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반월도장] 계백장군과 5천결사대의 뜨거운 충혼이 살아 숨쉰다

초립쓴30대 | 2010.02.23 16:05 | 조회 4759

본부 태전에서 불과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논산.
 이곳에 도장이 들어선 것은 지난 2000년 8월 26일.
 논산 지역에 연고를 둔 몇몇 신도들이 뜻을 합쳐 신앙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후 강훈규 포정을 선봉장으로 일치단결하여 천하사에 일로매진하던 중 2002년 1월 30일 반월도장으로 확대이전을 한다.
 그리고 드디어 월드컵이 열리던 6월, 논산시민 모두에게 ‘증산도’이름 석자를 강렬하게 알리는 홍보의 대역사를 이룩했다.
 
 
 논산 반월도장에서 신앙하는 성도들은 어떤 각오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다음은 이곳 성도들의 입에서 나온 꾸밈없는 신앙담이다.
 이곳에 소개된 성도들 이외에도 2000년 6월 23일 연무 안심도장으로 개창을 해 나간 염정선 부포정을 비롯한 여러 성도들의 이야기를 함께 싣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다.
 
 
 “도정을 이끌어 가는 기본 방침은 저부터 모든 일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강훈규 성도 / 포정겸 부수호사 / 도기 127년 2월 8일 입도 / 40세
 
 저는 대둔산 꼭대기 근처의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2살 때 논산으로 이사를 와서 살았기 때문에 논산이 제 고향입니다. 4남 2녀의 6남매 중, 위로 누님이 한 분 있고 그 다음이 저입니다. 어려서부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들을 돌보며 어머니를 도와 가사에 적극 동참하였습니다.
 
 상제님 도문에 들어오게 된 것은 대전의 어느 회사에서 친구 안병주 성도와의 만남을 통해서입니다. 회사에서 근로자 대표로 있으면서, 근로자들의 어려운 점을 많이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96년 겨울 어느 날 야간 작업을 할 때 ‘자네 같은 상생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증산도를 믿어야 한다’며 태을주를 신문에 쓰며 증산도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와 헤어진 그날 밤 저는 문득 주문을 찾고 싶었고, 결국 신문을 뒤져 외우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그는 『다이제스트 개벽』을 가지고 와서 설명해 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가 이 책을 읽어보고 진리라고 생각이 든다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이며, 진리가 아니라면 아무리 하라고 권유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맡겨달라”고 했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고생으로 점철된 상제님 태모님의 일생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얼마간은 제가 살아온 삶과도 맞닿은 것이었습니다. 그 후 대전 신안동에서 문화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입도를 하였습니다.
 
 입도 후 오류도장의 재무일을 맡으며 도장살림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가 부도가 나서 정리하게 되자 작은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김용희 포정이 전화를 하여 ‘상임포감 제도가 나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상제님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권하였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과연 생각해 보아도 상제님 일을 하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얘기를 들은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가게를 그만두고 상임포감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마음의 결단이 서자 당장 집사람과 만나 결심을 얘기하고 가게에서 손을 뗐습니다.
 
 당시 상임포감을 하면서 김용희 포정의 도움으로 진리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고, 안병주 성도와 개척포교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포교 방법을 터득하였습니다. 신앙을 하면서 항시 두 성도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후 논산에서 도장개창을 하기 위해 모임이 있었는데, 모임에 참석하여 짧은 시간이지만 도장 개창할 것을 결정하고 다음날부터 논산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논산 반월도장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은 구역포감 및 육정 간부들의 적극적인 포교 활동과 성금 헌성 그리고 전 신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노력한 피와 땀의 결과입니다.
 
