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방에 갇힌 사람들(경향-고미숙 칼럼)

진성조 | 2011.04.26 22:08 | 조회 7129

[고미숙의 行설水설]‘외딴 방’에 갇힌 사람들

지난 3월 일본 대지진으로 2만명 이상이 죽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제 문명과 자연에 대한 거대한 탐구가 시작될 거라고. 또 죽음에 대한 본격적 탐구가 진행될 거라고. 왜냐면, 그 엄청난 사건 앞에서 나는 ‘지금 당장 해일이 덮친다면 죽음의 문턱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깊이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새삼 확인했다. 죽음에 대한 지혜가 없이는 결코 삶을 향유할 수 없음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기대했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그 엄청난 죽음들은 빠른 속도로 잊혀졌다. 그리고 얼마 후, 전혀 다른 죽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슈퍼 모델의 죽음, 해고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의 자살…. 이건 그나마 뉴스에 잡힌 것들이고 주변 친지들의 말로는 아파트 단지마다 투신자살자들이 없는 곳이 없단다. 거기다 ‘고독사’라는 단어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한마디로 천재지변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죽고 또 죽는다. 대체 왜?

꼬리 물고 이어지는 자살 뉴스

이 죽음의 행렬에 대한 대개의 진단은 이렇다. 경제가 어렵고, 경쟁에 지치고, 가족관계가 깨지고 등등. 여기서 끝이다. 솔직히 나는 이 나열된 항목들 중 어떤 것에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이것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아니라 거꾸로 악착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왜 우리 사회에선 이 항목들이 삶을 종식시키는 쪽으로만 나아가는 것일까? 아니, 그 전에 왜 다들 그게 당연하다고 전제하는 것일까? 결국 문제는 죽음 자체보다 죽음에 대한 ‘철학적 빈곤’에 있는 셈이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 권력은 죽음을 내팽개친다. 오직 살아있는 인구를 관리하는 것만이 최대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여, 죽는 순간 그 즉시 눈앞에서 치워진다.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 우리에게 죽음은 오직 통계 수치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아무리 죽음의 숫자가 늘어나도 죽음의 지혜는 증식되지 않는다. 죽음을 체험한 이들은 여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 이들은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무지는 공포를 낳고 공포는 삶을 잠식해 들어간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아주 조그만 상처에도 존재 전체가 흔들린다. 정신과 치료와 각종 심리치유법들이 넘쳐나는 것이 그 증거다. 자신을 존중하는 힘을 전적으로 외부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개인들은 더더욱 고립되어 간다.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내적 공감의 지대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모델이 죽기 전에 남긴 글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백번을 넘게 생각해보아도 세상엔 나혼자뿐이다.” 트위터에 페이스북에, 기타 등등, 이 ‘접속과잉의 시대’에 개인들은 이렇게 ‘외딴 방’에 갇혀 있다.

타자와의 ‘공감의 장’ 개척해야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하나의 거대한 사슬을 본다. 죽음에 대한 무지가 불안을 낳고, 불안이 소외를, 그 소외가 죽음을 생산해내는. 여기서 키워드는 저 가없는 격절감, 즉 고독이다.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라고 했던가. 과연 그렇다. 타자와의 공감이 빈곤해질 때, 자신에 대한 존중감도 함께 무너진다. 생명이란 관계의 그물망에 다름아닌 까닭이다. 아, 그렇다고 이 대목에서 가족주의를 호명할 생각일랑은 금물이다. 가족은 이미 대안이 아니라 원인이 된 지 오래다. 가족주의의 범람 속에서 정작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섬이 되어 가고 있다. 누구도 다다를 수 없는 아득한 섬이. 게다가 이미 일인가족이 수백만에 이르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진정 필요한 건 가족주의의 공허한 지반을 넘어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공명의 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고독과 죽음의 ‘은밀한 결탁’을 해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것뿐인 바, 그 길 위에서라면 죽음에 대한 탐구도, 삶을 향유하는 지혜도 충분히 가능할 터이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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