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신앙의 차이는 뭘까?

초립쓴30대 | 2009.10.22 13:02 | 조회 1506

박학다식을 찾아서
첫 만남은 군복무 시절이었습니다. 증산도 신앙을 하던 선임병이 중대 도서실에 두고 간 『이것이 개벽이다』 上과 팔관법에 관한 소책자 몇 권을 우연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기보다는 ‘음, 이런 게 다 있구나, 재밌다.’는 정도였습니다.
 
평소 역사, 종교, 철학, 신비주의나 미스테리, 오컬트 등에 흥미가 있어서 깊지는 않아도 잡다한 지식을 갖고 있다 보니 처음 본 개벽책은 솔직히 ‘이것저것 섞어놓은 재미있는 책’ 정도로밖엔 안 보였습니다. 게다가 상권뿐이었으니 개벽이 와서 다 죽는다는 건지 어떤 식으로 구원한다는 것인지 결론이 없었으니, 충족되지 못한 호기심 때문에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제대하면 책에 적혀 있는 연락처로 연락해서 증산도 도장이라는 데를 찾아가서 물어보리라 다짐하며 틈날 때마다 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 그리는 게 좋아서 만화가가 되려고 결심한 만화가 지망생입니다. 어느 정도 그림에 대한 틀이 잡히고 나자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남들이 내 그림 가지고 일본풍이라고 하는데 그럼 한국풍은 무엇인가? 붓으로 동양화 느낌을 내고 한복입고 다니는 사극을 그리면 한국풍일까? 아니다. 그림만 놓고 보면 일본시대극, 사무라이를 그리는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다.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나만의 스타일, 내 화풍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우리 민족의 역사에 흥미가 생겨서 책을 읽고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었으며 만화가는 박학다식하지는 못해도 잡학다식해야 된다고 배웠기에, 만화 그리는 데 도움이 되어 보인다 싶은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선민사상은 위험한데…
2003년 11월, 제대 후 저는 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강남도장에 연락을 하고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다들 너무 친절히 대해 주셨으며 증산도 진리와 사상을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의문 나는 것은 그때그때 물어보았으니까요. 하지만 단 하나, 상제관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우주의 주재자, 옥황상제님이 계신다는 것까지는 납득이 돼지만, 상제님이 강증산이라는 이름으로, 즉 우리 민족으로 오셔서 천지공사를 보고 가셨다는 얘기는 제 얄팍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선지자이며 사상가인 예수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신의 아들로 정해놓는 바람에 지금까지 종교문제로 얼마나 많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있어왔는가? 게다가 자기 민족만 신께 선택받았으며 때문에 자기 민족만 구원받을 것이라는 선민사상을 갖고 숱한 분쟁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유태인들(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이건 너무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이다. 즉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린 저는 공부는 할 수 있어도 신앙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개벽책을 읽을 땐 증산 상제님도 남사고나 소강절처럼 위대한 선생님이시구나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입문식을 하고 얼마 후부터 도장을 찾지 않았고 먹고사는 일에 바빠 점점 잊었습니다. 제 머리 속엔 갑자기 “적덕가의 자손이 나가려 하면 이곳을 나가면 죽느니라 하며 앞이마를 쳐서 집어넣고 적악가의 자손이 들어오려 하면 이곳은 네가 못 있을 곳이니라 하며 뒤통수를 쳐서 내쫓는다”는 성구가 문득 떠오르며, 그래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보다. 설령 죽는다고 해도 납득이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신앙하는 척 속일 수는 없다. 그건 너무도 친절한 도장 사람들을 기만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강남도장을 나섰던 것입니다.
 
 
로고스(이성)와 파토스(감성)의 조화라야
그로부터 약 3년 후 홍대 학생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패널활동을 하고 있던 증산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저 종교 아직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이 들었지만, 문득 다시 생각을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내가 공부를 잘못한 게 아닐까? 상제님과 신도(神道)에 관한 것은 책을 읽어서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수행을 통해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는 게 아닐까? 로고스(이성)와 파토스(감성)도 음양원리라면 나는 진리를 반 정도밖엔 이해를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패널활동을 하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다시 한번 공부를 제대로 해볼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홍대에서 가장 가까운 도장이 광화문도장이라 우연히 그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몇 달 전 이사한 집에서 거리상으로 광화문 도장이 더 가까웠습니다. 아직 공부가 한참 부족한 저로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수행을 통해 체험하신 분들이라면 조상님이나 보호신명 덕분이라고 하셨을 겁니다.
 
이번에 입도준비를 하면서 포감님이 7일 정성수행을 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번번이 실패하다가 세번째에야 간신히 7일을 채웠습니다. 저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오랫동안 방황한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졌으니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제가 증산도를 만나는 계기가 된 책의 주인, 군대 고참 박은형 성도님과 정성으로 저를 이끌어주신 강남도장 및 광화문도장 포감님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강남도장의 포감님은 꼭 다시 만나뵙고 사죄를 드리고 싶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는데 제가 아무 말도 없이 도장에 발길을 끊었으니 배신감도 크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논어에 나오는 제가 좋아하는 글 한 문장을 적으며 마무리하겠습니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라.
 아는 자(알기만 하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공부도, 수행도, 포교도, 하기 싫은데 끌려 다니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서 재미있어서 즐기면서 하는 신도가 되겠습니다.

_ 이00(男,27세) / 서울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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