 저는 정희광 포감 외 모든 신도들과 의기투합하며 일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벌이는 한편 논산 전역에 증산도를 홍보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그래서 ‘백화점식 광고’ 타이틀을 걸고 순차적으로 홍보전략을 짰습니다. 이를 진행시킨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버스 승강장 광고 → ② 경찰 포스터 광고 → ③ 교차로 신문광고 → ④ 길거리 현수막 홍보 → ⑤ 신문 삽지 광고(전단지 10만장)
 
 그러던 중 포감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동영상을 방송하는 홍보차를 만들어 논산 전역을 누비자는 것이었습니다. 참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즉각 만들어 우선 태전에서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시민회관 강연회를 위해 먼저 사용했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반응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마침 6월 월드컵을 계기로 논산에 증산도 홍보의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한국전이 있던 날 홍보차량을 공설운동장 주차장에 세워 놓았는데 잠깐 사이에 3백 명이 몰려왔습니다. 끝나고 나니 다음번 한국전에도 이렇게 해줄 수 없느냐고 요청이 들어왔고 때마침 축구협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민간 차원에서 함께 힘을 합쳐 논산 시민을 모아 공설운동장에서 응원을 하자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축구협회와 힘을 합해 조직적인 활동을 개시하였습니다.
 
 그러자 현수막 업체에서 자발적으로 각 학교에다 증산도와 축구협회에서 주최하여 논산 공설운동장에서 응원을 한다는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마침 충청방송에서 무료로 그 내용을 소개해 주었고, 그외에도 여러 업체의 자발적인 협력이 이어졌습니다. 마침내 축구경기가 있는 그 날, 깜짝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운동장에 모인 시민의 숫자는 줄잡아 3∼4만은 족히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다 증산도를 알게 되었고, 대한민국과 증산도를 함께 연호(連呼)하였습니다.
 
 이제 논산에서 증산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어디를 가도 증산도를 싫다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뿌린 포교와 홍보의 씨앗을 이번 7월 27일의 문예회관 강연회를 통해 거두어들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적극 수렴하여 도장개창으로 연결시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정을 이끌어 가는 기본 방침은 책임자인 저부터 모든 일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포교와 재정, 홍보, 교육 등 어떤 일에도 앞장서야 성도님들이 자발적으로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 도문 안에서의 일만이 아닐 것입니다. 《위 워 솔져스》라는 영화를 보면 총알이 쏟아지는 전투에서 무어대령이 앞장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총을 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일 그가 방공호에 숨어서 명령이나 내린다면 과연 누가 싸우려 하겠습니까?
 
 도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힘들기에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하라고 한다면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힘들어도 같이 하자, 고달파도 같이하자 하면서 앞장을 서면 자연히 사람들이 따라오게 되고 일이 될 것입니다.
 
 태사부님과 사부님이 우리 일꾼의 모델이십니다. 태사부님과 사부님은 오로지 외길로만 상제님 일을 해 오셨습니다. 태사부님 사부님의 명을 받들어 모시는 우리 일꾼들이 만일 사적인 다른 일을 하면서 상제님 일을 한다면 과연 일이 되겠습니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다 놓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일심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꾼들이 성공하는 신앙인이 되려면 태사부님, 사부님의 명을 잘 받들고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저는 상제님과 태모님,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말씀을 100% 믿고 실천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포정님은 정말 상제님 진리를 100% 믿는 분입니다”
 
 박은희 성도(왼쪽) / 구역포감 / 122년 5월 14일 입도 / 34세
 
 제 고향은 경남 삼천포입니다. 고등학교를 나온 후 직장 생활을 하던 21살 때, 강미량 성도로부터 『한민족과 증산도』라는 책을 전해 받아 읽고는 상제님 진리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상제님 진리를 믿기 전에 특별히 믿던 것은 없었고, 집안은 제사를 모시는 전통적인 가정에, 어머니는 가끔 절에 가시는 정도의 불교신자였습니다.
 
 『한민족과 증산도』를 읽으니 ‘어! 이런 것도 있었나’싶었습니다. 저는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할 정도로 책에 흠뻑 빠졌습니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는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야! 우리나라에 이런 진리가 있었구나.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 문화를 통일하는 종주국이구나!’ 저는 내용의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당시 책 내용이 다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라는 것과 우리 문화가 세계에 일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전율했습니다.
 
