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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2천 년의 비밀 - 사마천이 만든 중국사 (1)

2022.08.24 | 조회 4902 | 공감 0

사기, 2천 년의 비밀 - 사마천이 만든 중국사 (1)


들어가며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관史觀이다. 일정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서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역사의 내용은 완전히 바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알기 이전에 그 역사를 쓴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민족사를 우리 시각이 아니라, 중화 사대주의사관과 일제 식민사관 등으로 오염된 역사관으로 보아 왔다. 해방 이후에도 제대로 된 사관을 정립하지 못한 채, 여전히 잘못된 역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사正史인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라는 망발로 치부하며 그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과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중국 통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대한 주석 작업을 해 온 이덕일 소장의 신작 『사기, 2천 년의 비밀 - 사마천이 만든 중국사』 발간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기』가 지니고 있는 역사학계의 위상은 굉장히 크고, 그 가치에 비례하여 우리 한민족사는 완전히 비틀려 있기 때문이다. 『사기』에는 우리의 상고사를 엿보게 해 주는 자료가 들어 있는데, 이 부분이 아주 교묘하게 왜곡되어 있다.

따라서 『사기』만 제대로 연구되더라도 지금의 중국 역사를 시작한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동이족의 관점으로 바라본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기록이며 우리의 원뿌리를 찾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사마천이 속이고 조작한 ‘사기詐欺’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책 내용 살펴보기


이 책의 핵심은 그동안 중국 최고 역사서로 인정받아 온 『사기』에서 한족의 정통 계보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살피고 그 과정에서 사마천의 숨은 의도를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기전체 역사서의 탄생〉에서는 사마천은 왜 기전체紀傳體라는 형식으로 역사를 서술하였는지, 그리고 ‘민족’이라는 용어에 담긴 상반된 의미를 통해 책 내용에서 계속 언급하는 동이東夷와 화하족華夏族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실체가 없었던 한족漢族을 만들고 그 한족들이 중국사를 창조하였다는, 그렇게 만든 한족들의 천하사가 바로 『사기』임을 천명하고 있다.(본문 35쪽 참조)

이어 2장 〈중국 고대사는 동이족의 역사〉에서는 오제五帝 이전 삼황三皇의 실제 모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바로 삼황의 첫 번째인 복희씨伏羲氏와 신농씨神農氏 등을 다루면서, 이 삼황은 동이족이었음을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로 논증하고 있다. 3장 〈오제를 찾아서〉에서는 중국민족이 자신들의 시조로 여겼던 황제黃帝의 민족 귀속성과 성 및 출생지 등과 함께 사마천이 지우려 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어 오제의 또 다른 인물들인 전욱顓頊과 곡嚳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에 대해서 다룬다. 여기서는 요순선양堯舜禪讓의 진실과 더불어, 중원 고대사의 실체에 대해서 큰 충격을 준 낙빈기駱賓基의 『금문신고金文新考』를 통해서 순임금이 요임금의 두 딸과 혼인한 것은 동이족의 혼인 풍습임을 설명하고 있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읍지는 동이족의 유적지이고, 이들 역시 동이족임을 말한다.

이어서 황제를 중국사의 시조로 삼으면서, 동북아 5대 역사 왜곡의 시초인 탁록대전琢鹿大戰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

4장 〈하•은•주 삼대의 시조들〉에서는 역시 동이족 국가인 하夏나라와 상商나라 그리고 주周나라 시조들의 혈통을 말하고 있다. 이어 주나라가 중원을 점령하면서 중국中國이라는 개념과 화이관華夷觀이 탄생했음도 알려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5장 〈『사기』 「세가」의 세계世系〉를 통해서 중원을 지배했던 이들이 동이족 출신의 제후국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전반에서 동이족의 실체는 중원中原에 널려 있으며, 이들에 의해 중원 대륙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가 진행되었음을 밝히면서, 사마천이 『사기』에서 감추려 했던 역사의 실체를 밝히는 첫 작업이 이 책의 발간임을 말하고 있다. 계속해서 『사기』가 감추어 왔던 비밀들이 후속 작업을 통해서 더 명백히 드러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본 한중 고대사의 비밀


중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난제는 중국사의 시작이 언제부터냐는 것이다. 이는 중국 민족의 시작이 언제부터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중국 민족은 유방劉邦이 세운 한漢나라를 따서 한족漢族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우禹임금의 하나라에서 ‘하夏’ 자를 따고 산시성陝西省 화산에서 ‘화華’ 자를 따서 하화족夏華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한족, 즉 하화족 역사의 시작이 언제부터냐는 것인데, 사마천은 황제黃帝부터 시작하는 「오제본기五帝本紀」로 중국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마천의 이런 설정에 의문을 품은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오제 전에 삼황三皇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색은索隱』의 편찬자 사마정司馬貞은 사마천이 삼황을 삭제한 데 불만을 품고 복희, 신농, 여와씨를 수록한 「삼황본기三皇本紀」를 따로 편찬했을 정도로 사마천의 계보도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사마천은 오제의 시작을 황제로 설정했지만 서진西晉의 황보밀皇甫謐(215~282)은 『제왕세기』에서 삼황도 수록하고 황제가 아니라 소호少昊를 오제의 첫 번째로 꼽았다. 사마천이 황제부터 중국사를 시작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마정과 황보밀 등은 사마천이 삼황과 오제를 삭제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중국은 최근 산둥성山東省 남부 임기臨沂(린이)시에 거대한 동이문화박물관을 열었다. 여기에 네 명의 동이족 군주를 전시해 놨는데,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치우蚩尤, 순舜임금이 그들이다. 삼황의 시작이 태호복희씨이기 때문에 삼황부터 『사기』를 기술하면 한족의 중국사가 아니라 동이족의 중국사가 되기 때문에 삼황을 삭제한 것이다.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의 역사 왜곡과 역사 만들기는 여기서부터 비롯하였다.

