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화를 하나로 연 위대한 종교인

2011.10.06 | 조회 7119

마테오 리치

박수영 /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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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찬사가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의 종교인, 마테오 리치 신부님입니다. 신부님은 16세기말, 가톨릭의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건너와서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날까지 중국 선교에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가톨릭 선교사로서 신부님은, 개인적 선교 업적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동서양이 인종과 문화적 편견을 넘어 천국건설의 이념 하에 하나로 화합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과학 지식과 문물을 번역해 동양에 알리고 전했으며, 또 동양의 최고 엘리트와의 교분을 통해 배운 사상철학을 서양에 번역해 알리는 등, 동서양 문명 교류에 불멸의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하나의 문화 안에서 탄생하고 성장해온 개인이,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 위대한 성인의 반열에 오른 모범적 사례를 신부님은 직접 실증해 보여주셨습니다. 신부님은 종교인으로서, 자기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살다가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주신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신부님은 인류 보편의 이념을 위해 한 생애를 살다가셨습니다. 신부님이 남긴 업적에 비해, 이 세상은 아직 신부님의 생애를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세상의 명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선교를 위하여 어느 나라에서든 살겠습니다” (이탈리아의 소도시 시장이었던 아버지의 맏아들로서, 시장 직을 계승하지 않고 예수회 수도원 수사修士가 된 마테오 리치가 생애 처음 하나님께 한 서약. 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편집자주)



선교를 위해 동양을 배우다

마테오 리치가 태어났을 당시의 서양은, 종교개혁(16세기 서방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에 싸여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가 대립하였습니다. 북부 유럽은 신교가, 남부 유럽은 구교가 차지해 이미 지형도가 그려진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회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반발하여 일어난 가톨릭 내부에서의 혁신운동이었습니다. 인재양성과 선교활동, 신앙심의 확립 및 외교력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 등을 도모하였습니다.


마테오 리치는 19세에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며, 외지 선교를 희망하였습니다. 마테오 리치는 로마를 떠나 인도의 고아에서 4년간 머물며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어 1582년, 30세 되던 해, 중국의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마카오에 도착한 이후 명(明)나라 수도 베이징 내 궁궐에 입성하기까지 십여년 동안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면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아닌 이마두(利瑪竇)로서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14103_p184_07리치 신부가 중국식 이름을 지은 것은, 중국 체류를 허가받은 지 2년이 경과한 1585년이었습니다. 개명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중국에 귀화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리(利)’는 ‘리치(Ricci)’에서 따온 중국어 음사인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어로 ‘리’는‘Ri’가 아니라 ‘Ly’입니다.
‘마두’는 ‘마테오(Matteo)’의 중국어 음사입니다. 그는 또한 ‘서양에서 온 현자’라는 뜻의 ‘서태(西泰)’라는 별호로 불렸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합쳐서 ‘리 서태 마두’ 혹은 ‘서태자’로 불리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마테오(Matteo)’는 그의 세례명입니다. 


그가 얼마나 지역 선교에 열정적이었는가는 다음과 같은 복식에 관한 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중국인들은 자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매우 견고한 중화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러한 중화사상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 중국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더욱이 중국에서는 사제에 해당하는 계층이 승려였으므로, 리치도 그에 상응하는 선교의 방편으로 불교 승려의 복색을 갖추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서양의 문물을 동양에 전하다

[과학 기구의 제작]

리치는 사제 시절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면서 독일 출신의 클라비우스 교수에게 기하학, 천문학, 역학 등을 배웠으며 해시계, 자명종, 지구의 등의 제작법도 전수받았습니다. 남경에서는 황족인 건안왕에게 지구의, 천체의, 프리즘, 해시계 등을 선사했습니다. 북경에 도착해서는 세계지도와 자명종, 성화(聖畵), 프리즘, 클라비코드, 수학책을 포함한 서적 등 20여 가지를 공품 목록에 작성해 황제께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황궁의 고장 난 자명종을 수리한다는 이유로 정기적으로 황궁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리치는 천문을 맡아보는 흠천감에 유숙하며 자명종 사용법을 가르쳤으며, 많은 벗을 사귀며 해시계와 관상의(觀象儀) 제작법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스승 클라비우스의 일궤측시학과 관상의, 실용수학 등을 한문으로 편역하였습니다.


