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만 힘든건 아니예요- 감정 노동자의 눈물

진성조 | 2011.09.17 08:34 | 조회 7591
[낮은목소리] 재떨이 던져도 멱살 잡아도…“사랑합니다, 고객님”
감정노동자의 눈물
한겨레 이정국 기자기자블로그
» 일러스트레이션/유아영
당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웃어야 한다면?

일반인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감정노동자’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단어는 미국의 사회학자 러셀 혹실드가 저서 <관리된 마음: 인간 감정의 상품화>에서 사용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감정노동은 원래의 감정은 숨긴 채 직업상 다른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해야 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미용업, 콜센터, 판매직, 카지노 딜러, 스튜어디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통계상 ‘감정노동자’ 항목이 따로 없어, 판매·서비스직 종사자 통계를 근거로 630여만명의 감정노동자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감정노동자는 화려해 보인다. 노동을 하는 장소가 호텔, 백화점, 카지노 같은 소비의 상층을 차지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의 이면에 ‘멍든 가슴’이 존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낮은 목소리’에선 카지노 딜러, 백화점 판매직에 종사하는 여성 감정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그들은 “속이 썩기 일보직전”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아래 기사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 특급호텔 카지노 딜러 김정민씨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있는 특급호텔 카지노에서 딜러로 일하고 있는 김정민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8살이고 경력 5년차입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제 특기인 중국어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받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더군요. 기초적인 딜러 기술을 배우고 나서는 계속해서 ‘참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회사에선 “무조건 참아라”라고만 했습니다. “카지노라는 곳이 돈을 따는 사람보다 잃는 사람들이 많으니 고객이 화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서요. 교육을 끝내고 현장에 투입되면서, 왜 참아야 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욕은 기본이더라고요. 돈 잃는 고객들이 테이블 치고, 욕하고, 행패를 부려도 가만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우리 돈으로 최대 8천만원까지 베팅이 가능한 이른바 ‘큰손’ 고객들에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딜러가 무슨 죄가 있나요. 자기들이 잘못해서 돈 잃은 걸 왜 우리가 화를 다 받아내야 하나요.

“돈 잃고 왜 화풀이하나요
재떨이 좀 그만 던지세요
각종 질병에 우울증까지…
딱 5년만 더 하고 그만둘래요”


저희들은 담배 연기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요. 근무가 끝나면 목에 가래가 한가득이지요. 도박하는 사람들이 담배들은 왜 그렇게 많이 피울까요.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재떨이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재떨이가 최근 사기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어요. 손님들이 화나면 막 집어던지기 때문이에요. 아는 후배는 손님이 던진 재떨이에 맞아 병원 치료를 받은 적도 있어요.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정도까지 이르니 그제야 플라스틱 재떨이로 바꿔주더라요.

고객들의 폭력은 그래도 참을 수 있어요. 너무 심하면 보안요원들이 제지라도 하니까요. 하지만 외국인들이 자기네들 나라말로 하는 성희롱은 정말 못 참겠어요. 우리들이 못 알아듣겠거니 생각하고 온갖 음담패설을 늘어놓아요. 저희들은 다 알아듣거든요? 거의 다 외국어 특기로 뽑힌 사람들인데 그걸 모르겠어요? 아, 또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근무 환경도 열악해요. 아침 6시~오후 2시, 오후 2시~밤 10시, 밤 10시~아침 6시 이렇게 3교대로 돌아가요. 한번 시간이 지정되면 두달을 연속으로 근무하지요. 심야반 걸리면 두달 동안 뭐하고 사는지, 멍해요. 하루 8시간 근무라 좋겠다고요? 중간에 따로 점심시간도 없어요. 밥을 10분 만에 먹어야 해요. 그래서인지 딜러들 대부분 신경성 위장병을 갖고 있어요. 여기에 하루 종일 서 있으니 목·허리·무릎이 다 안 좋아요. 햇볕을 못 보고 실내 생활만 하다 보니 우울증 증세도 생겨요.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는 동료들도 많아요. 저도 3년차 되니까 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감기가 들어오면 나갈 줄을 몰라요. 명절이요? 외국인 대상 카지노라서 국내 명절하고는 상관없어요.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느냐고요? 대부분 ‘술’이에요. 불규칙한 근무시간 탓에 친구들 만나기도 힘들고, 일 끝내고 동료들과 술 마시는 게 스트레스 해소의 전부예요. 몸은 더 망가지는 거지요 . 정말, 전 딱 5년만 더 하고 관둘 거예요. 딱 5년만.