 뒷날 강미량 성도는 도장에 함께 가길 권했습니다. 막상 가자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교회에도 가보고 절에도 가보고 천주교 성당에도 가본 적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수요치성에 참석한 증산도 도장은 이상하게도 고향에 온 듯이 편안하고 꺼릴 것 없이 느껴졌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었고 첫인상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상제님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힘들었던 것은 ‘하느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조상을 모시니까 조상(祖上)이라든지 다신(多神)이라든지 그런 것에는 인식이 되어 있었지만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상식의 틀을 깨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제님께 내 마음을 숨김없이 고하며 기도하기가 힘들었으며 이것이 입도를 미루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당시 ‘손톱 밑에 가시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된다’는 말씀은 기존의 신에 대한 관념을 깨게 만드는, 신에 대해 무섭게 느끼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기 122년 3월 입도식은 하지 않았지만 증산도대학교 교육이 있음을 알고 등록을 하여 체계적으로 진리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삼천포와 태전을 오가며 태사부님과 사부님 말씀을 들으면서 신과 인간에 대한 모든 의혹들이 풀리기 시작했으며, 증산도 진리의 진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증대교육을 받으면서 얼른 입도식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입도식을 음력 5월 14일에 올리면서부터 전 어떻게든 진리를 알리려고 노력해 왔고, 가족들을 다 입도시키지는 못했지만 도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신앙하시는 모든 분들이 다들 그렇겠지만 저 또한 도장과 회사, 집을 오가면서 신앙의 역량을 키워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주춤하긴 했지만 증대 교육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지금까지도 제일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98년 2월에 결혼하면서 논산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논산 도장 개창 멤버가 되어 현재까지 신앙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3일 논산연무도장으로 분가 개창이 되어 몇몇 여성 성도님들이 가고 나니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신앙을 나름대로 오래 했으니 본보기가 되어야 하고, 그만큼 내실을 기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함께 일해온 우리 포정님은 정말 상제님 진리를 100% 믿는 분입니다. 그점이 바로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신앙초기 상제님이 과연 상제님 그분일까 하고 의심하기도 했지만 우리 포정님은 100% 믿습니다. 또한 업무추진과 도정집행이 과감하고 신속합니다. 그러면서도 도적부를 정리하시는 것을 보면 그렇게 꼼꼼할 수가 없습니다. 태사부님 사부님 말씀을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메모하고 말씀 그대로 정책을 펴려고 합니다.
 
 아직까지 우리 도장은 홍보에 주력하였고 씨뿌리는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판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동안 충분히 베이스를 깔고 역량을 키워왔기 때문입니다.

‘현재 강경지역 도장 개창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정희광 성도 / 천록포감 / 122년 11월 13일 입도 / 35세
 
 저는 논산에서 태어나 초, 중, 고등학교의 학창시절을 보냈고, 졸업 후 여기저기 직장을 잡고 일하다 나중엔 논산시청에 근무하였습니다. 92년에 먼저 신앙을 시작한 누나가 집에 와서 『증산도의 진리』 책을 읽어보라고 전해주었습니다. 평소에 수행이나 비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정감록』을 읽어보았는데 그 속에서 ‘소울음 소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누나가 주고 간 『증산도의 진리』를 읽어보니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내용의 해답이 그 속에 모두 들어있었습니다. 책을 다 본 후 이것이 진리구나 하는 믿음과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누나와 함께 태전도장을 방문하여 진리 교육을 받고 입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논산엔 도장이 없었기 때문에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태전으로 치성을 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제님에 대한 믿음이 더해 갔습니다. 입도 후 초발심에 불타던 저는 《태전지명찾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한참 눈보라 치는 겨울에는 추위에 아랑곳없이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도장에서나 집에서나 항상 태을주 수행을 했으며 그렇게 끊이지 않고 수행한 턱에 여러 체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체험이 제가 신앙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체험한 것을 떠올리며 힘든 일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러다 논산에 도장이 개창되면서 더욱 열심히 상제님 신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도장이 개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장에 상주를 시작하며 상제님 천하사에만 뜻을 두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도장에서 헌신, 봉사하며 생활을 하였습니다. 논산 지역에 증산도를 알리기 위해 매일 논산오거리에서 패널 활동을 하였으며, 상가마다 방문하며 전단지 홍보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하며, 꼭 논산 전 시민이 증산도를 알 수 있길 바라며 최선을 다하여 활동하였습니다.
 
