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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천제

2018.05.18 | 조회 945 | 공감 0

신교문화의 이해, 천제문화天祭文化

 

 

(행촌 이암의 상소) 우리나라는 환·단桓檀(환국-배달-고조선) 시대 이래로 모두 천상 상제님의 아들(천제자天帝子, 天子)이라 칭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태백일사』「 고려국본기」)

 


높으신 하늘의 일은 소리가 없어도 만물이 힘입어 자라나는데, 나라를 유지하는 근본은 먹거리가 있어야 사람들이 믿고 살아갑니다.

 

바야흐로 첫 봄을 맞이하여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오니, 상제上帝님의 은혜로운 혜택이 아니면 이 백성이 무엇을 의지하오리까?
(이규보(1168~1241) 『동국이상국전집』 권40,

「상신기곡원구제축上辛祈穀圓丘祭祝」 )

 

 

●고려시대 천제 관련 책자

(『 동방 조선의 천제』, 강영한 저, 상생출판)

고려는 대승불교문화를 꽃피웠던 통일신라의 종교문화 유산을 물려받았다.

 

또한 유교와 도교와 같은 중국 고전사상을 수용하면서 국가체제를 이룩했던 삼국의 문화전통도 이어받았다.

 

물론 그 전의 삼국에 못지않게 기복사상의 특성을 지닌 한국 고유 종교전통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윤이흠, 「고려 종교사상의 특성과 흐름」, 윤이흠 외, 『고려시대의 종교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15-16쪽)

 

한마디로 다종교가 각각 나름의 기능을 하며 공존하는 구도였다.


이는 〈훈요십조〉에 나타난 국가운영의 기본 방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 중 종교와 관련한 내용을 보면, 국가 대업은 불교에 근거할 것, 도선의 도참설을 숭상할 것, 우리 고유 문화전통을 존중할 것, 연등과 팔관을 엄히 지킬 것 등이다.

 

이를 종합하면 <훈요십조>는 결국 불교, 유교, 도교, 기타 한국 고유사상을 모두 국정운영의 기본 이념으로 삼으라는 훈시이다.

 

그러므로 고려시대의 종교 지형은 불교, 도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상황이라고 함이 적절하다.

 


 

고려의 제사체계

『고려사』의 길례吉禮는 『상정고금례』 상의 제사 분류 형식에 의거하여 각 제사 대상별로 제사의례에 관한 제도적 규정 및 의주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고,

 

여기에 제례 행사에 관한 연대기 기사를 덧붙이고 있다.


길례조에서 국가 제사는 크게 대사, 중사, 소사로 구분된다.

 

대사에는 원구·방택·종묘·사직·태묘 등, 중사에는 적전籍田[선농]·선잠先蠶·문선왕 묘 등, 소사에는 풍사·우사·뇌신·영성靈星 등이 포함된다.이어 잡사雜祀가 나온다.

 

 

고려시대의 의례 중 가장 특징적인 점은 지금은 우리 역사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그리고 흔히 유교식 천제 의례라고 알려진 원구제圜丘祭 가 등장하고, 그것도 원구제가 가장 중요한 의례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비록 왕건이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사용하면서 황제국·천자국의 체제를 갖춘 면도 있으나,

 

태조 때부터 천자나 황제의 하늘 제사의례의 한 형식인 원구제가 행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전부터 내려오는 팔관회를 통해서는 늘 하늘을 향한 의식을 고양시키고 있었다.

 

한 가지 지적할 것은 고려시대에는 유교나 도교식의 천제가 아니라 동방 조선에서 예부터 행해오던 고유의 천제도 그 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팔관회와 연등회이다. 그러나 『고려사』에는 이들이 가례嘉禮의 끝부분에 가례잡의嘉禮雜儀로 분류되어 있다.

 


고려에서는 유교적 제천의례뿐만 아니라 팔관회나 연등회와 같은 전통적인 거국적 행사가 지속적으로 행해졌다.

 

그것은 비록 성종대의 사전체계 정비시에 ‘이치에 맞지 않고 번요煩擾’하고, 상례에서 벗어난 음사로 인식되었으나,

 

그 이전에 태조는 <훈요십조>를 통해 팔관회와 연등회를 잘 행하라고 하였다.

 

그래서였을까? 고려 왕조에서 팔관회가 열리지 않은 때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팔관회는 어떤 의례인가?

기록으로 보면 신라 진흥왕 때(진흥왕 33년, 572년) 시작된 것으로 고려 말까지 수백 년간 거행되었다.

 

팔관회는 신라를 거쳐 고려로 내려온 천신제, 제천행사이다.