[새로운 지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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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중국의 지도는 한가운데에 중국이 위치하고 있으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조선과 일본, 캄보디아, 월남, 보르네오, 수마트라, 인도, 아라비아 반도가 아주 작게 표시된 천하도(天下圖)가 전부였습니다. 그런 중국 사람들에게 실제 크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는 충격이었습니다. 이 지도에는 유럽, 아프리카, 인도, 일본, 인도네시아, 중국 등 모든 나라가 그려져 있습니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으로 알던 중국 사람들은, 중국이 중심이 아니라 오히려 변방에 있으며 천하도에 그려진 중국의 크기보다 더 작다는 사실에 놀라, 이 지도 내용을 믿으려 하지도 않았답니다. 이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무려 1천여개, 각국에 대한 자세한 인문지리적 정보도 수록되어 있어, 중국은 물론 조선과 일본의 지성계에 엄청난 사상사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새로운 달력, 시헌력]

14103_p184_04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새롭게 만든 그레고리 역법입니다. 리치는 그레고리 역을 한문으로 번역해 서양의 천문학과 역학을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소개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청나라에서는 1644년부터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한 ‘시헌력’(時憲曆)이 시행되었습니다. 시헌은 리치의 호(號)이며, 시헌력은 태음력(太陰曆)에 태양력(太陽曆)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만든 역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653년(효종4)부터 조선말까지 이를 사용하였습니다. 1895년 (고종32)에 태양력이 채택되었을 당시 시헌력도 같이 참용(參用)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구력(舊曆)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새로운 학문의 세계]

리치는 학창시절 라틴어와 헬라어를 연상에 의한 기억법으로 읽혔다 합니다. 어떤 책이든 한번 읽으면 모조리 외울 수 있었으며, 이런 천재적인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중국에서 기법(記法)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법학을 전공하다 사제가 된 그는, 신학 외에도 수학 기하학 천문학 역학 등 박학다식하기 이를 데 없어 중국인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천문학과 역학의 기초가 되는 수학은 아무런 증명도 없이 단지 명제를 주장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유로 진사에 급제한 서광계와 더불어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 15권중 첫 6권을 『기하원본』이란 이름으로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동양인에게 수학적, 논리적 사고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습니다.


[새로운 예술의 세계]

마테오 리치가 황제에게 진상한 명품 가운데 클라비코드(피아노의 전신)라는 악기가 있었습니다. 황제는 악관들로 하여금 선교사에게서 연주법을 배우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전통 악곡이 5음 14성으로 되어 있고 반음 처리가 되지 않아 음계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진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태감들에게 유럽의 음계와 연주법을 전수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의 민요인 ‘아니무치아’와 ‘나니노’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서금곡의 팔장』이라는 한문곡을 지었는데 이 곡은 중국인의 심성과 사고에 부합하는 가사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후 클라비코드는 오랫동안 중국의 악기로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그는 투시법에 의한 원근법을 적용하는 화법도 전해 주었습니다. 처음 그림을 접한 황제는 그림이 살아있다며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동양의 문화를 서양에 전하다

14103_p184_06리치는 중국어를 배우고 한문을 익혔으며, 중국의 관습과 법을 연구하였습니다. 사서삼경 등 특히 유학을 공부하여 라틴어로 번역하는 등 유가와 천주교 교리의 유사성에 천착하였습니다. 중국에서 『사원행론』(四元行論)이라는 책을 펴내 우주관과 인식론 등 당대 최고 수준의 학식을 갖춘 사대부들과 토론을 벌이며 학식과 인품을 널리 인정받는 등 푸른 눈의 신부의 열정이 동양문화의 정수를 파악하기에 이릅니다. 오늘날 유비쿼터스 문화로 발전하는 컴퓨와 디지털 문화의 기반은 0과 1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2진법입니다. 수학자 라이프니쯔가 2진법을 발견하면서 세계 최초로 4칙연산(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을 할 수 있는 계산기를 발명합니다. 사실인즉 2진법이란 태극의 궤의 원리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라이프니쯔는 중국에 간 친구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보낸 편지에서 우연히 두 장의 ‘태극도’를 입수하게 됩니다. 그는 태극도 64괘의 배열이 바로 0에서 63에 이르는 이진법 수학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원리에서 계산기 작동의 힌트를 얻었으며, 이진법의 원리는 오늘날 컴퓨터 문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코드가 되었습니다.