 도기 132년 4월에 천록포감 발령을 받았습니다. 천록포감 발령 후 저는 더욱 상제님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항상 깨어있는 의식으로 상제님 천하사에 의식을 집중하였습니다. 지금 포정님을 도와 도장의 전반적인 업무를 보고 있으며 최선을 다해 상제님 도정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도장에서 박은희 포감과 함께 강경지역 도장 개창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강경지역에 반드시 도장을 만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현재 100여평 되는 도장을 알아본 상태이며 하나씩 일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꼭 도장개창을 위해 매두몰신 할 것이며, 최선을 다해 활동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포정님처럼 일심으로 앞장서서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도들을 감화시키겠습니다.
 
 지금 우리 논산 반월도장 성도님들의 의식은 반드시 논산에서 숙구지의 봇물을 터트린다는 각오로 차 있습니다. 논산을 뒤집어 엎고 상제님 진리로 석권하고야 말겠다는 결의에 차 있습니다. 반드시 숙구지 도수를 터트리는 참일꾼이 되겠습니다.

 “나의 꿈이며, 나의 조상 만대의 꿈이며, 내 자손 만대의 꿈이 실현되고,
 이 우주의 꿈이 실현되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옥영식 성도 / 대포 수석포감 / 건양대 써클장 /
 125년 11월 17일 입도 / 24세
 
 제 고향은 경남 삼천포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영혼의 세계와 수행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상제님 진리를 만나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예언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책방에서 『충격대예언』이란 책을 빌려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책방에서 『다이제스트 개벽』을 빌려와서 보여주었습니다. 예언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그 책을 빌려보기 위해 책방을 찾았는데, 그 책방에서 공짜로 저에게 『다이제스트 개벽』을 주었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삼천포도장에서 책방에 무료로 기증한 것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어려운 단어와 한자가 너무 많아서 조금 보다가 던져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와서 자기도 예언에 관심이 많은데 함께 증산도 도장을 방문해 보자고 했습니다. 관심은 있었으나 혼자서 도장에 갈 용기가 없었던 저는, 도장에 가보자는 말에 힘이 나서 같이 도장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사회엔 사이비 단체가 너무도 극성을 부렸습니다. TV 《추적60분》에 대순진리회의 비리가 방영되었는데, 한 신도가 신앙을 그만둔다니까 깡패를 동원해 그 사람의 집에 찾아가 마구 때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장면이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한번 잘못 발을 들여놓으면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저에게 같이 도장을 방문하자는 친구의 말은 너무도 힘이 되었고 용기가 났습니다.
 
 그렇게 도장을 방문하여 상제님 진리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후 학교 수업이 끝난 후 5분만 수행을 하고 가야지 하고 도장을 들르면, 앉혀 놓고는 3∼4시간씩 진리를 얘기해 주었습니다. 교육이 끝나면 진이 빠질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집중 교육을 받은 것이 20여 일 정도 지나자, 세상 사람들이 너무도 무지해 보였으며, 제 마음 속에는 증산도가 자연스럽게 다가왔고, 이것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과 상제님 진리를 만난 것이 너무도 기뻤습니다. 상제님 진리가 너무 좋아서 매일 도장에 나가게 되었으며, 사부님 말씀 테이프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논산의 건양대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논산은 완전 황무지였습니다. 그렇게 1학기를 방황하며 힘들게 보냈습니다. 여름방학 때 집에 내려가 한 성도님의 도움으로 2학기 때부터 태전 오류도장으로 치성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태전 대포가 모여 있는 태전 동부도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태전으로 치성을 나갈 때 일주일에 4∼5일을 태전에서 생활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논산과 태전을 오고간 기억이 아직도 저에겐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 130년 9월 논산에 도장이 개창되면서 논산에서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심 신앙을 하는 2명의 대포 성도와 함께 도장에 상주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모두 상제님 천하사를 위해 일심으로 뛰는 일꾼들이며 최선을 다해 활동하고 있는 일꾼들입니다. 현재 학교에 동아리방이 없어서 활동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내년 중순까지 목표를 정해, 학교 앞에 건양도장 개창을 목표로 뛰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하나씩 준비해 나가면 반드시 도장개창을 할 수 있으며 또 반드시 개창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들 내 학교에 뼈를 묻는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학교를 성장시켜 구역원 모두가 성공하는 일꾼이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깨어있는 마음으로 상제님과 태모님,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뜻을 받드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나의 꿈이며, 나의 조상 만대의 꿈이며, 내 자손 만대의 꿈이 실현되고, 이 우주의 꿈이 실현되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며,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린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 진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일꾼들은 상제님 천하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배정민 성도 / 집정 / 대포 포감 / 130년 11월 13일 입도 /
 건양대 정보통신 공학과 4년
 
