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건져 살리는 참일꾼이 되겠습니다!

초립쓴30대 | 2009.10.19 11:21 | 조회 1334

세상을 건져 살리는 참일꾼이 되겠습니다!

선형숙 성도 (오른쪽, 33세)/ 서울 신촌도장/
도기 119년 2월 12일 입도/
 

  진리를 찾던 젊은 시절  
어린 시절 저는 화목하지 않은 가정환경으로 인해 조숙하고 우울한 성격을 갖게 되어 언제나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인간은 왜 사는 것일까, 우주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세상은 왜 이리도 슬프고 불합리한 것일까?’ 청소년기에 흔히 가져보는 그러한 질문들에 관해 꼭 누군가로부터 시원한 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잠시 교회를 가 본 적도 있으나 그 당시 건립하려고 하던 단군 성전에 결사 반대하며 기도하는 것을 보고는 제가 몸담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답해 주지 않는 의문들, 다만 이 세상이 왜 이리도 슬프고 고독하고 어두운지 그 이유만이라도 명확히 알려 줄 수 있는 그런 진리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의문과 허무,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어린 저를 늘 짓눌렀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부산대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과 선배인 최철호 성도를 만나서 증산도의 우주 원리를 들었고 『한민족과 증산도』란 작은 책자를 받았습니다. 그 날 밤 그 책을 이리 저리 더듬으면서 가슴이 한없는 기쁨으로 벅차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진리가 세상에 있었다니, 이렇게 완벽하게 말해주는 진리가 있었다니,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후천 세상이 열리다니! 참된 도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이었고, 이런 진리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일제시대 때 보천교를 신앙하셨던 증조부님
89년 2월 12일 입도를 하였습니다. 입도 당시 특이한 체험을 했습니다. 제가 이층 방에서 『증산도의 진리』 책를 보고 있다가 아래층으로 내려 왔을 때였습니다. 선잠을 주무시던 할머니께서 손을 휘휘 저으면서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너희 할아버지가 오셨는데. 그리고 형숙이가 공부한다고 보러 가야 한다고 하던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입도한 직후,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던 돌아가신 할아버님이 꿈에 오셔서 저를 꼭 끌어안아 주셨습니다. 아직도 오늘 일처럼 생생합니다.  “믿을 것은 너 밖에 없다”  그 한 말씀을 하시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우시던 할아버지의 품에서 저도 마냥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좋아도 실천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증산도를 신앙하는 것을 아시고는 무섭게 반대를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아버님과 큰아버님은 일제 시대에 상제님 신앙을 하셨습니다. 천둥 번개치는 날만 되면 개벽이 온다고 잠자는 할머니를 깨워서 태을주를 외우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 할머니의 가정은 상당한 부호였는데 독립운동자금으로 꽤 많은 재산을 헌성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제 경찰에 알려져서 두 분은 감옥살이를 하셨고 거의 시체가 되어서 나오셨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그 두 분이 잡혀가실 때, 일본 경찰들이 철사로 손을 뚫어서 꿰어 끌고 갔다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 약 냄새가 3년 동안 집안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거의 그러한 가슴아픈 기억으로 인해 할머니는 “우리 집안을 망친 그 종교를 하겠다거든 집을 나가라!” 하시며 원한과 미움이 베인 말씀을 저에게 쏟아 내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삶의 유일한 의미인 증산도 신앙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 생활이란 상제님 신앙을 하는 것 이외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마음만 앞서고 유치하기 짝이 없었던 신앙이었습니다. 상제관에대해 깨어진 것은 입도하고도 한참 뒤였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한다고 온 캠퍼스를 휘젓고 다니던 것이 아직도 생각 나곤 합니다.


   초발심의 열정으로 다시 돌아가

1994년 도공을 전수 받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도공을 받은 후 결혼을 하면서 숨어있던 신앙의 열정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 때 저는 아이를 낳고 몸이 아파서 한 시간 이상의 거리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종일 도공 수련을 한 후 몸은 회복되었고, 유체이탈을 하기도 하며 잠시 신명 세계를 들여다 볼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감이 회복되면서 포교를 해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솟구쳤습니다. 그냥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습니다.

상제님 태모님 전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사람 많이 살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부족한 제가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 한 생명을 깨끗이 따담아서 상제님, 태모님 진리로 인도하겠습니다’ 그런 염원에 의해서인지 포교가 되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알 수 없는 긴박감과 앉아 있을 수 없는 답답함으로 가방에 책 몇 권을 담아서 하루 종일을 걸어 다니면서 이 세상의 어두움과 무지와 싸웠습니다. 오직 젊은 혈기와 믿음만이 재산이었던 시기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당시의 경험이 저에게는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한동안 도장과는 떨어져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려웠던 가정살림 때문이었는지 저의 의식 역시 어두워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상제님 태모님 제가 많은 사람을 살리겠습니다”
그러던 중 1999년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태사부님과 사부님께서 전국을 순방하시면서 잠자는 신도들을 깨우기 시작하셨습니다. 강남도장에서 새벽까지 계속되던 사부님의 생명 말씀은 나태하고 묵은 제 영혼을 계속 두들겼습니다.

