같은 그의 한 여자 친구가 그에게 용기를 심어준다. 28세로 그보다 연상인 말비다 폰 마이센부크 남작男爵 부인이다. 니체가 바이로트에서 알게 된 이 귀족 부인은 좌파적 성향 때문에 때때로 독일을 떠나 망명을 해야 했으며, 런던과 파리에서 산 적이 있었다.


결혼 전에는 처녀의 몸으로 러시아 사회주의자 알렉산더 헤르첸의 딸을 거둬 키우기도 했다. 그녀는 니체와의 첫 대면에서 이미 “금세 진심어린 사이가 된, 청년다운 훌륭하고 사랑스런 인물”이란 인상을 받는다.


두 사람은 그들이 다 같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마땅한 “신붓감”을 물색한다. 이미 때때로 간병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처지이고 또 과중한 교수업무를 계속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워하는 니체지만, 자신의 결혼 상대에 대해서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내세운다.


예를 들면 그는 한 신붓감에 대해선 나이가 많다(30세)는 이유로 트집 잡는가 하면 또 다른 후보에 대해선 “6주간이 지나면” 자기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신부 후보의 자질을 꼼꼼히 살피기는 폰 마이센부르크 부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부는 “착하면서도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계획들은 수포로 돌아가고, 더 이상 단출한 살림살이를 꾸려갈 수 없던 니체는 어머니에게 여동생 엘리자베스를 바젤로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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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 속에서도 그에겐 자신의 저작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 책을 저술할 여력이 있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무신론자들을 위한 책』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경구警句와 간결한 기고문들로 채워져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개정된 루가복음 18장 14절 -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임을 받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반대 하는가 - 흔히 우리는 단지 어떤 의견이 개진되는 목소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반대한다.”


“사랑받고자 하는 것 - 사랑받고자 하는 요구는 가장 주제 넘는 짓이다.”


“진리의 적 - 확신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참회 - 우리는 자기 죄를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고 나면 죄를 잊는다. 그러나 고백을 들은 사람은 보통은 그것을 잊지 않는다.”


1879년 초 니체의 건강은 교수직을 포기해야 할 만큼 최악의 상태에 달한다. 엄습하는 고통이 이틀에서 엿새까지 계속되는 일이 잦아지고, 고통 없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20분을 채 넘지 못한다.


마지못해 니체의 사직을 받아들인 바젤 정부는 퇴직금을 지급한다. 이어 관광국에 퇴거 신고를 한 니체는 여동생에게 살림을 정리하도록 이른다. 그후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산 나머지의 여생 동안 그는 더 이상 가정의 편안함을 가져 보지 못한다.


그는 기후조건을 자주 바꿔보는 게 병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는 대개 심리학자인 파울 레와 같은 친구들이 동행한다. 그는 특히 베니스, 제노아, 뵈메산맥, 로마 등지를 여행한다. 로마는 1882년 그가 “루-체험(Lou-Erlebnis)”을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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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젊은 러시아 여자” 루 살로메(Lou Salome)는 1861년 페테르부르크에서 한 장군의 딸로 태어났다. 1887년 그녀는 동양어 학자인 프리드리히 안드레아스와 결혼하고 나중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 운동에 가담한다. 하지만 오늘날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니체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의 교분 때문이다.


그녀는 미모보다는 대담함과 지성으로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끈다. 견진성사를 받는 소녀 시절 그녀는 벌써 기독교 이론과 이슬람, 불교, 힌두교 이론을 비교하는 시도를 한다. 그밖에도 철학, 특히 칸트를 공부하는데 인식론에 대한 그녀의 지식은 상당히 해박한 수준이다.


루 살로메는 보다 온화한 기후가 자신의 병[각혈병]을 호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바람에서 어머니와 함께 러시아를 떠나 취리히로 이주한다. 취리히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여자들에게 대학 입학을 허용한 곳이다.


그렇지만 병에 별다른 차도가 없자, 그녀는 좀 더 기후가 따뜻한 곳을 찾아 로마로 다시 옮긴다. 이곳에서 니체의 친구인 말비다 폰 마이센부크와 심리학자 파울 레를 만난다. 그녀에게 반한 젊은 심리학자 파울 레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만, 러시아 여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1882년 4월 니체가 로마에 도착하여 성 베드로 성당을 구경하다 루를 알게 될 때는 친구의 연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37세의) 철학자는 금세 21세의 아가씨에게 빠져들고 구혼을 하리라고 혼자 결심한다. 하지만 6년 전 마틸데 트람페다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개인적으로 그녀의 의사를 직접 물어볼 용기를 갖지 못하고, 불행하게도 친구 레를 중매자로 세운다.


원칙적으로 결혼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루는 이번의 청혼 역시 거절하고, 대신에 자신과 니체 그리고 레 이렇게 셋이서 일종의 연구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내놓는다. 니체와 레는 이에 동의하고 활동공간으로 파리를 제시한다.


그렇지만 철학자는 러시아 여자를 독점하고 싶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지난번의 구혼이 성사되지 못한 것은 레가 제대로 중매를 하지 못했던 탓이라고 믿고 있는 니체는 순전히 우쭐한 기분으로 그녀에게 자기의 새 작품 『즐거운 학문(Die  fröhliche Wissenschaft)』의 교정쇄를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청혼을 하지만 이번 역시 실패를 겪는다.


그해 7월 바이로이트로 여행을 간 루는 그곳에서 한 러시아 화가에게 접근한다. 이 일로 해서 폰 마이센부크 부인은 이제 정말로 “그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바그너의 도시에서 자유분방한 장군의 딸은 또 니체의 여동생인 엘리자베스와 볼썽사나운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오빠의 애정에 대해 알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극도의 질투심 속에서, 러시아 여자에게 오빠를 잃지 않을까 의심한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로이트의 두 여자는 니체가 휴가를 보내고 있던, 예나 부근의 한 마을 타우텐부르크로 함께 간다. 니체는 또 한 번 루의 애정을 얻고자 시도한다. 그렇지만 이번엔, 그와 마찬가지로 루에게 퇴짜를 맞은 바 있던 연적戀敵인 파울 레를 깎아내리는 얘기를 하는 실수를 범한다. 루는 크게 화를 낸다. 훗날 그녀는 “놀랍게도 그[니체]가 그같은 방법이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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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에서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만난다. 여기엔 경쟁자 레와 안질이 생긴 철학자의 구술을 받아 적는 작업을 자주 해주던 또 한 명의 친구, 작곡가 페터 가스트가 자리를 함께한다. 하지만 레와 루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베를린으로 떠나 한 젊은 학자들의 모임에 들어가고, 그 후 곧 니체와 함께 셋이서 파리로 가려던 애초의 계획을 포기한다.


실망과 고독을 간직한 채 철학자는 혼자 떨어져 남는다. 그는 “문제의 루 폰 살로메, 그것은 운명의 잔인함, 연민, 지옥-고통의 감수이다”라고 깨닫는다.


그녀는 “영혼의 부가물이 덧붙여진 뇌”, “사랑 없이도 사람을 감격시킬 수 있는” … “고양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또 이렇게 적고 있다. “그녀가 내게 없다면, 그녀의 고약한 성질들만이라도 함께 있다면, …”


여행을 통해서 그는 슬픈 에피소드를 잊으려 한다. 라팔로와 니스 그리고 2년 전에 우연히 발견했던, 스위스의 마을 실스마리아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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