 태어난 곳은 경남 진해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인천 만수동으로 이사를 가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상제님 진리와의 첫 인연은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볼펜으로 손을 맞잡고 “분신사바, 분신사바” 하며 귀신 부르기를 하면 손이 저절로 움직이며 글이 써지는 놀이가 유행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귀신 얘기에 관심이 많던 저는 이렇게 귀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고 재미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한참 통신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터넷 나우누리의 〈불가사의〉 동호회에서 ‘분신사바 귀신 부르기’를 했을 때 빙의나 두통 등 이상현상이 발생하면 태을주나 운장주를 읽으면 금방 회복된다’는 내용을 읽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주문 읽는 법이 함께 소개되어 있었는데 통신을 마치고 새벽에 자기 전에 주문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넓지 않은 비포장도로를 걷고 있는데 왼쪽은 잔디밭이었고 오른쪽은 넓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변 너머로는 도시가 펼쳐져 있었는데 현재도시가 아닌 미래도시였습니다. 하지만 꿈속에서 저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계속 길을 가는데 잔디밭 한 곳에서 흰옷을 입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태을주를 읽으며 수행하고 계셨습니다.
 
 이 역시 그냥 당연하게 느껴졌고, 또 계속 길을 가니 친한 친구가 길 한편에서 흰옷을 입고 태을주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저를 환영해 주었는데 생생하면서도 기분이 너무나 좋은 꿈이었습니다.
 
 그 뒤 검색엔진에서 태을주, 운장주를 검색해 ‘증산도’라는 단어를 보았지만 당시에는 주문에만 관심이 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논산으로 대학을 진학 해 왔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길에서 우연히 1학년 때 학부 MT의 같은 조였던 선배 노재성 성도님을 만났는데, 그 선배가 마침 학교에서 소강연회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선배는 시간이 있으면 강연회에 한번 와보라고 해서 평소 관심이 있던 저는 강연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우주일년에 대한 얘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흥미로웠고, 신도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다이제스트 개벽』을 빌려서 2번 통독한 다음 선배를 따라 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성전에 들어서서 상제님 어진을 처음 뵙게 되었는데 상제님 용안이 처음 보는 것치고는 너무나 낯이 익었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인 것 같았습니다. 그날 포정님으로부터 5시간 정도 진리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입도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음악을 하려고도 했었고, 또 한번은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려고도 했었는데, 두 번 모두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후 대학 진학으로 인해 논산에 오게 되었고 증산도를 만나 도장에서 상주하며 천하사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을 생각해보면 제 인생은 제가 뜻하던 대로만 진행되어 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제님 신앙을 하면서 여러 가지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하추교역기인 지금 시점에서 ‘나’라는 개인과 온 ‘인류’를 생각해 본다면 내 자신의 고민은 작은 티끌에 불과한 것이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우리 일꾼들은 상제님 천하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천리는 때가 있고 인사는 기회가 있다”는 태사부님 말씀을 다시 한번 가슴 속 깊이 새기면서 올해는 완전 육임을 꼭 이루겠다고 다짐합니다.