 

<훈요십조>에도 팔관회를 하늘[천령], 오악, 명산, 대천, 용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태조 왕건은 즉위한 그해(918년) 팔관회를 열고, 이로부터 해마다 상례 행하였다.

 

태조 원년에 팔관회가 행해졌는데 궁 뜰 안 사방에 불을 밝히고 백희가무百戱歌舞가 연출되고 백관이 예복을 입고 예를 하며 구경꾼들이 도성에 몰려들었다.

 

이를 구경한 송나라의 서긍徐兢(1091~1153)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왕씨가 나라를 세운 이후에는 산에 의지하여 나라 남쪽에 성을 쌓고 자월子月(음력 11월)을 세수歲首로 삼아 관속官屬을 거느리고 의식에 쓰이는 제물을 준비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 10월 에 동맹東盟하는 모임은 지금은 그 달 보름날 정갈한 음식을 차려 놓는데 이것을 팔관재라 부르며 그 의례는 매우 성대하다.

『( 고려도경高麗圖經』 권17, 사우 祠宇) 

 

팔관회는 개경에서 매년 11월 15일에 행제行祭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이를 중동팔관회라 불렀다.

 

그 뒤로 서경에서도 10월에 이틀 동안 팔관회를 개최하고, 임금과 신하뿐만 아니라 외국 사신이나 상인들도 참석하였다.


『송사宋史』의 이런 글도 참조하자.

 


해마다 건자월建子月(북두 자리가 자방子方을 가리키는 음력 11월)이면 하늘에 제사드린다.

 

나라 동쪽에 굴이 있는데 이를 ‘수신禭神’이라 한다.

 

언제나 10월 보름날이면 그 수신을 맞이하여 제사지내는 데, 이를 팔관재八關齋라 한다.

 

이때의 의식이 매우 성대하여 왕은 비빈과 더불어 누각에 올라 크게 음악을 펼치고 잔치를 베풀어 술을 마시고,

 

상인들은 비단으로 장막을 만드는데, 백 필이나 연결하여 그들의 부유함을 과시하기도 한다.

(『송사』「 외국전 外國傳」)

 

 

이는 고구려에서 10월에 수신을 맞이하여 하늘에 제사지내며 음주가무 하는 동맹의 의례와 같은 것이다.


고려는 10월을 세수로 팔관회를 행하였다. 세수에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아, 팔관회는 결국 새로운 한해의 시작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경축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훈요십조>에서도 팔관회는 천령 및 오악과 명산대천, 용신을 섬기는 것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천령은 천신일 것이다.

 

결국 팔관회는 고대의 천제의식을 계승한 것이다.

 

그것은 불교적 행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고구려의 제천의례를 계승한 거국적 축제였다. 추수가 끝난 뒤 천지신명, 하늘에 올리는 감사의 축제였다.

 


그런데 이후 유교의 힘이 커지더니, 고려에서는 제사 체계가 유교식으로 정비되면서 길례체계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대·중·소사로 분류된 것이다.

 

사실 고려의 이러한 분류와 원구제의 수용은 삼국의 길례 내용과는 달리,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중국 길례 체계를 전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고려는 중국의 유교사상을 적극 수용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유교 의례도 적극 받아들였다.


중국의 유교 의례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국가의례 체계로 삼았다고 해서, 고려가 초기부터 중국을 천자국으로 섬기거나 사대주의, 명분론, 중화주의적 인식으로 사로잡힌 것은 아니다.

 

성리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원구제와 같은 천제가 제도적으로 금지된, 제사체계에서 원구가 아예 눈에 띄지 않는 조선시대와 비교하면,

 

고려사회에서는 원구가 대사로 범주화되었고, 원구제가 천자국 의례로서 실행되고 있었다.

 

이것은 고려가 그만큼 아직 유교사상에 의해 지배되지 않았으며, 유교사상이 아직 보편적이지 못했음을 말한다.

 

즉 고려는 아직 중국·유교의 영향을 덜 받고 있음을 말한다.

 

 

이제 고려사「지」예에 나타난 원구에 대하여 알아보자.

 

고려사「지志」의 원구단 모습

원구단圜丘壇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을 말한다.

 

중앙에 둥근 단을, 밖에는 네모난 방형의 담을 쌓아 만든 원구단이 고려시대에는 어디에 있었을까?

 

『신증동국여지승람』 권5, 개성부 하, 고적에 의하면 원구는 개경에 있던 나성羅城의 남쪽 성문인 회빈문會賓 門 바깥에 있었다.


고려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원구단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성종 2년이었던 983년이다.

