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을 가장 먼저 모신 백복남 성도

2010.02.22 | 조회 4951

 
상제님을 맨 처음 수종 든 백복남 성도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을 모신 성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상제님을 모신 분은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어린이 성도였습니다. 1893년 6살 때 저 경상도 밀양에서부터 홀로 걸어서 전라도 고부 객망리로 상제님을 찾아왔던 소년 성도 백복남입니다.
 
『도전(道典)』에는 백복남 성도에 대한 신비롭고도 흥미진진한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우선『도전』1편 40장을 보면, 무자(戊子, 1888년)생백인수 (白仁秀) 성도가 나옵니다. 상제님이 신미(辛未, 1871년)생이시니 17년의 차이가 납니다. 복남이란 이름은 6살 때 상제님을 처음 뵙고 난 후 상제님이 친히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인수는 날 때부터 영이 그지없이 밝아 8개월 때부터 신안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세 살에 이르러서는 만물의 속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니라. (道典1:40:2)
 
하루는 천지에서 밝은 영이 내리며 어떤 분의 모습이 보이는 가운데 선어(仙語)가 들리기를“저 분이 너의 아버지이니 가서 뵈어라.”하니라. 인수가 여섯 살 되던 계사(癸巳: 道紀23, 1893)년에 천지 기운이 인도하는대로 고부까지 가게 되거늘 마침내 그곳에서 증산을 뵈니 순간 천지가 광명으로 가득 차 눈을 뜨고 마주 대할 수가 없는지라. (1:41:3∼5)
 
인수가 아랑곳하지 않고 증산의 뒤를 따르매 한두 달 후 복남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시고 따를 것을 허락하시니라. (1:41:8)
 
이 성구를 통해 복남은 태어날 때부터 영(靈)이 밝은 아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영적(靈的) 존재입니다. 천지만물의 이면은 영(靈)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화려하게 발달한 오늘날, 사람의 영성은 퇴화하여 스스로가 영적 존재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린 복남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천지의 밝은 영을 따라 천지기운이 인도하는 대로 스스로 상제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때 복남의 나이는 6살.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 어린 소년이 경상도 땅에서 전라도 땅까지 처음 가보는 길일 터인데, 상제님을 찾아갔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상제님은 복남이라 이름지어 주시고 추종을 허락하셨습니다. ‘복남’이 어떤 뜻인지『도전』에는 한자(漢字)가 나와 있질 않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남자아이의 보통 이름으로 복동(福童)이가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남(福男)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만 그 외에도 더욱 깊고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제님과 복남이! 상제님께서 그 어떤 성도보다도 먼저 추종을 허락하신 소년 성도 복남, 여기에는 어떤 천지공사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상제님은 복남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다음 성구를 통해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항상 복남을 데리고 다니시는데 복남이 어리광을 부리며 무엇을 사 달라고 하면 잘 사 주시고 평소 성도들에게는 엄하게 하시나 어린 복남에게는‘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며 친아들과 같이 사랑하시어 업어 주시고 가르쳐 주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복남을 가리키시며 이르시기를“얘는 내가 데리고 나온 아들이다.”하시니라. (道典3:3:5∼7)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더라
『도전』1편 75장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상제님 성수30세, 백복남 성도 13세일 때 상제님께서 복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루는 증산께서 복남을 데리고 어디를 가시는데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머리카락 한 올을 복남에게 주시고 수백 명이 모인 번잡한 곳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저기 사람이 많으니 이것으로 비춰 봐라.”하시니라. 이에 복남이 말씀을 좇아 눈에 머리카락을 갖다 대고 사람들을 비춰 보니,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개, 돼지를 비롯한 온갖 짐승으로 보이고 그중에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더라. 이윽고 증산께서“다 봤냐?”하시더니 머리카락을 도로 뺏으시어 불태우시니라. (道典1:75:1∼5)
 
조화(造化)의 극치를 보여주는 성구입니다. 『도전』을 보면 상제님의 이런 무궁무궁한 조화의 권능이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을 머리카락으로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러니 상제님이 주신 머리카락이 어떤 기준,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다 사람이었지만 그걸 갖다 대고 보니까 사람이 아니라 개, 돼지를 비롯한 온갖 짐승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실지로 그가 하는 생각과 행위는 사람이 아니고 개, 짐승, 돼지였다는 것입니다.
 
