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상의 염원이 깃든 모악산 금산사金山寺

진리가이드 | 2009.10.19 18:43 | 조회 5531

 
천지의 어머니산인 모악산(母岳山)과 상제님의 강세를 예비한 금산사 미륵전. 예로부터 이곳은 민족의 영산(靈山)으로서 민중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망과 구원의 등불로서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미륵의 용화세계를 기원하며 수없이 오르내렸을 모악산 금산사. 상제님 천지공사로 인해 더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된 역사의 현장을 더듬으며, 미륵부처님이신 상제님의 삶과 숨결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道典 4:107, 모악산 일대 지도 참고)  



 


금산사 가는 길
금산사 톨게이트에서부터 모악산 금산사를 찾아가는 길에 처음 만나는 성지는 바로 낙수동(洛水洞) 오경재 물방앗간 터입니다. 세월을 먹고 자라난 몇 그루의 키 큰 소나무 아래 한적하게 자리잡고 있는 곳이 오경재 집터입니다. 낙수동은 금을 씻는 물이 내려와서 떨어지는 곳이라는 뜻에서 낙수동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상제님께서 오경재의 물방앗간 집에 방을 빌려 성도들에게 태을주 수련을 시키실 때, 영산과 초산(楚山), 단산(丹山)을 화권으로 순식간에 불러 앉혀놓고 성도들의 태을주 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가운데 인사를 시키신 후 으스름한 황혼 무렵에 천지일월 사체 공사를 보셨습니다(道典 5:385). 단산은 초산의 제자이며 초산은 상제님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초산의 제자이며 단산의 친구였던 수산의 후손 증언을 들어보면 이들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안필성 성도와 함께
금산사 주차장이 자리한 계룡마을은 안필성 성도의 집과 물레방아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상가와 민박집들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필성 성도의 집터를 지나면 <;육탄 삼용사 안영권 하사 기념비>;가 서있습니다. 안영권 하사는 안필성 성도의 첫째 아들의 맏이로, 첫 손자인데 6.25 한국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안필성 성도에게 수제자가 되어 상제님을 따르라고 몇 차례나 권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필성 성도는 동학난 이후 예수교를 신봉하면서 끝내 따르지 않았고, 결국 상제님이 경고하신 대로 안필성 성도의 손자 대부분은 비명횡사를 하게 되는데, 안영권 하사만이 이렇게 이름을 남겼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기간 중 가장 치열하게 고지 쟁탈전을 전개했던 백마고지 전투. 사부님께서는 ‘도운을 위해 준비된 전투’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도 있습니다. 이 비석을 보고있노라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절대 물러서지 않으며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군인정신에 감읍하게 되는데, 바로 그 군인정신이 우리 핵랑군이 가져야 할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이곳 금산사 주변은 특히 상제님께서 천상에서 친구로 데리고 오신 안필성 성도와 공사를 많이 보신 곳입니다. 안필성 성도의 집에서 술을 드실 때 가뭄을 해갈하는 공사를 보시고, 극락산 쪽으로 물을 튕기시어 용반(龍蟠, 용이 서려있는) 골짜기에 걸쳐 쌍무지개가 뜨게도 하신 공사(2:86:6∼15)에서 안필성 성도가 받은 친구 도수를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용반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게 되면 문공신 성도가 10년 간 수행을 했던 모악산 고소재(姑蘇峙)가 있습니다.
 
용반골을 지나 금산사로 가면 바로 만나는 것이 금산 동문 돌부처입니다. 도전을 보면 태모님께서 금산사를 가시다가 이곳 돌부처의 머리를 담뱃대로 때리시자 머리가 뚝 떨어지는 내용이 나옵니다(11:115:1∼3). 지금은 시멘트를 발라 목을 붙여놓았는데 떼어 붙인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무지개문의 내력을 아느냐?”
금산사 매표소를 지나면 상제님과 호연이 물에 빠진 영혼을 건져 제사를 지냈던 용소(9:81)가 나옵니다. 상제님께서 공사보실 당시만 해도 용소가 굉장히 커서 현재의 용소에서 매표소까지가 용소자리였고, 그 깊이만도 명주 실꾸러미 하나를 다 풀어도 닿지 않을 정도(약 10m)였다고 합니다. 용소를 메우신 공사(9:83)로 인해 지금은 길이 생기고 제방이 생겨서 조그마하고 얕은 곳으로 그 흔적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용소에서 올라오면 돌무지개문이 보입니다. 이 돌무지개 문은 ‘견훤 성문’이라고도 하는데,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왕위를 넷째 아들 금강에게 물려주려 하자 맏아들 신검이 935년에 아버지 견훤왕을 금산사에 가두기 위해 금산산성을 쌓고 이 돌무지개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도전에 보면 상제님께서 “무지개문의 내력을 아느냐?”(4:140:2) 라고 물으시는데 천륜을 거스르면 나라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상제님의 천지공사 또한 천륜으로 이뤄져있음을 암시하는 말씀으로도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이 돌무지개문 안으로 트럭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컸으나 1969년 반으로 축소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돌무지개 문에서 김형렬 성도가 상제님을 모신 일은 “온 인류가 도솔천의 천주님을 모시는 역사의 첫발자국을 떼 놓는 순간을 상징하는 대단히 중요한 의식이다” 라고 사부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돌무지개 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김형렬 선생 등 88 애국지사 충헌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 보천교 성금이 상하이 임시정부로 전달되었다는 얘기는 태사부님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곳 금산사에서 교단을 열었던 김형렬 성도님도 김구 선생님께 자금을 전달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김제의 일본헌병대가 금산사 미륵전을 습격해서 김형렬 성도님과 제자들을 잡아 가둔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후 이 일을 잊지 않기 위해 김형렬 성도의 제자가 이 비석을 세웠다 하니, 당시 그 고초가 참으로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인연의 시작과 끝이 맺어진 금산사 미륵전
금산사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 언덕길 너머로 극락정토의 다른 말이라 불리는 ‘안양동(安養洞)’과 그 끝에 상제님께서 박금곡 주지에게 용봉(龍鳳) 두 글자를 써주신 ‘청련암(靑蓮庵)’이 있는데, 먼발치서 눈으로만 훑어보며 곧장 금산사로 향했습니다.
 