 

이 고려의 원구단 모습을 보면 이렇다.

 

 

둘레가 여섯 길 석자(6장丈 3척尺)이고, 높이는 다섯 자(5척)이고, 열 두 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졌다.

 

원구단 외곽에는 3중의 낮은 담장 [壝]이 있는데 그 간격은 각각 25보이다.

 

낮은 담장 밖에는 높은 담장[垣]을 쌓았는데, 이 높은 담 둘레에는 사방에 문이 있다.

 

요단 燎壇은 신단 남쪽에 있는데, 너비[廣]가 한 길(1장)이고 높이가 한 길 두 자(1장 2척)이다.

 

호戶는 사방이 여섯 자(6척)인데, 위는 틔우고 남쪽으로 출입한다.

 『( 고려사』「 지」 권 제13 예 禮1 길례대사吉禮大祀 원구)

 

 

고려에서는 성종 때부터 천자만이 할 수 있는 원구단을 설치하고 정기적인 기곡제를 정월 상신일에 거행하고, 부정기적인 기우제도 원구단에서 거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종묘를 태묘로 만들고, 7묘제를 도입하는 등, 유가적 예를 시행하면서 도교식 등 다른 천제도 동시에 거행하였다.


제례 때 신에게 고하는 축문을 써서 붙여 놓는 판인 축판祝版에는 ‘고려국왕 신 왕모는 감히 밝게 고합니다(高麗國王臣王某敢明告)’라고 썼다.

 

천제의 주관자[主祭者]인 국왕을 ‘고려국왕 신’이라고 표기하였다.

 

이는 중국에서 하늘을 계승한[嗣] 천자의 지위를 담은 ‘사천자嗣天子 신臣’이라고 칭했던 것과는 비교가 된다.

 

이로 보면 고려에서 행한 원구제가 천제 의례라고는 하나, 그것이 ‘천자’ 의례로서 거행된 것은 아닌듯하다.


고마움과 공경의 뜻으로 바치는 물건[禮弊]과 제물로 바치는 희생[牲牢]은 어떤 것이었을까?

 

 

원구단에는 상제를 정위로 하고, 태조를 배위로 하며, 여기에 동서남북 그리고 중의 오방제(청제, 적제, 황제, 백 제, 흑제)를 종사從祀하였는데,

 

상제에게는 창벽蒼璧·사규유저四圭有邸의 옥, 그리고 옥과 같은 색, 즉 창색蒼色의 폐백을 올렸다.

 

창벽蒼璧: 상제에게 제사를 드릴 때 옥으로 만들어 올리던 예물의 하나로, 감색의 고리 옥을 말 한다.

사규유저四圭有邸: 규는 위를 깍아 모나게 다듬은 옥을 말하는데, 고리 옥[벽璧]의 사방에 규圭 네 개를 붙여 놓은 것이다.

 

 

그리고 희생으로는 상제에게는 창색의 송아지[蒼犢] 한 마리를 올렸다.

 

단 섭사일 경우에는 양 한 마리를 올렸다.


헌관獻官은 국왕이 초헌관이 되고, 태자나 공公·후侯·백伯이 아헌을, 태위太尉가 종헌을 한다.


고려시대 국가에서 행한 가장 큰 종교적 행사는 원구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는 의례였다.

 

고려시대는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유교적 의례로 자리 잡았던 원구제가 도입되어, 이 땅에서 처음으로 유교식 원구제가 행해진 때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천제의 전형인 원구제가 제도화된 것은 6대 성종(981~997) 때이다.

 

광종(949~975)은 태조 이후 잠시 중단되었던 연호를 다시 세우고, 자신을 황제, 개성을 황도로 격상시켰다.

 

황제국가의 체제를 갖추어나간 것이다. 이어 그는 왕권과 중앙집권의 강화를 위한 이념으로 유교사상에 큰 관심을 가졌다.

 

 

성종은 과거를 통해 정치 관료들을 충원하고 당의 제도를 도입하여 국가 통치조직을 정비하는 등 유교 중심의 정치를 폈다.

 

그러면서 온갖 개혁을 시도하였다. 지방에 12목을 설치하여 처음으로 지방에 수령을 파견하고, 유교 교육기관인 국가감을 설치하고, 향학을 설치한 것도 성종 때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고려의 정치질서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은 10세기 후반인 성종 때이다.


성종은 치국의 이념이 된 유교사상에 따라 국가 제사도 정비하고, 그 으뜸인 원구 천제도 처음으로 지냈다.

 

때는 성종 2년이었던 983년 정월이다.

『( 동방 조선의 천제』, 강영한 저, 상생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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