천주(天主)와 상제(上帝)는 동일한 분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님은 중국에서 생활하며 유교, 불교, 도가, 양자, 묵자 등을 공부하면서 동서 문화의 다양성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동양문화에 대한 깊은 안목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기 신앙관에 결단을 내리게 되었으며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구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모시고 있는 천주(天主)와 유교의 하늘(天)과 상제(上帝)님 신앙의 맥이 통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저술하면서, 책의 서두에 ‘천주(天主)는 경서(經書)에 나오는 상제(上帝)와 동일한 분’이라고 정의합니다. 유교의 상제와 서교의 하느님은 결코 다른 신이 아니라 같은 신이요, 같은 신에 대한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의 교리는 중국 전통의 유교적 세계관과 윤리관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유교적 세계관을 더욱 완전하게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더욱이 그는 고대의 천(天) 사상으로 돌아가 거기서 상제를 만나야 한다고까지 설파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명나라의 고위 관료들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게 됩니다.



참 성인(聖人)이 돌아가시다

14103_p184_09마테오 리치에게 안정된 생활은 없었습니다. 긴 여행과 이질적인 풍토로 인해서 중병을 많이 앓았습니다. 또한 선교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난항을 겪을 때마다 격심한 심신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추방되거나 억류되는가 하면 심지어 도적(盜賊)으로 몰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친형제같이 사랑하였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덕인(德人)으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수천명의 지인이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 종교 과학 수학 지리 음악 미술 기억술 등에 관해 논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그런 논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과로로 쓰러져, 중국에 들어온 지 27년이 되던 해 1610년, 향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황제는 북경성 밖 책란(柵欄) 땅에 리치 신부의 장지를 윤허하였습니다. 중국 역사상 황제가 직접 서양인에게 묘지를 하사한 보기드문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숨졌을 때, 중국인들은 리치 신부를 “성인, 진정한 성인”이라고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현대 문명이 인도하는 지상 천국


살아생전 동서양의 지식을 두루 섭렵한 마테오 리치는 원대한 이상을 품게 됩니다. 동양을 무대로 ‘천주교 중심의 천국’을 건설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천국이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지상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실로 기독교 역사상 아무도 품어보지 못한 실천적인 대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망을 다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불세출의 업적을 지상에 남기고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한 성인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리치는 육신 없는 인간인 신명이 되어서도 ‘천국건설’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상 신도(神道)세계에서 더욱 정열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우수한 두뇌와 부드러운 사교술, 폭넓은 인간관계와 근대과학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지적 능력, 천주님에 대한 경건한 신앙심을 근간으로 하여, 그는 사후 신도(神道) 세계에서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가서 문명 발전에 역사하였습니다. 17,18세기 약 200여년 동안 서양의 문명사는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19세기 현대 문명을 근대화로 인도하였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천주님 ‘상제님’을 알현하고 ‘지상천국 건설’을 탄원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증산도 도전(道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오직 단 한 사람, 마테오 리치 대성사만이 서양의 하느님과 동양의 상제님이 같다는 결론을 실천적으로 얻어낸 성인입니다. 『증산도 도전(道典)』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뜻 것이 바로 현대 문명이라”(道典 2:30:7),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라.”(道典 2:30:8) 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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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비약적 문명문명 발전을 이뤄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 리치의 순수한 구도 정신이 이 천지 안에 울려펴지고 있습니다. 인류를 위해 지고한 일심 노력을 다한 그분만이 천상의 여러 문명신들을 움직여, 지상의 문명 혁신을 이뤄냈다는 놀라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구는 땅에 사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천상 신도세계에서의 선행된 노력, 즉 마테오 리치와 여러 문명신들의 지고한 노력에 의한 합작품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고자 한 마테오 리치. 생사를 넘어선한 사람의 일심과 노력으로, 동양 문화와 서양 문물이 서로 교류를 하고, 천상과 지하의 문명이 교류했다는 점은, 인간의 일심 노력이 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놀라운 진실을 증거하는 것 같습니다.