일주문, 금강문 그리고 상제님께서 상량을 커다란 구렁이로 만드시고 또 죄지은 자가 금산사 경내로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공사(9:38∼39)를 보신 사천왕을 지나면 마침내 넓은 금산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금산사는 진표가 12세 때 출가할 당시에는 조그마한 절이었으나, 진표가 변산 부사의방장에서 미륵불을 친견한 후 미륵님의 명으로 이곳에 미륵전을 세움으로써 비로소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미륵전의 맨 위의 현판은 「미륵전」, 그 아래 현판은 「용화지회」로 ‘용화세계를 만드는 일꾼들이 모인다’는 뜻입니다.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는 미륵불을 자씨보살로 번역해서 「대자보전」이라고 합니다.

또한 미륵전 건물을 비롯해 미륵불이 조성되는 단계, 미륵불이 서있는 원리 등에서 상제님의 일이 삼변성도(三變成道)로 이뤄질 것과 그 일을 매듭짓는 인사의 주인공이 물(水)과 불(火)의 기운을 가지고 오신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금산사는 그 중심이 미륵전이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곳을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대적광전이라고 합니다. 또한 금산사에는 석가모니 부처 이전에 도통을 했던 정광여래 부처의 사리탑도 있어 과거부처와 현재부처와 미래부처가 한 곳에 모셔져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서편에 있는 대장전은 본래는 미륵전 바로 앞에 놓여 미륵전을 장엄하게 꾸며주는 역할을 했는데, 상제님께서 미륵전 앞을 넓히시는 공사(5:282)를 보심으로 인해 1922년에 미륵전 반대편으로 옮겨졌습니다. 현재 미륵전 앞이 시원스레 트여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시고,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천상으로 환궁하시는 그 인연의 시작과 끝이 맺어진 곳이 바로 이곳 금산사 미륵전입니다.
 
진표율사님이 미륵전을 창건한 이후 줄곧 미륵부처님의 신앙 도량이었고,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보실 당시에는 성금 궤짝을 가져다 놓으시고 시줏돈을 받아 중들에게 나누어주는 공사를 행하셨고, 1915년에 김형렬 성도가 금산사에 미륵불교 교단을 만드신 후에는 사월 초파일 행사 때도 주지가 김형렬 성도에게 허락을 받고 치성을 올렸고,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 하신 말씀처럼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후에는 상제님 신앙인의 터전으로 태모님과 수많은 성도들이 참배를 했던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금산사 앞마당에서 도전을 읽고 성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조차 절 관리인의 눈총을 감수해야 하고, 또 금산사뿐 아니라 많은 성지들이 심하게 훼손된 것을 볼 때면 한없이 우울해지고 마음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분기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얼마 전 석가탄신일 날, 많은 사람들이 대적광전 앞에서 기념행사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그토록 전하고자 했던 미륵부처님께서 탄강하신 지 135년이 넘었건만 저 많은 사람들은 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평소 장엄하게 보이던 미륵전이 그날 따라 왜 그리도 작게만 보이던지….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 한구석에 서글픔이 밀려왔습니다.  
 
1000년을 넘는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우리에게 소중한 성지인 모악산 금산사. ‘주대명(朱大明)은 금산사 미륵에게 기도하고 소원을 이루었으되, 민중전(閔中殿)은 각처의 사찰에 빠짐없이 기도하였으나 오직 금산사에는 들지 못하였다.’는 상제님 말씀처럼 미륵부처님께 기도할 때, 우주의 참하느님이신 상제님을 찾을 때 비로소 인간의 모든 꿈과 이상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인간 삶의 목적, 내 삶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감사함과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산사를 내려왔습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지명법사(智明法師)가 창건한 뒤, 신라 경덕왕 21년(762)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목숨을 건 3년의 구도 끝에 미륵불을 친견하고 불상을 세움으로써, 용화낙원을 염원하는 민중들에게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이 된 곳이다.


진표율사와의 인연으로 상제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실 때 그리고 천지공사를 마치신 뒤 천상으로 환궁하실 때 성령으로 머무르시어, 상제님과 인간세상의 인연의 시작과 끝이 맺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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