  “묵은 신앙을 새롭게 변화시켜라. 도대체 입도가 무엇이냐? 하느님의 천명을 받은 것이다.”  사부님의 준엄한 질타는 혼미한 제 정신을 깨워주었습니다.  ‘아 내가 그래도 몇 년을 신앙한다고 했는데, 아, 내가 잘못된 신앙을 했었었구나. 아, 내가 사람 살리라는 하느님의 천명을 받았었는데.’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온 천지에서 사부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전(道典)의 거백옥 도수을 읽으면서 참회하였고, ‘과거의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말자. 아무 것도 미워할 것도 아쉬워 할 것도 없다. 다만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아이가 너무 어려서 낮에는 도장을 갈 수가 없어 밤에 가서 철야 수행을 일주일 동안 하였습니다. 그 일주일동안 몸이 변하였고 사배심고를 하거나 식고를 올리려고 수저만 들어도 기운은 태극으로 제 몸에서 휘돌았습니다. 기도소리가 천지에 사무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아현도장의 책임자였던 김종래 성도님의 간곡한 권유로 포감을 맡으면서 서울에서의 신앙 생활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2001년 들어 지금의 아현도장이 신촌도장으로 이전을 하면서 도장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습니다. 수호사님은 저에게 천록포감으로 도장에 봉사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신앙을 다시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은 생각에, 아이가 아직 어린 것이 맘에 걸렸지만 천록포감에 지원하였습니다.
 
그 해 겨울은 정말 눈이 많이 왔습니다. 아직 세 살 밖에 안 된 아이를 깨워서 유치원에 데리고 갈 때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외투를 입혀서 문을 나서면 찬바람과 함께 차가운 눈이 얼굴을 내리쳤습니다. 푹 푹 꺼지는 눈길을 헤치며 반은 걷고, 반은 끌려서 유치원에 온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제 다리를 잡고 악을 쓰며 울었습니다. 아이를 떼어놓고 눈길에 미끄러지듯 울면서 도장에 와서, 상제님 태모님을 우러러 뵈면 제 자신이 한심해서 눈물이 절로 나오곤 하였습니다.

천록포감으로 봉직을 시작하며 천지에 다짐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을 살리겠습니다. 우리 도장 성도님들이 모두 성공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는 그러한 다짐을 반복하며 가슴에 새기곤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깨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 신촌 도장에는 젊은 인재들, 특히 인터넷 포교를 하는 일꾼들이 많습니다. 저도 2001년 4월 프리챌 ‘충격대예언’이란 동호회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동호회를 만들고 밤이 새도록 글을 올리고 홍보를 해도 회원이 느는 것은 너무나 더뎠습니다.

  그런데 그 해 겨울에 있었던 ‘개벽 대성회’ 하루 전부터 회원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동호회 소개란에 우리 동호회가 소개되었던 것입니다. 도장에서 하는 대외적인 행사를 계기로 큰 기운이 내려온다는 것을 그 후 경험을 통해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또한 우리 일은 신명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일임을 절감했습니다.

  인터넷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새삼 놀란 것은 개벽을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입니다. 홍콩에 산다는 어떤 회원은 어릴 때부터 개벽이 오는 꿈을 꾸었는데 최근에는 예수와 석가모니불이 차례로 나타나서 세계를 구원할 분이 너희 나라에서 태어나니 그분을 도우라고 말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최근에 만난 김소영이란 회원은 폐허(廢墟) 속에서 사람을 구하는 꿈을 꾸었는데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호회를 통해 저와 정한철 신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그 이유를 알았다고 했습니다. 많이 배운 지성인일수록 상제님 진리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이제는 준비된 영혼들이 도문으로 들어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지난 화요일이었습니다. 그날도 동호회에서 정기 채팅을 하고 이런 저런 걱정으로 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천지가 뒤집어지면서 지진이 났습니다. 한쪽에서는 땅이 꺼지고, 쩍쩍 벌어지면서 그야말로 생사가 갈리는 아비규환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사부님의 모습이 하늘에 보름달처럼 떠올랐습니다. 사부님의 음성으로 천지가 출렁거렸습니다.

  “도장으로 다 모여!”  도장을 잘 나오지 않던 신도들은 어찌 할 바를 몰랐고, 훈련된 신도들은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절박한 순간에 단 한가지가 생각났습니다.  ‘난 아직 육임을 다 못 짰는데… 아직…’  그리고 잠이 깨었습니다.


  구원의 메시아, 동방의 흰 옷 입은 무리들
요한계시록을 보면 ‘흰 옷 입은 무리가 동쪽으로부터 와서 인(印)을 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일은 바로 우리의 영광과 사명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 절대절명의 위기, 그 순간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는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고귀하고 영광된 존재일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일꾼들의 영광을 위해서 온 일생을 불태우셨던 상제님, 태모님, 그리고 태사부님, 사부님. 크신 은혜에 너무도 감사드립니다. 비록 작은 힘이나마 사람을 살리는 천지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에 도움을 주신 여러 선배, 후배 성도님! 지면을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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