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적 인간, 인간꽃

관리자 | 2023.09.12 05:54 | 조회 1677

증산도 태전보문도장 어트겅자르갈 도생


“사람을 살리려고 그런다.”라며 웃는 회사 동료의 눈빛은 진심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실제로 실천하며 남을 위해 사는지, 눈앞에 보이는 그들이 점점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보면 볼수록 예쁜 인간 꽃이 진정 그들이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불확실성

1990년 봄 몽골에서 민주화 바람이 일어나 사회가 크게 흔들렸던 시절 저는 열두 살의 소녀였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몽골 사회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 생겨났습니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계획경제 제도를 채택했던 몽골은 이때부터 엄청난 혼란을 겪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린 열두 살의 저한테는 마트 진열대에 소금 외에 아무것도 없었던 현상이 제일 강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거리에는 승복을 입은 사람들이 종종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저의 외할아버지도 승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언제부터 중이었는지 그때 왜 승복을 입었는지, 원래부터 입었는지도 저는 잘 모릅니다. 그저 중이 된 할아버지 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종일 불경을 외우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약을 지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전에 친할머니가 아침에 끓인 차를 떠서 집에 있는 신단 같은 곳에 올려놓는 것을 본 것이 전부였던 저에게는 종교의 얼굴을 처음 본 경험이었습니다.


나중에 어른이 된 후에도 제가 처음 보던 그 종교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중이 아니면 불경을 볼 일도 없습니다. 그저 일이 생기거나 필요하면 절에 가서 돈 내고 중에게 불경을 외우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절에서 가져온 향을 피우거나 청수로 세수를 하는 것이 몽골인들의 대표적인 종교 예식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환경을 보고 자라서 종교에 대한 큰 인식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돌아가시기 직전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종교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세상 종교들은 그저 서로를 부인하고, 필요하면 전쟁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는 괴물들 같았습니다. 그들의 말은 인류 평화를 외치지만 행동은 인류를 갈라놓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종교는 저에게 매력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신비함으로 가득 찬 곳

하지만 그런 저한테도 신관은 있었습니다. 즉 신神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자연과 주변의 모든 것이 신기해도 너무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절대 저절로 생겨나고 물리학적인 변화에만 의지해 생긴 것으로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나만의 신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숨을 불어넣어 준 그 진짜 주인공은 나의 신이었습니다. 세상 종교는 다 헷갈려서 그 주인공의 이름을 다양하게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그 신을 향해 기도도 했습니다.


2013년 셋째 언니가 또 정신을 잃고 병원에 옮겨졌습니다. 이번에는 심장 멈춤도 있었고 증상이 심각하다는 의사의 말은 가족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날 큰언니가 이상한 말을 꺼냈습니다. 셋째 언니가 신을 내려 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숨을 이어 가기가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들었다고 했습니다. 식구들이 신을 받을까 말까 이야기하는 중에 저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 앞에서 그러고 있는 식구들을 친구들하고 비웃다가 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갑자기 미끄러져 오는 차 밑으로 다리가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다행히 차가 멈춰 무사히 지나갔지만 말을 잘못해 벌을 받는가 싶었습니다. 이를 식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이후 언니의 신 받음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저 또한 적극 지원했습니다.


신을 받은 언니가 진짜인가 의심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혼에 대해, 귀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신을 받은 언니를 체험하면서 신명의 세계가 한없이 궁금해졌습니다. 서서히 사후 세계를 믿게 되었고 귀신의 존재도 믿게 되었습니다.


💡나의 신관이 깨지면서

2014년 8월 8일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오전 일과를 보는 중 셋째 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더 이상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부터 원망을 했습니다. 전날 밤 왠지 모르게 아버지한테 너무 가고 싶어 남편에게 빨리 와 달라고 했는데 동료를 바래다주고 오는 바람에 다음 날로 미룬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지도 못하고 보내 하늘이 멀고 땅이 단단했습니다.