『도전』6편 33장, 11편 61장, 11편 91장에도 바로 이 ‘사람’에 대한 상제님과 태모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상제님 일꾼들이라면 이 성구들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6편 33장을 보겠습니다. 1절에 보면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다가 일꾼이 없음을 한탄하시며“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다.”하시더니…
 
물론 이것은 1편 75장과는 조금 다르죠. 천지 일꾼이 없다는 그런 말씀이잖아요. 2절에 보면
 
내성을 보시고“갈보야, 칠보야! 짧달막한 네가 있구나!”하시니라.
 
여기서 안내성을 보시고‘네가 있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사재인(成事在人)으로 볼 때는 일편단심으로 천지 일을 추진하시는 도운의 지도자를 지칭하신 것입니다.
 
『도전』11편 61장의 태모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역시 1편 75장의 상제님 말씀과 연결시켜 볼 수 있는 성구입니다.
 
“너 오다가 사람 봤냐?”“무슨 사람 말씀입니까?”
“야, 이놈아! 사람 말이다, 사람!”이어 말씀하시기를 “사람, 사람, 사람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참으로 사람이 없구나.”하시며 크게 탄식하시니라. (道典11:61:1∼5)

 
상제님의 천하사는 선천 5만년 역사를 매듭지으면서 천지가 인간농사 지은 인간 씨종자를 추리는 것입니다. 여기서‘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천지가 5만년 농사지은 사람 중에서 진짜 참사람, 천심 가진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지금은 하늘이 세상에서 천심(天心) 가진 자를 구하는 때니라.”(8:20:1) 이런 말씀과 통합니다.
 
『도전』11편 91장을 보면 매우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치성 때가 되면 항상“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하시니라. “우리 집에 검불 참 많이 모아다 놨구나!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흰데기 하나 없구나. 너희들 중에서는 종자 하나 건지기 힘들다.” (道典11:91:1,6~7)
 
이 말씀들을 서로 연결시켜 보면 종도사님께서 내리신 다음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 인(人)자 여섯을 써 놓고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느냐? … 사람이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은 사람 다워야 사람이다.”
 
한편으론“우리는 냉혈동물이 아니라 온혈동물이다.”하신 말씀도 생각납니다. 종도사님께서는 일평생 외길인생으로 천지사업을 해오셨습니다. 그리고 3변 도운의 종정님께서도 역시 청춘과 젊음을 다 바치시며 천지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나를 아버지라 불러라
백복남 성도님에 대한 성구를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도전』1편 75장 6절에 보면 신축(辛丑, 1901)년 상제님께서 복남에게“집에 얼마동안 다녀와라.”하면서 밀양으로 보내십니다. 7절에 보면 복남이 집으로 돌아가서 홀어머니의 뜻을 따라 열네 살에 장가를 들게 되었으나 신부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 복남이 고향에 머물면서도 행여나 상제님께서 말없이 또 길을 떠나시지 않을까 하여 예닐곱 달 만에 다시 객망리로 돌아옵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상제님께서 임인(壬寅, 1902)년에 수석성도 김형렬을 만나 본격적으로 천지공사를 행하셨지만, 그 이전에 이미 상제님 고부 본댁에서 상제님을 모신 소년 성도 복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석성도인 김형렬 성도보다도 더 먼저 상제님을 모신 백복남 성도에게는 과연 어떤 도수를 붙였을까요? 1편 72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아들 도수’입니다.
 
증산께서 천하를 유력하실 때 어린 복남이 자주 봇짐을 지고 따르거늘 복남이 힘들다 하면 업어 주시더니 하루는 복남이“다리가 아파요, 선생님.”하거늘 증산께서 복남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너 앞으로는 선생님이라 하지 말고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라.”하시니라. (道典1:72:4∼5)
 
그러면‘아들 도수’란 무엇일까요? 이 아들 도수와 직결되는 말씀으로“천륜으로 우주일가(宇宙一家)니라.”(4:29:1)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하사의 매듭이 어떻게 지어진다는 것을 온전히 함축하고 있는 귀중한 말씀입니다. 천륜을 바탕으로 선천 상극의 시대를 마감하고 후천 상생의 새 세상을 연다는 말씀입니다. 이‘천륜 도수’가 다른 말로 아들 도수입니다. 아들이란 무엇일까요? 아들은 한마디로 아버지의 사업과 혈통을 이어나가는 진정한 후계자입니다.
 
