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 상제님 어진 봉안 공사

2023.10.23 | 조회 145

강증산 상제님께서는 1871년 음력 9월 19일에 우리나라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라는 땅에 인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증산(甑山)이란 인간으로 다녀가신 상제님의 호(號)로써, 그 호인 증산을 따서 "증산도"라고 합니다.


강증산 상제님은 실존인물인데요. 실제모습은 어떠셨을까요? 상제님의 어진(御眞) 봉안과 관련된 증산도 도전말씀 몇개 성구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상제님 어진(御眞) 봉안 공사

1 경석의 집에 계실 때 양지 전면(全面)에 사람을 그려 벽에 붙이시고 제사 절차와 같이 설위(設位)하신 뒤에

2 성도들에게 명하시어 그곳을 향해 “반천무지(攀天撫地)식으로 사배(四拜)하고 마음으로 소원을 고하라.” 하시며 사람을 그려 붙이신 곳에 친히 서시더니

3 식을 마친 뒤에 물으시기를 “누구에게 심고(心告)하였느냐?” 하시거늘

4 성도들이 대답하기를 “선생님께 소원을 고하였습니다.” 하니라.

5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산 제사를 받았으니 이 뒤에까지 미치리라.

6 사배를 받았으니 내가 한 번 절하리라.” 하시고 단배(單拜)하시며

7 “자리는 띠자리가 정(淨)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6:102)


위의 말씀은 상제님께서 보신 공사 내용입니다. 사람을 그려 붙이신 후에 그곳에 친히 서계시고, 성도들에게 반천무지라는 방법으로 절을 4번 올리고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뒤에까지 미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상제님을 그려서 붙인 후에 상제님을 모시라고 공사를 모신 것입니다.


또 다른 성구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상제님의 어진 첫 봉안식

1 무진(戊辰 : 道紀 58, 1928)년 정월 초사흗날 태모님께서 치성을 봉행하신 뒤에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가

2 서너 시간 후에 깨어나시어 아무 말씀도 없이 손을 들어 당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두르시므로

3 고민환과 박종오 등이 뜻을 알지 못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문득 한 성도가 아뢰기를

4 “상제님의 영정(影幀)을 그리라 하십니까?” 하니 태모님께서 머리를 끄덕이시며 성화같이 재촉하시니라.

5 이에 가전 마을에 사는 화백(畵伯) 김옥현(金玉鉉)을 불러 어진(御眞)을 그리게 하니 옥현이 화법(畵法)이 졸렬하여 잘 그리지 못하는지라

6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선 그대로 봉안(奉安)하고 이 뒤에 다시 그리는 것이 무방하리라.” 하시므로 그대로 봉안하니라.


(증산도 道典 11:183)


채용신에게 어진을 다시 그리게 하심

1 2월에 태모님께서 주요 간부들을 소집하시어 “상제님 영정을 다시 그려 봉안하라.” 명하시거늘

2 간부들이 의논하여 이름난 화백에게 의뢰하고자 조동희(曺東熙)로 하여금 뛰어난 화백을 물색하게 하니

3 당시 조선에서 유명한 화백은 정산(定山) 채용신(蔡龍臣)이라.

4 정산이 사는 곳을 알아보니 정읍군 용북면 육리(龍北面 六里)라 하므로

5 동희가 곧바로 정산을 만나 상제님 어진에 관한 일을 논의한 후 그 길로 동행하여 3월 1일에 조종리 도장에 도착하니라.

6 이에 정산으로 하여금 목욕재계하고 어진을 그리게 하니 정산이 상제님을 친견한 일이 없어 어떻게 그릴 것인지 여쭈거늘

7 태모님께서 상제님 재세 시의 모습을 일일이 가르쳐 주시고 정산에게 당부하시기를 “돈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영정을 잘 모셔라.” 하시니라.

8 이 날부터 정산이 어진을 그리기 시작하여 거의 다 그려갈 무렵 태모님께서 오시어 그림을 보시더니 담뱃대로 휙 걷어 젖히시고

9 이어 담뱃대로 정산의 등을 내려치시며 “이놈아! 증산(甑山)을 그리라 했거늘….” 하고 나가시니

10 정산이 기가 막혀 말을 못하고 있으므로 고민환을 비롯한 간부들이 잘 달래어 어진을 다시 그리게 하니라.


(증산도 道典 11:184)

세 번을 그려서 어진을 봉안함

1 수일이 지나 어진을 거의 다 그려 갈 무렵, 태모님께서 또 들어오시더니 대번에 정산의 등을 담뱃대로 내려치며 호통하시기를

2 “증산을 그리라 했지, 누가 미륵을 그리라 했더냐!” 하시고 담뱃대로 휙 걷어 젖혀 휘두르시니 이번에도 그림이 못쓰게 되니라.

3 정산이 심한 모욕감에 화를 내며 그림 그리는 도구 일체를 수습하여 돌아가려 하니

4 고민환이 만류하여 말하기를 “저분은 보통 사람이 아닌 신인(神人)이시라. 큰 기운을 내려 잘 그리도록 하심이니 참으면 복이 있을 것이오.” 하며 겨우 진정시키니라.

5 정산이 다시 그리기 시작하여 24일까지 세 번째로 그리기를 마치매 민환이 여쭈기를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하니

6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만하면 너희 아버지와 비슷하다.” 하시니라.

7 정산이 상제님의 용안(龍顔)은 흡사하게 얻었으나 의관범절(衣冠凡節)을 어떤 식으로 갖추어 그려야 할지 난감한지라

8 태모님께 그 형식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상제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하셨으니 황제식(皇帝式)이 옳다.” 하시거늘

9 정성껏 그려서 올리매 3월 26일 태모님 성탄절에 어진을 봉안하니라.


(증산도 道典 11:185)


위의 증산도 도전 말씀과 같이 3번에 걸쳐서 마침내 어진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럼 증산도에서 봉안하고 있는 상제님 태모님의 어진과 진영을 볼까요? 



도기127년 (1997,정축)  어진




도기148년 (2018,무술) 어진



사람으로서는 미치지 못할 바라

1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거느리고 고부 살포정이를 지나시는데 들 가운데에서 큰 소 두 마리가 어우러져 싸우고 있거늘

2 상제님께서 두 소의 뿔을 하나씩 잡고 소들의 귀에 대고 무어라 말씀하신 다음 뿔을 놓으시니 두 소가 싸움을 그치고 서로 다른 쪽을 향해 가니라.

3 이에 공신이 감복하여 ‘사람이야 말로 훈계하면 듣는다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짐승까지 가르치시니 이는 사람으로서는 미치지 못할 바라.

4 선생님은 참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느님이심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니라.


내가 천지일월과 같거늘

5 공신이 평소에 상제님과 함께 사진을 찍어 간직하고 싶어하다가 하루는 기회를 보아 사진 찍으시기를 여쭈니

6 상제님께서 마다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일월(天地日月)과 같거늘 무슨 사진이 필요하더냐.” 하시고

7 또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삼층전 미륵불을 보소.” 하시니라.

8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사진을 많이 찍지 마라. 정기가 모손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219)


위의 상제님 말씀과 같이, 상제님께서는 사진 찍기를 마다하시며, 정기가 모손되니 사진 많이 찍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되는 강증산 실제 사진은 검증되지 않은 사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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