» 백화점이 ‘고객 편의’를 앞세울수록 백화점 노동자의 노동강도는 강해진다. ‘화려함의 상징’인 백화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변변한 휴게실 하나 없는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보인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 백화점 명품 화장품 매장 직원 이명진씨

저는 이명진이라고 합니다. 올해 35살이고요. 한 외국 명품 화장품 브랜드의 판매 사원으로 백화점을 옮겨 다니며 17년 동안 근무했어요. 원래는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괄괄한 여고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에 아버님이 쓰러지셨어요. 어쩔 수 없이 생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소개로 한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백화점 판매원으로 취직을 했어요. 제가 열심히 했었나봐요. 한 2년 일했더니 외국 브랜드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17년 동안 어땠냐고요? 제 속이 다 썩었죠, 뭐. 이쪽 평균 근무기간이 3~5년밖에 안 돼요. 전부 다 나가요. 저같이 10년 넘긴 장기 근무자하고 신입사원들만 있는 셈이에요. 중간이 뻥 뚫려 있어요.

“팸플릿 찢어 얼굴에 던지고
트러블 났다며 멱살 잡고
무릎 꿇고 사과 요구도…
가족이라 생각해보세요”

그럴 만도 해요. 저도 중간에 울고불고 그만두려고 많이 했죠. 하지만 사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가요. 그러다 보니 17년이 흘렀네요. 저희는 하루에 12시간 정도 근무해요. 백화점 문 열기 전부터 닫고 나서 정리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그 정도 되죠. 빨간 날이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빨간 날이 백화점 대목이잖아요. 주 5일이요? 그건 어느 나라 제도인가요? 명품 화장품이니 급여도 높겠다고요? 저희는 급여의 3~40%가 인센티브예요. 화장품을 많이 팔았냐, 못 팔았냐에 따라서 급여가 결정돼요. 판매가 저조한 달은 급여가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백화점에서 담당 직원 교체까지 요구해와요. 매달 실적 나올 때마다 살얼음판이지요.

저는 다른 감정노동자들도 존중해요. 하지만 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들만큼 애환이 있는 감정노동자도 없을 거 같아요. 다른 쇼핑과 다르게 화장품을 사러 오시는 고객들은 굉장히 예민해져 있어요. 대부분 피부 트러블 때문에 고생하시거나, 노화 현상으로 인한 주름 때문에 기분이 상한 여성분들이 많아요. 이런 분들을 대상으로 화장품을 팔아야 하니 얼마나 애를 먹겠어요.

백화점 매장은 샘플 증정 행사를 많이 해요. 팸플릿이 나가고 당일이 되면 난리가 나요. 한정 수량인데 금방 동나는 건 당연하지요. 고객들은 거기다 대고 항의해요. 팸플릿을 북북 찢어서 얼굴에다 뿌려요. 종이로 뺨맞는 기분 느껴보셨나요? 그래도 우리는 “죄송합니다, 고객님”을 할 수밖에 없어요. 본사에서는 ‘미스터리 쇼퍼’(직원 친절도를 검사하기 위한 위장 고객)를 수시로 투입해요. 고객이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매뉴얼대로 하지 않으면 철저하게 체크해서 인사고과에 반영해요. 이러니 ‘무한 복종’이 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별꼴 다 당했어요. 한 조폭이 애인한테 줄 화장품을 사갔다가 트러블이 났다며 제 멱살을 잡고 끌고 다닌 적도 있어요. 한 손님은 무릎을 꿇으면 용서해주겠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실제 무릎을 꿇은 적도 있고요. 아, 정말 그때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네요. 3년 전쯤엔 유산을 했어요. 스트레스 때문이었어요. 뱃속에서 죽은 아이를 산부인과에서 다 긁어냈죠. 그러고 나서 3일 만에 출근을 했어요. 직원이 없다는데 어떡해요. 밑으로 피를 쏟으면서 계속 근무를 했어요. 그걸 견뎌서 이제 매니저가 됐는데, 매니저가 되니 더 눈치를 많이 봐야 하더라고요. ‘갑’인 백화점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요. 백화점 화장품팀장이 갑자기 회식이라도 소집하면 모든 화장품 코너 매니저가 한자리에 모여요. 거기서 속칭 ‘기생 노릇’할 수밖에 없어요. 술 따라주고, 2차 가서 노래 같이 불러주고 말이죠. 왜 그런 줄 아세요? 본사 인사평가 항목에 ‘백화점과의 관계’가 있어요. 한마디로 잘 지내라는 거죠. 그나마 화장품팀 회식은 이해해요. 왜 우리와 관련도 없는 경리부 회식에 부르는 거죠? “지금 경리부장님이랑 있으니 오세요” 이렇게 전화하고 끊어요. 안 갈 도리가 있나요? 제가 전에 일하던 백화점에선 한 팀장이 그런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을 하다가 사표를 낸 적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손님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 존중받고 싶으시다면 백화점 직원들을 그만큼 존중해 주세요. 자기 가족이 거기서 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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