상제님은 이러한 천륜 도수, 아들 도수를 백복남 성도에게 붙이셨으며, 그를 6살 때 부르시어 객망리로 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임인(壬寅, 1902)년 천지공사의 도문을 열기 9년 전의 일입니다.
 
6살의 백복남 성도가 상제님을 뵙고 추종을 시작한 다음 해인 갑오(甲午, 1894)년 이 땅에는 엄청난 피바람의 전화(戰禍)가 일어납니다. 바로 갑오동학혁명입니다. 상제님과 복남은 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후일 도문에 들어올 성도들을 살리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도전』1편을 보면 상제님께서는 안필성과 김형렬 성도를 살리시고, 복남은 16세의 나이에 전투에 참가한 문남용(후일의 문공신 성도)에 큰 충격을 주어 동학군 대열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합니다.(백복남 성도 下편 다음 호에 계속)
 

천지에서 영(靈)이 가장 밝았던 성도
인간으로 오신 아버지 하느님을 가장 먼저 모신 백복남 성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가장 영(靈)이 밝았다는 것입니다. 3살 때 만물의 속을 들여다보는 신안(神眼)을 가졌으며 6살의 어린 나이에 천지의 밝은 영을 따라 스스로 상제님을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면모는 다른 어떤 성도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점입니다. 또한 어린 나이에 경상도에서 전라도 땅으로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세속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만큼 복남은 남다른 성도였으며 아마도 상제님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분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은 사람의 영성에 초점을 맞추어 복남 성도님을 알아보겠습니다.
 
우선『도전(道典)』의 다음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복남에게 말씀하시기를“천상에서 사람을 내보낼 때는 유리로 얼굴을 씌우느니라. 그래야 자기가 무슨 혼으로 있다가 태어난 줄을 모른다. 그것을 알고 나오면 뭔 일을 저지르느니라.”하시니라. (道典9:216:1∼4)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나 막 태어났을 때에는 세상일을 다 아느니라. 그러다가 곡기(穀氣)가 나서 죽도 먹고, 밥도 먹고 하면서 잊어버리는 것이니 화(火)한 것을 입에 넣으면 세상 이치를 모르느니라.”하시니라. (道典9:215:1∼3)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윤회의 어떤 메커니즘을 엿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태어날 때는 저승에서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알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얼굴을 유리로 씌운다.”는 말씀은 참으로 재미있는 말씀입니다.‘ 씌우면’가려지고 가려지면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어집니다. 사람이 자신의 전생을 환히 알고 이생의 삶을 산다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전생의 원한을 갚는다고 철천지원수를 찾아 헤매거나 그 후손들에게 보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며, 전생에 못다 한 사랑을 이룬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상제님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나 막 태어났을 때는 세상일을 다 아는데, 서서히 지상의 음식을 먹으면서 세상 이치를 모르게 된다는 것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도 걱정하신 복남의 밝은 영기
하지만 복남은 달랐습니다. 3살 때 만물의 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신안(神眼)을 가졌습니다. 상제님은 어린 복남의 이러한 밝은 영성을 오히려 걱정하셨습니다. 어린 복남이 안다고 막 떠들고 잘난 척 하다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그리하여 1898년 무술(戊戌)년 복남이 11살 되던 해 영기를 눌러주시게 됩니다.
 
이 때 백복남이 증산을 모시면서 가끔 집을 오가거늘 하루는 증산께서 앞날을 걱정하시어 복남의 영(靈)기운을 눌러 주시니라. 이후로 복남이 세상을 보니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신도(神道)가 보일 듯 말 듯하거늘 답답하여 눈물을 흘리며 증산께 하소연하니 증산께서“너는 귀먹고 벙어리여야 산다.”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남이 욕하고 뭣 해도 너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하시니라. (道典1:72:1∼8)
 
안개가 옅게 끼면 일정거리만 가시권이 확보되면서 사물을 제한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개가 아주 짙게 끼면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게 됩니다. 상제님은 복남의 신안을 완전히 막으신 것이 아니라 보일 듯 말 듯한 답답한 경지에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1907년 정미년 20살 되던 해 복남의 영기를 다시 열어주십니다.
 