꿈을 실현하는 위대한 사람들


마테오 리치의 생애에서 우리는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한 사람의 믿음과 소망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신명계 마저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말입니다. 지나간 세상에서 살다간 위대한 성인들은 모두 그러한 생애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그저 천상에서 뒷짐지고 지상을 조롱하며 비웃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강력한 일심의 원력이 대우주에 영원한 자취를 남기고 또 시간을 초월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연 과학과 인간의 문명에까지 선인(先人)들의 도과(道果)가 살아숨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세상은 인종과 계층을 넘어, 지역을 넘어, 모든 장벽을 열어제치고 완벽히 열려 하나되는 ‘꿈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인이 하나라는 신념은 400년 전에는 단지 꿈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한 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존하는 목적이요 살아가는 원동력입니다. 인간의 위대한 힘이 상생으로 하나된 지구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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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출간된 마테오 리치 서적들
·천국문명을 건설하는 마테오 리치(양우석, 상생출판 2008)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 마테오 리치 (히라카와 스케히로, 동아시아 2002)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조너선D. 스펜스, 이산 2002)

·西方(서방)에서 온 賢者(현자) -마테오 리치의 생애와 중국 전교 (빈센트 크로닌, 분도출판사 1989)


-번역서

·천주실의 (송영배 역,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교우론 스물다섯 마디 잠언 기인십편 (송영배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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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년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미니북 시리즈 「천국문명을 건설하는 마테오 리치』(상생문화총서 002)에 의하면, 마테오 리치의 업적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막혀 있던 동서 문명의 장벽을 허물고 문명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 둘째 천지간의 신들을 서로 왕래하게 하고 천국 문명을 본떠 내려서 지상의 문명을 크게 발달시켰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지상에서 동서 간의 지역 장벽을 허물어 만국을 하나되게 했다면 천상과 지상의 경계마저도 허물어 천국문명과 지상문명을 하나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 사람의 업적이 천지간 우주간에 미쳐서 역사 속에서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증적인 모델입니다.


2) 마테오 리치(이마두利瑪竇, 호는 시헌時憲; 1552~1610)는 누구인가?

마테오 리치(이탈리아 이름 Matteo Ricci, 중국 이름 이마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이자, 가톨릭을 아시아 대륙에 정착시킨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입니다. 가톨릭을 오늘날 천주교라고 부르게 된 배경이 신부님의 유명한 저서 <천주실의>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유럽을 구라파(歐羅巴)로 표기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1552년 이탈리아 중부 마체라타에서 태어났는데 현재에도 마체레타 대학교 본관에는 중국의 사대부 모자를 쓴 신부님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19세인 1571년, 예수회에 가입하였고 입교 후 동양 전도의 뜻을 품었습니다. 로마 대학교에서 1575년부터 수사학 인문과정을 공부했으며, 1577년부터 1579년까지 같은 대학교에서 철학 과정을 마쳤습니다. 나머지 신학공부는 1582년까지 인도의 ‘고아’(Goa) 지역에서 받았습니다(1580년 로마 가톨릭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14103_p184_031582년 예수회로부터 중국에서 선교하라는 지시를 받고 마카오에 도착하여 중국어와 한문을 배웠습니다. 중국어 실력이 유창하여 문서 선교, 즉 문서로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동역자(同役者) 루지에리와 함께 1583년 중국 조경(肇慶)에 정착하였습니다(이때부터 계속된 세계지도 제작은 1602년 곤여만국전도 제3판 발행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지도로써,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 밖의 나라들은 오랑캐라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던 중국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 주었습니다). 