화하족은 실체가 없다

저자는 우선 ‘민족民族’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한다. 혹자는 민족이 근대에 생겼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역사의 기초를 모르는 무리한 주장들’이라고 하였다. ‘민족’이라는 용어 자체는 서구에서 들어온 용어들을 일본에서 한자로 만든 것이 맞다. 그렇지만 1872년에 민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고 해서 이때부터 민족이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민족을 족류族類 또는 겨레라고 하였다. 그리고 근대 유럽 사회의 민족은 중세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 사회가 무너지고 민족국가가 들어서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된 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민족주의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의미이다.

동아시아에서 민족을 뜻하는 한자는 크게 이夷와 화華로 나뉜다. 화華는 꽃이 핀다는 뜻인데, 중국의 전국시대와 전한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는 한족漢族의 의미가 없다. 반면 이夷는 상商(은殷)에서 만든 갑골문에 나오고, 주나라의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金文에 여러 번 나온다. 이夷는 ‘큰 화살을 쏘는 사람’이라는 뜻과 평(평정平定)한다는 뜻이 있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꺾고 중원을 차지한 후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의 주요 영역인 허난성河南省 낙양 일대를 하락河洛(즉 황하와 낙양 일대 지역)이라고 구분했는데, 이를 중국中國이라고 부르면서 화이華夷 개념이 생겨났다고 한다. 즉 주나라를 중심으로 사방의 겨레를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분류하면서 하화夏華와 이夷의 개념이 생겼는데, 이는 사마천의 『사기』 이후 뚜렷해졌다.

현재 중국인들은 자칭 한족漢族이라고 한다. 이 한족의 전신은 하화족夏華族이라고 말하는데, 하나라가 자신들을 중국으로 여겼다는 사료적 근거는 찾기 힘들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즉 하화족의 실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사마천이 숨기려고 했던 특급비밀 - 삼황
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伏인댄 하사도인다불가何事道人多佛歌오
마땅히 선천 문명의 조종祖宗은 태호 복희씨인데 웬일로 도 닦는 자들이 허다히 부처 타령들이냐! (증산도 도전道典 5편 282장 3절)



강씨는 인류의 시원 성姓이니 상고시대 동방 배달의 신농씨神農氏로부터 시작하니라. 신농의 아버지 소전씨少典氏가 군병 감독의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 살았으니 신농이 그곳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성을 강姜씨로 하니라. 신농의 후손 강태공姜太公은 동방 신교의 일맥一脈을 한족漢族에 전수하고, 병법兵法과 정치政治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베푸니라. (도전道典 1편 12장 2절 ~4절)



삼황은 흔히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를 꼽는데, 복희씨와 신농씨는 부동이지만, 황제는 수인燧人, 축융祝融, 공공共工 등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또한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으로도 말하며 이는 천지인 삼재三才 사상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이 천지인 사상은 한민족 고유의 핵심 사상으로 이는 동이족 문화임을 알 수 있다. 즉 태호복희씨와 신농씨가 동이족 출신이기에 사마천은 이 삼황을 삭제하려 했음을 저자는 문헌 자료를 근거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씨氏와 성姓의 차이점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우리가 흔히 혼용해서 사용하는 씨氏와 성姓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복희씨, 신농씨, 강姜씨, 희姬씨 이렇게 되어 있는데, 성이 씨보다 큰 개념으로 여러 씨들을 포괄한다.

성은 주로 토템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하는데, 성姓 자의 부수가 ‘여자 여女’인 것은 성이 모계 사회에서 나왔음을 말해 준다. 모계 사회가 부계 사회로 전환되면서 성이 나뉘어 씨가 다시 나타나는데, 하상주夏商周 3대 때 씨는 귀족 종족 제도의 대표적 칭호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분화되면서 성이 한 가족이 후대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칭호라면, 씨는 성 중에서 갈라져 나가 일부가 사용하는 것으로, 나라 이름이나 읍의 이름, 또는 관직이나 직업의 이름을 씨로 삼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대에는 주로 자라서 성공한 곳을 성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신농씨는 강수姜水에서 살았기 때문에, 강姜씨의 시조가 되고, 황제는 희수에서 자라 희성姬姓이 되었다. 즉 성姓은 지금의 본관과 비슷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계속)

(월간개벽 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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