정미년에 이르러 하루는 상제님께서 복남에게 말씀하시기를“이제 네가 모든 영을 보아야 한다.”하시더니 열한 살 되던 해에 막아 두시었던 영기(靈氣)를 다시 열어 주시니라. 복남이 신령한 영기로 세상을 새로보매 만물이 이미 이전의 그 모습이 아니요 마치 장님이 눈을 떠 대광명을 찾은 듯하거늘 “내가 그 동안 어두운 세상을 살았다!”하며 기뻐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앞으로 할 일을 일러 주시니라. (道典3:178:1∼5)
 
이 말씀을 통해 영의 눈을 가지고 사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과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마치 장님이 대 광명을 찾은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영성(靈性)이 어두워진 오늘의 물질문명
다 알다시피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습니다. 그것을 육안(肉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눈이 있습니다. 사물의 속을 보는 눈, 영을 보는 눈, 영적 세계, 신명계를 보는 눈 등등으로 불리는 신안(神眼), 영안(靈眼)입니다. 이것을 흔히 제3의 눈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의 신안은 복남이 가졌던‘안개가 끼인 것처럼 보일 듯 말 듯한 경지’도 아니고 완전히 닫힌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으로는 완전히 까막눈입니다(물론 우리 주위에는 경지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신안을 회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복남 성도에 대한 성구를 읽다보면 오늘의 우리 시대가 얼마나 영성(靈性)을 상실했으며, 영적 세계에 무지하고 육적이고 물질적인 면에 치우친 시대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고 사후의 일, 영의 세계를 고려하지 않고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짧은 이승의 삶을 마치고 저승으로 가서는 다음 상제님 말씀과도 같은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지은 죄상은 만인경(萬人鏡)에 비추어 보면 제 죄를 제가 알게 되니 한탄한들 무엇 하리. 죄는 남의 천륜(天倫)을 끊는 죄가 가장 크니라. 유부녀를 범한 죄는 워낙 큰 죄이므로 내가 관계하지 아니하노라. (道典2:106:1∼3)
 
누구든 만인경(萬人鏡) 앞에 서면 자신이 이승의 삶을 살면서 행한 말과 행동 등 모든 것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쭈욱 비쳐져 나옵니다. 그곳에는 거짓과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생에서 잘하고 잘 못한 것이 그대로 투영됩니다. 남을 위해 봉사한 것, 옳은 일을 한 것은 물론 남을 음해한 것, 거짓말 한 것, 훔쳐 먹은 것 등 등 온갖 것이 다 나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만인경’ 이라는 이 석 자만 확실히 알아도 지구상의 많은 죄악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오늘의 문명은 영적인 면에 너무도 무지합니다. 다음 상제님 말씀은 인간의 삶이 영적인 차원[神道]에서 관찰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사람마다 각기 주도신(晝睹神), 야도신(夜睹神)을 하나씩 붙여 밤낮으로 그 일거일동을 치부(置簿)케 하리니 신명들이 공심판(公審判), 사심판(私審判)을 할 때에 무슨 수로 거짓 증언을 하리오. 너희들은 오직 마음을 잘 닦아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을 맞으라. (道典7:64:4∼6)
 
하루는 복남에게 말씀하시기를“귀신하고 사람하고 시방 같이 댕겨.”하시니라. (道典2:61:6)

 
인간계와 신명계는 따로 떨어져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틀 안에서 공존하며 서로 기운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맞이하는 후천 5만년 가을세상에서는 신인이 합일하고 영육이 병진하는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신통과 도통의 문제
『도전』1편 47장을 보면 백복남 성도는 7살의 나이에 동학전투에 참여하여 동학군들을 지휘하고 전투에 대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학사(東學史)에 면면히 흘러나오는‘오세동이’에 대한 전설의 주인공이 바로 백복남 성도입니다.
 