마테오 리치는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였으며, 중국어로 교리문답서를 쓰고 한문저서 교우론을 저술하는 등 예수회 중국 선교 책임자가 됩니다. 그후 남경에 정착하여 고관 명사들에게 천문·지리·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황제를 만나 북경 거주허가를 받아 1601년 중국 베이징으로 왔습니다. 1603년 교리문답서인 천주실의를 출간하였습니다. 신종 황제의 호의로 선무문(宣武門) 안에 천주당을 세워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으며, 1605년 베이징에 천주당(중국에서 천주교회를 가리키는 말)을 세우고 200여명의 신도를 얻어 비로소 천주교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수회에서는 ‘위에서 아래로의 전도’라고 하여 상위계급이나 지식인들에게 먼저 전도하여 복음이 확대되게 하려는 전도방법을 갖고 있었습니다. 리치는 비록 명나라 황제 만력제를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나라의 쇠락을 걱정하는 개혁파 사대부들과 교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서광계(1562년-1633년), 이지조(1565-1630), 양정균(1562-1627) 등 일부 사대부 지식인들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서광계·이지조의 협력을 얻어 과학기술 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천주교 서적을 저작하는 등, 나머지 일생을 중국에서 활약하였습니다. 한국 실학파 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609년 중국 최초로 ‘성모 마리아회’를 창립하였고, 이듬해 1610년 58세에 별세하여 베이징에 묻혔습니다.


3)《천주실의》(天主實義)는 어떤 책일까

14103_p184_08《천주실의》(天主實義)는 1593년 경 저술된 책으로, 루지에리 선교사가 1584년 저술한 《천주실록》(天主實錄)의 개정판입니다. 저술 당시 해당선교지 책임자의 검열을 통과하기도 전에, 리치의 저술은 이미 그 라틴어 요약본이 명나라 말기 사대부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서교의 하느님이 유교의 상제와 같다는 주장과 서교의 인간 이해가 양명학과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1594년 남창(南昌)에서 초판이 인쇄되었고, 1601년 베이징에서 《1601년 베이징판 천주실의》가 출간되었습니다. 선교 책임자의 출간 승인을 받은 후에는 1603년 베이징에서 증보판 《천주실의》가 출간되었으며, 1605년이나 1606년 항주(抗州)에서 《항주판 천주실의》가 출간되었습니다. 천주실의의 내용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이를 유지하시는 하느님’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ㆍ유교의 상제(上帝)는 기독교의 하느님(天主)이라고 주장

ㆍ유교의 기초적 교리를 인정

ㆍ하늘나라의 존재를 언급하고, 인간의 영혼 불멸성을 강조

ㆍ인간의 영혼이 신령스러움을 중국 고전들을 통해 입증

ㆍ하느님이 동물을 창조한 것은 인간이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임

ㆍ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음

ㆍ성선설을 지지, 모든 행위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달림

ㆍ《천주교해략》을 읽을 것을 권함


4) [그외 저서 및 번역서]

ㆍ《교우론》(交友論,1595년경): 마테오 리치의 첫 한문저서이다.

ㆍ《서양기법》(西洋記法,1596년):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고전암기술을 소개한 책

ㆍ《이십오언》(二十五言,1599년): 고대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투스(Epictetus)의 잠언집을 중국인들에게 맞게 고쳐 쓴 편역서

ㆍ《기하원본》(機何原本,유클리드 저) 전6권 번역서: 한림원 서광계(徐光啓)와 함께 번역함

ㆍ《기인십편》(畸人十篇): 중국 사대부, 선비들과 나눈 토론을 언급하며 기독교 신앙을 소개한 기독교 변증서이다. 성서말씀(마태복음서7:14, 로마서8:18)을 한자로 풀어서 소개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5) 관련 증산도 『도전道典』 성구

* [道典 2:30:1∼8]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 산업혁명을 신명계에서 주도한 분이 이마두 대성사와 진묵대사이다. (도전 측주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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