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진명, 정부는 명성황후 능욕사건을 조사하라(서울신문)

진성조 | 2011.04.27 22:01 | 조회 7038
(특별기고)정부는 명성황후 능욕 사건을 조사하라
소설가 김진명

일본 의회도서관 헌정자료실 이토오 백작 문고에 가면 에조 보고서라는 게 있다. 1895년 경복궁 내의 건청궁 옥호루에 일본낭인 수십 명이 난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의 전모를 기록한 이 보고서는 사건의 예비에서부터 실행까지 소상하게 기록한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

이 보고서는 당시 조선 정부의 내부 고문관이던 이시즈카 에조가 작성해 일본에 있는 자신의 직속상관인 스에마쓰 가네즈미 우정국 장관에게 보낸 것으로 사건의 지휘자가 미우라 공사임을 직시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존재 가치는 무엇보다도 당시 명성황후 살해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데 있다.

명성황후 시해 다큐멘터리 <민비암살>을 보면 저자인 쓰노다 후사코는 당시 현장에 있던 일본인 중에는 같은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옮길 수 없는 행위를 하였다는 보고가 있어...’라고 써 명성황후 시해의 현장에는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 있음을 암시한다.

일본의 역사학자 야마베 겐타로는 저서 <일한병합소사>에서 명성황후는 살해당한 후 낭인들에게 능욕 당했다라고 쓰고 있는데 두 사람의 이런 기술의 원천이 바로 에조 보고서이다. 특히 보고서는 미우라 공사 몰래 작성되어 비밀리에 스에마쓰에게 전해졌으므로 명성황후 살해의 배후로 지목되는 이토오 히로부미나 무쓰 무네미쓰의 손길을 벗어나 진실이 보전되고 있다.

미우라 공사에게는 배신의 극치이지만...’이라고 시작되는 이 보고서의 서두는 시해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문을 열고 왕비를 끌어내 칼로 몇 군데 상처를 낸 후(刃傷) 발가벗기고(裸體) 국부검사(局部檢査)를 했다. 참으로 우습고 노할 일이다(可笑可怒). 그 후에는 기름을 부어 소실했다. 궁내부 대신은 칼로 베어 죽였다’.

야마베는 이 놀라운 구절에 대해 사망 후 능욕이라는 해석을 했지만 이 보고서의 어디에도 그런 추정을 할 근거는 없다. 이 보고서를 자구 그대로 읽으면 명성황후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능욕을 당했다고 해석되지만 일본인인 야마베는 차마 이 엄청난 진실을 그대로 옮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간 우리 정부는 명성황후 능욕 사건에 대해 한 번도 조사한 적이 없다. 이것이 만약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했거나 너무도 치욕스런 일이라 조사를 포기한 것이라면 두 가지 점에서 큰 잘못이다.

하나는 역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란 편의적으로 묻어버리거나 파내서는 안 된다. 일단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놓고 그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닌가. 또 하나는 이런 사실을 묻어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정부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협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일본인들은 부끄러운 과거사를 전혀 모른다. 한국이든 아시아든 유엔이든 바깥 세계에서는 정신대를 그렇게 떠들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이들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본다. 정부가 정신대를 돈을 벌기 위해 일본 군대를 따라다닌 몸 파는 여자로, 징용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자진해서 온 노동자로 호도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논리를 강변하던 한 일본인에게 명성황후의 최후를 알려줬더니 그는 의회로 달려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서를 보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며 사죄해왔다.

이 사람의 예에서 보듯이 정부는 일본인 스스로 기록한 이 명성황후 시해의 참혹한 진상을 하루 속히 조사해 일본 국민들이 과거의 만행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그때라야 비로소 일본 시민 사회에서 왜곡된 역사교육과 그 연장선상에 서 있는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의심과 우려가 점화될 것이다.

정부는 지금 울릉도에 군함을 정박시키는 등의 독도 수호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그 전에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명성황후 참살의 진상을 확고하게 알려주어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것이 우선이다.

일본 문부성이 그토록 강요한 후쇼샤의 왜곡된 교과서를 거부한 주체가 바로 일본의 양심적 시민세력이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소설가 김진명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389개(112/160페이지)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회원게시판 이용수칙] 관리자 47920 2023.10.05
공지 상생의 새문화를 여는 STB 상생방송을 소개합니다. 환단스토리 208729 2018.07.12
722 [자유게시글] 나의 명상록1 [1] 진성조 5812 2011.05.02
721 [자유게시글] 파리 도심에도 한류가수 열풍 !! 사진 진성조 6608 2011.05.02
720 [자유게시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태양폭발 사진 첨부파일 [1] 잉어 8064 2011.05.01
719 [자유게시글] 김제동의 똑똑똑(29)-- '안철수와 박경철'(경향신문) 사진 [1] 진성조 6246 2011.04.30
718 [자유게시글]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을 위한 명언 진성조 6724 2011.04.29
>> [자유게시글] 소설가 김진명, 정부는 명성황후 능욕사건을 조사하라(서울신문) 사진 [1+1] 진성조 7039 2011.04.27
716 [자유게시글] 하버드교수, 티벳망명정부 총리 선출 잉어 5752 2011.04.26
715 [자유게시글] '외딴' 방에 갇힌 사람들(경향-고미숙 칼럼) 사진 진성조 7128 2011.04.26
714 [자유게시글] 漢字는 원래 동이족 문자였다는데… 사진 [2] 카리스마짱 7267 2011.04.26
713 [자유게시글] 美, 뇌 정밀지도 발표 잉어 6755 2011.04.25
712 [자유게시글] 타종교 에의 이해-(네이버지식in)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 [2] 진성조 7445 2011.04.25
711 [자유게시글] 뉴스는 반만 믿어라 --당신은 '서태지 폭로전'에 놀아나고 있다 사진 [1] 진성조 7623 2011.04.25
710 [자유게시글] 석가탄신-연등 수백개 훼손(어느 광신자의 행위가 아니기를) 사진 [1] 진성조 7452 2011.04.25
709 [자유게시글] 고병권의 [니체철학] 강의 중 - "신의 죽음과 진리" 진성조 8589 2011.04.24
708 [자유게시글] 광화문광장엔 '대한민국'이 없다 사진 첨부파일 잉어 6296 2011.04.24