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이긴 한건 가요?

진성조 | 2011.06.13 08:26 | 조회 7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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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릴레이 기고](1) 내가 사람이긴 한 건가

대학으로 향하는 치열한 과정을 거치고 드디어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든 예비 대학생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순위나 기록을 떠나 지겨운 마라톤을 끝마쳤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후련함으로 가득 채워지게 마련이다. 길고 긴 경주로 지친 몸과 마음을 그간 꿈꿔오던 ‘대학 캠퍼스의 로망’으로 보상받으려던 신입생들은 그 ‘로망’이 한순간에 ‘허망’으로 바뀌는 것을 체득한다. 입학금을 내고 교문을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부터.

바라고 바라던 대학에 입학한 이에게 이 사회가 안겨주는 것은 ‘학점’ ‘토익 점수’ ‘스펙’ ‘아르바이트’ 등 한 아름의 ‘폭탄 선물’이다.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이 등록금 폭탄이다. 시작부터 무거운 짐을 진 자. 나도 그런 신입생들 중 한 명이었고, 그렇게 입학과 함께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4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은 바로 청춘 시트콤의 주인공들과 나의 모습이 지나치도록 상반될 때다. 청춘 시트콤 속 친구들이 소파에 앉아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식당 내 열기구들이 내뿜는 화기에 땀 범벅이 되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설거지 감 앞에서 기계처럼 움직이는 ‘설거지 로봇’이 되어 살았다.

나의 하루 일과 중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노라면 오직 그 일만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고, 한 발 더 나아가면 ‘내가 사람이긴 한 건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나 자신이 로봇, 기계 같다는 생각은 나의 청춘, 나의 미래를 갉아먹는다.

나는 수능이 끝난 후부터 학원 건물 청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10여개의 강의실, 기다란 복도, 매일 청소해도 악취가 가시지 않는 화장실과 가파른 계단까지.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이 애써 닦아놓은 복도에 떨어질 때면 괜스레 서러워져 울컥하기도 했다.

시험기간이 되면 장학금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과에서 두 명밖에 성적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감에 휩싸이던 그때,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힌 지폐 몇장은 ‘차비’와 ‘점심’ 중 택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시급이 높은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가방 가득 전단지를 넣고 새벽부터 오전 시간대를 이리 뛰고 저리 뛰다 헐레벌떡 등교해 강의를 들을 때면 온몸이 녹초가 되어 볼펜을 잡는 것도 버거웠다. 등록금이 원수였다.

여대생들이 선호하는 것은 카페 아르바이트다. 사장님을 잘 만나면 그나마 편한 직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일하던 카페의 사장님은 저녁에 출근하자마자 폐쇄회로(CC)TV부터 확인했다. 시럽을 많이 넣어주면 어떻게 하나, 코코아 가루를 헤프게 많이 쓰면 어떻게 하나 언성을 높이더니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시켜 전화로 해고 통지를 했다.

급하게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푸드 코트에서 일한 적이 있다. 순대도 썰고 자장면과 우동면을 삶고 잔치국수를 만들었다. 음식 포장부터 설거지, 계산대까지 맡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진땀이 났다. 점심 시간대가 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져 순대를 빨리 썰어보겠다고 허둥거리다 칼에 베여 피를 흘리기 일쑤였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나 하나가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티조차 낼 수가 없었다.

대학생들에게 함부로 청춘이라는 말을 하지 마라. 등록금에 저당잡힌 대학생활, 이제 청춘이라는 단어는 내게 물에 젖은 솜과 같은 말이다. 무거운 짐, 부담, 강요의 다른 이름이다. 나와 내 또래들에겐 미래를 내다볼 여유조차 없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일상을 감당하기에도 너무 고달프다.

<김다운 |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입력 : 2011-06-10 21:36:13수정 : 2011-06-10 21: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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