“태사부님께서 ‘참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셨을 때
 마음이 크게 열렸습니다”
 
 김재우 성도 / 대포 부포감 / 131년 7월 29일 입도 /
 21세 / 건양대 정보전산공학과 2년
 
 저는 고등학교 시절 우리나라 역사와 단전호흡에 관심이 많고 전통무예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검도도장에도 다니고 점심식사 시간이나 학교가 끝난 후 학교 뒷산에 올라가 혼자 명상 수행과 무예를 연마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어느날 학내에서 패널활동을 하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활동을 하시는 성도님을 만나 잠깐동안 한민족의 9천년 역사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첫날의 만남은 바빠서 간단한 설문지만 작성하였고 다음날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진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후 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으며 『증산도 기본교리』책을 교재로 하루종일 팔관법 진리의 전체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단순히 역사와 수행의 관심을 벗어나 증산도 진리 전체내용에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습니다. 천지공사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도 후 처음으로 증대 교육을 참석할 때의 일입니다. 처음 본부에서 우리 성도님들을 보게 되었는데 모든 성도님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나는 저 정도까지 갈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태사부님께서 도훈을 하실 때에는 감히 태사부님의 용안을 바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분위기를 압도하시며 의식을 깨워주시는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평소에 갖고 있는 고민과 의심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태사부님께서 “참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셨을 때 마음이 크게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사부님의 그 한 말씀에 ‘야! 이것 진짜구나’하는 강한 확신과 함께 상제님에 대한 의심이 한 점도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현재 저는 논산 반월도장에서 여러 성도님들과 상주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기독교를 신앙하시는 어머니께서 반대가 심해서 힘들었는데 꾸준한 정성 공부와 수행, 배례로 현재는 어머니께서도 신앙을 인정해주시며 도장에 밑반찬도 만들어 가져오십니다. 어머니를 입도시키기 위해 사부님 강연회도 모시고 가고, 도장을 함게 방문하여 진리 교육도 받았지만 아직 의식이 크게 열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가족을 위해 꾸준히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반드시 가족을 상제님 진리권으로 인도하여 천지의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도장에서 수행 담당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5구역 부포감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도정을 집행하는데 미숙한 점이 있지만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항상 깨어있는 의식으로 상제님 천하사에 적극 동참할 것이며, 많은 생명을 살려 저를 상제님 도문에 인도하여 주신 상제님과 태모님, 태사부님과 사부님, 그리고 조상선영신께 크게 보은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아! 이 분이 정말 참 하나님이구나.
 내가 진실로 찾아 헤맨 그 분이시구나!”
 
 서미경 성도 / 청포포감 / 131년 7월 1일 입도 /
 건양대 심리상담치료학과 3년
 
 저는 논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작년 2학년 때 학과 친구가 저를 증산도로 인도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기독교 신앙을 강요하던 아버지 형제들(고모와 삼촌들)에 대한 반발심으로 ‘이 우주에 하느님은 없으며 진리란 없다’는 생각이 꽉 박혀 있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우리 집 가족은 종교에 질려버려 특별한 신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친구인 이일우 가족이 증산도 우주관과 9천년 역사관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들으니 신기하고 너무도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로 저에게 『증산도의 진리』 책을 빌려주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증산도도 타종교처럼 모순이 있겠지…’ 하며 꼬치꼬치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의 자세한 설명으로 궁금증이 하나하나 풀려나갔습니다.
 
 그 후 친구가 『월간개벽』을 주며 이 책을 읽으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와∼’ 하며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부분은 자연스럽게 인정이 되었지만 ‘하느님이 인간으로 강세하셨다’는 것은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 후 입도를 하고 나서도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점심 무렵부터 밤늦게까지 도장에 있기는 하였지만 마음은 무척 혼란하였습니다. 너무 충격적이고 새로운 사실이기에 하나 하나 받아들여 인정한다는 것이 간단치가 않았던 것입니다.
 