복남은 15살의 나이에 중형을 좇아 동학전투에 참여하였던 문남용(후일의 문공신 성도)에게 큰 충격을 주어 전쟁터의 사지를 벗어나게 함은 물론 그의 마음에 도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심어주어, 결국 장성한 그를 상제님의 도문으로 이끌게 됩니다.
 
이곳을 잘 읽어보면 영의 세계는 현실 인간세계보다 한발 앞서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이 열린 사람은 현실 삶의 모습이 장차 어떻게 전개될지 미리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이 열리지 않은 사람으로볼 때는 너무도 신비한 것입니다.
 
그러나 앞일을 미리 안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것만이 아님을 상제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상제님의 천하사, 천지도수로 프로그램하신 인류의 미래는 여간해서 알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현세에는 아는 자가 없나니 상(相)도 보이지 말고 점(占)도 치지 말지어다. 천지의 일은 때가 이르지 아니하면 사람이 감히 알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내 일을 미리 알고자 하면 하늘이 그를 벌하느니라. (道典2:33:1∼3)
 
앞으로의 일을 미리 알고 이를 발설하는 것은 천기누설(天機漏洩)의 죄가 되어 하늘이 벌하는 재앙이 닥치게 됩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도를 이루면 속으로만 알고 마음에 감춰 두어 있어도 없는 것같이 하여야 하나니 남들에게 뽐내어 비밀을 많이 누설하면 하늘이 도로 밝음을 거두어들이느니라.”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안다고 하여 망령되이 움직여 말로 세상일의 기밀을 많이 누설하고 행동으로 천리를 범하면, 그것이 작을 때는 신벌(神罰)을 받고 크면 천벌(天罰)을 받게 되느니라.”하시니라. (道典8:12:1∼3)
 
영안이 열리는 것이 반드시 그 사람을 위해 좋은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영안이 궁극의 경지에 가서 도통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다음 태모님 말씀에 비추어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도통을 원치 말라. 모르고 짓는 죄는 천지에서 용서를 하되 알고 짓는 죄는 천지에서 용서하지 않나니 도통을 가지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느니라.”하시니라. 다시 말씀하시기를“도통과 조화와 법술을 가졌다 하나 시대를 만나지 못하면 쓸모가 없나니 다 허망한 것이니라. 그 동안 도통을 해서 한 번이라도 써먹은 놈이 있더냐. 도리어 자신에게 해(害)가 미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11:284:4∼6)
 
 
보이지 않게 천명을 다한 백복남 성도
어린 나이에 상제님을 뵙고, 9년 천지공사의 전 과정에 수종을 든 복남은 어천 후에도 신앙을 지키고 구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천지에서 가장 영이 밝아 상제님이 천지의 주재자이심을 가장 뚫어지게 안 복남이 어천 후에도 일관된 신앙의 길을 걸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과는 달리 제3의 눈으로 영과 육의 세계를 동시에 보고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을 모시고 천지공사 신명공사에 참여한 그로서는 당연한 삶이라 여겨집니다.
 
복남은 상제님 재세(在世)시 육임도꾼 조직공사(5편 367장), 세운과 도운의 상씨름공사(5편 368장)와 같은 핵심공사에 참여하였고, 어천 직후에는 상제님의 성체를 지켰으며(10편 74장), 천상명부공사(10편 101장)를 행하는 등 천명을 다하였습니다. 또 상제님의 유명을 좇아 후일 안내성 성도 교단에 들어가 천지역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럼에도『도전』을 보면 복남 성도는 여전히 비밀에 쌓인 분입니다. 비록 후손들에 의해 그의 삶이 증언되었지만 말이죠. 어떤 성도보다도 상제님을 가장 먼저 모셨고, 오래 모신 성도임에 틀림없지만 그에 비해 많은 부분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마치 그것은 영적인 세계가 바로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가 모르고 사는 것과도 같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인간의 삶이 주도신 야도신에 의해 치부(置簿)되고, 만인경에 여실히 기록되어 있듯이 복남의 삶, 상제님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수종들은 백복남 성도의 노고는 천지에 그대로 살아있음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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