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그녀가 몰랐던 것- 한겨레 칼럼

진성조 | 2011.06.09 07:43 | 조회 7585
[야! 한국사회]착한 그녀가 몰랐던 것 / 김진호
졸부형과는 다른 신귀족의 탄생이
신앙의 쇄신 현상 속에서 포착된다
한겨레
»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교회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연일 계속된다. 그 무례함이, 불법과 탈법이, 황당한 종교성이 따가운 질책의 이유가 되고 있다.

한데 그 와중에도 교회에서 미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추락한 품격을 높이려는 소박한 움직임이다. 이것은 보수주의의 갱신 혹은 선진화라는, 더 큰 사회적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이런 보수주의의 고품격화를 주도하고 있는 계층은 중상위 계층이다. 그런 점에서 압축적 근대화를 이룩한 한국 사회의 졸부형 귀족들과는 다른, 이른바 신귀족의 탄생이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의 쇄신 현상에서 포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한 후배로부터 그의 친구 얘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내 표현으로는, 신귀족적 기독교도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이다.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날, 그녀는 친구(위에서 말한 나의 후배다)에게 명품옷 한 벌을 선물했다. 대학 등록금에 맞먹는 값의 옷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연인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선물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연인도 아닌 친구에게 이 정도의 선물을 할까,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녀는 20대 말의 미혼 여성이고, 또래보다 조금 빠른 승진을 한 하급간부인 직장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꽤 큰 기업의 경영인이다. 그녀는 무남독녀로, 어려서부터 고가의 사교육들을 두루 섭렵했으며, 국내 명문대학을 졸업했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최소한 세 가지다.

부모는 그녀에게 학벌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경영수업 경험을 쌓게 하려고 무리수를 두지도 않았으며, 최고의 결혼시장에 내놓으려 전전긍긍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인격과 의사를 존중했다.

그녀는 부모와 독립해서 산다. 하지만 작지 않은 아파트는 부모가 사준 것이고, 관리비와 가사도우미 인건비를 포함해, 비용 일체도 부모가 부담한다. 그녀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비교적 괜찮은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방탕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비교적 검약하고 실용적인 소비를 한다. 유일한 그녀의 과소비는 친구들과의 관계비용이다. 친구를 잘 믿는 편이고 아낌없이 쓴다. 물론 무례하게 사람을 대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말로는, 이러한 태도는 신앙 때문이다. 뱃속에서부터 개신교도였던 그녀는 부모로부터 자기가 누리는 모든 것이 실은 하느님의 것이니 소중히 여기라고 배우며 자랐고, 비교적 그런 가르침에 걸맞게 살았다.

실제로 그녀는 남의 것을 빼앗을 필요도 없었고 남을 이기려고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었다. 어려서부터 풍족했고, 비교적 좋은 사교육을 받은 터여서 성적도 좋았다. 게다가 부모는 그녀의 능력 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또한 사람들에게 늘 예의 바르고 신의를 다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신앙의 이름으로 신념화했다. 한마디로 그녀는 ‘착한 기독교신자’다.


명품옷을 선물한 날, 그녀와 그, 그리고 다른 친구는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반값 등록금 문제로 격렬하게 시위를 하는 학생들에 관한 뉴스가 나왔다. 카페의 손님들 대다수가 뉴스에 주목했다.

그때 그녀가 무심코 말했다. “대학도 어렵고 학생도 어려우니까, 은행에서 등록금을 대출해주면 되지 않나?”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졸업해서 갚으면 되잖아.”

물론 그녀는 이런 제도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녀의 동기생들 중 많은 이들이 취업을 못했고, 어떤 친구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면서 8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고 있다는 것도….

이 착한 보수주의자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눈에 가려진 이들의 고통이다.



기획연재 : [사외] 야!한국사회
기사등록 : 2011-06-08 오후 05:37:23 기사수정 : 2011-06-08 오후 07: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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