 논산도장 개창 1년째 되는 날을 맞아 광역 차원에서 성지순례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구릿골 약방에서 김형렬 성도님의 손자 분을 만나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 그 모습들이 상상이 되면서 상제님의 인간적인 모습이 감동있게 마음속에 다가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냇가에서 호연이를 씻어 주시는 모습 등이 정감 있게 그려졌습니다. 성지순례를 계기로 그 동안 제가 알던 신(god)의 개념이 파괴되면서 전혀 새로운 하느님이 다가왔습니다.
 
 입도 전 친척의 소개로 마지못해 교회에 다니던 때가 잠시 있었는데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아닌 참하나님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하나님을 갈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형렬 성도님의 손자분의 증언을 들으면서 “아! 이 분이 정말 참하나님이구나. 내가 정말 진실로 찾아 헤맨 그 분이시구나, 우리 상제님은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오셨구나, 정말 인류를 위해 오셨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리하여 상제님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있는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증산도 신앙을 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기분입니다. 비록 힘들긴 하지만 제가 증산도 신앙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기쁩니다. 주위에 친구들이 제가 참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광장 공포증이 있어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제대로 못했지만 지금은 발표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요즈음에는 쉬는 시간에도 상제님 진리를 친구들에게도 거침없이 얘기합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의 힘이 어느 정도이기에 사람을 이처럼 180도 바꿀 수 있는가를 너를 통해 보게 된다고.
 
 이번에 제가 청포포감을 맡게 되었습니다.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담도 많이 되지만 일심을 가지고 몸바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이번 사오미 개명을 맞이하여 태사부님, 사부님의 명을 받들어 올해는 반드시 6임을 짜겠습니다.


 “도장에서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상제님 천하사에 긴장감도 갖게 됩니다”
 
 김복현 성도 / 구역포감 / 129년 12월 21일 입도 / 20세
 
 논산에서 태어나 초, 중, 고등학교를 보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신명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퇴마록』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더욱더 신명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의 작은 집에 놀러갔다가 사촌형으로부터 증산도 진리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그 후 1년 뒤 이천으로 이사간 사촌형을 따라 이천도장에 가서 진리 말씀을 듣고 입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논산으로 다시 내려왔는데 당시 논산에는 도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태을주 수행을 하고 학교를 오가며 입으로 태을주를 흥얼거렸습니다.
 
 그러다 논산에 도장이 생기면서 사촌형과 함께 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처음엔 모두 낯선 사람들이라서 어색하였습니다. 마음은 상제님께 가 있었지만 낯선 분위기에 적응을 못해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늘 상제님을 마음속에 그리며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도장 성도님들의 따뜻한 정에 이끌려 도장에 매일 나와 수행과 배례를 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도장에 나왔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 3학년(2001년) 7월에 졸업을 앞두고 경기도 안산으로 취업을 나갔습니다. 그 곳에서 저는 너무도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우선 상제님, 태모님이 너무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도장 성도님들도 또한 너무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지내다가 앞으로 내가 상제님 일을 해야만 한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친구들에게 『도전』을 펴놓고 상제님 진리를 전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도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신앙해오며 진리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취업 나간 직장을 그만두고 바로 논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논산에 내려와 도장에 오니 너무도 기쁘고 좋았습니다. 그 후 저는 새로운 마음으로 포교에 전념하였습니다. 학교 후배들을 중심으로 6임을 짰습니다. 저는 육임을 완수하는 날 너무도 기뻤습니다. 이제서야 내가 상제님의 진짜 신도가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입도한 도제들이 모두 신앙을 잘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몇 의식 없는 도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도장으로 모두 데려왔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육임짜는 게 고민이였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 부실 없이 한 생명을 상제님의 일꾼으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도장의 포정님과 여러 포감님들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일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지금은 입도시킨 후배들의 신앙을 점검하며 매일 학교 앞에서 만나 도장에 인도하여 다 함께 배례, 수행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상제님 일을 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은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상량식에 참여한 때입니다. 그 때 큰 기운을 받고 이제부터는 진짜 상제님 일을 정신 차려 해야한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도장에 상주를 시작하며 도장 성도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 보다 도장에서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상제님 천하사에 긴장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도장에 헌신봉사하며, 참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열어주신 진리를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상제님 천하사에 매두몰신(埋頭沒身)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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