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상생의 뿌리 증산도

2010.03.08 | 조회 2620

이 시대의 화두, 상생(相生). 그 뿌리는?


적극적인 실천과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치열한 사상, 이제는 상생(相生)이다!


이제는 너무 친숙하게 우리 사회의 보통명사가 된 상생(相生)!


상생의 정치, 상생의 경제, 상생의 문화, 남북 상생, 상생의 노사관계 등…. 어느새 ‘상생(相生)’이란 두 글자는 우리 생활의 일부가 돼버린 느낌이다. 경제용어사전에서는 “상생을 생태학에서 파생된 개념인 공존(co-existence)이나 공생(symbiosis)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욕구가 폭포수처럼 분출하는 요즘, 다양한 사회적 담론에서 공존의 키워드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상생(相生)’이다.


이처럼 급속히 그러나 자연스레 우리 일상 언어가 된 ‘상생’의 본뜻은 무엇이며, 그 의미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알아보는 것도 유의미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상생(相生)이란 의미를 거슬러 올라가면 상극(相克)과 배치되는 의미로 쓰이며 이는 우주론적 논의를 필요로 한다.


상생과 상극이란 말은 본래 오행(五行)이라는 우주의 근원적 요소들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는 말이었다. 동양의 철인들은 우주변화의 근본원리를 음양(陰陽)의 조화와 대립으로 파악하고, 그 음양변화를 다시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는 다섯 가지 근본적인 요소, 즉 오행의 작용법칙으로 구체화시켰다.


▲ 태극(太極)속의 음양(陰陽)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04 손현

상생(相生)이란 이 오행 관계에 있어서 서로 잘 되게(生)하는 관계를 일컫는 말이었다. 즉 수(水)는 목(木)을 생(生)하고, 목(木)은 화(火)를 생(生)하고, 화(火)는 토(土)를 생(生)하고, 금(金)은 수(水)를 생(生)하는 것을 오행의 상생 관계라고 한다. 이에 반해 상극은 오행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물과 불의 관계처럼 서로 극(克)하는 이치를 말한다.


그러니까 상생은 나무(木)와 불(火)의 관계처럼 서로 도와주며 낳는 이치요, 상극은 물(水)과 불(火)의 관계처럼 서로 대립하며 변화시키는 이치이다. 이러한 상생, 상극은 모든 존재의 본성을 드러내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필연적 우주변화의 이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음양오행(陰陽五行)론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개념으로 출발한 ‘상생’은 19세기 후반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후천개벽을 주창하며 현재의 증산도(甑山道)를 창시한 강일순(姜一淳, 1871-1909)에 의해 처음으로 사회문화적 의미로 널리 쓰이게 된다. 즉 강증산에 의해 오행의 ‘상생’이란 개념은 윤리적 관점과 더불어, 실천적 담론에서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이다.


일찍이 상생의 대도(大道)를 주창한 강증산은 상생을 모순과 대립이 극복된 ‘조화와 통일의 이념’이자 앞으로 다가올 지상낙원을 여는 실천적 규범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제는 동양철학적 관점의 ‘상생’을 넘어, 우리의 일상 언어로 상생이 회자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상극의 올무에 갇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의 ‘상생’의 개념은 극한으로 치닫는 우리를 보듬어 함께 치어 오르는 전통의 고싸움처럼 서로 잘되는(win-win) 개념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종교 다원주의의 관점과 더불어 불교, 기독교에서조차 ‘상생의 신학, 상생의 불국토’를 이야기하고 있다. 허나 환경과 심성은 오랜 시간의 축척물이어서인지 현시점의 상생은 구두선인 경우도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상생이 그저 구두로 머무는 것이 아닌, ‘당당한 실천’으로 자리매김할 때 진정한 상생의 삶은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부대끼며 서로의 공통분모를 알고, 먼저 양보하고 주고 받을 때 무언가 일이 된다. ‘상생’은 그야말로 겉으로 푸짐한 말의 성찬이 아니라, 적극적인 실천과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치열한 사상인 것이다.


우리의 국기는 태극기이다. 이 태극기의 태극(太極)은 음(陰)과 양(陽)의 지극한 조화의 표상이다. 마칠 때 시작을 준비하며 조화 그 자체를 보여준다. 지구촌 어느 한구석이라도 전쟁이 그칠 새 없고 환경마저 숨이 턱턱 막히는 이 시기에, 모든 난제를 풀 수 있는 키워드로 나는 ‘상생’을 꼽고 싶다. 서로의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이 시기에 더 늦기 전에 이제는 상생이다.


상생이 ‘실천’으로 자리 잡는 그 날! 지금의 불황을 넘어,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넘어 진정으로 지구촌이 하나 되는 그 날이 오지 않을까. 어쩌면 상생의 원 주창자 증산(甑山)의 염원이자, 지구촌의 개념을 넘어선 ‘우주일가(宇宙一家)’의 그 꿈도 바로 ‘상생의 노둣돌’을 쌓다보면 어느새 우리 곁에 훌쩍 다가와 있지는 않을까.


2004/11/29 오후 2:34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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