그때 저는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습니다. 충격으로 양수가 터지고 병원으로 옮겨져 미숙아를 안은 탓에 병원에서 정신없이 지내는 사이 식구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 마지막 모습도 못 보고 보내 드렸습니다. 이렇게 남편이 아빠가 된 날 저는 아버지를 영원히 잃었습니다. 뵙지 못해서 그런지 아버지는 어딘가 있을 것만 같아 찾아다녔습니다. 아버지 집에도 갔고 언니 집에도 갔습니다. 아버지가 오르던 산을 오르고 거리를 걸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잘 보이는데 아버지만 안 보였습니다.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수행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2016년에 둘째를 낳고 석사 과정을 공부할 좋은 기회가 생겨 한국에 왔습니다. 석사 공부를 하면서 저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신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세계주의이며 온 인류가 한 덩어리로 평화롭기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 그러한 세계주의로부터 나온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비슷한 신념관을 가진 종교들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증산도는 알지도 못했습니다. 일상도 바쁘고 깊은 관심은 두지 않았습니다.


🌠상제님 진리를 향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과정은 아마도 상제님의 진리를 만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종교에 매력을 잃은 것, 저만의 진짜 신을 믿었던 것, 명색이 종교라면 지구 인류를 갈라놓으면 안 된다는 굳은 생각,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싸움 없이 한 공동체로 잘 지내기를 바라는 세계주의, 신명 세계에 대한 큰 관심, 수행에 대한 관심, 이 모든 것이 상제님께서 남기신 길을 제가 함께 걸어갈 준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생각이 2020년 상생문화연구소에 입사하고 나서 더 굳어져 갔던 것 같습니다. 입사하기 전에 상생문화연구소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유튜브 영상에서 수행하는 장면이 나와 더욱 좋았습니다. 입사하고 나면 이 사람들하고 수행한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입도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입사하고 나서도 수행은 하고 싶은데 입도와 연결될 우려가 있어 갈피를 못 잡고 많이 헤맸습니다.


그런 와중에 연구소에 수행방이 열려 수행할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수행을 시작하고 얼마 후 제사상 같은 것이 보이는 한편 저도 모르게 입에서 제사라는 말이 불쑥 나왔습니다. 잠깐 졸았나 싶어 신경 안 쓰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생각나 찜찜해서 제사를 올렸습니다.


이후 신도 체험 등은 크게 없었지만 수행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를 심신의 상태를 통해 많이 느꼈습니다. 수행을 지속적으로 하면 확실히 덜 피곤하고 심리적으로도 긍정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수행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수행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시간이 흘러갈수록 제 마음은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도전道典』 속 내용도 제가 기존에 가졌던 신관과 똑같고 신명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신비로웠습니다. 저에게 연구소는 마치 동화 속 신비의 나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데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연구소에 있는 봉직자분들을 보면 처음에는 신기했다가 나중에는 존경스러웠습니다. 최 실장님, 김 부장님 등 여러 봉직자분들과 이사장님께 평생 은혜로 생각해도 넘침이 없을 정도로 감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점심 먹으러 나가다가 회사 문 앞에서 양 차장님이 “사람을 살리려고 그런다.”라며 웃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며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어떻게 버리고 살 수 있는지, 눈앞에서 보이는 그들이 점점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보면 볼수록 예쁜 인간꽃이 진정 그들이었습니다.


점점 제 마음의 물은 자꾸 생각과는 달리 거꾸로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수행을 이어 가기 위해서라도 입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인간 꽃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수행을 인도해 주신 최 실장님께 입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남편한테 말했습니다. 남편이 하는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정리되었습니다.


“당신은 그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뺏긴 거야.”


마음의 물이 흐르는 대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신비한 나라의 매력적이고 착한 백성들과 그 멋진 활동은 따라 하지 못해도 흉내라도 내며 늘 응원하고 정성 신행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 세계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상제님과 태모님, 그것을 이어받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주시는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사모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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