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증산도 안운산 종도사님 연합 인터뷰

2010.03.08 | 조회 2455

(서울=연합뉴스) 서한기기자= "종교문화는 인간생활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증산도는 상생이념을 바탕으로 한 생활문화의 틀입니다. 단순한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죽어서 잘 되자는 그런 진리가 아닙니다."


민족종교 증산도의 최고 지도자 안운산(82) 종도사가 오랜만에 바깥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3일 증산도 본부가 있는 대전 증산도 교육문화회관에서다.


안 종도사는 증산도의 핵심정신은 인간세상이 요구하는 새문화, 새세상을 여는 사상운동에 있다고 말했다.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에 가꾸고 가을에 결실을 거두듯이 일상생활에서 해원(解寃:원한을 풀어 근본을 바로잡는 것)과 보은(報恩: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것), 상생(相生:서로 잘 되게 하는 것), 원시반본(原始返本:인간과 사회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의 실천이념을 통해 부지런히 인간농사를 지어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세상을 맞는 게 궁극적 목표라는 것이다.


안 종도사는 이를 위해 증산도 사상을 세상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필생의 과업으로 증산도 창시자인 강증산의 말씀을 외국어 경전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몰두, 반세기만에 결실을 보았다.


1945년 해방되면서 구상했던 증산도 경전인 도전(道典)을 영어, 중국어, 일어,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7개 외국어로 번역해 강증산 탄신 133주년을 맞아 최근 발간하게 된 것.


"8.15광복이후 도전을 외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일본어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한테 맡겼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10여년전 궁여지책끝에 증산도사상연구소를 만들었어요. 40∼50명의 연구원들을 모집해서 번역작업에 힘썼지요. 민족종교에서 경전을 외국어로 옮긴 것은 아마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도전은 이제 세계인류의 경전이 될 것입니다."


안 종도사는 이번에 번역돼 나온 외국어 도전을 전세계 곳곳에 배포, 증산도의 세계화에 힘쓸 계획이다.


안 종도사는 종교지도자로서 현실의 문제에 개입하는데 대해 극도로 꺼리면서도 상극으로 치닫는 지금의 정치문화에 대해 증산도의 핵심교리인 상생 정치를 실현, 상생의 세상을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안 종도사는 현재 신도 70만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는 증산도를 개척한 증산도의 산증인이다.


그가 증산도를 천명으로 생각하고 증산도 부흥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된 것은 증산도 신도인 조부와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다.


1922년 충남 서산군 대산면 운산리에서 태어난 그는 12살때 집에서 수련하던 중 영성이 열리는 체험을 하고 난 뒤 국내는 물론 만주와 중국 등지를 오가며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는 숱한 고행끝에 24살 되던 해 해방을 맞아 고향에 내려와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벌였다.


이런 노력끝에 수십만의 신도를 규합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한국전쟁발발과 함께 20년간 휴게기에 들어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어려움속에 은둔생활을 하다 53살이 되던 1974년에 셋째아들과 함께 증산도 관련 서적을 발간하면서 증산도의 대중화에 뛰어들어 지금의 증산도를 일구었다.


증산도는 증산 강일순이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 구세제민에 뜻을 두고 전국을 주유하다 1901년 김제 모악산(母岳山) 대원사(大院寺)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후천개벽(後天開闢)과 후천선경(後天仙境)의 도래를 선포하면서 창시한 민족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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